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판타지/SF
스푸쿠스제로 : spookszero
작가 : 줄리앙
작품등록일 : 2018.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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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신공양의 밤 (3)
작성일 : 18-11-23     조회 : 252     추천 : 0     분량 : 5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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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저음의 목소리를 가진 여자가 손을 쑥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곽국희입니다.”

 

 국희는 허리까지 오는 검은 생머리를 질끈 묶고 있었다. 머리칼 한 올 삐져나오질 않았다. 검은 롱코트에 가죽 부츠. 붉은 루주가 동그란 얼굴에 제법 어울리는 빈틈없는 인상의 여자였다. 국희가 옆에 있는 또래의 여자를 소개했다.

 

 “이쪽은 루루 레이케츠.”

 

 도리는 보잉 선글라스를 쓴 루루와도 악수를 했다. 도리는 정전기가 일어 흠칫 놀라는 루루를 손안에서 느꼈다. 목에 두른 머플러의 여우 털들은 살아있는 무수한 촉수들 같았다. 노란 단발의 루루는 도리에게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정전기 때문인 것 같았다.

 

 “유도리입니다.”

 

 도리가 기자 명함을 둘에게 건넸다. 도리는 첫 만남에서는 으레 명함을 돌렸다. 루루는 들여다보지도 않고 명함을 패딩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국희는 명함을 슬쩍 훑어보더니 풋, 비웃으며 말했다.

 

 “우리 사이에 이런 가식은 필요 없잖아요.”

 

 도리는 당황했다. 국희의 말투는 처음부터 건조했다.

 

 “우리가 도리 씨에 대해 모르는 것이 있을 거라 생각했나요? 설마?”

 

 국희는 도리의 명함을 두 번 짝짝 찢어 바닥에 내던졌다. 도리는 불쾌했다.

 

 “도리 씨? 이딴 명함 따위는 쓸데없다는 걸 이미 당신도 알고 있잖아요. 그런데도 도리 씨는 우리에게 명함을 주었어요. 왜죠?”

 

 국희는 도리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지금까지는 관습적인 행위로 자신의 완전무결한 자취들을 숨겨왔겠지요. 이제는 그러지 않으셔도.......”

 

 도리는 국희의 말을 끊고 단도직입으로 물었다.

 

 “테러에 대해 말씀하실 게 있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범인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아니요. 그것은 지금부터 우리가 해야 할 일이에요. 그것 때문에 도리 씨에게 연락을 한 거고요.”

 

 “네?”

 

 “도리 씨와 우리가 폭탄 테러범들의 정체를 밝히고 제거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국희는 진지한 표정이었다. 루루는 이런 대화가 지루한 듯 보였다. 루루가 빨간 패딩 점퍼 주머니에서 껌을 꺼내 씹기 시작했다. 상큼한 과일향이 나는 껌이었다. 도리는 방어적으로 말했다.

 

 “그것은 공권력이 해결할 일입니다. 저는 방송국의 말단 기자일 뿐입니다. 무슨 착오가.......”

 

 “아니요. 도리 씨, 당신이 맞아요. 우리가 만나길 원한 사람은 당신이에요. 그리고, 당신도 반드시 우리를 만나야만 했어요. 그래서, 당신이 여기 있는 것입니다.”

 

 “대체, 무슨 말씀인지.......”

 

 도리는 국희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번 테러에 대해 할 말이 있다는 것이 당신들과 함께 범인을 잡자는 말이었습니까?”

 

 “네.”

 

 도리는 욕이 튀어나오려는 걸 참았다. 도리의 말끔한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테러 범인을 잡으면 연락 주십시오. 내 전화번호는 이미 알고 있을 테니까. 그럼 전 이만.”

 

 도리는 테러 현장에 취재를 가던 참이었다. 혹시나 취재 거리가 있나 해서 들른 것이었다. 그런데 역시나 멀쩡하게 생긴 여자들의 장난질에 농락당한 기분이었다. 도리는 담담히 돌아섰다.

 

 “당신, 피오니어야!”

 

 내내 말이 없던 루루가 도리의 발걸음을 잡았다.

 

 “당신도 피오니어라고.”

 

 루루는 그러고는 다시 껌을 짝짝 씹어댔다. 국희가 말을 이었다.

 

 “루루의 말이 맞아요. 그리고 이번 테러는 단순히 G20 참가국들의 수뇌부를 노린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 피오니어를 향한 선전 포고였습니다.”

