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판타지/SF
스푸쿠스제로 : spookszero
작가 : 줄리앙
작품등록일 : 2018.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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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놈들 (1)
작성일 : 18-12-18     조회 : 283     추천 : 0     분량 : 5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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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마야인들은 지옥의 신을 윰시밀이라고 일컬었다. 윰시밀은 마야어로 풀면 죽음을 관장하는 주관자를 의미했다. 또한, 윰시밀은 살아있는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제단에서는 아푸치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렸다. 그리고 아푸치라는 이름은 테러조직이 그들의 무인 전략 폭격기에 붙인 이름이기도 했다. 테러조직의 아푸치는 정교한 공대지 무기시스템 뿐만이 아니라 첨단의 정찰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무엇보다 아푸치가 악명을 떨칠 수 있었던 것은 하이테크 소이탄, 싱(sing)을 탑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의 테러가 발발한 후로 세 번째 돌아온 시월 하순이었다. 차가운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운데 놈들의 아푸치가 고공비행을 하고 있었다. 글로벌 무기제조업체 카라 사의 서울 지부 상공 근처였다. 그리고 카라의 레이더는 아무것도 포착하지 못하고 있었다.

 

 “슈우웅! 슈와앙!”

 

 아푸치가 탄도 미사일 두 발을 발사하여 카라의 서울 지부의 주 건물을 정밀 타격했다.

 

 “콰아앙!”

 

 이십 층짜리 건물이 굉음과 함께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근처의 자동차들이 우그러진 깡통처럼 공중으로 날아갔다가 나뒹굴었다. 빽빽한 빌딩 숲과 펼쳐져 있던 도로망이 검은 연기구름으로 삽시간에 휩싸였다. 빗속을 뚫고 커다란 불기둥이 거세게 솟아올랐다. 도심의 다른 건물들에서 겨우 목숨을 건진 시민들이 우르르 뛰쳐나왔다. 그들은 혼비백산이 되어 방공호로 내달렸다. 뒤늦은 사이렌 경보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내지르는 비명에 얽혀 날카롭게 귀청을 찢어댔다. 피격을 모면한 카라의 별관에서 용병들과 직원들도 달려 나왔다. 직원들은 용병들의 엄호를 받으며 서둘러 대피했다. 아푸치의 기습 폭격에 카라의 병기고에서도 중무장한 안드로이드들이 뛰쳐나왔다.

 

 “투두두두두! 투두!”

 

 안드로이드들은 아푸치를 겨냥해서 대공기관총을 난사했다. 안드로이드의 대열에 합류한 스파이더탱크들도 포구를 올려 아푸치를 조준했다.

 

 “펑! 펑! 펑!”

 

 스파이더탱크들이 몸체에 부착된 회전식 자주포를 발사했다. 상공으로 쏘아올린 포탄들은 아푸치를 스쳐 지나가 허공으로 허무하게 사라졌다. 스파이더탱크들도 날렵한 아푸치를 격추하는 데 실패하고 있었다.

 

 “퉁! 퉁! 퉁! 퉁! 투웅!”

 

 공중을 잽싸게 선회하던 아푸치가 다섯 발의 소이탄, 싱을 연속으로 투하했다. 싱은 카라의 서울 지부 건물의 상공에서 폭죽처럼 펑펑 공중 폭발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줄기와 함께 꺼지지 않는 수억 개의 불덩이가 연기 꼬리를 달고 퍼져나갔다.

 

 “푸슉! 푸시식!”

 

 주먹만 한 섬광들이 사방으로 쏟아져 내려 타올랐다. 싱의 불똥은 신소재 합금 비슈마럼으로 제조한 안드로이드들을 순식간에 녹여버렸다. 스파이어탱크의 금속갑각도 무차별하게 용해되어 흘러내리고 있었다.

 

 “으아아아아악!”

 

 용병에게 들러붙은 불티는 군복을 태우고 살갗을 끝없이 파고들었다. 그리고 흉골을 녹이고 심장을 파괴한 후에야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떨어져서도 그 불티는 핏물과 빗물이 고인 웅덩이에서 화르륵거리며 꺼질 줄 몰랐다. 불똥이 들러붙은 사람들은 고통으로 격렬하게 몸을 비틀며 죽어갔다. 피격당한 일대가 살이 타는 그을음과 맹독의 연기로 자욱했다. 떨어지는 불덩이를 겨우 피한 사람들도 독성이 강한 가스에 중독되어 픽픽 쓰러져 나뒹굴다가 처참하게 죽어갔다.

 

 “저기요!”

