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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어스
작가 : 비견
작품등록일 : 2018.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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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작성일 : 18-11-14     조회 : 398     추천 : 0     분량 : 5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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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나에게는 남들이 절대 알아서는 안 되는 비밀이 있다.

 

 

 ***

 

 

 -파리 사격 경기장

 

 

 TV에 두 명의 남자 캐스터가 뜬다.

 

 "네! 지금은 파리 올림픽 여자 사격 권총 25m 결승! 대한민국에서는 우은재 선수가 출전했습니다."

 

 "네, 우은재 선수 18살, 고등학교 2학년밖에 안된 나이인데 정말 대단합니다."

 

 

 사격은 스포츠 중에 나이에 영향을 받는 종목이 아니어서 대부분의 사격선수들의 연령대가 높은 편이다.

 

 그런데 18살의 나이에 3,40대 선수들과 대등한 실력을 가졌으니 은재의 노련한 실력에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떠들썩했다.

 

 

 화면에 잡힌 앳된 얼굴의 여자.

 

 하얀 얼굴.

 길고 또렷한 눈매.

 집중하느라 눈을 가늘게 떠서 은재의 눈이 더욱 매서워 보였다.

 

 

 캐스터들은 은재가 화면에 잡히자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진행에 나섰다.

 

 "이제 두 발 남겨둔 상황. 우은재 선수는 현재 1위, 은메달은 이미 확보한 상태입니다."

 

 

 

 타아앙-

 

 .

 .

 

 [9.1]

 

 "네, 대한민국의 자랑! 우은재 선수! 9.1 나왔습니다!"

 

 기뻐서 목소리가 커지는 캐스터.

 

 "역시 기대를 져 버리지 않습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타앙-

 

 [9.5]

 

 "아아, 미국의 캐서린 선수 9.5 나오네요. 한발을 남겨두고 두 선수가 동점이 되는 상항이 벌어졌습니다."

 

 "네. 마지막 한 발에 금메달이냐, 은메달이냐가 결정되겠는데요."

 

 

 다시 화면에 잡힌 은재.

 

 그녀의 표정에선 그 어떤 감정도 나타나 있지 않았다.

 

 "우은재 선수, 지금처럼만 하면 아무 문제없습니다. 마지막까지 누가 집중하느냐 그게 메달의 색을 결정지을 것 같습니다."

 

 “네, 맞습니다. 우은재 선수! 지금까지 잘해주었습니다. 유종의 미를 거두길 바라며 마지막 한 발.”

 

 

 총을 들고 쭉 뻗은 은재의 오른팔이 미동도 없다.

 엄청난 집중력이다.

 

 눈 한번 깜빡이지 않던 은재.

 갑자기 왼쪽 눈을 찌푸린다.

 

 왼쪽 눈이 기계처럼 지지직거리더니 다시 떠졌다.

 

 눈앞에 보인 건 사격 경기장이 아닌 새하얀 공간.

 

 마치 정신병원처럼 보이는 내부였다.

 조금의 어둠도 허용해주지 않겠다는 듯 눈부시도록 밝은 공간이다.

 

 은재는 여전히 사격 경기장에 있는데 왼쪽 눈이 비추는 곳은 대체 어디일까.

 

 

 그런데 은재는 말도 안 되는 이 상황이 처음이 아닌지 놀란 표정이 아니다.

 그저 왼쪽 눈을 살짝 감고 다시 사격할 준비를 했다.

 

 

 "꺄아아아아아악!!"

 

 이번엔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그녀의 왼쪽 귀에서 울려 퍼졌다.

 

 

 '제발..그만.'

 

 은재는 고통스러워서 저절로 표정이 일그러졌다.

 

 

 왼쪽 눈도, 귀도 이미 그녀의 통제 밖이었다.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있다.

 

 .

 .

 .

 

 3초

 

 2초

 

 

 탕--

 

 성급했다.

 

 짧은 총소리에 은재는 기록을 보지 않고도 결과를 직감했다.

 

 

 .

 .

