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잉~띠잉~띠잉
언제 들어도 기분나쁜 경고음이다. 수술실에서 나의 손놀림을 재촉하는 채찍질과 같은
경고음.
"선생님 BP(혈압)이랑 Saturation(산소포화도)떨어지고 있습니다!"
"산소 체크해 5L로 올려! 블러드 더 가져와! 석션!"
아무리 석션을 하여도 피는 멈출지 모른다. 환자에 활짝열린 가슴이 큰 그릇이되어 안으로 피가 마르지 않는 샘처럼 차오른다.
'출혈을 막지못하면 이 환자는 정말 위험해'
삐--- 삐-----
"선생님 defibrillation(심정지)입니다!!"
"50줄 차지"
"샷!"
퉁~ 환자의 상채가 크게 들썩거린다.
삐--- 삐-----
반응이없다.
"100줄 차지"
"샷!"
퉁~ 환자의 상채가 또다시 크게 들썩거린다.
삐--- 삐-----
반응이없다.
"직접 펌핑 하겠습니다"
손으로 아직 파르르 떨리고 있는 심장을 움켜쥐었다.
'제발..'
모니터를 보며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일정한 속도로 심장을 움켜쥐었다.
"선생님 돌아왔습니다!"
"빨리 Bleeding(출혈)부터 잡지, 켈리"
"석션"
"모스키토"
"보비"
수술에 집중하기 위해서 필요한것만 최소한으로 이야기 하며 기구를 건내는 손과
받는손의 움직임 소리 이외에는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찾았다'
근육속으로 들어가버린 큰 혈관을 드디어 찾았다. 그렇게 2시간에 걸친 힘겨운 수술을 차근차근 마무리해 갔다.
"선생님 실은 멀로 쓰실건가요?"
"바이크릴 3-0주세요"
"피부는 멀로 봉합하실껀가요?"
"실캄 3-0로 주세요"
"수고하셨습니다"
오늘도 교통사고로 다친 환자수술을 끝맞췄다. 환자의 수술이 잘되었다는 보람같은 것보다는 어깨를 무겁게 누르고 있는 피곤함이 짜증 나기만 했다.
이제는 생명의 존엄성이니, 고귀함이니를 따지기보다 짜르고 붙이고 봉합하는것을 기계적으로 수행한다.
"김과장 돈도 좋지만 너무 무리하는거 아니야?"
수술을 마치고 나온 민부에게 마취과 선생님이 걱정을 하며 물어보았다.
"잠은 마취과 선생님들이 마취유도 할때 조금씩 자면 충분히 보충됩니다"
"너무 당직을 자주하는거 같아 그러다가 의료사고라도 나면 큰일인거 알지?"
"잘알고 있습니다"
대화에 힘이 하나도 없다. 빨리 가서 이 무거운 몸 하나를 푹신한 침대에 던져버리고 싶다. 감정이 하나도 실리지 않는귀찮은 대화를 마무리하고 잠깐의 눈을 붙이기 위해 당직실로 향한다.
"쳐업 베이베~쳐업베이베 좀더힘을네~"
휴대폰벨소리가 시끄럽게 울린다. 반갑지 않은 벨소리, 누군가 나를 찾는 다는게 요즘은 더욱 귀찮게만 느껴진다.
'아버지'
화면에 뜬 아버지란 글짜를 보고 나도모르게 몸서리친다. 정말 언제봐도 싫은 글자이다. 아버지라고 저장해놓은 내자신이 어떻게 보면 멍청하기도 하였다.
"아들~ 잘지내지?"
목소리를 듣는 순간 기분이 나빠진다. 저 필요할때만 친근하게 부르는 말투, 나에게 무언가 바라는게 있을때 나오는 기분 나쁜 말투이다.
"왜 전화하셨어요?"
"아들~ 돈좀있어? 한 이백만원정도"
"없어요!"
민부는 신경질적으로 대답한다. 항상 이런식이다. 가끔 전화를 걸어 돈을 달라는것 이외에는 안부를 묻거나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아들 아버지가 지금 돈이없으면 경찰서에 가게생겼어~ 돈좀 보내주라~"
"없다니깐요! 저번달에도 이백만원 드렸자나요!"
맨날 도박으로 탕진하는 아버지였다. 민부가 어렵게 모은 돈을 항상 어려움 없이 빼앗어가곤했다. 민부는 정말 한푼도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내에게 주고 싶지 않았지만, 어머니를 위해 어쩔수 없었다.
