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판타지/SF
스푸쿠스제로 : spookszero
작가 : 줄리앙
작품등록일 : 2018.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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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연옥의 파수꾼 (3)
작성일 : 18-11-30     조회 : 283     추천 : 0     분량 : 5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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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으로 인상적이었던 아미르 노인과 미나의 탱고는 트래시모리 캠프에서 영구히 회자되는 전설적 사건이 되었다. 그들의 엉망진창 탱고에 대해 십중팔구는 혹평 일색이었다. 그러나 진땀 빼는 아미르와 미나의 무언극에 호의를 품은 유체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아무튼 그들이 이백 초짜리 탱고를 어렵사리 끝마쳤다. 아미르 노인이 당장 쓰러져 죽을 것처럼 가쁜 숨을 할딱거리고 있을 때, 낯뜨거운 미나는 쥐구멍을 찾고 있었다. 그런 그들 옆으로 몽골의 전통의상 델을 입은 쪼그마한 노옹이 다가와 말을 더듬었다.

 

 “거시기......, 긍께......, 저기......, 있잖아......, 뭐냐면.......”

 

 노옹은 동그란 얼굴에 말가이를 쓰고 있었다. 그 본새가 관광지의 기념품 인형처럼 앙증맞았다.

 

 “그러니까......, 거시기 해가지고설랑은.......”

 

 “아이고, 미치고 환장하겠네. 대체 저 작자 뭐가 문젠 거야?”

 

 샤오링 부인이 답답했던지 성질을 바락 냈다.

 

 “아니, 도고타이, 자네 뭐 때문에 또 이리 흥분했어?”

 

 숨을 다 고른 아미르 노인이 노옹을 알아보고 물었다.

 

 “거가......, 거서......, 거시기가........,거시기 혀서.......”

 

 “참말?”

 

 아미르 노인이 도고타이의 말에 반색을 했다.

 

 “할아버지? 저 할아버지가 말하는 거 알아들었어?”

 

 미나는 알아듣는 아미르 노인이 굉장하다는 낯빛으로 물었다.

 

 “그럼.”

 

 “뭔데? 뭔데? 뭐냐고?”

 

 미나가 얼른 말해보라며 보챘다.

 

 “이 친구가 우리 춤에 반해버렸다는데.”

 

 “하나님, 맙소사.”

 

 아미르 노인이 풀어놓은 해석을 듣고 샤오링 부인이 이마를 감아쥐었다.

 

 탱고 사건 이후로 샤오링과 아미르, 대산과 미나, 그리고 도고타이, 이 다섯 유체는 한 패거리로 몰려다녔다. 좋아서 죽고 못 살아서가 아니라 애매한 편의 관계 때문이었다. 샤오링은 밉살스런 추 부인을 따돌리려면 미나를 곁에 두어야 했다. 미나는 할머니가 그리울 때면 샤오링에게 달라붙어 그 구수한 냄새를 킁킁거리며 실컷 맡았다. 매사에 의협심이 남다른 대산은 동향 아이인 미나를 돌볼 책임에 불타올랐다. 아미르는 환상의 탱고 짝꿍 미나에게 한 곡만 더 호흡을 맞춰달라며 애걸복걸 매달렸다. 그리고 도고타이는 묵묵히 그냥 따라다녔다.

 

 “파티는 즐거우셨나요?”

 

 응접실로 몰려온 미나 패거리에게 샬롯이 물었다.

 

 “망했어요.”

 

 미나가 한탄했다.

 

 “오늘은 이곳을 마음껏 둘러보세요. 내일 오전에 샤오링 부인과 대산 씨, 미나 양은 트래시모리 조직 위원들을 만나게 될 거에요. 제가 안내해 드릴 겁니다.”

 

 샬롯이 미소지으며 말했다. 한숨짓던 미나가 샬롯에게 트래시모리에 대해 이것저것 캐묻기 시작했다. 샬롯은 미나의 호기심을 나긋나긋 풀어주었다.

 샬롯의 말에 의하면 트래시모리의 연원은 또렷한 자료로 남아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대신에 샬롯이 트래시모리에 떠도는 구비전설 하나를 들려주었다. 믿거나 말거나식의 신빙성이 전혀 없는 허무맹랑한 이야기였다.

 

 “트래시모리의 창시자는 고고보이 호라는 범선의 선원이었대요. 고고보이는 아주 조잡하고 왜소한 군용선이었지요. 우리의 창시자는 거기에서 무기를 들고 싸우는 전투병은 아니었어요. 고고보이의 밑바닥에서 죽어라 노를 저어야 하는 노예 신분이었다고 해요. 어느 날, 고고보이는 레판토 해전에 불려가게 돼요. 교황의 칙령이었어요. 전열한 함대에서 고고보이의 모양은 고고한 두루미 무리 속의 병든 꺼병이 꼴이었다고 해요. 그런 병법 알아요? 강자보다 약자를 먼저 공격하는 것이 고대로부터 내려온 필승 전략이라는 거. 투르크인들도 그것을 알았고, 그들의 눈에도 고고보이는 두드러진 약골이었어요. 그래서 고고보이에게 적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었죠. 고고보이의 상책은 적과 맞서 싸우는 게 아니라, 삼십육계였죠. 고고보이는 맹렬히 도망 다녔어요. 그때, 우리의 창시자는 어땠을 거 같아요?”

