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있니. 너에게 말을 붙이려고 왔어. 내 목소리 들리니. 인생 말고 마음, 마음을 걸려고 왔어... 알고 있니. 모든 가혹함은 오래 지속되기 때문에 가혹해.
<몇 개의 이야기 6, 한강>
“좋아하는 프랑스 소설이 있어.”
나는 너의 가슴에 손을 포개고 대답 없는 네 옆얼굴을 이유 없이 자꾸만 쳐다보았다. 이방인. 내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막 잠의 문턱에 빠져들기 시작한 네가 눈꺼풀을 가만 가만 끔뻑였다. 나는 네 다리에 내 다리를 올렸다. 맨 살의 감촉이 끈적끈적하고 포근했다.
“이방인엔 뫼르소라는 남자가 나와. 부모가 돌아간 날짜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부모의 초상을 치르자마자 젊은 여자와 수영도 하고 영화도 보고 섹스도 하는 그런 남자 말이야.”
“사실 내용은 잘 기억이 안 나. 뫼르소가 장례를 치루고 회사를 다니고 친구들과 해변에 갔다가 살인을 저지르고 감옥에 가지. 대충 그런 내용이야.”
“나는 뫼르소가 해수욕을 즐기는 장면이 좋아. 금빛 햇빛이 이글거리는 시원한 바닷물 속을 떠다니는 거, 조금 꿈만 같잖아.”
“그냥 바다가 좋은 거 아냐?”
네가 물었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너를 처음 만난 그날, 고교 동창회가 있던 날이었다. 동창회는 화양동의 한 영세한 호프집에 세 테이블을 잡고 열렸다. 아마 너도 그날 그 호프집의 어느 테이블에 앉아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 테이블이 시끄럽다며 알바생에서 불평을 토로했을지도 모른다. 익숙하지만 나이를 먹은 수많은 얼굴들이 쉴 새 없이 말했다. 하고 싶은 말을 지금껏 참아온 것인가 싶었지만 그런 대화에서 오고가는 말들이란 대개 저들의 안부, 자랑, 뒷담 정도였다.
‘너는 어떻게 지내?’
누군가 불쑥 안부를 물어왔다. 눈썹을 삐뚤게 그리고 어설프게 아이라인을 바른 그녀는 한때 내 뒷자리에 앉았던 안경을 쓴 아이었다. 이름이 가물가물했다. 그녀와 내가 친했던가, 친하지 않았던가, 기억나지 않았다. 솔직히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사소한 것들만 떠올랐다. 그녀의 얼굴에 커다란 여드름 흉터가 있었다는 것, 점심시간에 그녀가 밥을 먹고 꼭 챙겨먹던 총명탕이 지독하게 맛이 없었다는 것도.
‘잘 지내.’
‘뭐야, 시시하게. 그야 당연히 잘 지내겠지. 요즘 뭐하고 있어?’
‘그냥, 일하고 있어.’
스물넷에 나는 신학교를 자퇴했고 집에서 내쫓기듯 떠밀려 나왔다. 그리고 두 개의 아르바이트로 셋방 생활을 전전하고 있었다. 학력은 고졸, 하는 일은 삼겹살 전문점의 홀 서빙, 편의점의 캐셔. 간만에 만난 동창에게 내 한심한 근황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가느다랗게 눈을 뜬 그녀의 시선이 피부를 따끔따끔 찔렀다. 나는 좌석의 밤색 가죽을 간절한 심정으로 움켜쥐었다. 그녀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이내 흥미를 잃었는지 이내 옆자리의 반장에게 말을 걸었다. 괜히 나왔다는 생각에 후회가 들었다. 누군가 다시 말을 걸지 않을까, 나의 근황을 묻지 않을까, 두려웠다. 나는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며 기름기가 번들거리는 튀김옷을 깨작였다. 말없이 술을 들이켜다 보니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술을 마셨다. 슬슬 취기가 물씬 올라오는가 싶더니 메스꺼운 토기가 느껴졌다.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나 빠져나올 때도 아무도 내게 어디 가는지 묻지 않았다. 그대로 자리를 떠도 아무도 모를 것 같았다.
