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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
작가 : 비밀광복군
작품등록일 : 2018.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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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작성일 : 18-11-13     조회 : 262     추천 : 0     분량 : 3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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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몰락한 양반가문이라는 말은 그리 낯선 단어가 아니었다.

 오히려 도처에 널린 흔한 현상이었다.

 사실 법으로 신분제를 폐지한 지는 이미 오래 전이다.

 나라를 잃은 것보다 더 된 일이었다.

 그래도 포기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몰락이라는 사태를 맞이한 상황에서도 그러했다.

 민수의 부친이 그러했다.

 더 이상 양반 명분은 연명 자체가 어려웠다.

 명분은커녕 호구지책조차 어려운 지경이었다.

 그래서 그는 궁여지책으로 고국 땅을 떠나려 하였다.

 원대한 꿈이 있는 게 아니었다.

 숭고한 뜻이 있는 것은 더욱 더 아니었다.

 그저 형편이 그러하였다.

 그래도 포기 못할 것은 있었다.

 그래서 고국에서의 마지막 방문지를 친구의 집으로 정하였다.

 오랜 약조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사정은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약조는 변치 않았다.

 친구는 그래도 하루 세끼는 먹는 모양이었다.

 민수의 부친 보다 나은 셈이었다.

 친구의 입장에서는 반대였다.

 그래도 그는 민수라는 대를 이을 자식이 있지 아니한가?

 자신에게는 난영이라는 딸 하나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대가 끊긴 셈이었다.

 대대로 이어오는 양반가문의 완전한 몰락이었다.

 둘은 혼인을 할 것이었다.

 그렇게 두 가문은 하나가 될 것이었다.

 난영은 여섯이고

 민수는 넷이었다.

 당연히 혼인은 아주 오랜 후가 될 것이다.

 그래도 두 가문은 하나가 될 것이다.

 약조를 확인한 그들은 술잔을 나누었다.

 세월이 나아지면 다시 만나자며

 그리고 그 두 번째 약조는 이루지 못하였다.

 민수의 가족들이 만주에서 변을 당한 것이다.

 당시에는 도적 떼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였다.

 만주 지역의 마적단들은 포악하고 사납기로 유명했다.

 많은 이들이 그들에게 희생당했다.

 누구도 어디에도 하소연할 길이 없었다.

 그래도 민수 하나만은 남겨두고 떠났다.

 또 다른 친구의 손에 였다.

 난영의 집에 맡기고 싶었지만

 혼사를 치를 양반 가문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민수가 맡긴 집에는 현식이라는 또 다른 친구가 있었다.

 민수와 동갑이었다.

 난영의 집안만큼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난영이나 민수의 집안처럼 명문가도 아니었다.

 양반이라고는 하나 조부가 무과에 급제한 기록이 있었고

 족보를 아주 많이 거슬러 가면 가끔가다 지방 수령의 명칭이 나왔을 뿐이었다.

 대를 건너 판서와 정승이 나오던 난영이나 민수의 가문과는 비교가 될 수 없었다.

 다행히 현식의 집안은 넉넉했다.

 대대로 많은 전답을 이어받았다.

 과거에 나아가는 재주보다는 장사의 재주가 있는 편이었다.

 일제 치하에 들어서서는 아예 집안 전체가 장사에 나서기로 했다.

 그래서 그들 역시 거처를 옮겨야만 했다.

 총독부 관할보다는 만주가 낫다는 것이 현식부친의 판단이었다.

 다만 민수만큼은 데려갈 수가 없었다.

 그를 장사꾼으로 만들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는 과거에 나아가야만 했다.

 총독부 하에서는 고등문관시험이라 불렀다.

 당연히 시험은 일본어였다.

 응시도 동경까지 가야만 했다.

 의당 민수도 동경유학을 보내야만 했다.

 현식 모친은 불쾌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현식 부친은 의리의 사나이였다.

 자신의 아들은 비록 장사꾼을 시키지만

 친구의 아들은 과거에 나아가게 했다.

 조선 전체를 통 털어 동경제대 입학은 몇 되지 않았다.

 그 합격증을 민수가 거머쥐었다.

 그 동안의 배려가 어떤 것인지 민수도 모르지 않았다.

