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스님이 왜 향을 피우신거에요?”
“향은 혼과 육체를 연결시켜 준단다. 그래서 제사할 때도 장례를 치를 때도 향을 피우지. 그걸 이용하면 사람이 귀신을 볼 수 있게 할 수 있는 거란다.”
소년은 바람에 흩어지고 있는 모기향에서 나오는 연기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너한텐 어렵겠구나. 이렇게 설명해주기도 힘드니까 책으로 배우는 게 어떻겠니?”
할아버지는 책을 가리켰지만 소년은 질색이라는 표정으로 할아버지를 쳐다보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그 모습을 보고 껄껄 웃었다.
“그래서 그 후엔 어떻게 되었어요?”
“스님은 그 구미호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공부를 가르쳤단다.”
“여기가 어디야?”
“내 집이다. 어질러놓지 말도록.”
두 벽면을 메울 정도로 쌓여있던 책들 때문인지는 몰라도 집이라고 하기엔 매우 좁은 방 하나와 화장실 하나가 전부였다.
“퇴마하러 안가?”
“너는 여기서 책을 읽으며 공부를 해라.”
“싫어. 재미없잖아.”
“인간들을 만나기 위해선 알아두어야 하는 것들이니 군소리 않는 게 좋을 텐데.”
인간이라는 말을 들은 구미호의 표정은 본성과 이성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처럼 보였다. 스님은 손으로 책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책들을 다 외우기 전까진 방에서 나올 생각 말거라.”
소년의 표정은 끔찍한 이야기라도 들은 듯, 인상을 쓰고 있었다.
“그렇게 많은 책을 언제 다 외워요? 너무하시네.”
“그렇지. 하지만 구미호는 이틀 만에 책을 다 외웠단다.”
소년은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 졌다.
“오 대단하다. 나도 요괴나 되었으면…….”
할아버지는 소년의 머리를 약하게 쥐어박았다. 소년은 배시시 웃고 있었다.
“스님은 갈등했단다. 자신이 20년에 걸쳐 공부한 책들을 이틀 만에 배운 구미호를 살려두어도 괜찮을지 생각했지.”
“나 이제 나가도 되는 거야?”
구미호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 스님은 망설였지만 자신은 순수하기 짝이 없는 구미호를 도저히 죽일 수 없을 것 같았기에 한숨을 쉬며 말했다.
“금방 나갈 테니 기다리거라.”
구미호는 밝게 웃으며 밖으로 나가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스님은 구미호를 데리고 황량한 벌판에 갔다. 풀 한포기 나지 않은 벌판에는 바람 소리만 들려왔다. 스님은 품에서 향을 꺼내 불을 붙였다. 잠시 후 벌판 가운데에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지박령이구나.”
벌판 한 가운데에는 땅에 돌같이 생긴 것이 박혀있었는데 자세히 보면 사람에 가까운 형태였다. 스님과 구미호가 다가가자 순식간에 사라졌다. 당황한 스님은 주위를 둘러보자 구미호가 잡아당겼다. 때문에 스님은 중심을 잃고 넘어졌고 주머니에 있던 부적이 떨어졌다.
“지금 뭐하는 짓이냐!”
스님은 구미호에게 호통을 쳤지만 구미호는 방금 스님이 서있던 땅을 가리키고 있었다. 가리키고 있는 곳을 보자 땅에서는 사람의 손으로 보이는 것이 나왔다가 금세 땅으로 들어갔다.
“발목 잘릴 뻔 했어.”
땅에 떨어진 부적은 불에 그을리기라도 한 듯 까맣게 변해있었다. 스님은 그 광경을 보고 한숨을 쉬고 구미호를 쳐다보며 말했다.
“근처에 이 땅에 있는 이유가 있을 거다.”
구미호는 귀찮은 표정을 하며 알겠다는 말을 한 뒤, 벌판의 한가운데로 걸어갔다. 스님의 주변엔 스산한 바람이 불며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 바람이 멈추었을 때, 땅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스님은 뒤로 물러났지만 땅의 균열은 그를 향해 빠르게 다가왔다. 스님이 뒤를 돌아 지팡이를 땅에 내리꽂았다. 그러자 균열은 잠시 멈추었다가 스님주위를 돌아 땅을 무너뜨렸다. 스님은 땅이 내려앉기 전에 지팡이를 빼내어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무너진 땅에서 지박령이 스님을 향해 튀어 올랐다. 스님은 당황하지 않고 지팡이를 휘둘러 원령을 후려쳤다. 스님은 그때를 놓치지 않고 지박령이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땅에다가 부적을 붙였다.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눈치 챈 지박령은 원망이 가득한 눈으로 스님을 바라보았다.
[나를 버리고 가지 마.]
지박령은 부서진 갑옷을 입고 있었다. 군인이었던 걸로 추정되는 그는 얼굴을 비롯해 다른 신체는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일그러져있었다.
“혹시 이거 아냐?”
구미호의 말을 듣고 지박령은 당황한 듯 뒤를 돌아보고 괴성을 지르며 구미호 쪽을 향해 빠르게 다가갔다. 스님 또한 그의 뒤를 쫓아 달려갔다.
“더 다가오면 부순다.”
구미호의 말을 들은 지박령은 제자리에 멈춰 섰다. 그녀의 아래에는 두개골에 금이 가있는 백골이 된 시신 한 구가 있었다. 스님은 다가가서 구미호의 머리를 때렸다. 구미호는 억울함과 당황한 감정이 섞여있는 눈으로 스님을 바라봤다. 어느 순간 원령이 다가와서 백골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스님은 그에게 말을 걸자 지박령은 스님을 바라보다가 다시 백골을 보며 말을 했다. 짧은 대화 끝에 스님이 지박령의 몸에 부적을 붙이자 지박령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그 자리엔 시체가 앉아있었다.
“무슨 대화했어?”
“친우가 전쟁에서 이곳에서 죽었기에 그의 시신을 지키고 있었다고 하더군.”
“겨우 저 시체를 지키기 위해 여기서 죽은 거야?”
“친우라는 건 원래 그런 사이야.”
구미호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백골과 시체를 묻어주는 스님을 지켜만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