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판타지/SF
스푸쿠스제로 : spookszero
작가 : 줄리앙
작품등록일 : 2018.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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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연옥의 파수꾼 (6)
작성일 : 18-12-05     조회 : 289     추천 : 0     분량 : 5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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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파괴를 당한 마을에 오랫동안 머물렀다. 미나와 대산은 허물어져 아무것도 남은 게 없는 마을을 떠나려하지 않았다. 미나가 맨바닥에 쪼그려 앉아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대산도 무너진 건물의 벽체에 기대어 꼼짝을 하지 않았다. 한차례의 돌풍이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폐허를 거쳐 지나갔다.

 

 “터줏대감 감투라도 뒤집어쓰고 눌러앉은 귀신들 꼬락서니 같아.”

 

 샤오링 부인이 적막을 깼다. 미나가 무릎 사이에 묻었던 머리를 들었다. 눈물, 콧물 범벅의 얼굴이 벌겋게 퉁퉁 부어 있었다.

 

 “무엇 때문에 마을을 부수고 사람들을 죽인 거예요?”

 

 “그들은 뭘 원한다고 요구하지 않아. 오로지 파괴와 살육만 일삼고 있어. 어쩌면 그게 그들의 목적인지도 모르지.”

 

 미나의 물음에 샬롯이 대답했다. 샬롯의 풍성한 금발이 정처 없이 휘날렸다. 얼굴을 덮은 머리칼 때문에 샬롯의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씨부럴 잡놈들.......”

 

 대산이 신음처럼 내뱉었다. 그의 일그러진 낯빛에는 섬뜩한 귀기가 잔뜩 서려 있었다.

 

 “샬롯? 이제는 움직여야 합니다. 시간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래.”

 

 사무엘이 차분히 샬롯을 환기시켰다. 샬롯도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다만 비통의 웅덩이에서 이들을 건져낼 여력이 자신에게도 넉넉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만큼 샬롯도 애통하고 분했다.

 사무엘이 부추긴 끝에 일행은 어렵사리 마을을 떠날 수 있었다. 그들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들은 테러로 뭉개진 마을을 뒤로하고 샤오링 부인의 저택으로 향했다. 지나치며 내려다보는 전경은 무참했다. 도로들은 뒤틀린 채 끊어져 있었다. 위성도시 하나는 집중포화를 받아 폭삭 전소해 버렸다. 미처 거두지 못한 사체들도 눈에 뜨였다.

 

 “샬롯?”

 

 묵묵히 뒤따르던 미나가 불쑥 말을 꺼냈다.

 

 “네?”

 “우리 할머니와 대산 삼촌의 부모님은 우리처럼 될 수 없죠?”

 

 “네.”

 

 “너무 늦었나요?”

 

 “네.”

 

 “정말 안 돼나요?”

 

 “안 돼요.”

 

 미나가 다시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얼른 입을 다물었다. 창공을 뒤흔들며 빠르게 다가오는 굉음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귀를 찢는 터보프롭 엔진 소리는 그들의 위편 하늘에서 들려왔다.

 

 “카라의 허밍버드다!”

 

 사무엘이 멀리서 날아오고 있는 무기제조업체 카라의 군용 수송기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때마침 전방에서는 강렬한 폭발음이 진동하고, 버섯구름이 솟아올랐다. 샬롯 일행은 오롯이 폭발 장소와 수송기의 한복판에서 피할 겨를도 없었다. 샬롯 무리의 바로 위쪽에서 허밍버드의 화물칸 해치가 덜컹 열렸다. 그곳에서 돌격소총으로 무장한 안드로이드들이 뛰어내렸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안드로이드는 아미르 노인의 유체를 뚫고 지나가 육지에 착륙했다. 세 번째 안드로이드는 대산의 유체를 통과해서 떨어졌다. 네 번째에서 여덟 번째까지는 그냥 샬롯 일행을 스쳐지나가 착지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강철의 마르스, 용치가 화물칸 입구에 나타났다. 용치의 외양은 사이보그였다. 합성 금속으로 제조한 흑색의 방탄 수트가 태양빛을 반사해 눈부셨다. 용치가 옆구리에 들고 있던 헬멧을 눌러 썼다. 헬멧에는 안드로이드나 카라 본부와 교신할 수 있는 최첨단 통신장비들이 부착되어 있었다. 용치는 헬멧의 레이더 투시 고글까지 내렸다. 용치가 완전 무장을 마쳤다. 전투소총은 걸머메고 양쪽 허벅지에는 기관권총을 찼다. 그리고 오른쪽 장딴지에는 단검마저 둘렀다.