 

 멀리에서 피어오르고 있는 연기 기둥을 보고 피소가 다급하게 소리치며 그쪽을 가리켰다. 피소가 둘러멘 바랑 안에서 해골이 덜그럭거렸다. 나타율과 피소는 그슨대 제조법에 따라 백두산의 사찰, 비추사에 들렀다가 오스트레일리아의 브룸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비추사에서는 인주(人柱)의 해골을 몰래 파서 도망 나왔다. 비추사의 중들은 그곳의 무량수전의 첫 기둥을 세울 때, 무사한 건축을 기원하면서 주춧돌 밑바닥에 어린 중 하나를 생매장했었다. 그슨대를 제조하려면 그 한 많은 인주의 해골이 필요했다.

 

 “어디?”

 

 “저기, 적기가 안보이세요? 한 놈인 거 같죠?”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놈들!”

 

 나타율이 타고 있던 짐새의 고삐를 연기가 나고 있는 방향으로 잡아 틀었다. 그러자 두두리가 사냥을 하는 아파치 인디언 같은 소리로 울어대기 시작했다. 나타율과 피소에게는 익숙한 울음이었다. 생물체 비법서의 원료를 채집하러 다니다가 테러조직과 마주치면 나타율과 두두리는 그들에게 저돌적으로 돌격했다. 물불을 헤아리지 않았다.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을 한두 번 겪은 게 아니었다. 놈들과 거듭해 충돌하면서 두두리는 날로 강해졌다.

 

 “아, 또 뭐 하시려고요?”

 

 “뭐 하냐니?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걸 두고 보란 말이냐? 나는 그리 못한다!”

 

 “우왕! 우왕!”

 

 피소는 매번 위험을 자초하는 나타율이 못마땅했다. 살금살금 숨어 다녀도 모자를 판국에 불구덩이로 자꾸만 뛰어드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피소는 가늘고 길게 아주 오래 무탈하게 살고 싶었다. 나타율과 두두리를 태운 짐새들은 벌써 저만치에서 쏜살같이 날아가고 있었다.

 

 “투두두둠! 투두두둠!”

 

 다가오는 두두리를 탐지한 아푸치가 기관포를 발사했다. 아푸치는 싱의 다발을 재차 투하하려던 참이었다. 두두리를 태운 짐새가 날개를 비틀어 아슬아슬하게 포탄을 피했다. 피한 두두리의 몸체가 부풀더니 견갑골에서 타래진 가지 두 줄기가 솟아나왔다. 꽈배기 모양의 가지들이 덩굴을 이루어 아푸치를 향해 뻗어나갔다. 뾰족한 두두리의 덩굴을 벗어나려고 아푸치는 횡전비행을 했다. 두두리에게서 뻗어 나온 가지 덩굴이 유도탄처럼 아푸치의 꼬리를 추적했다.

 

 “끄아아악!”

 

 그때, 나타율을 태운 짐새가 고공에서 하강하며 발톱을 내뻗었다. 아푸치는 수직선회하여 짐새의 발톱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따라붙은 두두리의 덩굴줄기에 기관포를 갈겨댔다.

 

 “우오오오옹!”

 

 두두리가 신음을 내질렀다. 아푸치의 포탄을 맞고 찢겨져나간 줄기타래 하나가 허공으로 날아가더니 맥없이 낙하하고 있었다. 그러나 두두리의 무사한 다른 쪽 줄기타래는 아푸치의 날개 하나를 휘감는 데 성공했다. 하나를 내주고 다른 하나를 얻은 셈이었다. 아푸치는 급상승하여 도망치려 했다. 두두리에게서 덩굴들이 서너 줄기 더 뻗어나가 아푸치의 날개를 단단하게 옥죄었다. 잽싸던 아푸치의 속도가 줄어들었다. 그 틈에 나타율의 짐새가 아푸치의 다른 쪽 날개를 움켜쥐었다.

 

 “꽈드드득!”

 

 “와드드득!”

 

 나타율의 짐새가 발톱으로 아푸치의 날개를 분질렀다. 동시에 두두리도 휘감은 줄기타래에 완력을 더하여 다른 쪽 날개를 산산조각으로 부숴버렸다.

 

 “슈우우우웅!”

 

 날개 잃은 아푸치의 동체가 시가지 쪽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안 돼! 저걸 잡아야 돼! 떨어지면 폭발하고 말 거야! 사람들이 위험해!”

 

 나타율이 짐새의 고삐를 바짝 당겼다. 짐새는 떨어지고 있는 아푸치의 동체를 쫒아 내리꽂혔다. 두두리가 남아있는 한쪽 줄기타래를 한껏 내뻗었지만 잡아채지 못했다. 두두리의 짐새도 동체를 쫒아 급강하하려는 찰나에 무언가가 가공할 속력으로 두두리를 앞질러지나갔다.

 

 “와옹?”

 

 두두리가 뭐지? 라고 내뱉은 통에 나타율이 뒤를 돌아보았다. 카라의 사이보그 하나가 미친 속도로 급강하하고 있었다. 모방 테러를 진압하기 위해 후쿠오카로 출동했던 용치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용치는 마라파이트세라믹스 재질의 검은색 보디수트에 한국의 늑대를 연상시키는 검정 헬멧을 착용하고 있었다.

