그녀는 시내의 한 카페 구석에 앉아있었다. 서둘러 머리를 말리는 동시에 옷을 입고, 바로 나가려다 다시 거울 한번 보고. 아직은 조금 어설픈 운전 실력을 가지고서 나는 시내로 나갔다. 그녀는 분홍색 블라우스에 남색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매번 하얀 가운을 입은 모습만 보다가 밖에서 마주한 그녀는 어딘지 모르게 조금 낯설고, 회사에서 볼 때보다 어려 보였다. 얼핏 보인 옷들은 매번 청바지에 티나 면바지에 셔츠였던 것 같다. 그녀의 눈에도 내가 낯설게 보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자 어쩐지 목이 탔다. 나는 괜스레 앞머리 끝을 매만졌다.
이변을 알아챈 건 그녀의 자리에 갔을 때였다. 골격이 작은 그녀의 체구로 가려지는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짐작하지 못했다. 카페의 구석자리로 가는 길목엔 직각의 벽을 제외하고는 방해물이 없었다. 사선에서 걸어와 자리에 앉으려던 내 눈에 어떤 물체가 하나 들어왔다. 머릿속에 순간적인 반응으로 응? 을 외치는 동시에 제대로 볼 수 있게 된 그것은 물체가 아니라 생명체였고,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이었다. 남자아이였다.
까맣고 하얀 눈동자가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았다. 아이도 낯선 방문객을 보고 놀란 듯 싶었다. 그 눈이 조그마한 머리로 열심히 생각중이란 걸 알 수 있게 해주었다. 곧 머리 굴리는 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도전적인 눈빛이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 건 묘한 승부욕을 자극했지만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로 했다. 대신에 물음을 구하는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이 아이는,"
"알아서 뭐하게."
가늘고 고음의 톤을 가진 목소리가 그녀의 말을 반허리로 툭 잘라내었다. 누구의 말인지 깨닫는 순간, 생각이 두뇌에서 곱게 걸러지기 전에 나는 이미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뭐냐 그건."
그때의 감정으로 말하자면 나는 꽤 불쾌했다. 어딘지 모르게 제 엄마를 지키는 아들이 아저씨는 절대 아냐 라고 소리치는 듯한 뉘앙스에, 본의 아니게 나쁜 사람 취급받는다는 느낌이 썩 석연치 않았다. 얘야 난 무해한 사람이야. 그리고 넌 무척 건방지구나.
산뜻한 어른의 미소를 날리며 그렇게 말하고 싶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걸 행동으로 옮기는 동시에 스스로가 유치한 어른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꼴이었으므로 나는 가만히 있었다. 다만 인자해보이려는 미소만은 유지한 채 네가 의도하는 바가 도대체 뭔지 나는 모르겠다는 뉘앙스만 풍겼다.
되돌아보자면 나만 웃긴 일이었다. 당시에는 그러한 자각이 전혀 없었다.
결국 나와 아이 사이에 난감하게 끼어 있던 그녀가 중재에 나섰다.
"죄송합니다, 해야지?"
당연한 말이지만 아이는 스물여섯 그녀의 아들이 아니었다. 조카도 아니었다. 하물며 옆집 사는 이웃사촌도 아니었다. 생판 남이란다. 길에서 만났고, 친해졌다고 했다.
9살이나 열 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 '어린이'라고 불러도 무방하겠지. 그 나이 정도면 저런 말을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을 할까. 처음부터 인상 깊었던 부분이었지만 애인데도 인생의 전반적인 흐름에 있는 어떤 중요한 부분을 자각하거나, 파악하고 있는 듯한 선명한 눈동자가 맘에 걸렸다. 대화를 하고, 말이 통하고..그런 것과 달리 아이와 어른사이에는 어떠한 경계가 존재하고 있는지 의문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아이는 입을 살짝 샐쭉이더니 마지못해 말했다.
"..죄송합니다."
내가 너무 앞서서 생각한 건가? 아이는 아이였다. 나는 미소로 화답했다. 아이가 움찔하더니 자그마한 손으로 그녀의 옷을 쥐어 잡고 몸을 반쯤 숨겼다. 그런 반응이면서도 노려보는 시선만은 움츠러들 줄 몰랐다.
"낯가림이 심한 모양이에요."
그녀가 변명하듯 덧붙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기는 했지만 다른 의미로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옆에 앉아있는 터라 그녀에게는 보이지 않았겠지만 아이는 침착하게 나를 탐색하는 중이었다. 위해요소인가. 혹시 약점이라도 있는가.
보이지 않는 승부가 시작된 느낌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스스로가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결과적으로 내 말도, 그녀의 말도 틀리지 않았다. 낯을 가린다는 말은 사실이었는지 어색해하던 아이는 그 이후 두어 번 더 보고나선 내게 더 이상 주눅 들지 않았다. 그녀밖에 모르는 꼬맹이란 것을 제외하고는 아주 당돌한 녀석이었다. 자신감에 차있고, 어른들을 따라하는 듯한 냉소적인 미소를 지으며, 본인의 편의에 따라서는 지극히 아이다운. 하지만 아이라는 입장상 그 위치가 아주 유리하다는 걸 나는 깨달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귀여웠고, 천진난만했다. 때로는 얄미운 행동머리조차도 어른들 사이에 끼겠다고 바둥거리는 걸로 느껴져 실소를 자아냈다. 게다가 그녀를 바라보는 아이의 눈을 나는 꽤 오랫동안 잊지 못했다. 잘 닦인 유리알처럼 빛나는 맑고 순수한 눈동자가 그녀에게 머무를 때면 아이는 온몸으로 웃었다. 물론 실제로 웃는 건 아니었다. 아이는 표정의 변화가 크지 않은 편이었다. 하지만 미소 짓고 있었고, 그것만이 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