 

 “텅!”

 

 용치가 수송기의 화물칸에서 뛰어내렸다. 그때 고글의 전방 화면에 일곱 개의 빨간 점이 점멸했다. 용치의 레이더 투시회로가 샬롯 일행을 감지했던 것이다. 용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당황했다. 샬롯 일행은 소리 죽이고 공중에 떠 있는 상태였다. 떨어지는 용치와 멈춰 서 있는 샬롯이 허공에서 코끝이 부닥칠 듯 스쳤다.

 

 “누구냐?”

 

 보이지는 않지만 무언가가 분명 자신의 앞에 존재한다고 직감한 용치가 소리쳤다. 용치의 숨결이 샬롯의 얼굴에 와 닿았다. 샬롯은 놀라서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용치는 고글 화면에 뜬 빨간 점을 놓치지 않으려고 누운 자세로 하강했다. 그러더니 땅바닥에 충돌하기 직전에 홱 몸을 돌려 가볍게 착지했다. 그러고도 용치는 한동안 샬롯 일행이 떠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두 번째 폭발음이 들렸다. 그제야 용치는 두고 본다는 듯이 샬롯 일행 쪽으로 손가락질을 두어 번 하고는 안드로이드들이 몰려간 곳으로 달려갔다.

 

 “와우, 저 사람 우리가 보이는 거야? 누구냐, 라고 물은 거 맞지? 응?”

 

 샤오링 부인이 호들갑을 떨었다.

 

 “보이진 않는 것 같아요. 그의 장비가 우리를 잡아낸 걸 거예요. 저도 놀랐어요.”

 

 샬롯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카라의 기술력이 가공할 만한 진보를 이루었다더니, 정말 대단한데요.”

 

 사무엘이 카라의 칭찬을 늘어놓았다.

 

 “카라가 뭔데요?”

 

 미나가 물었다.

 

 “응? 카라? 저런 대테러 무기를 만들고 있는 회사들 중에 넘버 원.”

 

 사무엘이 미나가 이해할 수 있게 쉬운 설명을 해줬다.

 

 “그럼 저 사람 지금 우리 마을을 부순 놈들과 싸우러 가는 건가요?”

 

 “그럴 거야. 아마.......”

 

 “아, 우리가 도울 방법은 없나요?”

 

 미나가 사무엘에게 간절한 눈빛으로 물었다. 사무엘은 샬롯에게 공을 던졌다.

 

 “지금은 없어. 하지만 우리도 세계를 몰락시키려는 이 파괴자들과 맞서 싸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조만간 그렇게 되도록 위원들을 설득할 거야. 약속해, 미나 양.”

 

 샬롯이 미나를 부드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샬롯 일행은 전장의 상공을 뚫고 날았다. 화염과 연기가 대기로 치솟았다. 용치와 안드로이드들이 시가지를 누비며 적들을 색출하여 제거하고 있었다. 안드로이드에게 포위된 적 하나가 보였다. 포위된 테러 조직원은 새의 부리 모양 헬멧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온몸에는 잿빛 깃털 같은 것을 걸치고 있었다. 안드로이드들은 적을 생포하여 테러 조직의 정체를 밝힐 심사인 것 같았다. 그러나 생포되기 직전에 테러 조직원의 머리가 터져나갔다. 그들은 전세가 불리해지면 머뭇거림 없이 모두 자폭해 버렸다. 매번 그런 식이여서 테러 조직의 실체를 밝히기가 까다로웠다.

