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판타지/SF
스푸쿠스제로 : spookszero
작가 : 줄리앙
작품등록일 : 2018.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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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신공양의 밤 (1)
작성일 : 18-11-20     조회 : 281     추천 : 0     분량 : 5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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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청이가 정말로 바다에 뛰어내리나요?”

 

 박 기자가 마이크를 이장의 입가로 불쑥 들이대며 물었다. 젖내를 풍기는 신참이었다.

 

 “제정신으로 하는 질문이야? 이런 엄동설한에 아이를 빠뜨려 죽이기라도 하란 거야, 뭐야?”

 

 이장은 심드렁하게 빈정댔다.

 

 “심청이는 누군가요? 작년의 그 아인가요? 아니면 뉴페이스?”

 

 “자네가 직접 가서 보면 될 일이지, 왜 날 따라다녀?”

 

 박 기자는 아까부터 이장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며 귀찮게 했다.

 

 ‘K 방송국 기자가 또 바뀌었군. 이태 전부터 그 년한테 당한 걸 생각하면 아주 상종 말아야할 종자들이라니까.’

 

 이장은 몇 해 동안 용왕제 홍보를 위해서 전심전력을 다했었다. 죽어가는 마을을 살릴 요량으로 줄기차게 용왕제를 키우기 위해 힘썼다. 이장 딴에는 마을 이름도 알리고, 관광객도 끌어오면 마을이 다시 활기를 되찾을 것 같았다. 그래서 용왕제를 위해 신문사나 방송국에 뿌린 돈 봉투만 해도 꽤 많았다. 신문사와 방송국의 관계자들에게 식사 대접과 술 대접은 둘째 치고, K 방송국의 그 빌어먹을 기자 년에게는 명품 가방까지 안겨줬었다. 그 년은 먹은 게 있어서 그래도 양심은 있었던지 체면치레로 취재는 나왔었다.

 

 “깔깔깔깔, 아이, 이장님도 걱정 붙들어 매세요. 이번에는 제가 확실히 밀어 드릴게요. 맛깔 나는 용왕제 홍보를 위하여, 자, 원 샷!”

 

 그러더니 결과는 꽝이었다.

 

 “용포항에서 제 8회 용왕제가 열렸습니다. 자, 다음 소식입니다.”

 

 소도둑 같은 낯짝의 K 방송국 아나운서는 그러고는 두 번 다시 용왕제의 용, 자도 내뱉지 않았었다. 달랑 그 한마디였다. 그림 화면은 아예 한 장도 나오지도 않았다. 이장은 처지가 말이 아니었다. 마을 사람들 볼 면목이 없었다. 마을 회관에 모여 기대하며 방송을 시청하던 남녀노소 마을 사람들은 어이가 벙벙하여 한동안 얼음이 되었다. 분노의 고요.

 

 “아, 닝기미 X또, X발.”

 

 대산이가 마을 회관 문짝을 깨부수고 나갔다. 와장창 소리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K 방송국 기자에게 뒤통수 맞은 마법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그때 이후로 용왕제에 열성이던 마을 사람들도 심드렁해졌다. 이장도 올 해만 어찌어찌 해보고 용왕제를 아예 때려치울 심사였다. 그러니 카메라를 들이대며 박 기자가 들러붙어 지랄 방구를 떨어도 남 일 같았다. 이장은 작년 K 방송국의 그 선임 기자에 대한 분을 삭이지 못했다. 그래서 이 신참내기 박 기자 놈을 방파제 아래로 걷어차 버릴까, 하는 생각도 문득문득 했다.

 

 ‘텅, 텅, 텅, 텅.’

 

 배들이 엔진을 달구기 시작했다. 한밤의 베일 뒤에서 은밀했다. 며칠째 부두를 무겁게 짓누르던 안개와 스모그는 더욱 짙어졌다. 뿌연 하늘에는 발원을 적은 커다란 연들이 긴 꼬리를 달고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있었다.

 용왕제의 밤이었다.

 촌락 어부들은 용왕제 날에는 하루 종일 고기를 잡지 않았다. 벌레들을 손바닥으로 때려죽이지 않았다. 금식으로 뱃속을 비웠다. 다리 달린 거나, 뿌리 달린 거나, 모든 생명들에게 평화로운 날이었다.

 출항을 먼저 마친 배들이 뱃전에 줄줄이 매달린 알전구를 켰다. 갑판 위에서 어슬렁거리는 인부들의 희미한 윤곽이 어렴풋이 드러났다. 해풍에 그을리고 바닷물에 쩐 팔뚝들이 이물에 단청북을 고정하고 있었다. 해풍에 전구 불빛들이 흔들렸다. 이 배, 저 배에서 오색천들이 파닥파닥 죽어가는 새의 날개처럼 요란스러웠다. 사람들은 모두들 눈구멍만 뚫은 자루를 머리통에 뒤집어쓰고 있어서 이게 김 가인지, 저게 박 가인지 도통 알 길이 없었다.

