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판타지/SF
스푸쿠스제로 : spookszero
작가 : 줄리앙
작품등록일 : 2018.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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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굴하지 않는 사탄의 난도질 (4)
작성일 : 18-12-14     조회 : 267     추천 : 0     분량 : 5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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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술은 도리의 증폭제였다. 라술의 문장은 도리의 마음속에서 부유하던 의혹을 찬찬히 다져 주었다. 그리고 피오니어에 대한 외연을 확장시켜 주었다. 지금의 선택이 장래의 그에게 그 무엇을 안겨준다고 해도 후회하지 않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도리는 현생 인류를 포기하지 않으려 마음먹고 있었다. 흉포한 인간 본성의 모든 것이 드러나는 가운데에서 도리는 우군의 인류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할 것이다. 도리는 세상의 끝 날까지 인류와 함께 나아가기로 한 결심을 라술의 저술 덕분에 더욱 공고히 했다. 현생 인류가 설령 자신의 살과 뼈를 발라 세발솥의 불구덩이에 제물로 던져 넣어도 결코 그들을 배반하지 않기로 작정했다.

 심장에 새겨진 라술의 문장으로 강화된 도리는 피소의 방을 나섰다. 라술의 두루마리는 피소의 책상 위에 내버려두었다. 썩어 드는 그 물질은 도리의 소유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정신은 라술의 저술에 담긴 모든 정수를 흠뻑 흡수하고 있었다.

 오후의 수도원 안뜰은 고즈넉했다. 나른하게 졸던 가축들이 도리가 나온 기척에 일제히 대가리를 들었다. 한가로이 푸성귀를 뜯어먹던 산양들이 도리의 발치에서 어슬렁거렸다. 수도사들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본관 건물의 첨탑 뒤편으로 너덧 마리의 새들이 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며 떠있었다. 처음 보는 기이하게 생긴 새였다. 도리는 수도원의 산책로를 따라 한참을 걸었다. 마침 대식당의 취사실 뒷문으로 퉁퉁한 수사가 함지박을 들고 나오고 있었다. 헤매던 길을 물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반가웠다. 도리와 눈이 마주친 퉁퉁한 수사는 낯선 외지인의 출현에 얼음이 되었다.

 

 “수사님들은 모두 어디에 계시는지 알고계십니까?”

 

 도리는 원로 수사들을 찾고 있었다. 그들을 다시 만날 필요가 있었다. 도리는 나왔던 문짝으로 되들어가려는 뚱뚱한 수사를 얼른 불러 세웠다.

 

 “시방 뭐라는 데예(뭐라고 하신 거죠)?”

 

 “원로 수사님을 찾고 있었습니다.”

 

 “누군데예(누구시죠)?”

 

 “오전에 수도원을 찾아온 방문객입니다. 유도리라고 합니다.”

 

 “똑때기 알코디레예? 아나, 거 머이나, 클나써여. 클나는데, 마커 뒤안 바우 버덩 덜 모예게지구 잔뜩있사. 있는데, 요 나가믄 아가빠리에 추물 줄줄 훌리민서 쌧빠다기 지다란 거이 내물구 대가빠리 뭉텡이만 와짜나예. 죽었대예. 안주꺼징 있긴 있사. 그래니 질바닥을 이리 치띠구 내리띠구 마커 모예갔드래예(원로 수사님요? 그게 말이죠. 수도원에 큰일이 나서 수사님들은 모두 뒤뜰 바위 언덕에 모여 계세요. 침이 질질 나오는 혀를 가진 짐승의 머리가 잘려서 왔거든요. 아직 거기에 있어서 서둘러 보러가셨어요).”

 

 “아.......”

 

 “우터케 가봐야 되잖아예? 함텡이에 자싯무를 궁글고 델따 드레예(가보실래요? 함지박에 설거지물 좀 내다버리고 모셔다 드릴까요)?”

 

 “그럼 전 이만.......”

 

 도리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 도통 무슨 말인지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헤매던 길을 물어보려 했는데 소통이 불가능했다.

 

 “살페 가시우야(조심히 가세요).”

 

 도리의 뒤에서 퉁퉁한 수사가 쏴악, 개숫물을 쏟아버리는 소리가 들렸다. 도리는 수도원 본관 쪽으로 내처 발걸음을 옮겼다. 현관 근방에 이르러 계단참을 막 내딛는데 웅성웅성하는 사람들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건물을 끼고 뒤쪽으로 돌아가 보니, 언덕바지에서 수사들이 떼를 이뤄 내려오고 있었다. 원로 수사들과 피소도 그들 무리에 섞여 오고 있었다. 젊은 수사들은 들것으로 집채만 한 탈바가지 모양의 물건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그때, 맨 앞에서 들것을 나르던 젊은 수사 하나가 박힌 돌멩이를 밟고 미끄러졌다. 그 바람에 우두둑, 그만 발목을 접질렸다.

 

 “에구머니나!”

 

 휘청하던 젊은 수사는 잡고 있던 들것의 손잡이를 놓쳐버렸다.

 

 “쿵!”