 샤오링 부인의 저택이 있는 지역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일말의 기대를 걸었던 샤오링 부인은 파괴된 자신의 저택에 낙담했다. 아미르 노인과 도고타이 노인은 자신들의 연고지에 들르기를 일찌감치 포기했다. 여태껏 소중하게 간직해오던 사원과 초원의 기억들을 흉측하게 파괴된 풍경과 맞바꾸고 싶지 않아서였다.

 세계는 온통 전쟁의 상흔으로 참담했다. 그들은 만남의 장소인 석유시추기지로 되돌아가면서 말짱한 주거지를 보지 못했다. 석유시추기지에는 임무를 마친 티모시, 레이, 그리고 퐁이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었다. 티모시는 샬롯 일행의 낯색으로 그들에게 어떤 심적 변화가 있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들이 죽기 전의 세상과 죽은 후의 세상은 전혀 딴판이었으니까.

 

 “미안합니다. 오래 기다렸나요? 티모시?”

 

 “방금 도착했습니다. 샬롯? 별 일은 없으셨나요? 사방에서 테러가 극성이었습니다.”

 

 “우리가 돌아다닌 지역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어요. 혹시 카라의 사이보그에 대한 정보가 있나요?”

 

 “카라의 사이보그?”

 

 “네. 심각하게 우려할 일은 없었지만, 꺼림칙한 부분이 있어서요.”

 

 “어떤?”

 

 “사이보그와 마주친 일이 있었는데 그가 우리의 존재를 알아보는 것 같았어요.”

 

 “그와 접촉하거나 말을 걸지 않았습니까?”

 

 “전혀요. 우리는 그에게 빌미 잡힐 어떠한 기척도 주지 않고 있었어요. 그런데도 분명 그는 우리가 거기에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설마.......”

 

 티모시는 샬롯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들은 정보가 있었기에 카라의 사이보그도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을 바꿨다.

 

 “부웅! 부웅!”

 

 그때 공중의 높은 곳에서 갑자기 육중한 날갯짓 소리가 내려왔다. 샬롯 일행은 일제히 고개를 꺾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내리쬐는 태양광선 때문에 제대로 눈을 뜰 수 없었다.

 

 “악! 저게 뭐야?”

 

 샤오링 부인이 천공에 떠 있는 괴상망측한 날짐승을 보고 비명을 내질렀다. 날짐승의 검붉은 날개의 길이가 삼 미터는 족히 될 것 같았다. 머리는 붉고 긴 머리털을 가진 소녀의 얼굴이었는데, 입에 달린 뾰족한 부리가 대롱처럼 길쭉했다. 몸통에 달린 팔은 사람 것이었으나, 하반신은 맹금류의 억센 다리였다. 게다가 날카로운 발톱을 힘껏 세우고 있었다. 그것은 공중에 정지한 채 샤오링 일행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흉측한 날짐승이 머리를 꺄우뚱거리더니 곧 불쾌한 울음을 내질렀다.

 

 “끼야아아아악!”

 

 “조심해! 우리가 보이는 것 같아!”

 

 레이가 적의를 드러낸 날짐승을 보고 위급을 알렸다. 샬롯과 사무엘, 그리고 티모시가 미나 패거리를 재빨리 그들의 뒤로 보냈다. 그리고 레이와 퐁이 맨 앞에 나서서 날짐승과 대치했다.

 

 “저런 게 어디에서 튀어 나온 거야?”

 

 민둥머리 퐁이 황당해했다.

 

 “쉬켄의 작품이야.”

 

 티모시는 위원회의 보고서로 쉬켄의 정보를 읽은 적이 있었다.

 

 “어떻게 저 괴물이 우리를 볼 수 있는 거야? 티모시?”

