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의 별들이 밤의 시작을 알렸다.
둘과 셋은 월과 하나가 돌아온 지 한참 후에야 돌아왔다.
멀쩡한 둘과는 달리 피곤해 보이는 셋이 걱정된 하나.
“셋, 괜찮아?”
“아, 하나 님…. 헤헤, 오늘은 영혼들이 다른 날보다 많았네요.”
피곤에 찌든 셋이 걱정되기도 했지만 하나는 다른 것에 신경이 쓰였다.
‘다른 날보다 수거할 영혼이 많았다는 건, 그만큼 죽은 사람이 더 많았다는 거겠지….’
자신의 생각보다 생의 마감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지금은 저승의 심부름꾼이지만 사람도 섞여있는 하나는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나 같은 사람이 생각보다 많아.’
같은 이유가 아니지만 생을 마감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아.
하나는 온갖 생각들이 들었다.
그 사람들은 왜 끝을 보고 싶어 했을까.
영혼이 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편안했을까, 아님… 슬펐을까.
그 생각을 멈추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셋이었다.
“하나 님께서는 첫 영혼 수거 어떠셨어요?”
“아….”
글쎄,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하나는 진지하게 고민을 하다가 결론을 내렸다.
“영혼구슬이 너무 예뻤어!”
셋은 하나의 말에 공감하듯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그렇죠! 그렇죠!”
“셋은 처음 영혼구슬을 봤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어?”
어린아이가 그 구슬을 보고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 궁금했던 하나는 웃으며 물어보았다.
간단한 대답일 줄 알았는데 나름 고민하는 셋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하나.
셋은 한참을 생각해 보다가 대답을 하였다.
“안전하게, 조심스럽게 저승으로 모셔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응…?
생각보다 어른스러운 대답에 하나는 눈을 깜빡였다.
“구슬은 자그마한 충격에도 깨지잖아요. 정말 그럴 것 같아서….”
어린아이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예쁜 생각을 하는 셋의 모습이 사랑스러워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헤헤 웃으며 하나의 손에 자신의 손을 올리는 셋.
‘너무 사랑스럽잖아…!’
하나는 마치 셋에게 힐링을 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어? 나이도 어리면서.”
“저, 나이 안 어려요!”
“응?”
“저승사자가 된지 벌써 200년이 지났는 걸요!”
“뭐…?”
잠깐만… 셋이 저승사자가 된지 200년이 넘었다고?
그러면 아까 월이 한 말이 사실이었단 말이야?
이 사자들, 대체 나이가 몇인 거야?!
충격에 빠진 하나는 셋을 보고 어버버 거렸다.
“신체의 나이는 변하지 않으니까요~!”
해맑게 대답을 하고는 월이 부르는 소리가 들리자 가버리는 셋.
하나는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가만히 서있었다.
둘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 한 번 스윽 쳐다보고는 걸음을 옮겼다.
.
.
.
회의실에서 많은 일들을 보고하고 있었다.
하나와 셋은 가만히 앉아있었고, 대화는 주로 월과 둘이 하였다.
“그래, 귀인을 맡았다고?”
“네, 그래서 일주일 간 지켜보아야 합니다.”
“알았다. 안전하게 귀인을 모셔오도록 해.”
“네, 차사님. 아… 그리고 오는 길에 홍 님을 뵈었습니다.”
‘홍’이라는 이름에 월은 즉각 반응을 보였다.
‘님’이면 차사의 신분인 건가?
둘은 월에게 한 개의 서신을 건네주었다.
그 서신을 읽은 월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덮었다.
회의가 점점 마무리되고 둘과 셋은 귀인을 지켜보기 위해 이승으로 다시 나갈 준비를 하였다.
“하나 님…. 밥 꼭 잘 챙겨 드시고 몸 조심하셔야 해요!”
“셋… 누가 보면 영영 떨어지는 줄 알겠어….”
“그래도!”
앙탈을 부리는 셋의 모습이 귀여워 하나는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그녀를 안아주었다.
셋 역시 있는 힘껏 하나를 안아주고는 둘과 함께 이승으로 갔다.
성에 월과 단 둘이 남은 하나는 기지개를 펴고 자신의 방으로 갔다.
씻고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은 하나는 침대에 풀썩 누웠다.
‘아…. 여기가 천국이야….’
건강이 좋지 않았던 하나는 학원 하나 다니지 않고 학교만 다녔지만, 이상하게도 너무나 피곤했었다.
‘뭐 어떡해~. 학교와는 태생부터 맞지 않았는걸.’
하나는 큰 베개를 꼭 안고는 또 다시 생각에 잠겼다.
병원도 태생부터 맞지 않았는데.
학원은 다니지 않았지만 병원을 내 집처럼 왔다 갔다 했지.