 

 멀리에서 헬리콥터 프로펠러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도리가 돌아서서 물었다.

 

 “피오니어? 피오니어라는 게 대체 뭡니까?”

 

 루루가 껌으로 풍선을 만들다가 팍, 터뜨리더니 말했다.

 

 “포스트 휴먼, 현생 인류에서 진화한 초인류. 그것들을 피오니어라고 하지.”

 

 말하고 나서 루루는 도리의 얼빠진 낯빛이 재미나서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그 바람에 씹던 껌이 도리의 발등으로 떨어졌다. 도리는 인상을 구기고 발등의 껌을 털어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세상에 그런 것이 있었습니까?”

 

 도리가 믿을 수 없다는 투로 빈정댔다. 국희가 여전히 진지하게 말했다.

 

 “이 스카이라운지 안에도 셋이나 이렇게 있잖아요. 당신, 나, 루루. 그리고 지금까지 세계를 움직여 온 세력이 피오니어의 조직체 피오니온이죠.”

 

 “그렇다고 합시다. 그런데 내가 피오니어라니....... 무슨 근거로.......”

 

 “도리 씨가 태어났을 때 모든 것은 시작되었습니다. 출생할 때의 혈액으로 1차 검사를 합니다. 혈액형 검사 다들 하잖아요. 거기서 피오니어 일치 확률 백퍼센트라면, 2차 DNA 정밀 검사를 시행하죠. 2차에서도 피오니어 일치 확률 백퍼센트를 통과했을 때에야 피오니온의 관심 대상이 됩니다. 이런 모든 통합시스템 절차는 아무도 모두 모르게 은밀히 진행됩니다. 피오니온 조직 내의 피오니어들만 알 수 있죠.”

 

 도리는 게슴츠레 눈을 감았다. 용납할 수 없는 말들이었다.

 

 “그럼, 당신들이 나도 모르게 마루타처럼 나를 실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겁니까?”

 

 “실험 대상이라기 보다는 피오니어를 선별해 내는 과정이라고 해두죠. 나도 그렇고, 여기 있는 루루도 그런 과정을 거친 피오니어니까요.”

 

 국희가 말을 마치자마자, 루루가 퉁명스레 끼어들었다.

 

 “인생이 편했지? 만사가 선명하고. 사람들의 다음 행동이 읽혔을 거야. 그치?”

 

 루루의 말이 맞았다.

 

 “별로 노력하지 않아도 어떤 분야에서든지 최고의 자리에 쉽게 올랐을 테지.”

 

 도리는 그랬다.

 

 “어느 지점에서 스스로 제어가 필요하다고 느꼈을 거야. 너무 튀면 관심의 대상이 되고, 관심의 대상이 되면 자유로울 수 없지. 현생 인류의 본성은 이질적인 것들은 제거하는 습성이 있거든. 그래서 본인은 납득할 수 없지만 불필요한 행동을 해야만 할 때가 자주 있었을 거야. 자신의 월등함을 위장하기 위한 보편적인 작위들. 아까 명함을 주던 것과 같은 행동들......”

 

 도리가 감고 있던 눈을 뜨고 루루를 바라보았다. 루루는 선글라스를 고쳐 쓰고 있었다.

 

 “평범해 보이려는 짓은 이제 때려 치워. 꼴 보기 싫어. 피오니어답게 행동하라고.”

 

 도리는 마음속에 어질러졌던 퍼즐 조각들이 저절로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자신이 이 여자들의 말처럼 피오니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들은 자신에 대해 속속들이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만일 피오니어라면......, 무엇을 하면 되는 겁니까?”

 

 루루가 시계를 보았다. 국희가 계획한 시간이었다. 도리가 피오니어라고 스스로 인정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국희는 정확하게 맞췄다. 그렇다면 다음 순서는 테러를 당하게 될 것이었다. 루루가 도리의 질문에 대답했다.

 

 “당장은 여기서 탈출해야만 돼.”

 

 도리가 루루의 말을 이해했다.

 

 “폭탄 테러범들이 피오니어를 노리는 것이고, 나와 당신들이 정말 피오니어라면.......”

 

 “네. 우리도 표적입니다.”

 

 국희와 루루의 시선이 도리의 얼굴에서 그의 등 뒤의 전망창 쪽으로 일시에 바뀌었다. 도리가 휙 뒤를 돌았다. 전망창에 근접해서 헬리콥터의 프로펠러가 부웅, 부웅 회전하고 있었다. 국희가 스카이라운지 안의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모두 피해요! 테러범이에요!”