 

 샬롯이 하던 말을 끊고 물었다. 샤오링 부인은 푹신한 소파에서 어느새 가물가물 졸고 있었다. 아미르 노인은 맨바닥에 결가부좌를 틀고 앉아 염불을 외는지 입술을 내내 달싹거렸다. 대산은 응접실 이 구석 저 구석을 어수선하게 누비고 다녔다. 미나는 샬롯 가까이 끌어온 의자 위에서 무릎을 감싸 안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도고타이는 묵묵히 그냥 서 있었다.

 

 “그 양반, 뺑이 좀 쳤겠는 걸.”

 

 염불 외던 아미르 노인이 중얼거렸다. 걸걸한 소리에 깜짝 놀란 샤오링 부인이 졸던 눈을 떴다가 도로 스르륵 감았다.

 

 “그래요. 노를 젓는 노예 선원들은 모두 기진맥진해서 넋이 다 나갈 지경이었어요. 양팔이 떨어져나가 죽을 것 같았죠. 노예로 살다 노만 죽어라 저어대다가 죽기에는 누군가 너무 억울했던가 봐요. 노를 젓는 대열 뒤쪽에서 소리가 들렸어요. 이대로 삶을 끝낼 건가?”

 

 샬롯은 ‘이대로 삶을 끝낼 건가?’ 대목에서 정말 그 사람이라도 된 양 감정 이입을 해서 실감나게 연기했다.

 

 “단 일분만이라도 자유롭게 살다 죽고 싶지 않은가? 그 누군가의 목소리가 다시 외쳤어요. 트래시모리 창시자와 다른 노예 선원들은 누군가의 울부짖음에 각성했어요. 고고보이의 혁명이었죠. 노예 선원들은 누구 할 것도 없이 젓던 노를 빼 들었어요. 그리고 무리 지어 우르르 갑판 위로 올라갔어요. 노예 선원들은 자신의 주인들을 때려잡으려고 했죠. 그런데, 이게 웬일이에요?”

 

 “왜요?”

 

 미나가 목을 빼고 침을 꼴깍 삼켰다.

 

 “선장과 전투병들을 비롯한 일반 선원들이 모두 죽어있었던 거예요. 적들이 벌써 휩쓸어버린 뒤였어요. 갑판 위에 산 사람이 하나도 없었어요. 여태 고고보이에는 노예 선원들만 남았던 거죠. 그들은 그것도 모른 채 죽어라 노를 저었던 거고요. 그런데 노예 선언들은 누구 하나 뜻밖의 자유에 환호를 내지르지 않았어요. 그들이 좀 더 일찍 용기를 내서 행동했다면 자유는 더 빨리 찾아왔겠죠. 그리고 스스로의 힘으로 자유를 찾겠다는 희열을 사악한 무엇에게 빼앗긴 기분이었대요. 거저 주어진 자유에 다소 낙담했던 거죠.”

 

 “그게, 뭐야? 치잇.”

 

 미나가 샬롯의 얘기에 반감을 드러냈다.

 

 “아무튼 갑판으로 기어 나온 노예 선원들은 또 다른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어요. 고고보이가 떠 있던 곳이 전장이 아니라 대서양 한복판이었던 거예요. 선장 없는 고고보이가 무작정 나가기만 했던 거죠. 게다가 이제 곧 고고보이는 엄청난 폭풍우를 만나게 된답니다.”

 

 “폭풍 때문에 우리의 창시자가 죽나요?”

 

 미나가 코를 파며 물었다.

 

 “그래요. 그들은 대처할 줄 몰랐어요. 평생 명령에 따라 노만 젓고 살았잖아요. 우왕좌왕하던 노예 선원들은 고고보이를 전복시키고 말아요. 트래시모리 창시자는 바다 속으로 하염없이 가라앉게 되죠. 가라앉으면서 죽어가죠. 그런데 때마침 대서양을 횡단하던 어마어마한 흰긴수염고래에게 우리 트래시모리 창시자는 잡아먹히고 말아요.”

 

 “아하, 트래시모리 캠프로 들어올 때 봤던 커다란 고래 뼈가 그 고래 뼈인가 보네.”

 

 언제 잠이 깼는지 샤오링 부인이 아는 체를 했다.

 

 “그래요. 트래시모리 캠프는 흰긴수염고래들의 무덤 위에 세워졌죠. 그 고래들의 피와 살과 뼈가 트래시모리의 골격이 되었어요. 그 고래들의 영혼이 트래시모리의 에너지가 되었지요. 우리의 트래시모리 창시자는 고래의 뱃속에서 절명했어요. 그의 육체를 고래 가죽이 보호했대요. 뭐, 방부제 비슷한 역할을 했겠죠? 아무튼 트래시모리 창시자의 유체는 고래 무덤 위를 맴돌았어요. 그러다가 이곳을 멋들어지게 척 차린 거죠. 어두운 심해저의 고래 무덤 위에서, 그것도 유체 하나가 뚝딱뚝딱 트래시모리를 건설하는 모습을 상상해 봐요. 놀랍지 않아요?”