남들이 연필 잡고 공부할 시간에 나는 병원에 주사를 달고 누워있기만 했어.
‘뭐… 굳이 병원에 있지 않았어도 공부는 안했을 것 같지만….’
아, 그것도 생각난다.
저혈당 증세가 와서 체육시간에 쉬었는데 왜 쉬냐며 앞담 까던 애들.
‘난 진짜 죽을 뻔했어, 이년들아.’
몸이 안 좋아서 수업시간에도 자주 잤는데 왜 나만 안 깨우냐고 했던 것도 기억나.
아, 그리고 그것도.
인슐린 주사 맞으러 시간 날 때 보건실이나 화장실 가서 엄청 투덜대며 주사 맞은 거.
‘그거 진짜 귀찮았는데. 안 맞은 적도 많아서 엄마랑 교수님한테도 왕창 깨졌지, 참.’
그러고 보니 왜 온통 안 좋은 것들만 생각이 나냐….
더 우울해지게.
하나는 몸을 뒤척였다.
기분이 꿀꿀해진 하나는 좋았던 기억을 생각해보려고 했다.
그러나 왜인지, 좋지 않은 기억들에 비해 좋은 기억들은 거의 있지 않았다.
‘나 진짜 불행하게 살아온 거 아니야?’
아니면 불행한 기억이 너무 커서 좋은 기억이 작아진 걸까.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머리가 복잡해진 하나는 짜증을 내며 베개를 퍽퍽 때렸다.
‘아, 왜 자꾸 짜증나는 일하고 짜증나는 사람만 생각나는 거야!’
짜증과 화를 주체할 수 없었던 하나는 베개와 싸움을 했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베개를 문 쪽으로 확 던졌는데, 누군가 맞는 소리가 났다.
불안한 느낌에 상체를 일으켜 시선을 돌렸던 하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나, 드디어 미쳤나?”
“워…월….”
자신을 맞고 바닥에 떨어진 베개를 확 잡아드는 월.
“아…아니… 저승차사 정도면 그거 피할 수 있는 거 아니에요…?”
월은 하나에게 뚜벅뚜벅 걸어오더니 베개를 하나에게 던졌다.
그의 얼굴을 본 하나는 그가 짜증이 났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저승차사여도 눈앞에 갑자기 나타난 베개는 피할 수 없어. 시간이 있어야 피하지.”
“아… 그렇지…. 음… 미안해요, 월….”
“미친 건 아니지?”
“차라리 미친 거면 좋겠네요….”
그 말을 하고 다시 침대에 털썩 누워버리는 하나.
월은 그녀의 대답에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그녀의 침대에 걸터앉았다.
무슨 할 말 있냐는 하나의 질문에 월은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하나가 눈을 깜빡이자 월은 그녀의 이마에 딱밤을 때렸다.
“아! 왜 때려요!”
“상사가 왔는데 계속 누워있는 건 무슨 심보야. 아직 사회생활을 하지 못한 고등학생이라지만 예의가 너무 없는데?”
“아- 이번만 봐줘요! 온몸에 힘이 없단 말이에요!”
하긴, 평범했던 사람이었는데 오늘 사자의 능력을 받고, 거기다가 돌아다니기까지 했으니 힘들만 하지.
월은 알았다는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근데 아무리 상사여도 그렇지, 무슨 여자 방에 노크도 없이 들어와요?”
월은 하나를 한심스럽게 쳐다보았다.
“내가 그런 무례한 사람으로 보여? 노크를 했는데 네가 미쳐 날뛰고 있었잖아.”
월의 날카로운 한마디에 하나는 베개를 꼭 안고 볼에 바람을 넣었다.
그렇게 침묵이 이어지다가 월이 먼저 말을 꺼냈다.
“하나, 여전히 살고 싶지 않은가?”
하나는 월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눈이 커졌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 하나에, 무슨 대답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월.
“뭐 하나 물어보고 싶은데.”
“살고 싶지 않은 이유 빼면 들어보고 대답해 줄게요.”
“…무슨 소원을 빌 거지?”
“…네…?”
“업적을 쌓아서 염라님께 비는 소원 말이야.”
하나는 그의 등을 빤히 쳐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월이 갑자기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소원을 말해도 될까.
그녀는 자신의 속마음을 말하지 않는 아이였다.
그녀가 겪어온 관계는, 그녀에게 중요하지 않은 관계였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온전히 마음을 열어준 상대는 주형뿐이었다.
‘주형오빠 말고 월한테도 조금은 솔직해져도 괜찮을까.’
하나와 월의 관계는 그저 동업자일 뿐이었다.
서로의 소원을 위해 업적을 도와주는 관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란 것을 하나는 잘 알고 있었다.