 

 놀란 경찰들이 총을 빼 들었다. 알콩달콩 하던 십대 커플은 엘리베이터 방향으로 튀고 있었다. 상승하던 헬리콥터가 스카이라운지 위치에서 평행하게 정지 비행을 했다. 헬리콥터 옆구리에서는 무장 괴한들이 사격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더니 기관총을 무차별 난사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이었다. 총탄 세례를 받은 경찰들이 후방으로 날아가 떨어졌다. 경찰들은 뽑아 든 총의 방아쇠 한 번 당겨보지 못하고 죽었다. 십대 커플의 몸뚱이도 엘리베이터 근방에서 만신창이가 되었다. 사방으로 총알이 날아들었다.

 도리 일행은 전망창 바로 아래의 콘크리트 벽 쪽으로 달려가 납죽 엎드렸다. 오히려 총탄을 퍼붓는 원점으로 뛰어든 셈이었다. 계산된 행동이었다. 그들의 머리 위로 콘크리트와 유리 파편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스카이라운지 실내에 움직임이 없는 걸 확인하고 얼마 후, 헬리콥터의 기관총이 총질을 멈추었다. 그 때, 국희가 루루에게 주먹을 쥐어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총질에 깨져나가 뻥 뚫려버린 전망창 밖으로 국희가 몸을 던졌다. 그와 동시에 스카이라운지 바닥으로 손바닥만한 원형 폭탄들이 툭, 툭 떨어졌다. 괴한들은 스카이라운지를 철저히 박살을 낼 모양이었다. 루루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뛰어내려!”

 

 스카이라운지는 110층이었다. 도리는 머뭇거렸다. 루루가 도리의 목덜미를 잡아채서는 그를 뚫린 창밖으로 사정없이 밀어버렸다. 그리고 루루도 몸을 날렸다. 탈출하는 루루를 목격한 헬리콥터 일당들은 뒤늦게 아래쪽으로 소총을 쏴 댔다.

 

 ‘꽝, 꽈광!’

 

 원형 폭탄들이 던져진 순서대로 터졌다. 굉장한 폭발음과 함께 화염이 치솟았다. 헬리콥터도 불길의 위세에 밀려 건물에서 멀리 떨어졌다. 연기 때문에 목표물이 보이지 않았다. 헬리콥터는 총질을 포기하고 사라졌다. 스카이라운지는 완전히 폭파되어버렸다.

 국희와 루루, 그리고 도리는 추락하다가 100층에 에둘러진 안전그물 위로 떨어졌다. 국희의 계산속에 있던 안전그물이었다. 가속도가 붙으면서 도리는 정신을 잃을 뻔 했다. 도리의 몸이 철망에 떨어져 강한 충격을 받았다. 반동 때문에 안전그물 밖으로 퉁, 튕겨져 나가려는 도리를 국희가 재빨리 잡아 당겼다.

 

 “이쪽이야!”

 

 루루가 외쳤다. 루루가 건물 실내로 들어가는 쪽창 입구로 몸을 구겨 넣고 있었다. 도리는 정신을 잃을 새도, 차릴 새도 없었다. 국희가 도리의 등짝을 내리쳤다.

 

 “빨리, 빨리 좀 움직이세요.”

 

 건물 내부는 아수라장이었다. 경보기가 따르릉, 울어댔다. 스프링클러가 터져서 물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건물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 비상계단으로 한꺼번에 몰렸다. 국희와 루루, 그리고 도리도 그 인파 속에 섞여 들어갔다. 도리는 자기가 피오니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단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더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100층에서 지하 주차장까지 계단으로 걸어서 내려가야 한다는 것이 조금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먼지를 뒤집어쓴 국희는 앞장서서 일행을 인도했다. 루루는 또 어느새 껌을 꺼내 씹고 있었다. 루루의 걸음걸이가 불안정했다. 허벅지 부근의 스키니진이 길게 찢어져있었다. 그곳으로 핏물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창틀을 넘다가 유리 날에 베인 모양이었다. 도리는 루루를 잡아 세웠다. 그리고 체크셔츠를 벗어 길게 찢었다. 그것으로 루루의 상처난 허벅지를 묶어주었다. 루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껌만 짝짝 씹으면서 도리의 뒤통수를 내려다보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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