 

 “안타깝지만 그것까지는 아직 정보가 없어요. 지금은 우리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저 짐승에게 무조건 집중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얼마나 위협적인지, 전혀 그렇지 않은지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잖아요.”

 

 “위험해! 피해, 레이!”

 

 “끼야아아아악!”

 

 날짐승이 날개를 젖히고, 발톱을 세우더니 일행에게 쏜살같이 날아들었다. 레이의 유체를 뚫은 짐승이 일행의 한가운데를 가르고 날아갔다. 샬롯 일행이 두 쪽으로 갈라졌다. 반대편 공중으로 날아가 멈춘 짐승은 날개를 퍼덕이며 다시 샬롯 일행을 노려보고 있었다. 날짐승에 의해 흩어져버린 레이의 유체는 시간이 흘러도 회복되지 않고 있었다. 대기 속에 부유하던 레이의 남은 유체 입자들이 팍, 팍 꺼져가는 불씨처럼 꺼져서 사라졌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사라진 레이의 유체를 보고 샬롯은 기절할 것만 같았다.

 

 “안 좋습니다....... 아주....... 안 좋아요. 저 괴물......, 레이를......, 먹었어요.”

 

 사색이 된 낯빛으로 퐁이 말을 더듬었다.

 

 “뭐?”

 

 “레이의 유체가 괴물의 주둥이로 빨려 들어가는 걸 내 눈으로 봤다고요!”

 

 레이의 죽음에 광분한 퐁이 기합을 내지르며 온몸에 기력을 모았다.

 

 “화르륵!”

 

 퐁의 전신이 푸른 화염에 휩싸였다. 퐁이 고래의 힘을 불러냈다. 퐁에 앞서 고래의 힘을 불러낸 티모시가 퐁의 옆으로 나와 섰다.

 

 “사무엘! 샬롯과 함께 저들을 데리고 어서 여기서 피해! 저 괴물은 우리가 막아 볼께!”

 

 티모시의 말에 사무엘이 샬롯의 눈치를 살폈다. 샬롯이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미나 패거리는 공포에 떨었다. 사무엘이 미나 패거리를 석유시추기지의 아래쪽 바다 방향으로 이끌었다. 샬롯이 뒤편을 엄호했다. 움직이는 샬롯 일행을 날짐승이 쫓았다.

 

 “어딜?”

 

 퐁이 날짐승의 앞을 잽싸게 가로막았다. 날짐승이 발톱으로 퐁을 움켜잡았다가 날카로운 비명을 토하고 도로 팽개쳤다. 날짐승은 퐁의 화염에 고통스러워했다. 그 틈에 티모시가 날짐승의 등짝에 냉큼 올라탔다. 티모시의 두 팔이 커다란 칼날로 바뀌어 있었다. 티모시는 양 팔을 활짝 벌렸다가 날짐승의 목덜미를 끌어안듯이 오므렸다. 날짐승의 대가리가 댕강 잘려 공중으로 날아갔다. 몸통의 잘린 부위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깃털을 흩뿌리며 바다 속으로 풍덩 떨어져 가라앉았다. 티모시와 퐁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허공에 떠서 나뒹굴던 날짐승의 대가리에서 기다란 부리가 쭉 뻗어 나왔다.

 

 “뒤를 조심해! 퐁!”

 

 티모시가 말했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퐁은 날짐승이 죽었다고 여기고 방심하고 있었다. 날짐승 부리의 뾰족한 끝이 퐁의 머리에 푹 꽂혔다. 그리고 퐁의 유체 입자를 쭈욱 빨아 먹었다. 순식간이었다. 티모시가 절규하며 날아가 오른팔을 휙 휘둘렀다. 퐁의 머리에 박힌 날짐승의 부리가 잘려나갔다. 날짐승의 대가리는 석유시추기지의 철 구조물 상판 위로 텅, 텅, 텅, 굴러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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