 

 [6.1]

 

 

 기록이 화면에 잡히자 캐스터들이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아! 이게 웬일 인가요! 우은재 선수, 마지막 남은 한 발 6.1이 나왔습니다.."

 

 "네, 역시 어린 선수이다 보니까 마지막 한 발의 중압감을 이겨내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쉽지만 잘했습니다, 우은재 선수!"

 

 

 6.1을 맞춘 은재의 표정을 담기 위해 카메라가 클로즈업 된다.

 

 망연자실한 얼굴일 거라 예상하며 캐스터들은 다시 자리에 앉아다음 멘트를 차분히 준비한다.

 

 

 하지만..

 

 [시.발]

 

 정확한 입모양.

 시원하게 욕하는 은재의 모습이 카메라에 비쳤다.

 

 은재가 누구라도 죽일 기세로 기록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너무도 허무한 기록이었다.

 

 거기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진짜!!'

 

 어이없게도 마지막 한 발을 쏘자마자 왼쪽 눈과 귀가 원래대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은재의 속사정을 알 리 없는 캐스터는 당황해서 준비한 멘트를 더듬거렸다.

 

 "네, 네.. 우은재 선수가 아쉬워서 탄식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캐스터도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방황했다.

 

 

 타앙-

 

 [8.6]

 

 그 사이 남은 선수의 경기가 이어졌다.

 

 총소리에 다시 정신을 차리고 멘트를 이어가는 캐스터들.

 

 "캐서린 선수가 8.6으로 금메달, 우리 대한민국의 우은재 선수는 은메달을 목에 걸게 되었습니다."

 

 

 화면에 크게 '祝 우은재 은메달'이라는 자막이 뜬다.

 

 “첫 올림픽인데도 우은재 선수. 정말 잘해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미국의 캐서린 선수는 서른일곱으로 선수생활 20년차입니다. 그런 선수와 대등하게 싸우다니. 우은재 선수 정말 천재 아닙니까?”

 

 “천재죠! 대한민국에 이런 보물이 있었다니. 아무튼 우은재 선수 그동안 수고 많았습니다. 그럼 오늘의 하이라이트 보여드리며 오늘 경기 해설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

 

 

 

 경기가 끝난 후 은재는 메달 수여식을 기다리고 있다.

 

 "은재야!"

 

 다정하게 부르며 다가오는 까만 얼굴의 남자.

 김정민 코치다.

 

 세계 각국의 코치들이 모여 있는 이곳에서 유독 젊어서 눈에 띈다.

 

 김정민 코치는 선수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코치면서 선수들에게 격려는 못할망정 악담을 퍼붓기로 말이다.

 거기다 실수만 했다 하면 발로 차고 욕설은 기본이었다.

 

 

 "수..수고했다. 다음부턴 더 잘할.. 잘해라."

 

 그런 코치가 은재 앞에서 말까지 더듬고 있었다.

 

 기자들의 시선을 의식해 은재의 어깨에 손을 올리려던 김 코치는 은재의 시선이 자신의 손으로 향하자 바로 손을 거뒀다.

 

 

 김 코치는 체육 관련 윗 놈들과 모두 연결되어 있을 정도로 빽 좋은 놈이다.

 

 사격 경력이라고는 딸랑 고등학교 때 전국 사격대회 ‘출전’ 이 고작이었다.

 

 한 마디로 낙하산이다.

 

 그러니 선수 하나 잘 키워보겠다고 굽실거릴 놈은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어떻게든 한 번 더 국가대표로 출전하고 싶은 선수들이 그에게 고개 숙이며 아부했다.

 

 성질 더러운 김 코치에게 한번 찍히면 다시는 사격에 발도 못 붙인다는 얘기는 사격 선수라면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김 코치가 악질로 알려진 건 바로 그의 취미 때문이었다.

 그의 취미는 '첫 출전인 국가대표 기죽이기‘였다.

 

 본인의 사격실력에 대한 열등감 때문이었다.

 

 코치들 중 가장 영향력이 센 김 코치는 항상 자신이 마음에 드는 선수를 직접 골라 지도를 맡는다.