"그럼 할수없네~ 니네 엄마한테 돈좀 달라고해야겠다~"
"어머니는 건들지 마세요! 도대체 언제까지 괴롭히실꺼에요!"
"그럼 니가 좀 보내주던가~"
"알았어요! 어머니한테 연락하지마세요"
"역시 우리 아들뿐이라니까 내가 아들하나는 잘키웠.."
나는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아버지는 어려서부터 도박장을 끊임없이 다녔다. 어머니가 돈을 조금만 모아놓으면 어떻게 알았는지 집에 와서 돈을 내노라고 난리를 쳤다.
한번은 술을 먹고 어머니를 밀쳐 머리를 부딪혀 입원을 하였다. 그때부터 트라우마가 생겨 아버지가 돈을 내노라고 하면 몇날 몇일 방 한켠에 쭈그리고 '때리지마세요. 돈이없어요' 계속 반복한다. 이혼을 시키려고했지만 아버지는 완강하게 반대하였다. 그리고 이제는 나에게 돈을 달라고 매번 전화를 한다.
"에이! 자기전에 기분만 망쳣네"
2시간 당직실에서 쪽잠을 자고 부스스한 눈을 비비며 다시 응급실로 향한다. 머리는 부시시하고 눈에 눈꼽만 겨우 떼면서 일어났다. 아직도 무거운 몸을 억지로 한발한발 움직여 나아가고 있을때였다.
"어~ 김과장~시간좀 있는가"
민부는 이제 이 병원에서 일한지 2년 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외과에 의사가 한명뿐이기 때문에 과장직책을 달고있다. 이름뿐이 과장 직책 달갑지도 않았다. 월급에 비해 책임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네에 무슨일있으신가요?"
"긴이 할이야기가 있으니 방으로좀 가세"
무슨일이지? 민부를 요새 무슨일이 있었나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어제 수술한 환자가 잘못되었나? 시말서 한장쓰게 생겼군. 왠지 귀찮은 일일 거 같았다.
"커피 마실텐가?"
"네에 감사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우리 병원이 자네도 알겠지만 소규모 병원아닌가? 대학병원도아니고 운영하는데 어려움이 많은게 사실이네. 그래서 이번 이사회에서 우리병원을 성형외과, 안과, 피부과 중심의 병원으로 만들 계획이네 그래서 과를 좀 없앨생각이네"
"응급실은요? 외과를 없앤다고 해도 응급실에 수술할 사람은 남아있어야 하잔습니까?"
"응급실도 없앨 예정이네, 응급실이야 큰 대학병원으로 가면되말이야"
청천벽력같은 소리에 잠에 덜 깬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신이 들자마자 든 생각은 배신감, 이 병원에 이렇게 헌신한 사람이 나말고 또 있을까? 남이 4시간 잘때 본인은 2시간만자고 일했고 휴가 반납은 일상이었으며, 당직생활은 자신의 주특기일정도로 병원에 헌신했던 민부였다. 이러한 민부에게 날아온 화살은 권고사직, 분노에 소리쳐서 이야기 할수 밖에 없었다.
"원장님 제 사정아시지 않습니까! 외과의 자리도 없어 취직하려면 어려운거, 제발 부탁입니다. 이병원에 남게 해주십시오"
"내가 무슨힘이 있겠나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해야지, 그래도 그간 정을 생각해서 1달간 자리알아볼 시간은 줌세"
어지럽다. 머리가 깨질듯이 아프다. 의대다니느라 대출받은 학자금에, 생활비 생각에 눈앞이 캄캄해진다. 당장 다음달 생활비부터 걱정이었다. 맨날 편의점 도시락에 아침은 삼각김밥, 컵라면을 주식으로 먹어온 민부였지만, 그마저도 힘들어 진다는 생각에 눈앞이 깜깜해 지기만 하였다.
'내가 바보지 왜 외과의를 선택해가지고!'
나 같은 수전노에겐 평생 후회되는 선택이었다.
'생명의 귀중함? 가치? 사람을 살리는 보람? 이딴거 다 필요없어. 내눈앞에 만원이 더중요하지'
해고 통보가 있은뒤 1주일이 지났다.
메드잡 사이트를 열심히 뒤졌지만 외과의 구인글은 보이지 않았다.
머리속이 어지럽다. 어떻게 올라온 자리인데 이렇게 또 바닥으로 떨어질순 없었다. 또 머리가 지끈거렸다.
'요즘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서 그런지 머리가 자주아프네..'
"김간호사 다음 수술 준비됬나요?"
