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여진아!!”
갑작스럽게 크게 들리는 소리에 나는 깜짝놀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어..?”
“뭘그렇게 멍을 때리고있어? 혹시 피곤해?”
“아..미안. 내가 살짝 멍 할때가 많아..이해해줘.”
그녀는 얼굴에서 물음표라는 단어를 내뱉고 있는것같았다.
“뭘 이해랄거까지야. 나도 멍..할때 많아. 특히 공부할 때. 그때만큼 멍때리는게 그렇게 좋을수없다니깐?”
“하하..”
“어? 웃었네?”
“어..?음..?”
“너 말이야! 너! 오늘 한번도 웃은적없잖아! 세상 다 죽은거마냥! 근데 처음으로 웃었잖아! 지금!”
“아..하하..그렇네. 내가 조금 잡생각을 많이해서.. 아무래도 잘 웃질않는 모양이야.”
“에이~ 뭐 어때! 행복했으면 된거지! 자! 어서가자! 가서 밥먹어야지!”
“어..음? 어딜?”
다시한번 기분이 멍해진다. 아니 궁금해진다. 어딜.. 간다는거야? 으음..?
나의 말이 끝나자마자 누군가가 나의 팔목을 갑작스럽게 낚아챈다.
“어디긴 어디야! 우리집이지! 이렇게 갑작스럽게 만난것도 괜찮은 인연인데 밥한번 정도야 만들어줄게! 대신 다음엔 너가 만들어주는거야? 알겠지? 알겠어! 가자!”
“어..어라..?”
정말 당황스러웠다. 이게 어떻게된일이지? 이래도 되는건가..? 외 에 여러 가지 잡생각들이
뇟속의 정보를 꽉채웠다.
”자! 어서 가자!”
그녀의 활기차고 쾌활한 목소리는 마음속의 천상의 나팔같이 들리며 마치 나를 천국으로 인도해주는듯했다.
그녀의 집에가 한번도 본적없는 그녀의 동생들과 밥을 먹게되다니. 이 얼마나 기쁜일인가.
하지만.
이 기쁨도 오래가진 못할것같다.
이 영원히 누릴 것 같은 기쁨도.. 아마 오래가진 못할 것이다.
난.. 나쁜사람이니까..
“…”
얼떨결에 따라온 그녀에게선 좋은 샴푸냄새가 났어요.
제가 좋아하는 샴푸냄새요. 마치 제가 쓰는것과 똑 같은 냄새같았달까요.
네? 지금 어디냐구요? 선우네 집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이에요.
네? 긴장은 안되냐구요? 하하.. 당연히..엄청나게 부담스럽답니다..
정말 좋았지만. 저를 잘 알지못하는 선우가 이렇게 선뜻 식사권유를 할줄은 꿈에도 몰랐거든요.
그래도.. 괜찮은 기회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그녀와 마주하는 것. 어쩌면 하늘이 내려주신 뜻 일지도 모르니깐요.
“…”
“자. 다왔다! 어서가자! 여진아!”
“아. 네!”
선우가 도어락에 비밀번호를 입력하기 시작했고 이내 현관문이 열리기시작했다.
그러자 저 멀리서 우당탕탕 하는 소리가 들리며 앳된 목소리를 가진 여러명의 아이들이 우루루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우오아아!! 누나(언니) 다!!”
엄청난 속도로 뛰어오던 갓 초등학생이 되어보이던 아이들은 고등학생인 누나에게 우루루 안기기 시작했다.
“누나! 왜이렇게 늦었어! 심심했단말이야!”
“언니!언니! 이거봐라? 오늘은 이거 만들었다?!”
“누나 이거봐. 오늘도 만점맞았어 칭찬해줘.”
활발적이며 지능적이며 여러 가지 성격을 가진 동생들이 다분했다.
나는 애써 침착한채 천천히 말을 꺼냈다.
“하하.. 보기좋은 광경이네요.”
갑작스럽게 조용해지는 집안.
“누나? 누나 남자친구야?!”
“언니 남자친구?!”
“오오…?”
“…”
세명의 아이들은 각자 각각의 재밌는 반응을 보인다. 그중 가장재밌게 반응을 보여줬던건 다름아닌 선우였던것같다.
“뭐..뭔소리야! 남자친구 아니야! 그냥 학교 친구야! 친구!”
“애들아! 누나 남자친구생겼대! 엄마돌아오면 말하자!!”
“우와아아아!!”
다시 집안 저편으로 달려간 아이들 언뜻 보면 귀엽기도하고 언뜻 보면 행복해보이기도한다.
“하아.. 내가 저것들을 진짜.. 못말려죽겠다니깐.”
나는 자그마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하하.. 부럽네. 나는 외동이라서 그런지 아무래도 동경하게 돼.”
“어? 여진이는 외동이였어? 괜찮아! 외동은 외동만의 장점이 있잖아!”