 

 그의 괴롭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만 둔 사격 국가대표들이 셀 수 없이 많았다.

 

 국가대표로 출전하게 된 은재 또한 김 코치는 피해갈 수 없는 관문이었다.

 

 그래서 사격 선배들은 은재를 불쌍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잘해주었다.

 

 김 코치 덕에 좋아진 점이 있다면 사격 선수들은 선후배 위계질서가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모두들 김 코치를 욕하며 똘똘 뭉쳐 있었다.

 

 

 김 코치는 은재와 첫 만남부터 다른 선수들에게 그랬듯 은재에게도 똑같이 폭력적으로 나왔었다.

 

 낙하산으로 들어와 사격에 대해 아는 것도 없이 폼만 잡는 김 코치가 국가대표를 가르치고 있으니 여간 웃긴 게 아니었다.

 

 그런 은재의 마음을 눈치 챈 김 코치는 괜한 열등감에 화를 내기 시작했다.

 

 

 "야. 네가 아직 이쪽 세계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은데 그딴 건방진 표정으로 쳐다보지 마라. 매장시켜 버린다, 진짜."

 

 김 코치는 손을 올려 때리는 시늉까지 했다.

 

 

 "팔 쭉 뻗어!!!"

 

 김 코치는 괜히 흔들림 없는 은재의 팔을 내려치며 화풀이를 했다.

 

 

 그렇게 일주일.

 

 은재는 다른 선수들과 달리 참을성이 없는 선수였다.

 

 결국 은재는 일을 저질러버리고 말았다.

 

 

 사격하던 권총을 들어 김 코치를 향해 겨눈 것이었다.

 

 “뭐, 뭐야?!! 너 사격 그만하고 싶어?”

 

 김 코치는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라 흠칫했지만 그래봤자 사격하고 싶은 운동선수라는 생각에 세게 나왔다.

 

 “그래, 이 새끼야. 인생 마감하고 싶다. 너 죽이고 나도 죽을게, 그냥.”

 김 코치의 협박에 은재는 김 코치의 이마를 향해 총구를 가져다 댔다.

 

 "으아아아악! 왜 이래! 진정하라고!"

 

 은재가 정말 쏠 기세로 다가오자 김 코치는 펄쩍 뛰었다.

 

 

 돈 많은 놈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건 돈이 아니다.

 

 바로 죽는 것이었다.

 

 모두가 굽실대니 그들은 인생에 고민거리가 없었다.

 

 그러니 그들은 그저 오래도록 즐기다가 가고 싶을 것이다.

 

 

 은재는 어린 나이에도 사람에 대해 꽤나 많은 걸 꿰뚫고 있었다.

 

 그만큼 사는 게 녹록치 않았다는 뜻이었다.

 

 그 후로 김 코치는 아무 참견도 하지 말라는 은재의 조건을 받아들여 목숨을 지킬 수 있었다.

 

 

 

 "자! 이제 사진 찍고 인터뷰 할게요!"

 

 수많은 카메라.

 은재는 은메달을 목에 걸고 미소 지었다.

 

 

 

 ***

 

 

 

 드디어 은재는 긴 인터뷰를 마쳤다.

 경호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그녀는 이미 녹초가 된지 오래였다.

 

 차에 탄 그녀는 널브러진 채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이구, 이게 누구야! 욕쟁이 사격 선수 아니신가?]

 

 

 장난기가 묻어나오는 목소리.

 바로 은재의 절친한 친구, 오예신이다.

 

 예신도 은재와 같은 사격 선수다.

 

 예신은 TV에 나온 은재의 욕설 장면을 봤는지 깐죽거렸다.

 

 

 "... 뭔 소리냐?"

 

 은재는 방금 막 인터뷰를 마치고 나온 상태라 생중계 된 방송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예신이 보내준 캡쳐를 보고 나서야 상황 파악을 했다.

 

 "아오! 그게 또 화면에 크게 잡혀가지고.."