‘화장실에 가려면 키를 가지고 매장을 나가 오른쪽 상가의 2층까지 올라가야 해요.’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알바생이 피곤한 표정으로 키를 건네주었다. 골목으로 나와 계단을 오를 때는 뜨거운 취기에 발이 휘청거렸다. 화장실에 들어서자 오래 전부터 농축된 지린내와 찌든 담배냄새가 코를 찔렀다. 나는 누런 때가 탄 화변기가 하나 있는 칸막이에 들어가 문을 잠갔다. 쭈그려 앉아 속을 게워낼 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바깥의 문을 잠그는 걸 깜빡한 것이다. 바깥의 사람은 통화를 하는 듯 중얼거렸는데 꽤나 거나하게 취했는지 목소리가 크고 발음이 부정확했다. 남자치곤 얇고 높은 목소리였다. 나는 그가 나가기만을 잠자코 기다렸다. 남자가 어눌한 발음으로 외쳤다. 거짓말 하지 마!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났다. 한참을 기다려도 남자는 나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기다리다 못해 어쩔 수 없이 칸막이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라면 국물처럼 벌건 얼굴, 푹 젖은 속눈썹을 보았다. 무너질 듯 늘어진 몸을 소변기에 기대고 있는 사람은 내 또래의 남자애, 너였다. 마주친 눈동자가 녹아가는 고체 같았다. 그건 내가 처음 본 너의 부위였다. 너는 여전히 울 것 같은 얼굴로 휴대전화를 가만히 귀에 대고 있었다. 열린 지퍼에 손을 갖다 댄 채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 같은 자세의 동상처럼 멈춰 있었다. 전화가 끊긴 모양인지 너는 더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슨 이유에선지, 눈물을 참느라 내리깐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너는 그 뒤 네가 내게 지어보일 수많은 표정들 중 단연코 가장 바보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취해 있었고 너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순간 너와 내가 외롭다는 것을, 뼈저리게 알아버렸다. 착각이었는지도 모른다. 너는 나를 보며 울음을 참았다. 우리는 악취가 풍기는 화장실에서 칸막이 문을 붙잡고 오랫동안 서로를 보고 서 있었다.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은 네 얼굴을 보는 동안 웃음인지 모를 뭔가가 내 입술을 비집고 나오려 했다.
문득 너와 내가 꽤 닮은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 관계는 아주 우발적이었다. 술에 취한 상태였고, 뒷일을 생각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아닌 계기로 만난 너에게 왜 그리 큰 애착을 느꼈는지 모르겠다.
너는 자신에 대해 말해주길 좋아했다. 나의 방에서 함께 깨어난 아침, 너는 내게 팔베개를 해주고 많은 것을 말해주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주로 저의 현재 신분과 지위, 가족의 경제 상황과 관련된 것들을 말이다. 너는 근처 사립 대학교의 공대생이었다. 설비 사업을 하는 아버지와 교사인 어머니 아래에 외동아들로 유복하게 태어났기에 한 번도 자신이 불우하거나 불행하다 생각한 적이 없다고 했다. 조금 싸늘한 방 안의 온도에 우리는 알몸으로 매트릭스에 바짝 붙어 누워 있었다. 너는 술을 그토록 취할 때까지 마신 적도 어제가 처음이라며 웃었다.
'불행해본 적 없다며. 어째서 어젯밤엔 그렇게 죽자고 술을 마셨어?'
너는 쓴 물을 삼키는 표정을 지었다.
‘그냥.’
조금 더 누워 있다가 나는 시트를 걷었다. 정액이 묻은 시트는 아무래도 통세탁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여기서 너 혼자 살아?’
뒤늦게 내 자취방의 이곳저곳을 훑어보던 네가 물었다. 나는 방 곳곳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마른 빨래와 설거지가 잔뜩 쌓인 싱크대를 보고 괜히 무안해졌다.
‘넌 겁도 없이 혼자 사는 방에 낯선 남자를 데리고 오니.
너는 짓궂게 웃었고, 조금 더 누워 있자며 나를 안고 늘어졌다. 맨살과 맨살이 닿는 감촉이 끈적이고 부드러웠다. 나는 너에게서 나는 비릿한 술 냄새와 달콤한 땀 냄새가 참 좋다고 생각했다.
그날부터 너는 내 방에 찾아왔다. 네 몸에 내 방 냄새가 배어버릴 만큼 그 횟수가 잦았다. 지하철로 세 정거장 정도 떨어진 학교에서 강의가 모두 끝나면 너는 라면이나, 편의점 샌드위치, 도시락 등을 꼭 두 사람의 몫만큼 챙겨왔다. 두 사람에게 가장 알맞을 크기의 방에서 너와 나는 머리를 맞대고 앉아 배를 채웠다. 내가 술을 먹자고 조르면 너는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며 정색을 했다. 나는 너에 대해 차차 많은 걸 알아갔다. 너는 무척 솔직했다. 무엇이 싫고 무엇이 좋은지 명확하게 의사를 표현했으며, 그 무엇보다 거짓말을 가장 싫어했다. 거짓말을 싫어하는 성격은 조금 지나친 데가 있었다. 마음에 상처가 될까 염려가 되어 사실보다 조금 더 과장하거나 누그러뜨린 말도 듣기 꺼려했다. 너의 그런 불안정하고 강박적인 모습도 내겐 과분하다고 생각했다.
네가 다니는 H대의 캠퍼스를 함께 산책하기도 했다. 초여름이라 믿기 힘들 만큼의 맹렬한 한낮이었다. 더위에 진절머리가 난 우리는 얼마가지 못해 걷기를 중단하고 모과나무 아래 나란히 앉아 포도 맛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이마를 타고 내려오는 땀에 눈을 감으며, 너는 파충류처럼 느리고 고독하게 더위를 견디고 있었다. 그 모습조차 내겐 과분했다. 감히 너를 무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우리를 무어라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글거리는 빛줄기가 눈가에 매달렸다. 나는 그늘에 더 깊숙이 달라붙었다. 무성한 나뭇잎의 그림자가 드리운 얼굴과 동공에 맺힌 두개의 빛 방울. 나는 자세히 너를 뜯어보았다. 그리고 네가 짓고 있는 서늘한 표정, 그 차분하게 가라앉은 낯빛이 내 눈에 박혀 영원히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좁은 방에 홀로 남게 되는 게 두렵다고 했어. 벽이 점점 좁혀서 몸을 짓눌려 터뜨리는 장면을 수도 없이 상상하게 된다더라.”