 

 “어이쿠, 내 발을 밟은 이 놈, 너 누구야?”

 

 자루 복면 하나가 버럭 성질을 냈다.

 

 “으악. 그러는 네 놈은 누구냐? 이 멱살 좀 먼저 풀어라. 컥, 컥.”

 

 숨통을 잡힌 다른 복면은 상대의 완력에 두 발이 공중으로 들렸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요번 단오 장사 대회에서 우승을 한 몸이다,라고 하면 알아 처먹겠냐? 이놈아!”

 

 멱살 잡은 복면은 역시 보통 놈이 아니었다.

 

 “너, 대산이냐? 켁, 켁. 나다, 니 애비.”

 

 이런 판국이었다. 그믐밤마다 해오던 연례 축제였으나,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자꾸만 군데군데 얽히고설키는 구석이 많았다. 모두들 용왕제에 열의가 없어서이기도 했다. 그들의 행동거지가 천성적으로 굼뜬 것도 한 가지 이유였다. 매끄럽지 못한 진행 상황이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껄끄럽게 하진 못했다. 사소한 일들은 사소하게 여기면 될 일이었다. 그렇다고 자신들이 해야만 하는 일들을 빠뜨리는 법은 없었다. 어둠 속에서도 대대로 반복한 일들을 습성처럼 착착 해내고 있었다.

 조타실에서는 이장이자 선장이 조류와 바람을 읽고 있었다. 해도를 펼치고 인당수의 위치를 대강 정했다. 인당수는 언제나 이장 자신이 임의로 정해왔었다. 이장의 변덕에 따라 인당수의 위치는 매번 바뀌었다.

 곶의 돌탑 주위로 랜턴을 든 아낙네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마을 여인들은 랜턴으로 교자를 멘 사내들의 발밑을 밝혀주고 있었다. 마을에서는 힘 좋은 장정 네 명을 뽑아 교군꾼으로 세웠다. 사람 드문 마을에 장정이라야 대산이 하나였는데, 그 대산이가 교자는 죽어도 안 들겠다고 어깃장을 부렸다. 그래서 젊은 축에서 고른 장정들이 70줄이었다. 기우뚱거리지만 그래도 교자는 느리게 전진했다.

 평교자에는 전통대로 흰 고깔모자에 하얀 저고리, 하얀 치마로 단장한 계집아이가 방글거리는 얼굴로 올라 앉아있었다. 올해 용왕제의 심청 대역은 산파 할멈의 손녀, 미나였다. 심청의 대역은 열세 살에서 열다섯 살 사이의 마을 소녀들 중에서 골랐다. 역대 심청들은 모두들 도시로 떠나는 바람에 마을에는 심청 후보감이 드물었다. 게다가 그 나이 또래의 여자 아이는 아예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삼년 내리 심청 역할은 미나가 독점하게 되었다.

 

 “몇살이니?”

 

 박 기자가 어느새 교자에 들러붙어 걸리적거리고 있었다.

 

 “아홉.”

 

 “뭐?”

 

 “아홉 살이라고요.”

 

 “심청이가 된 기분이 어떠니?”

 

 “굳.”

 

 “뭐라고?”

 

 “좋다고요.”

 

 미나가 박 기자의 마이크에 머리를 숙여 대답했다.

 

 “심청의 이야기는 알고 있니?”

 

 “절 바보, 멍청이로 아는 거예요?”

 

 “춥니? 코 봐라.”

 

 “아... 이거... 약 먹었어요. 내복도 두 장씩 껴입었어요. 먼저는 더 추웠는데요, 뭘.”

 

 미나는 소매 자락으로 콧물을 얼른 닦았다. 미나는 할머니가 준 감기약 때문인지 몽롱하게 조금 졸리기는 했으나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미나를 태운 교자가 돌탑 둘레를 서너 바퀴 돌고 선착장으로 내려왔다. 뒤따르는 마을 여자들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청아, 청아. 원망 마라. 북망이 멀다더니, 이리 멀 줄 누가 알랴.”

 

 “청아, 청아. 슬퍼 마라. 네 넋을 고이 담아, 천상에 날려 주리.”

 

 교군꾼들이 땅바닥에 내려놓은 교자에서 미나가 폴짝 뛰어 내렸다. 자루 복면을 쓴 사내 하나가 미나를 갑판으로 번쩍 들어 올렸다. 신참 기자와 카메라맨도 얼른 미나가 탄 배에 올라탔다. 이를 본 이장은 못마땅한 듯 얼굴을 찡그렸다.

 

 “배 띄워라.”

