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현대물
시간 저장사
작가 : 어들
작품등록일 : 2018.11.18
  첫회보기
 
01화. 사진관
작성일 : 18-11-18     조회 : 482     추천 : 0     분량 : 5547
뷰어설정열기
기본값으로 설정저장
글자체
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어떤 시간을 저장해 드릴까요?"

 

 어떤 남자의 목소리가 우리 반 TV를 통해서 흘러나온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린데.

 이 생각을 내 친구 수연이에게 털어놓으니 들려오는 소리가

 

 "야! 너 장사 저라는 사람 몰라?"

 

 ......? 알 턱이 없다.

 나는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수연이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오히려 수연이가 못 볼 꼴을 봤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장사인지 장사 저인지가 대체 누군데?"

 

 나는 차분하게 물었다. 원래도 차분하지만 남이 더 흥분하니까 왠지 더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장사 저라는 사람은 시간 저장사라고!!"

 

 으응?

 이제는 내 얼굴이 조금 일그러졌다. 시간 저장사라니, 어느 옛날 판타지 소설도 아니고 그게 뭐람?

 나는 수연이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았다.

 

 "시간 저장 사는... 또 뭐냐...?"

 

 나는 겨우겨우 물었다.

 

 "시간 저장 사도 몰라? 요즘, 아니지. 예전부터 엄청 핫한 건데?"

 

 수연이는 잠시 나를 쳐다보았다왠지 무슨 생각 하고 있는지 알 것만 같았다. 아마도 '저것이야 원래 이런 것에 관심 없었으니...' 하고 체념하고 있을 것이다.

 뭐 근데 솔직히 맞는 말이다. 이런 것에는 관심도 없고, 쓸모없는 감정 소비라고 생각한다. 시간 저장사가 뭐든 간에, 역시 나랑은 관련 없다.

 

 ***

 

 

 분명히 그랬는데.......

 학교 마치고 보니 나는 어느새 시간 저장사의 사진관 앞에 서 있었다. 수연이와 함께.

 그곳, 시간 저장사의 사진관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겼다. 아직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박쥐가 날아와 안착할 것 같았다. 검은 커튼으로 모두 덮인 커다란 5곱하기 5 창문은 건드리기 꺼려졌고, 넓은 마당 전체에 빼곡히 심어진 검은 장미는 화단에서 걸어 나와 마당을 뛰어다닐 것 같았다.

 

 '이게 무슨 미친 생각이람.'

 

 나는 내 스스로 볼을 짝- 하고 때렸다. 볼때기가 얼얼했다. 나는 불안함을 내비쳤다. 내 직감은 그곳에 들어가지 말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수연이는 내 팔에 팔짱까지 끼고 그곳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하... 나도 이젠 모르겠다.

 

 딸랑-

 

 "어서 오세요~ 시간 저장사의 사진관에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그곳에 발을 딛자마자 머리 위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꺄아 아악!"

 

 수연이가 귀가 찢어져라 비명을 질렀다.

 파란 붕대로 눈을 가린 한 남자가 카메라를 들고 벽의 시계 거는 못에 발을 걸고 매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진작에 눈치를 챘지만, 수연이는 불행하게도 그 남자에게 제대로 걸려버렸다.

 그는 수연이의 반응이 재미있었는지 이리저리 공중을 닌자처럼 뛰어다니며 수연이를 놀려댔다. 그럴수록 수연이의 비명소리는 점점 커져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덕분에 나는 이곳이 이상한 곳이라는 내 생각에 확신을 더할 수 있었다.

 이윽고 그가 지쳤는지(땀 하나 나지 않았다.) 넓은 사진관의 로비에 가볍게 착지했다. 가볍게라는 표현 치고 가운을 밟아 미끄러져 넘어질 뻔했지만.그가 착지했을 때 내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은 검은색, 갈색, 그리고 다홍색이 물감처럼 섞인 듯한 괴상한 취향의 신발이었다. 그리고 그 위로 보이는 흰색 바지와 흰색 셔츠, 그리고 신발에 밟히고 구겨진 자국이 있는 흰색 가운. 

 내 예상으론 그는 시간 저장사 같았다.

 

 "학생분들, 안녕하세요? 저는 이 사진관을 운영하는 시간 저장사 장사 저라고 해요."

 

 수연이는 얼떨떨한 채로 그에게 "안녕하세요"라고 했고 나는 아직 의심을 거두지 못한 채로 고개만 까딱했다.

 아아, 눈이 안 보여서 더욱 속을 모르겠다.

 

 "네 그래서 학생분들, 어떤 시간을 저장해 드릴까요?"

 

 그가 손에 든 카메라를 카운터 위에 올려두며 물었다.

 

 "아, 저는 그냥 얘 따라온 거예요."

 

 나는 줄곧 그가 들고 있던 카메라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다가 학생분'들'이라는 말에 정신을 확 차리고 얼른 수연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시간 저장 사는 살짝 놀란 듯해 보였다.

