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친구들과 한명한명 작별인사를 했다. 아쉬움은 있었지만 슬프지는 않았다.
마지막이였지만 눈물은 나지않았다.
따뜻한 공기, 익숙한 풍경, 하나라도 놓칠까 서둘러 눈에 담는다.
교실에는 친구들의 웃음소리, 운동장에는 체육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
나는 학교주차장에 털썩 주저 앉았다. 다리도 아팠지만 왠지모를 허무함도 함께했다.
앉아서 땅에있던 돌을 만지작 거렸다. 지금은 혼자있는 심심한 기분을 없애고 싶었다.
그때 내앞에 차가 멈췄다. " 얼른 타" 나는 손에 있던 돌을 던져버리고 차에 올랐다.
지금은 차가운 학교 주차장보다 따뜻한 차 안이 좋았다.
차는 좁은 골목이 아닌 넓은 고속도로로 향했다. 나는 당황했다.
"엄마, 집으로 안가?" 엄마가 말했다. "오늘 이사간다고 했잖아."
점점 더 차는 집과 멀어져갔다. "아니 그건 아는데, 집에 들렸다 가야지. 나 짐 아직 다 안 쌌는데?"
엄마는 귀찮은 듯 말했다. "엄마는 어제 분명 짐 싸라고 했는데 네가 서윤이네 집에서 잔다고 안쌌잖아."
나는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았다. '오늘이 마지막이라서 서윤이집에서 잔건데, 오늘 짐 싸려고 했는데'
야속하게 차는 넓은 고속도로를 향해 빠른속도로 달렸다. 옆으로 쌩쌩 지나가는 차들은 나를 더 혼란스럽게 했다.
나는 결심한듯 악에 받쳐 소리 질렀다, 다시 차를 돌리라고, 내려달라고,
목이 갈라지고 눈물이 찔끔 날때까지 소리쳤다. 엄마는 인상을 찌푸리며 참는 듯 했다.
나는 엄마를 향해 보란듯이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더 소리쳤다. 이에 엄마는 차 안을 가득 채울 정도로 소리질렀다.
"어차피 니네 아빠가 니 짐 다 버리고 있을텐데 가봤자 뭐하게" 아빠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목이 턱 막혔다.
나는 다시 돌아갈수도, 내릴수도 없었다. 아빠때문이 아니라 이미 돌아갈 수 없는 고속도로이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나는 창문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더 울었다. 창문속에 비친 내모습은 못나다 못해 흉해 보였다.
그렇게 계속 울때 쯤이였을까 차가 멈췄다.
12년 동안 경기도 촌에서 살던 곳과는 비슷해보였지만 왠지모르게 달랐다.
여긴 공기부터 달랐다. 원래 춥던 바깥 공기는 더 차갑게 느껴졌고, 넓지 않은 곳이였지만 나에겐 크게만 느껴졌다.
어느 아파트에 내렸다.
차안에서 슬펐던 기분은 사라지고 찬바람때문이였을까 새집때문이였을까 눈물은 이내 말랐다.
내 집은 1동 703호 였다. 느린 엄마를 뒤로하고 나는 먼저 엘레베이터에 탔다.
엘레베이터 있는 집은 처음이라 어색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다. 앞에있는 7숫자를 눌렀다.
가만보니 럭키세븐이였다. 행운이 가득할것같은 마음으로 엘레베이터는 올라갔다.
금방 도착해서 내리니 두 문이 있었다. 703호를 찾아 앞에 섰다. 도어락도 처음이였다.
친구집에만 있었던 도어락이였다. 비밀번호를 모르지만 도어락을 눌러보고 싶었다.
"띠띠띠띠" 맑고 밝은 소리때문에 왠지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이때 안에서 문이 열렸다. 익숙한 얼굴의 남자였다. 그남자는 환하게 웃으며 내이름을 불렀고, 나를 반겼다.
예전의 엄마가 계곡에 놀러가자고 했던날 함께했던 남자였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왜 우리집에 있지. 내가 호수를 잘못봤다 싶었다. 하지만 맞았다.
집안에 들어갔다. 전에 살던 집에 3배는 넓었다. 큰집은 처음이라 무서웠다. 다 처음이였다.
남자는 얼떨떨해하는 나에게 방으로 들어가 보라고 손으로 가리켰다.
"내 방이요?" 항상 엄마와 방을 같이 쓰던 나는 내 방이라는 공간을 믿기 어려웠다.
천천히 다가가 문을 열었다. 그렇게 크지는 않았지만 내방이라는게 생겨서 좋았다.
방에 들어가 포근해보이는 침대에도 누워보고 책상앞에 딱딱해보이는 의자에도 앉아봤다.
처음 투성인 집이 낯설지만 너무 좋았다. 거실이라는 것도 있고, 욕조라는 것도있고, 베란다라는것도 있고,
한곳한곳 눈에담기 바빴다. 구경을 다 한후 거실에 남자와 내가 남았다. 그 공간을 어색해 할때쯤 성치않은 몸으로 엄마가 들어왔다. 정말 다행이였다.
남자는 익숙하다는 듯이 엄마를 반겼고, 엄마의 입에도 미소가 지어졌다.
나는 엄마가 그렇게 행복하게 웃는건 처음봤다. 아빠앞에서는 입가에 미소조차 지어지지않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대충 짐을 정리하고 이사의 꽃 짜장면을 시켰다. 나는 처음생긴 내방 책장에 책을 차곡차곡 넣기 시작했다.
얼마지나지 않아 짜장면이 도착했다. 거실에 신문지를 깔고 먹기 시작했다.
남자는 내 눈치를 보며 말을 꺼내려고 했다. 자기를 소개하려는 듯 했다.
나는 괜히 엄마의 남자친구라는 어색한 단어를 듣기 싫었고,
어제까지만 해도 같이 있었던 아빠의 존재도 불편했기 때문에 말을 돌렸다.
그남자는 내 의도를 알았을까.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이 아저씨는 같이 사는건 아니고 다른집에서 왔다 갔다 할꺼야" 이내 엄마가 말했다.
"응" 나는 나지막히 얘기했다. 오늘은 계속 낯선것에 연속이다 보니 아무 느낌도 들지 않았다.
그렇게 어색한 공간속에서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짜장면을 먹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아직도 실감나지 않는다. 침대에 누워 넓지 않은 방안에 옷장, 책상, 침대, 서랍
내 방이라는 공간을 하나라도 더 눈에 담아두려고 했다. 하지만 이내 서서히 눈이 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