"네, 2룸에 준비됬습니다"
"그럼 가시죠"
어라? 갑자기 내몸이 휘청거린다, 눈앞이 캄캄해진다. 연극이 끝난뒤 커튼이 내려오는것처럼 눈커풀이 내려간다. 눈커풀이 무겁다.
"김선생님! 정신차려보세요! 김선생님! 여기 이송반좀 불러주세요! 김선생님이 쓰러지셨어요!"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눈을 조금씩 뜬다. 하얀천장이 보인다. 내가 왜쓰러졌지? 머리가 아팠던거 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렇다고 이렇게 쓰러질 정도였나?
"김선생님 정신이 드세요?"
"김간호사 내가 요즘에 잠을 잘 못잤더니 쓰러졌나봐"
"아니에요 선생님 좀더 누워계세요!"
"아니야 잠좀 푹잤으니 또 일해야지"
김간호사에 만류에도 민부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고하였다.
"김선생 누워있게"
"원장님, 잠못자서 쓰러진게 무슨 대수라고 찾아오셨어요 부끄럽네요"
"앉아있으래도!"
갑자기 들려오는 호통에 병실은 한순간 조용해졌다. 긴 침묵이 이어졌다. 민부는 무슨일인지 몰라, 어리둥절하니 있었다. 모두가 말을 아끼며 눈치만 보고 있었다. 한참 동안의 침묵후에 원장님이 큰결심을 한듯 말을 꺼냈다.
"김선생, 돌려 말하지 않겠네, 김선생이 이틀동안 쓰러져있었어. 걱정이 되서 brain CT찍어 봤지, 자네 머리속에 종양이 있더군"
"원장님 거짓말하지마세요, 이렇게 멀쩡한데 브레인튜머라니요!"
"자네도 의사니까 CT를 보면 납득할수 있겠지 길면 6개월이네"
CT상에는 우뇌를 밀어내고 자라는 암이 선명하게 보인다.
"이럴수는 없어!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데! 내가 얼마나 아둥바둥 살아왔는데! 도대체 나한테 왜이러는거야!"
모두가 자리를 비우고 나서 한참동안 민부는 멍하니 현실을 인정할수 없었다. 아니 인정하기 싫었다. 어렸을때부터 힘겹게 살아왔던 삶의 보상이 겨우 뇌종양이라니, 이제 좀 사람답게 살아보나 했었는데,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민부는 인정하기 싫었다. 본인이 죽는다는 사실을 모른척하고 싶었다. 그래 일단 머리를 좀 식혀보자. 어짜피 한달뒤에는 이 병원도 끝이고 일단 밖으로 나가보자. 원장님은 내가 불쌍했는지 남은 근무기간동안 유급휴가를 주셨다.
"하아 얼마만의 외출인지"
막상 일 밖에 모르던 사람이 휴가를 받으니 갈곳이없었다. 핸드폰을 열어보았다. 전화번호부를 쭉내려보았다. 누구에게 전화를 걸까? 마땅한 사람이 없었다. 나의 고통을 같이 위로해줄 그런 사람, 쉽게 전화해서 나오라고 할수 있는 그런 친구, 그런친구가 민부에게는 없었다.
"어머니나 찾아가볼까 불효자라 그동안 찾아뵙지도 못했으니"
"뜨르릉~, 뜨르릉~"
"어머니 어디세요?"
"응 그게.. 미소병원이란다"
"어디 아프세요?"
"아니.. 내가 아니라 니아버지가.."
묘한 목소리, 다급하지만 먼가 숨길려고 하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불안함을 떨쳐버릴수 없었다.
"제가 바로 갈께요!"
허겁지겁 택시를 타고 병원앞에 내렸다.
"여기혹시 김현우 환자입원해있나요?"
"306호로 가보세요"
"어머니! 이게 무슨일이에요?"
문을 열자, 침대 옆에 앉아 있는 슬픈 어머니의 얼굴이 민부를 맞이하였다.
"니아버지가 간암말기란다"
"잘됬네요! 매일 술만 먹고 도박만하더니 벌받은거죠"
갑자기 감정이 벅차오른다. 본인이 뇌종양이라고 알고나서 느낀 분노와 거부가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바뀌어 분노가 되어 표출된다. 다 아버지 탓이야. 내가 이렇게 힘든것도 내 인생이 이렇게 거지 같아 진것도, 내가 죽게 된것도 다 아버지 탓이야.
"그래도 니 아버지이잔니, 그렇게 말하면 못써"
"아니요? 아버지가 해준게 먼데요! 매일 도박으로 돈만 축냈죠. 오히려 돈나갈일 없어지고 이게 더 다행이네요!"