 

 "아- 시간 저장을 하시지 않는 건가요?"

 "네."

 

 나는 짤막하게 답했다. 더 이상 저 이상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 사람은 나에게 한 번 더 말을 걸었다.

 

 "무슨 이유라도?"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 무신경하게 내뱉었다.

 

 "없어요."

 

 그러곤 나는 수연이를 바라보았다. 수연이는 이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신기한 듯 사진관 안을 둘러보는 중이었다. 하긴, 나라도 처음 이곳이 안 신기한 것은 아니었다. 웅장한 여러 사진들과 높은 천장이며 무엇보다도 벽을 가득 채운 수천 대의 카메라. 나는 왠지 소름이 돋아 팔을 문질렀다.

 한편 시간 저장 사는 딱딱한 나의 대답에 기가 살짝 눌린 듯했다. 뭔가 시무룩해 보이는 자세로 수연이에게 아까 했던 질문을 다시 했다.

 

 "어떤 시간을 저장해 드릴까요?"수연이는 화들짝 놀라며 시간 저장사를 바라보았다. 살짝 당황한 듯싶었다. 나는 혹시나 저 사람이 수연이에게 무슨 짓을 할까 봐 얼른 그녀 옆에 가서 섰다.

 

 "저... 일부의 시간만 저장할 수 있을까요?"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일부가 어쩌니 저장은 또 뭐고. '시간 저장사'라는 말을 듣고 나서부터 이상한 말들이 내 머릿속을 헤집고 놓고 도망가고 있잖아.

 나는 짜증이 치밀었다. 

 그런데 그는 수연이의 말을 알아들은 듯했다.

 

 "당연히 됩니다. 따로 보관하시겠어요, 완전히 지우시겠어요?"

 

 나는 그의 말을 듣고 그들의 옆에서 멀찌감치 떨어졌다. 이게 한국어인지, 외계어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완전히 지우고 싶어요."

 

 시간 저장 사는 잠시 뜸을 들였다.

 

 "시간은 기억과도 같습니다. 시간을 지우면 그 시간 동안의 기억이 완전히 사라지는데, 그래도 괜찮을까요?"

 "네. 괜찮아요."수연이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러자 시간 저장 사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그 자리에서 그녀에게 눈을 감으라고 말했다. 이윽고 수연이의 눈이 찬찬히 감기고, 그는 슬로모션처럼 팔을 들어 올렸다.

 이것만큼은 나도 궁금해져서 곁눈질로 뭘 하는지 살짝 훔쳐보았다.

 

 찰칵-

 

 어...? 뭐지?

 나는 그에게서 위화감을 느꼈다. 분명... 카메라는 아까 카운터 위에 올려두고 단 한 번도 건드리지 않았는데,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았는데, 왜 카메라 셔터 소리가 들린 거지?

 나는 주춤거렸다. 나의 시선은 빠르게 돌아가 수연이에게서 멈췄다. 그녀는 이제 눈을 뜨고 있었다. 

 

 "괜찮으시나요?"

 

 시간 저장사가 다정하게 물었다.

 

 "... 네! 멀쩡하네요! 감사합니다. 얼마죠?"

 

 

 

 

 

 .

 .

 .

 오늘 하루, 너무나도 많은 호기심이 나의 머리를 가득 채웠다. 시간 저장사. 왜 나만 몰랐던 거지? 이렇게 신기한 일이고 전 세계에 알려졌는데, 왜 나만?

 그놈의 시간 저장사가 뭐라고 나를 이렇게 만드는지. 

 역시 안되겠다.

 귀찮지만 계속 떠오르는 게 더 귀찮아.

 

 "수연아, 나 사진관에 지갑 놔두고 온 것 같아."

 "에에? 네가 그런 것도 깜빡하니? 같이 가 줄까?"

 "괜찮아. 애도 아닌데 혼자 갈 수 있어."

 "네가 그렇다면야... 알았어. 내일 봐!"

 

 휴우. 속아 넘어가서 다행이다. 

 나는 멀어져 가는 수연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거의 사라지자 뒤를 돌아 사진관으로 향했다. 이상하게도 수연이랑 걸을 때는 길었던 길이 지금은 짧게 느껴졌다.

 

 

 

 딸랑!

 

 "어서 오세... 어! 아까 왔다 간 친구?"

 

 시간 저장 사는 또다시 문 위 벽에 매달려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저 카메라는 어차피 쓰지도 않을 텐데 왜 들고 있는 건지. 여전히 좀 미친 사람 같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궁금한 게 있어서요."

 

 내가 말하자, 그는 의아해하면서도 왠지 기뻐 보였다. 미소를 숨기려 하지만 숨길 수 없는 그의 모습이 훤히 드러났다.

 

 "호오, 뭘까? 궁금하네요."