 

 이장이자 선장이 출항을 지시했다. 정박했던 어선들이 출렁출렁 미나가 탄 이장의 배를 따랐다. 이장은 자신의 배를 멀리 몰고 나가지 않았다. 안개와 스모그로 시야가 흐려서도 그랬지만, 정떨어진 용왕제라 얼른 끝내고 편육에 막걸리나 푸고 싶었다.

 

 “둥, 둥, 둥”

 

 자루 복면 쓴 사내 하나가 북을 두드렸다. 바다 한가운데 등불 켠 배들이 여기저기 뜬 채로 선장의 배를 주목했다. 난로를 쬐며 가물가물 졸고 있던 미나를 다른 자루 복면 하나가 깨웠다.

 

 “아가, 많이 졸리냐?”

 

 “으응... 다... 왔어요?”

 

 “그래, 고물에 가서 뛰는 시늉만 하고 와서 자거라. 해봐서 니 알지?”

 

 “응.”

 

 잠이 덜 깬 미나는 자루 복면의 손에 이끌려 고물 바닥에 섰다. 작은 몸뚱이가 이리 휘청, 저리 휘청 파도에 흔들렸다. 미나가 나와 서니, 이쪽 저쪽 배들에서 다시 아낙네들이 손을 휘저으며 전통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미나는 그 노래가 자장가처럼 나른하게 들렸다.

 

 “지금.”

 

 자루 복면이 미나에게 슬며시 귀띔했다. 미나는 하얀 치맛자락을 암팡지게 그러모았다. 그리고 깡총,하며 예쁘고, 귀엽게 제자리 뛰기를 선보이려고 마음먹는다. 그런데 그때, 난데없는 돌풍이 불고 파도가 일어 배가 제자리 뛰기를 해버렸다. 선장의 배가 손바닥 뒤집히듯 휘청거리며 미나를 바다 속으로 퐁당 내던져버렸다. 곁에 있던 자루 복면이 손을 뻗을 새도 없었다. 북소리가 뚝 끊기고 아낙네들의 노래가 비명으로 바뀌었다. 이장이자 선장은 출렁거리는 배의 키를 부여잡고 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심청이가 빠졌다! 심청이가 정말로 바다에 빠져버렸다!”

 

 내내 용왕제를 지켜보던 박 기자는 붉어진 낯빛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온몸이 굳어버린 카메라맨은 하얀 고깔모자가 검은 급류의 소용돌이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카메라 앵글을 돌리지 못했다. 북채를 들고 있던 자루 복면 하나가 북채를 내던졌다. 자루 복면도 벗어던졌다. 대산이었다. 대산은 배의 이물에서 잽싸게 몸을 날렸다.

 

 '첨벙.'

 

 대산이가 미나가 빠진 바다 자리로 뛰어들었다.

 미나가 나선을 그리며 검은 물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어선의 불빛 덩어리들이 수면에서 출렁거렸다. 그 덩어리들은 물결 따라 흐느적거리다가 거친 파도에 이내 흩어져버렸다. 그리고 사방이 어둠으로 채워졌다. 한겨울 바닷물이 유리 파편처럼 미나의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숨을 쉬려는데 공기 대신 짠 바닷물이 미나의 허파꽈리에 들어찼다. 미나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철퍼덕”

 

 바다의 수면이 찢기면서 물보라가 일었다. 멀리서 무지막지한 대산의 손이 불쑥 내려왔다. 대산은 어두운 물속을 사정없이 더듬으며 잠수해서 들어갔다. 이리저리 뒤치는 억센 물살에 대산의 덩치는 뒤집어지고 엎어지고 좀처럼 중심을 잡을 수 없었다. 대산의 손은 미나의 옷자락 한 귀퉁이를 연거푸 잡아챘다가 놓치고, 잡아챘다가 놓쳤다. 그러다가 대산은 가까스로 미나의 옷소매를 확 움켜쥐고는 있는 힘을 다해 끌어당겼다. 품안의 미나는 축 늘어져있었다. 생명의 반응이 전혀 없었다. 대산은 뒤늦게 자신의 체력도 바닥난 걸 깨달았다. 왼팔로 미나를 감고, 발차기를 하며 손을 저어 수면으로 올라가려고 발악을 했다. 그러나 대산의 숨은 턱까지 차올랐다. 대산은 미나를 안고 바닥으로 끝없이 가라앉았다. 대산은 꺼져가는 의식 속에서 꿈결처럼 무언가를 보았다.

 

 “뚜우, 뚜, 뚜우, 뚜.”

 

 해저에서 희미한 형체들이 점멸했다. 그 발광체들이 대산과 미나 쪽으로 재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들은 관만큼 커다란 젤리 재질의 캡슐을 나르고 있었다. 대산은 마지막 숨이 멎는 순간, 젤리 캡슐 밑바닥의 TrashMori(트래시모리) 마크를 보고 두 눈을 감았다. 여러 개의 발광체들은 죽은 대산과 미나의 시체 주위를 방사형으로 정신없이 헤엄쳐 다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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