찰싹!
빰을 타고 올라오는 화끈거림에 정신을 잠시 놓치게되었다. 멍해진다. 내가 왜 맞은거지? 잘못한건 아버지인데, 왜 내가 맞아야되는거지?
"내가 널 그렇게 가르쳤니? 부모도 모르는 자식으로 키웠구나!"
지금까지 한번도 나를 때린적 없는 어머니께서 내뺨을 때리셨다.
"아버지는 니가 걱정할까봐 일부러 니병원에도 안가시고 너한테도 알리지 말라고 하셨다"
"니가 의사니 무슨방법을 찾아 볼수 있지 않겠니? 엄마가 이렇게 부탁할께 니네 아버지인데 니가 챙기지않으면 누가 챙기겠니?"
그 와중에도 아버지를 걱정하시는 어머니가 딱해보였다. 아들도 죽어갑니다 어머니, 6개월이후에는 못보실수도 있는거 알고 계신가요?
"아들아 신경쓰지마라 아버지는 더이상 너에게 폐를 끼지고 싶지 않구나"
아버지의 말을 뒤로한체 병원을 빠져나왔다. 아버지만으로도 충분히 걱정을 넘치게 하고 있을 어머니에게 본인의 걱정까지 하게 할 수는 없었다. 그래.. 모르는 편이 나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버지와 자신이 떠나고 나서 힘들 어머니가 걱정 되었다. 돈이나 벌자 내가 지금 할수 있는 거라곤 자신이 떠나기 전까지 어머니에게 드릴 돈을 모으는 거다. 또 머리가 지끈거린다. 아무생각이 없다. 내머리속은 하얀도화지에 검은 물감을 흩뿌려놓은듯 지저분하고 어지럽기만하다.정처없이 거리를 다닌다.
"어이~ 거기 아저씨!"
정신을 뻔쩍뜨이게 하는 목소리가 고막을 때린다.
"거기 아저씨~ 머리아프지? 죽여주는 두통약이있는데 이거 먹고 자면 개운해~ 단돈 만원!"
나는 이상하게 강한 끌림을 느끼고 주머니에서 만원짜리를 건네었다.
"잘산거여 총각! 먹고 자면 좋은꿈 꿀꺼야!"
점점더 머리가 아파온다. 지친몸을 이끌고 숙소에 도착했다.
'이약이 효과가 있을까? 진통제역할만해도 다행이겠지'
속는샘치고 약한알을 물한컵에 들이켰다.
스르르 잠이든다.
눈을떠보니 따뜻한 느낌이 나는 푸른 초원위에 나홀로 서있다.
"여긴어디지? 꿈속인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하죠"
우유받은 뽀얀피부, 빨려들어갈거같은 파란눈동자, 금빛인지 은빛인지 모를 찰랑거리는 긴머리카락, 하얀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내앞에 나타났다.
"당신은 누구시죠?"
"전 당신을 인도할 인도자라고 해두죠"
"제 꿈에 나타난 이유가 무엇이죠?"
"여기는 당신 꿈인 동시에 제꿈이에요. 제가 당신을 제 꿈으로 불러왔죠. 당신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에요. 저희 세상을 구해주세요!"
이름모를 여자가 대뜸와서 세상을 구해달라고 한다. 내가? 내가 멀할수 있는데? 나는 그냥 평범한 의사인데 세상을 구한다고? 갑자기 무슨 소리야.
"왜 저죠?"
"저도 모르겠어요. 제 부름에 응답하신분이 당신이기때문에도 또 당신에게서는 특별한 기운이 느껴지기도 하네요"
지금 내가 6개월밖에 못산다는걸 알고 하는 소리인가? 내게 남을 삶을 낭비할수는 없다고!
"만약 제가 당신을 도와준다면 당신은 내게 무엇을 줄수 있나요?"
"분명히 약속은 할수 없지만 당신의 삶을 바꿔줄수 있는 만큼은 될껍니다"
지금 충분히 밑바닥이다. 더 내려갈수도 없는 상황, 오히려 이것이 기회가 아닐까? 인생의 끝자락에서 도박의 기회를 얻은것이다. 잃을 것도 없다.
"좋습니다! 지금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태인데 밑져야 본전이죠"
"저희세계로 가는동안 당신세계의 시간은 가지않을겁니다. 또 저희 세계로 가면 저랑 더이상 만나긴 힘드실겁니다. 그대신 작은 선물을 하나 드리죠. 부디 저희 세계를 구원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