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그녀가, "둘이 잘 맞는 것 같아요." 라고 말했을 때 나는 "네?" 하며 입을 떡 벌렸다.
"와 표정. 치호가 보면 섭섭하겠다."
하지만 나는 내 의견을 물릴 생각이 없었다. 몇 번 볼 때마다 네가 왜 여기 끼어드느냐는 얼굴로 아이는 나를 마주했다. 그 얼굴을 보며 나는 속으로 끼어드는 건 네 녀석이라 맞대응했던 터였다. 앙숙이라면 모를까 잘 맞는다니?
그녀는 후후후 하고 웃으며 말했다.
"어른이랑 애들 사이에도 상성이라는 게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전. 둘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 네. 친구요.."
나는 좀 어이없어하며 그 말을 받아쳤다. 그리고 문득 떠오른 생각을 여과없이 내뱉고 말았다.
"과장님은요?"
그녀가 나를 쳐다보았다. 선명한 눈동자 아래로 어쩐지 재밌어하는 웃음을 짓는 걸로 보이는 건 내 착각일까.
"과장님은 치호를 몰라요. 아마 앞으로도 그럴 거고."
정확한 이유는 몰랐다. 그때도 몰랐고 그 이후로도 난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의 그 말은 나를 들뜨게 했다. 무엇이든 최훈에게 의지하려는, 그에게 잘 웃는 그녀가 유일하게 나하고만 공유한 정보가 있다는 사실. 그게 건방진 꼬맹이라고 해도. 그 꼬맹이가 나와 좋은 친구가 될 거라는 말도. 아 웃으면 안 되는데.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는 걸 막기가 생각보다 어려웠다.
아이는 수진을 부를 때 독특한 호칭을 사용했다.
"선생님."
"응?"
"왜 선생님이야?"
몇 안 되는 짧은 만남 중 한 구석에서 내가 물은 적이 있다. 내 말을 무시하면 수진에게 한소리 듣는다는 것을 습득한 아이는 대답해야했지만 영 말하기 싫은 모양이었다.
왜 선생님일까. 하얀 가운의 '의사선생님'정도라면 이해할 수 있을법했지만 그녀는 아이의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선생님은..그냥 선생님이예요."
잠시 고민하던 아이가 대답했다.
어쭈? 듣는 순간 그 너머에 중요한 나머지 말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능숙하진 못했지만 감추려는 의도가 명백했고 눈길을 끌었다. 생각한대로 여과 없이 흘러나오는 게 아이의 말이 아닌가. 그가 감추려는 게 무엇이든 사실 내겐 별 상관없었지만 그 태도가 호기심을 일으켰다.
하지만 나는 다시 묻지 않았다. 캐묻는 건 어른스럽지 못한 일이었고, 아이는 내가 행여 다시 물으면 어쩌나 전전긍긍한 모습을 숨길 줄 몰랐다. 실상 이런 건 다 핑계고 내가 아이와 그다지 친해지지 못했다는 게 실제 이유에 가까웠다.
만약에 마주한다면 인사정도야 하겠지만 그녀를 사이에 두지 않는 이상 우리에겐 친절한 미소와 시선을 지속적으로 교환할만한 정도가 못되었다.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는 그녀의 말이 무색하게 아이는 내게 아무런 흥미가 없었다. 나도 내게 흥미 없는 아이에게 지속적인 신경과 관심을 써줄 만큼 맘씨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녀라는 연결고리가 사라지면서 나는 아이에 대한 것을 쉽게 지워버렸다. 완전한 타인이었다는 사실도 그런 점에서는 유리했다. 아마 나는 아이도 그녀에 대해 금방 잊었을 거라고 가볍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아이는 어리고, 어리다는 건 앞으로의 삶이 더 많다는 말이고 그건 망각의 속도를 빠르게 만드는 일이었으니.
그 날 아이가 숨기고 있던 진짜 대답은 무엇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