 

 모쇼보의 머리통이 들것의 거적에서 굴러 나와 땅바닥으로 나가떨어졌다.

 

 “에구구, 저런, 조심해!”

 

 비탈이 가팔라 그 머리통은 데굴데굴 잘도 굴러 떨어졌다. 아예 통, 통 튀어 오르기도 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것을 잡으려고 짐새들이 솟구치고, 두두리가 뛰쳐나갔다.

 

 “아! 대가리가 굴러간다!”

 

 “맙소사! 거기, 누구야? 피해!”

 

 도리를 발견한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 도리는 우두커니 서서 뭔 일인가, 하고 구경만하고 있었다. 모쇼보의 대가리는 도리의 정면으로 돌진했다. 그것을 쫓아오는 짐새들과 두두리도 무지막지한 속력으로 도리에게 몰려오고 있었다. 멈출 줄 모르던 머리통이 도리의 발치께에서 그쳐 섰다. 도리는 십년감수했다. 굴러온 집채만 한 탈바가지는 흉측한 짐승의 대가리였다. 새와 소녀의 얼굴을 반반 섞은 두상은 밑바닥에서 도리를 째려보는 듯했다. 달려오던 두두리가 도리 앞에 우뚝 마주섰다. 머리 꼭대기로 짐새들이 그림자를 드리우며 날아다녔다. 흠칫 놀란 도리는 두어 걸음을 뒷걸음질 쳤다. 도리는 말로만 듣던 원로 수사들의 작품들을 지금 처음 보았다.

 

 “거기, 괜찮아요?”

 

 수사들이 구르다시피 비탈을 내려왔다. 와서 도리를 보니 외지인이었다. 젊은 수사들은 도리를 힐끔거리며 훔쳐보았다. 그러더니 그들은 모쇼보의 붉은 머리털을 꺼들어 밀실로 질질 끌고 갔다. 짐새들은 어느새 땅바닥으로 내려와 비둘기 걸음처럼 대가리를 흔들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두두리는 바람인형처럼 기다란 두 팔로 허공을 휘젓기 시작했다. 제 깐에는 그것이 여기에는 아무 일 없다고 후방의 수사들에게 알리는 수신호인 것 같았다.

 

 “어떻게 책은 잘 보셨습니까?”

 

 살리타가 후조와 나타율을 소개하며 도리에게 물었다. 피소가 그간의 일을 깡그리 고해바친 모양이었다. 피소의 눈길은 좀도둑 잡도리하듯 도리의 품안을 뒤지고 있었다. 혹여나 라술의 책을 은밀한 곳에 숨겨 나가지나 않을까하는 노파심 때문이었다.

 

 “피소 수사 덕분입니다. 감사드립니다. 두루마리는 있던 자리에 두고 왔습니다.”

 

 도리는 피소의 근심을 풀어주었다. 그리고 서둘러 말했다.

 

 “원로 수사님들이 모두 계시니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잠시 시간을 내줄 수 있겠습니까?”

 

 원로 수사들은 도리의 청을 들어주었다. 피소는 도리를 접대실로 안내했다. 자질구레한 일을 마친 원로 수사들이 모두 접대실로 들어왔다.

 

 “이 놈이 떨어질 생각을 안 해. 아주 껌 딱지라니까.”

 

 두두리를 달고 온 나타율이 양해를 구했다. 도리는 두두리가 볼수록 신기했다. 피소는 음료 수발을 드느라 주변을 돌아다니며 그릇들을 연신 달그락거렸다.

 

 “음......, 어려보이는 데 나이가 어떻게 되나? 편하게 말해도 될까?”

 

 후조는 피소가 따라 준 사과즙을 한 모금 마시고 도리에게 말을 놓았다.

 

 “물론입니다. 이제 스물여덟입니다.”

 

 “아주 동안이군. 우리 피소와 동년배인 줄 알았다네. 올해 피소 수사가 얼마나 되었지?”

 

 “무슨 말씀이세요! 저는 이제 열아홉밖에 안됐다고요!”

 

 피소가 발끈해서 소리를 질렀다. 두두리가 신음을 참는 것처럼 그르렁거렸다. 나름 웃기는 모양이었다.

 

 “그래, 우리 같은 늙은이들에게 무슨 볼 일이 있나? 말이라도 들어보자고.”

 

 호조가 나섰다. 피소는 테이블에 사과즙이 담긴 컵을 모두 날랐다. 그리고 그는 두두리와 함께 구석에서 조용히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도 리: 거두절미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테러 조직을 세상에서 일소할 수 있도록 쉬켄이 도와주었으면 합니다.

 

 나타율: 그런 걱정은 말게. 그들의 살육을 막으려고 우리도 힘쓰고 있었다네. 우리라고 손 놓고 불구경만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

 

 호 조: 그래, 우리는 우리만의 원칙으로 독자적으로 대전하고 있던 참이었다네. 여러 곳에서 사람들이 함께 싸우자며 근래에 찾아오긴 했었어.