 

 “슈우우우욱!”

 

 용치의 등짝에 날개처럼 달린 로켓 추진 부스터에서 푸른 기체가 뿜어져 나왔다. 가속이 붙은 용치는 단숨에 아푸치의 동체를 움켜잡았다. 아푸치의 동체에는 발사되지 않은 싱이 아직도 마흔다섯 발이나 남은 상태였다. 용치가 수직선회하며 떨어지는 아푸치의 동체를 배면 수평 자세로 급반전시켰다. 지면과의 거리가 얼마 남지 않은데다가 가속도가 붙어 멈추기가 곤란했다. 용치는 동체의 밑바닥을 밀어 올려 최대한 도심을 벗어나려고 했다.

 

 “콰아앙!”

 

 용치의 등짝이 초고층 빌딩의 첨탑과 충돌했다. 부서진 콘크리트 덩어리들과 철근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용치는 그래도 동체를 놓치지 않았다. 저만치에 폐허가 된 군사기지의 옛터가 내려다 보였다. 용치는 그곳으로 아푸치의 동체를 끌고 갔다.

 

 “텅! 텅! 텅! 푸아아악!”

 

 용치는 건물 잔해가 널린 공터에 불시착했다. 아푸치의 동체를 아래쪽에서 끌어안은 채였다. 용치의 등짝이 요란한 파열음을 내며 땅바닥에 쓸렸다. 동체는 용치를 깔아뭉개며 서너 번 튀어 오르더니 땅바닥을 깊게 파고들어가서야 멈췄다. 다행히 폭발은 없었다. 지면과 충돌하면서 생기는 충격과 마찰을 용치가 자신의 몸뚱이로 고스란히 흡수했기 때문이었다. 아푸치의 동체와 흙더미 사이에 파묻혔던 용치가 멀쩡히 기어 나왔다. 그의 보디수트와 헬멧은 작은 흠집만 생기고 부서진 데가 없었다.

 

 “파삭!”

 

 용치가 아푸치의 헤드 덮개를 뜯어내고, 레이더 조작 회로를 뒤꿈치로 깨부수었다. 뒤따라 날아온 나타율 일행이 공터에 착륙하는 소리가 들렸다.

 

 “대단하네요, 무사해서 정말 다행입니다.”

 

 나타율이 탄 짐새가 푸드덕 날갯짓을 했다. 용치가 헬멧의 안면부를 열었다. 용치의 얼굴은 햇볕에 캐러멜 빛으로 그은 피부색과 굵고 우뚝한 콧날이 강인한 인상을 주고 있었다. 시원하게 생긴 눈매에서는 여전히 광염이 불타올랐다.

 

 “쉬켄의 수사님이신가요?”

 

 용치는 나타율과 피소의 차림새를 훑어보고 물었다. 하지만 두두리와 짐새를 보더라도 그들이 쉬켄의 인물이란 것을 간파할 수 있었다.

 

 “그래요. 우리가 지나는 길목에서 저것이 폭격을 가하고 있지 뭡니까.”

 

 “덕분에 더 큰 피해를 막았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용치가 나타율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카라 소속의 용병이신가?”

 

 나타율이 용치의 팔뚝에 그려진 붉은 날개 표식을 훔쳐보았다.

 

 “네. 천용치라고 합니다.”

 

 “정말 용감하더이다. 우리 피소가 자네의 반만 닮았어도 좋으련만.”

 

 나타율은 피소와 나이차가 별로 안 나 보이는 젊은이의 기개에 홀딱 반해 있었다. 피소는 주제에 자존심은 있었던지 뿌루퉁해져서 골이 잔뜩 난 얼굴로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노인네가 대책 없이 그렇게 설치다가 정말 큰일 난다고요!”

 

 피소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푸치와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을 때 피소는 몸을 사리고 내내 숨어 있었다. 일이 끝났다 싶으니까 슬그머니 뒤에 따라붙어 그 낯짝을 비췄다. 나타율이 한심해서 혀를 찼다.

 

 “저것이 가한 피해가 상당하던 데......, 그대의 서울 지부인 거 같았지, 아마.”

 

 “네, 전 서둘러 그쪽으로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게.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할 일이 있으니까. 언젠가 또 마주칠 일이 있겠지.”

 

 용치는 나타율에게 짧은 인사를 하고 하늘로 솟구쳐 날아갔다. 용치가 하늘 속 하나의 점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 피소가 나타율의 곁으로 슬금슬금 다가왔다. 나타율은 그런 피소가 가련하게 여겨졌다. 세상이 전쟁 통만 아니었더라도 구김살 없이 맑고 곱게 꿈을 꽃피울 젊은 아이였다. 늙은 자신이 피소의 인생을 망쳐놓은 것 같아 나타율은 왠지 한없이 청춘에게 죄스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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