 

 아까는 기록에 대한 충격과 함께 이성을 잃었던 은재라 화면에 잡힌 줄도 몰랐던 것이다.

 

 [벌써 한국에선 실검 1위야! 욕설 우은재 선수. 크으으. 내 친구가 실검 1위라니! 네가 아이돌 커플 기사를 엎고 1위를 했다!]

 

 "그만해라.. 충분히 후회 중이다."

 

 계속해서 장난을 치는 예신에게 험한 말이 나올 것 같다며 장난치는 은재.

 

 사실 은재는 말은 이렇게 해도 오히려 예신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예신이 경기 결과에 대해서는 그 어떤 말도 꺼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같은 체육인으로서 매너였다.

 

 코치들은 늘 선수들에게 경기 전에 하는 말이 있다.

 

 경기가 끝나는 순간 그 어떤 자책도, 자만도 할 필요 없다고.

 그저 다음 경기를 준비하면 된다고 말이다.

 

 하지만 사람인지라 아쉬움이 남는 건 당연했다.

 

 그걸 알기에 예신은 오늘 경기로 인해 은재가 우울해지지 않게 남모르게 노력 중인 것이다.

 

 

 [크큭. 그나저나 너 다음 주에 우리 학교로 전학 오는 거 맞지?]

 

 "어. 내가 한체고에 전학가다니."

 

 

 한국체육고등학교. 일명 한체고.

 대한민국 10대 체육선수들은 모두 이 학교를 다니고 있다.

 

 국가대표로서 이미 뛰어난 실력을 보여준 은재라 당연히 한체고 출신일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은재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다.

 은재가 사격에서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게 된 건 고등학교를 입학한 뒤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은재를 좋아하는 국민들이 많았다.

 원래부터 뛰어난 천재선수가 아닌, 꾸준히 노력한 결과 마침내 해낸 선수라 더 마음이 간다는 것이었다.

 

 

 [네가 한체고에 오는 건 당연한 거지.]

 

 은재는 예신의 말을 듣자 입가에 지어진 씁쓸한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당연..한걸까.'

 

 

 은재는 예신과의 통화를 마친 후 창밖을 바라봤다.

 

 벌써 날이 어두워져 가로등 불빛이 환하게 켜졌다.

 

 멀리 있어도 눈에 띄는 에펠탑이 이곳은 프랑스라는 걸 다시 한 번 인지시켜줬다.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지나다니고 있다.

 

 은재는 불과 2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했던 광경을 눈앞에서 보고 있다.

 

 낭만이 넘치는 거리를 보며 은재는 여러 생각에 젖어 들었다.

 

 

 수많은 카메라에 둘러싸여 인터뷰를 할 때마다 늘 듣는 얘기가 있다.

 

 "노력하면 언젠가 빛을 본다. 바로 우은재 선수를 두고 하는 말이네요!"

 

 

 노력하면 빛을 본다..라.

 지랄하지 말라고 해주고 싶었다.

 

 입술을 꽉 깨무는 은재.

 

 

 좋은 기록이 나오지 않았을 때마다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말이 있었다.

 

 "노력이 부족해! 아직도 이 정도밖에 못하면 어떡해?"

 

 사람들은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결과가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노력한 만큼 된다는 건 타고난 놈들의 입방정이었을 뿐, 평범한 그녀에게 현실은 지독히도 냉정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된다.

 밤새도록 연습해도 실력이 늘지 않았다.

 

 선생님들은 고개를 저을 뿐 그 어떤 격려의 말 같은 건 해주지 않았다.

 

 ‘노력하는 자가 아니라 잘하는 자가 살아남는다.’

 

 어린 나이에 은재가 깨달은 세상은 정확했다.

 

 

 그런데 어느 날 자포자기 심정이던 그녀의 앞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170이 넘는 키를 가진 은재보다 머리 하나가 큰 남자.

 

 차분한 진한 갈색 머리에

 눈에 띄는 밝은 갈색 눈동자.

 

 그러나 따뜻한 외모와는 다르게 표정이 너무도 차갑고 싸늘했던 그 남자가 나타나면서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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