 

 나타율: 도움을 원하며 쉬켄의 대문을 두드린 것이 자네가 처음은 아니란 말이지. 여러 조직들이 찾아오더라고. 찾아오는데 이름들도 참 다양하더군. 자이언트, 쉴드, 대동단결, 홍군, 뭐 어쩌고저쩌고.

 

 호 조: 폭사모도 있었잖아. 폭력으로부터 세상을 보호하려는 아름다운 사람들의 모임이었지? 아마?

 

 피 소: (주둥이를 틀어막고) 큭큭큭.......

 

 호 조: 그들이 훌륭한 의인들이라는 것은 인정해. 아무튼 우리는 누구와 손잡고 움직일 형편이 아니야. 그러니 그 점은 이해해주게나. 그래도 자네는 다른 단체들의 인물들과는 많이 달라 보이는군. 칭찬이네.

 

 살리타: 그들과 자네가 다른 건 자네는 쉬켄의 대문 문턱을 넘어 수도원 안으로 들어왔다는 거야.

 

 도 리: 그럼 다시 묻겠습니다. 쉬켄은 단 한 건이라도 테러를 막은 적이 있습니까? 테러 잔당들과 대전한 적이 있습니까?

 

 나타율: 아마, 내가 알기로는 없을 걸. 그들의 기습이 워낙 게릴라식이어서 대전 할 기회가 없었다네.

 

 호 조: 모쇼보가 뭐랑 싸우다 죽었다고? 테러 조직 아니었어?

 

 살리타: 걘 귀신들이 죽였다니까!

 

 도 리: 지금 뭐라고 하셨나요?

 

 살리타: (나타율을 보고)두두리가 말했다며?

 

 나타율: (도리를 보고)이래봬도 이놈 귀신을 본다네. 보는데 이놈 절대 거짓뿌렁은 안 해.

 

 호 조: 근데, 귀신들이 걜 왜 죽였을까?

 

 나타율: 낸들 아나?

 

 살리타: 내 생각으로는 모쇼보가 먼저 귀신을 잡아먹은 것 같아?

 

 호 조: 응? 왜?

 

 살리타: 제조비법서에서 읽었어. 모쇼보는 유령을 잡아먹는 새라고 적혀있었지.

 

 도 리: (놀라며)유령이라고 하셨나요?

 

 살리타: 그렇다네. 틀림없어.

 

 도 리: 아마도 트래시모리일 겁니다.

 

 호 조: 그건 또 뭐야?

 

 도 리: 미지의 심령집단입니다. 제가 찾고 있던 또 하나의 조직이죠.

 

 호 조: 그것들 테러 조직과 한패인거야?

 

 도 리: 아닙니다. 그것만은 확실합니다.

 

 나타율: 테러 조직이 아니더라도 모쇼보를 죽였으니 우리의 적일 수 있어.

 

 호 조: 맞아. 모르는 일이지.

 

 도 리: 오해일 겁니다. 우리는 테러 조직에 대항하는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뜻이 같은 조직들끼리 분열하고 충돌해서는 안 됩니다.

 

 살리타: 트래시모리도 테러와 맞서고 있다는 말인가?

 

 도 리: 머지않아 피오니온이 설득할 것입니다.

 

 살리타: 아직은 아니란 말이군.

 

 도 리: 피오니온은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쉬켄에게 적과 아군의 정보를 정확하게 알려드리겠습니다. 피오니온의 모든 정보를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피오니온을 신뢰하고 그에 따라 행동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해야 인류의 멸망을 막을 수 있습니다.

 

 살리타: 피오니온의 명령대로 움직이란 말인가?

 

 도 리: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살리타: 그것이 우리를 찾아온 목적이었나?

 

 도 리: 테러 조직을 섬멸하여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 피오니온의 목적입니다.

 

 해거름에 도리는 쉬켄 수도원을 떠났다. 그와의 대화는 선명했다. 뭔가가 저절로 활짝 열린 것 같았다. 한 번 열리면 절대로 다시 닫을 수 없는 문을 열고 떠난 것 같았다. 도리는 아리아드네의 실이었다.

 

 “어떤 것 같나?”

 

 도리를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에 나타율이 다른 원로들에게 물었다.

 

 “뭐가?”

 

 후조가 되물었다.

 

 “피오니온이라는 무리가 믿을 만해 보이던가?”

 

 “허무맹랑하지는 않은 것 같아. 그들이 가진 정보는 우리에게도 유익할 게야. 손해 볼 것은 없을 거 같군.”

 

 살리타는 도리의 말에 틀림이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들만의 능력으로는 테러를 막기 힘들 게 분명했다. 피오니온이란 조직을 일단 믿어보기로 했다.

 

 “새로운 생명체들이 아주 많이 필요할 것 같지?”

 

 이번에는 호조가 물었다.

 

 “유령들과 대적할만한 것들을 서가에서 더 찾아봐야겠어.”

 

 나타율이 서가가 있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틀었다.

 

 “트래시모리가 마음에 걸리는 게야?”

 

 호조가 멀어지는 나타율의 뒤통수에 대고 물었다.

 

 “불확실한 미래를 위한 만반의 대비는 늘 과한 법이란 없다네.”

 

 살리타가 나타율 대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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