 

 “이거, 샬롯이 지어낸 얘기 아냐?”

 

 샤오링 부인이 가자미눈을 뜨고 의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너무 허술해.”

 

 샤오링 부인이 통통한 두 다리를 뻗고 기지개를 쭉 폈다.

 

 “나도 샬롯처럼 할 수 있나요?”

 

 미나가 갑자기 샬롯에게 젖은 목소리로 물었다.

 

 “뭘요?”

 

 “샬롯처럼 몸에서 떨어져서 멀리까지 가고 싶어요?”

 

 “왜요?”

 

 “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어요.”

 

 “미나 양도 할 수 있어요.”

 

 “언제요?”

 

 “미나 양이 충분한 연습을 하면 가능해요.”

 

 “가르쳐줄 수 있나요?”

 

 “물론이죠.”

 

 미나가 샬롯을 와락 안았다.

 

 “대산 삼촌도 유체 멀리가기 연습 할 거지?”

 

 미나가 대산을 끌어들였다. 대산은 소라껍질에 귀를 가져다대고 있었다. 소라껍질 안에서 용포항의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어.”

 

 미나와 마찬가지로 대산도 부모님과 용포항이 그리웠다.

 

 “샤오링 할머니도 할 거지?”

 

 “내가 왜?”

 

 “친친과 차호와호 보고 싶지 않아?”

 

 “잘 먹고 잘 살고 있겠지.”

 

 “친친과 차호와호는 할머니 보고 싶을 걸.”

 

 “그러거나 말거나.”

 

 샤오링 부인은 냉담했다.

 

 “나도 한다, 그거.”

 

 아미르 노인이 오른팔을 번쩍 들고 의욕에 불타올랐다. 그리고 도고타이도 묵묵히 그냥 오른팔을 번쩍 들었다.

 

 트래시모리 캠프의 최고위급 위원들은 모두 다섯 명이었다. 그들이 트래시모리를 실질적으로 이끄는 지도자들이었다. 위원들 각각은 자신들의 혈맹단을 두고 있었다. 혈맹단은 일종의 트래시모리의 행동 대원으로 대외적인 업무를 주로 맡고 있었다. 샬롯은 우신 위원의 혈맹단 블루파피 소속이었다. 블루파피에는 아홉 명의 대원들이 있었는데, 대체로 혈맹단의 인원은 열 명 내외였다.

 샬롯이 샤오링 부인과 대산, 그리고 미나를 접견실로 안내했다. 원형 탁자에 둘러앉은 트래시모리 최고 위원들은 옥신각신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회의에 열중하느라 샬롯 일행의 기척도 알아채지 못했다. 샬롯이 헛기침으로 도착을 알렸다.

 

 “봉주르, 봉주르. 미안합니다. 미안해요. 우리가 정신이 없어서......, 비앵브니, 비앵브니.”

 

 키가 크고 마른 사십 줄의 앙드레 위원이 샤오링 부인 일행을 반겼다. 앙드레는 샤오링 부인이 앉을 수 있도록 의자를 빼어 주었다.

 

 “샤오링 부인을 만나 뵙게 되어 저희는 영광입니다. 그리고 샤오링 부인의 행운을 거머쥔 대산 군, 미나 양, 여러분도 만나서 반갑습니다.”

 

 돌아가 자기 자리에 앉으려는 앙드레의 궁둥이를 미나가 검지로 톡톡 쳤다. 그리고 빈 의자를 가리켰다.

 

 “아이고, 저런 제 실수입니다. 이런 아리따운 숙녀 분께 대단한 실례를 범했습니다.”

 

 앙드레가 미나를 위해 의자를 빼어 주었다. 그제야 미나는 새초롬한 얼굴로 그 의자에 앉았다. 위원들은 만면에 미소를 머금었다.

 

 “트래시모리에서의 첫날은 편안하셨습니까?”

 

 우신 위원이 안부를 물었다.

 

 “샬롯 덕분에요.”

 

 “네. 샬롯 양은 우리 트래시모리의 보배입니다. 어떠한 일이든 샬롯 양은 성심껏 도와드릴 것입니다.”

 

 우신 위원은 자기 소속의 샬롯을 한껏 공치사했다.

 

 “샬롯 언니가 우리에게 유체 멀리가기 가르쳐 준다고 했어요.”

 

 미나가 슬쩍 대화에 끼어들었다.

 

 “유체 멀리가기?”

 

 우신 위원이 미나가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미나 양은 유체 돌파를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샬롯이 우신에게 설명해 주었다.

 

 “유체 돌파를 하겠다고? 대단한데, 대단해 미나 양.”

 

 트래시모리 최고 위원들은 모두 미나의 말을 우스개로 여겼다. 나어린 꼬마가 시도하기에 유체 돌파는 무리가 많았다. 그러나 위원들은 미나의 활기찬 기세를 당장은 꺾어버리지 못했다. 아이의 미소를 트래시모리 캠프 안에서 아주 오래간만에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미나의 웃음을 오랫동안 음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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