 현식의 부친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아무 잔소리도 하지 않았다.

 그의 갈 길은 그저 운명 같은 것이었다.

 그에 영향을 미칠 사람은 그 어느 누구도 없었다.

 전적으로 민수의 몫이었다.

 현식의 부친은 그리 믿었다.

 마침 동경으로 떠나는 바로 그 날.

 그리고 현식의 집안이 봉천으로 옮겨가기 하루 전 날.

 민수는 은인에게 큰 절을 올렸다.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감상적이 되는 것은 싫었다.

 양반 가문의 체통에 맞지 않는 것이었다.

 현식의 부친도 잘 알고 있었다.

 큰 절을 받은 그는 그저 끄덕였을 뿐이었다.

 잘 갔다 오란 말도 하지 않았다.

 잘 가기는 하지만 민수가 돌아올 곳은 없었다.

 그러기에 잘 가란 인사는 부적절한 것이었다.

 현식 역시 그리 생각했다.

 마을 어귀까지 나온 현식은 그저 악수를 건넸을 뿐이었다.

 오랜 기간 둘은 손을 놓지 못하였다.

 눈빛만 교환했을 뿐이었다.

 아무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양반 체통 때문이 아니었다.

 어떤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어떤 말도 나와 주지를 않았다.

 그렇게 민수는 동경으로 떠났다.

 

 민수와 난영 집안이 혼인을 약조할 시 민수는 네 살이었다.

 당연히 이를 기억할 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알려줄 사람도 없었다.

 오직 현식의 부친만이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현식의 부친은 민수가 동경으로 떠나는 순간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운도 떼지 않았다.

 민수는 상황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민수는 동경으로 떠났다.

 

 민수가 동경제대에 합격을 하는 동안

 그럴 수 있도록 자라는 동안 사회는 요동쳤다.

 난영의 집안 역시 예외일 수가 없었다.

 완전히 풍비박산이 났다.

 정확한 내막은 알 수가 없었다.

 난영의 부친이 총독부에 끌려갔다는 말은 들었다.

 난영의 모친은 이에 대한 충격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소식을 듣고 달려간 현식의 부친은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다만 자식들이 뿔뿔이 흩어졌다는 소식만 들었을 뿐이었다.

 아마 반반한 여식들은 팔려갔을 것이라고.

 그중에는 난영도 있었다.

 둘째 딸이 가장 반반했다고들 했다.

 외삼촌의 소행이라고들 했다.

 하지만 그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행여 찾는다한들.

 현식의 부친은 고민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리고 이 모든 걸 묻기로 했다.

 특히 민수에게는 함구하기로.

 그렇게 민수는 동경으로 떠났다.

 

 난영은 여섯이었다.

 어린 나이였다.

 아이 중에 아이였다.

 하지만 혼인의 의미 정도는 알 수 있는 나이였다.

 더구나 그녀는 여자였다.

 나이를 먹고 키가 자라갈수록 그 의미는 명확해졌다.

 그녀의 삶의 목적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목표도 뚜렷했다.

 민수에게 어울리는 여인이 되는 것이었다.

 오직 민수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그녀의 운명은 이미 정해진 것이었다.

 하지만 야속한 일이었다.

 운명은 그녀를 놔두지 않았다.

 모든 것이 꼬여버렸다.

 뒤틀리고 엉켜버렸다.

 아니 박살나버렸다.

 그녀의 뇌리에 남은 것은 오직 하나

 박민수라는 이름 석 자뿐이었다.

 그것만은 잊을 수가 없었다.

 왜인지는 몰랐다.

 미련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다.

 

 현식만이 아주 나중에 이 사실을 알았을 뿐이었다.

 민수의 약혼 사실

 난영이라는 이름은 그저 가물가물했다.

 어려서 몇 번 보기는 했지만 거기까지였다.

 난영의 소식에 현식은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무엇을 어찌해 볼 도리는 없었다.

 그저 가슴만 아플 뿐이었다.

 그리고 그 역시 깨달았다.

 부친이 옳았음을.

 민수는 모르는 것이 좋았다.

 적어도 당시에는 그리 생각했다.

 그리 믿었다.

 당연했다.

 수많은 우여곡절을 지나 그녀를 만나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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