 

 나야말로 궁금한 게 많았다. 일단 시간 저장 사는 대체 뭔지. 그리고 파란 붕대로

 가려진 그 잘난 시간 저장사의 눈...

 나는 시간 저장사가 안내하는 곳으로 따라 들어갔다. 그곳은 앞의 로비와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먼지 하나 없는 소파와 카펫. 광이 나는 커다란 유리 책상. 그리고 옆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는 크리스마스 벽난로와 무엇보다 나의 눈을 사로잡은 수십수백 개의 사람 사진.이 사람의 취향은 알다가도 모르겠다.나는 초록색의 푹신해 보이는 소파에 풀썩 주저앉았다. 푸슉- 하는 풍선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나의 몸은 소파에 집어 삼켜지는 듯했지만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리고 시간 저장 사라는 작자는 맞은편의 딱딱한 원목 의자에 허리를 곧게 펴고 앉아있었다.

 

 "그래서, 무엇이 궁금하신 건가요? 제가 대답해 드릴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뭐든지 물으세요!"

 

 그는 재수 없을 만큼 여유로워 보였다. 나무 의자에 기대지도 않고 앉아 턱을 괴고 보이지 않는 눈으로 나를 보며 웃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나는 감정이 확 치밀었다. 

 하지만 나는 15년 인생 동안 먹은 눈칫밥으로 눈치는 물론이고 감정 조절까지 완벽하게 해 낼 수 있게 되었다. 처음으로 그 친척들이 도움이 될 줄이야.

 나는 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어차피 별거 없는 질문이지만 나는 진지하니까.

 

 "저... 질문하겠습니다."

 "네. 무엇이든지 하세요."

 "시간 저장 사는 대체 뭔가요?"

 

 내가 묻자, 그는 예상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아- 시간 저장사란 시간을 흐르지 않게 저장해주는 사람을 말해요. 방법은 다양하지만 저는 사진을 이용하고 있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능력은 시간을 나눠서 저장하거나 도려내는 것도 된답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눈꼬리를 둥글게 말았다. 뭔가 그런 것 같았다.

 

 "그러면 시간을 저장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죠?"

 

 이때 그가 기분 나쁜 미소를 지었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 거죠."

 "......."

 

 아무리 생각해도 저 대답은 믿기지가 않는다. 어떻게 사람한테 시간이 흐르지 않는단 말인가?

 

 "못 믿으시겠다면, 저와 사진 한 번 찍어보시지 않겠습니까?"

 

 그가 제안했다. 조금은 혹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뭔가 사진을 찍게 된다면 저 사람의 술수에 넘어가는 기분이었다.

 

 "에, 아뇨, 역시 저는 안되겠어요. 저는 시간이 흐르기를 희망하거든요."

 "... 시간이 멈추면 나이도 들지 않습니다."

 "아... 이거 정말 솔깃한데, 역시 안되겠어요."

 

 나는 이번에도 단칼에 거절했다. 그리고 나는 시간 저장사의 표정 변화를 발견했다. 조금 심기 불편해 보였다.

 

 "... 그럼... 저를 한번 찍어주시지 않겠습니까?"

 

 그가 제안했다. 아니, 부탁 같았다. 그때, 두 번째로 그에게서 위화감을 느꼈다. 겉은 멀쩡한데 속은 그렇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으스스했다.

 

 "왜 그러시는지요?"

 

 그가 물었다.

 나는 아주 짧게 놀라며 답했다.

 

 "아니에요. 찍어드릴게요. 카메라가...."

 

 내가 카메라를 찾자, 그가 제지했다.

 

 "아니요. 카메라는 필요 없어요. 그저 손으로 이렇게."

 

 그는 왼손과 오른손의 엄지 검지를 펴고는, 서로 맞대어서 사각형 모양을 만들었다. 그래, 그 모양은 좀 카메라 같았다. 

 하지만 모양은 모양일 뿐, 찍어질 리가 없다."이렇게 해서 찍으라고요...?"

 

 나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시간 저장 사는 꿈쩍도 않고 내가 그렇게 해서 찍어주기만을 기다렸다. 

 하하, 내가 어쩌다 이런 일을.

 나는 결국 미친 짓인 것을 알면서도 그가 부탁한 대로 해보았다.

 

 "......."

 "......."

 

 부끄러움이 파도처럼 몰려왔다. 나도 잠시 미쳤었나 보다. 저 작자가 하라는 대로 하다니.

 나는 벌겋게 된 얼굴과 귀를 가라앉히려고 숨을 몇 번이고 쉬었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대로였다. 나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때, 그가 뭐라고 중얼거렸다.

 

 "... 역시 아닌 건가."

작가의 말
 

 조금은 미숙합니다...ㅜ

 
 

맨위로맨아래로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시간저장사 - 등장인물 - 1 11/18 490 0
1 01화. 사진관 11/18 483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