자그마하게 외치는 불만의 소리.
“음..그런가? 하하..”
“됐구! 어서 들어와! 밥준비도 좀 도와주면 고맙고!”
나는 선우네의 시끌벅적한 집안으로 발을 내딛었다.
그녀의 동생들은 아까와는 다르게 가만히 앉아서 TV를 시청하고있었다.
역시 아이들은 아이들인가보다.
“여진아! 봉지에서 양파 좀 가져와줘! 오늘은 볶음밥을 만들생각이거든!”
“아. 응 알겠어.”
나는 양파를 가진채 그녀가 있는 부엌으로 향하였다.
이내 손에 들고있었던 양파를 도마위에 내려놓은뒤 식칼을 찾았다.
“선우야. 요리 도와줄게.”
“어? 정말? 고마워! 그럼 나는 양념좀 가져올게!”
나는 제일먼저 손을 씻고 칼을 조심스럽게 물로 닦아냈다.
그 후 양파의 껍질을 차근차근 깐후 이내 조심스럽게 양파의 윗단에 칼을 대었다.
“…”
익숙해서 금방끝날것같아.
얼른 끝내고 얼른 돌아가야겠어.
“…”
언제나 그렇듯 익숙한 칼질.
나는 그녀가 오기전 아이들 3명과 고등학생 2명 또 늦게 돌아오실것 같은 부모님의 숫자에 맞춰 양파를 빠르게 잘라나갔다.
시간의 여유가 남아 볶음용 냄비를 꺼낸뒤 재료들을 조심스럽게 투하했고
선우가 왔을 무렵엔 양념만 넣고 섞으면 되는 간단한 볶음밥의 기반을 다져놓았다.
“하하..조금 무리했나? 미안해 선우야.”
살짝 벙찐듯한 선우의 표정.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그녀는 마치 놀란듯한 얼굴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기시작했다.
“우와..! 뭐야뭐야?! 너 혹시 장래 꿈이 요리사야?! 어떻게 이렇게 빠르고 정확하게 요리를 만들어낼수있는거야?!”
“아..하하.. 그냥.. 하다보니 늘게됐어.”
“대단하다! 나머지는 내가할게! 정말 고마워!”
나는 이마에 살짝살짝 맺힌 땀방울을 휴지로 닦아낸후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
아마. 이런게 가족이란거겠지.
이런게. 행복이란거겠지.
“…”
요리완성이 다된 선우는 아이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여전히 활발하고 쾌할하며 즐거워보이는 아이들은 누나가 왔을 때 와 같이 즐거운듯한 목소리를 내며 식탁으로 발길을 향하고있었다.
“어서 앉아! 여진아! 밥먹자!”
“응! 그러자!”
정성스럽게 차려진 식탁.
즐겁게 식사를 하고있는 아이들과 선우.
“…”
내게 이런일이 올줄은.. 몰랐다.
아니. 상상한적이없다. 나에게도 이런 평범한 일상이 가능할줄이야..
이제야.. 이런 평범하며 행복한 가족들의 기분을 느껴볼날이 올줄이야..
정말.. 몰랐다. 아니.
상상하지않았었다.
나에게는 절대 오지않을거란걸 알고있었기 때문에.
“…”
갑작스럽게 나는 눈물을 주체할수없었다.
이곳이 어딘지 알고있었다해도. 이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수없었다.
이렇게 행복하니까.
이렇게나 행복하니까 눈물은 멈추지가 않았던 것이다.
당황스러운 눈빛을 한 선우는 나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기시작했다.
“여..여진아..? 왜 그래? 무슨일 있어??”
“…”
말을 할수없었다.
아니 하지못했다.
더욱 눈물이 나올것같았기 때문에.. 더욱 선우를 마주볼수없을것같아서..
나는 나를 달래는 선우의 말을 못들은척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여진아?”
나는 그녀를 뒤로한채 나지막하게 그녀에게 말을 전달했다.
“죄..죄송해요..선우씨.. 저 먼저 집으로 가볼게요.. 죄송합니다..”
“여진아..?? 여진아?!”
나는 재빠르게 문을 열고나와 곧바로 엘리베이터로 향하였고
이내 빠른걸음으로 나의 집으로 달려갔다.
집에 도착한뒤 여기저기 눈물로 묻어있는 옷을 빨래통에 넣고 마음을 달래기 위하여 샤워를 하러 들어갔다.
“…”
아마..당황했겠지..?
아니.. 분명 당황했겠지..
정말..정말 미안해요 선우씨..
“…”
오늘은 처음사귄친구에게 못된짓을 하고말았어요.
아마도.. 그녀는 화가났을거에요. 이렇게 이상하리만큼 무책임하게 나와버렸으니까요..
하지만. 잘된일이겠죠..?
네.. 잘된일일거에요. 분명..
분명…
반드시.. 잘된일이어야만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