하나는 피식 웃으며 밝게 말하였다.
“글쎄요~ 아직 고민 중이에요. 업적을 다 쌓을 때쯤이면, 한 가지의 소원을 정하지 않을까요?”
“그런가.”
하나는 턱을 괴고 모든 것들을 입 밖으로 꺼내보았다.
“저승의 심부름꾼이 되고 싶다고 할까요?”
“글쎄.”
“아니면 신이 되고 싶다거나!”
월이 큰 숨을 한 번 쉬고는 말하였다.
“업적을 쌓아 이루는 소원에는 한 사람의 생명을 결정할 수 없고, 이승과 저승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소원은 들어줄 수 없으며, 인간 능력의 이상을 가질 수도 없어.”
“나도 알거든요~ 그냥 농담한 거죠.”
아무런 대답이 없는 월에, 하나는 진지하게 말하였다.
“아님 영원한 죽음? 저승에서 평생 사는 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아요.”
“그래.”
뭐야, 그게 끝?
하나는 생글생글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월이랑 둘이랑 셋이랑~ 저승에서 사는 것도 완전 좋을 것 같은데!”
그 말을 들은 월이 정색을 하며 어느 때보다 냉정하게 말하였다.
“우린 싫어.”
“에~ 아까워!”
키득키득 웃는 하나의 웃음을 본 월은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
“여태까지 말한 소원들은 다 죽고 싶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구나.”
월의 말을 들은 하나는 웃는 것을 멈추었다.
‘…그렇네….’
그냥 생각나는 것들을 말한 건데.
어이가 없었던 하나는 헛웃음을 쳤다.
나,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살고 싶은 마음이 없나봐.
분위기가 조용해졌다.
들려오는 것은 바깥에서 부는 바람소리만이 방에 머물렀다.
바람소리만 머무르던 방에, 하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소원으로… 이승에 돌려보내달라고 하는 것이 맞는 걸까요?”
“대부분의 혼수 영혼들은 그렇지만, 넌 살고 싶지 않잖아.”
“그럼 어떻게 해야 해요?”
“네가 원하는 게, 답이란 것을 잊지 마.”
이번에도 무덤덤한 말투로 다정한 말을 하는 월.
말투와 내용이 너무 반대라 웃음이 나오는 하나였다.
문득 월의 소원이 궁금해진 하나는 그에게 물어보았다.
그는 질문을 듣고 좀 이따가 대답을 하였다.
“나도 아직 고민 중이야.”
“후보도 없어요?”
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는 조용하게 ‘흐음’거리고는 다른 질문을 하였다.
“둘과 셋의 소원은 무엇일까요?”
“어린 나이에 생을 마감한 아이들이니, 환생이 아닐까.”
“둘과 셋도 처음엔 사람이었어요?”
“…그래. 우리는 모두 사람이었다가 저승의 심부름꾼이 된 경우야.”
“그럼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어요?”
“처음부터 저승을 위해 태어난 분들도 계시지.”
“…저기 그럼, 둘과 셋은 몇 살에 이승을 떠났어요? 둘은 나와 비슷한 나이인 것 같고, 셋은 꼬마아이인데.”
“그걸 기억하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어. 네가 보는 나이가, 그 아이들이 죽은 나이겠지.”
“…안타깝네요….”
하나의 눈엔 진심이 담긴 안타까움이 담겨져 있었다.
그것을 보았던 월은 하나에게 물어보았다.
“누가 보면 알고 지낸지 아주 오래된 사이인 줄 알겠어.”
“아? 그래요?”
월은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하나는 피식 웃으며 눈을 반달처럼 휘었다.
“하긴, 나도 그렇게 느껴요. 이승에 있을 때보다 더 편한 것 같아요.”
“뭐?”
“이승이든, 저승이든… 나를 모르는 건 같은데 왜 이승에서는 나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지.”
하나는 베개를 꼭 안으며 눈을 감았다.
“난, 꼭 우리가 소원을 이루었으면 좋겠어요.”
“…그래.”
“그럴 수 있겠죠?”
“…얼른 자.”
월이 침대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하나는 눈을 감은 채 입을 열었다.
“월, 내 소원은요….”
하나의 목소리에 월은 걸음을 멈추고 그녀 쪽으로 몸을 돌렸다.
“보고 싶은 사람을 보는 것이에요. 그 사람은 이승을 떠나서 볼 수 없거든요.”
“…그 사람이 너에게 어떤 존재인데?”
“좋아했던 사람이요. 정말 많이 좋아해요…. 그런데 말 못했거든요.”
“…….”
“그래서 소원을 이루고 오빠를 보면, 말할 거예요.”
하나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씩 떨어졌다.
“좋아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