내가 말했다. 너는 묵묵하고 무심하게 내 말을 듣고만 있었다. 나는 너를 빤히 바라보다가 작게 움츠린 눈에서 서늘한 물길을 엿보았다. 그것은 흐르지도 탁해지지도 않고 영영 거기에 고여 있을 것 같았다.
“난 앞으로도 지겹도록 맞게 될 아침이 두려웠어. 좁은 방에 갇힌 것처럼 숨이 막히게 무료했으니까. 그런데 이상하지. 요새는 아침을 맞는 일이 그렇게 무섭지 않아. 오히려 이제 그런 일 따위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어.”
"너를 만나고 나서부터 그래."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너는 다만 곤충의 박제를 떠올리게 하는 억지스럽고 단정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나는 너 같은 부류의 사람들을 알았다. 그들은 대개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기에 무심하다. 타인에게도 자신에게도 얽혀 있지 않아서, 뿌리가 제거된 식물처럼 햇빛 아래서도 상해간다. 손상된 표정을 보자 머리의 피가 차갑게 굳는 기분이 들었다. 그날 캠퍼스에 잔잔히 흐르던 노래를,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곡의 멜로디도, 분위기도, 가수가 여자였는지 남자였는지조차 모른다. 나는 내 이름 외엔 너에게 말해줄 것이 없었다. 나를 설명할 말이 없다는 사실이 생전 처음으로 부끄럽고 슬프게 느껴졌다. 너를 만나고 그런 막막한 비애가 가슴을 짓눌렀다. 나는 항상 너에 대해 좀 더 많은 걸 알고 싶었고, 너는 나에 대해 그리 많은 걸 궁금해 하지 않았다. 대신 내가 묻지 않은 유년이나 미래를 자랑스럽게 일러주곤 했다. 그러나 정작 내가 정말 알고 싶은 것 따윈 말해주지 않았다. 나를 향한 감정, 나를 찾아오는 이유. 그런 것들. 내가 묻지 않고 물을 수도 없는 사실을 나는 그저 나름대로 억측하며 갈증을 누그러뜨렸다. 너는 조금 긴 턱에, 눈썹 뼈가 툭 불거져 나왔다. 얼굴은 희고 길었고 아토피 때문에 목과 뺨 부근이 항상 불그스름하게 물들어 있었다. 눅눅한 매미소리가 귓가로 새어 들어왔다. 고열을 앓는 풍경이 숨을 죽이고 누워 있었다. 나는 네게 단단히 팔짱을 꼈다. 땀에 젖은 팔뚝이 뱀처럼 미끈거렸다. 너는 항상 꼭 필요한 만큼만 말했고 꼭 필요한 만큼만 내게 기댔다. 그건 절제라기보다는 억제에 가깝게 느껴졌다. 내가 그런 식의 태도를 두고 속으로 불평할 때마다 너는 나의 감정과는 하염없이 무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언제든 관계의 끈을 놓아버려도 상관없다는 듯 가볍고 미지근한 표정, 그 때문에 나는 너무도 쉽게 불안해지곤 했다.
"너는 왜 이렇게 살아?"
"내가 사는 게 어떤데?"
"그렇잖아. 학교에 다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모르겠어."
"비꼬는 게 아니야. 그냥 궁금해서."
수치심보다는 서글픈 기분이 들었다. 아마 너의 눈에 비칠 나는 그렇겠구나, 미루어 짐작하던 부정적인 예상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너는 악의라곤 조금도 없는 물음으로 나를 상처 입힐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어떻게 살면 좋겠어?"
"글쎄, 학교를 다니거나. 일을 하면 지금보다 나아지지 않을까."
"그랬으면 좋겠어?"
"응."
너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 대답하더니 돌연 내 몸을 꽉 안아주었다. 어깨와 등을 죄어오는 부드러운 감촉에 숨이 막혔다. 나는 당혹감에 숨을 참았다가 한꺼번에 숨을 터뜨렸다. 웃었다. 시시한 미소를 마주했던 순간, 나는 네가 얼마나 눈부신 사람인지 알아버렸다.
"네가 좀 더 생기 있게 살았으면 좋겠어."
그날부터 너의 그 말이 언제나 내 귓가에 떠다녔다. 그 말은 부드럽게 내 가슴을 부풀렸고 지금껏 내가 생각조차 못한 삶의 일면에 손을 뻗고 싶게 만들었다. 그러나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너는 나에 대해 모른다. 분명 실망시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생각에 빠지면 이내 내 자신이 하염없이 작고 무력한 존재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