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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책은 로맨스 소설인데요?
작가 : 잡히면술래
작품등록일 : 2018.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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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11-20     조회 : 448     추천 : 0     분량 : 6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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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0.

 

 

 내 유년기는 요람 속 아기와 같았다.

 

  남작가의 영애였지만 비슷한 작위의 귀족은 물론이거니와 고위 귀족, 황가조차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모든 신분이 마력으로 결정되는 이 세상에서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가장 강력한 마력 제어력의 드하스티를 고유문양으로 둔 나는 반쯤 황족에 비견되는 존재였다.

 

  원하는 것이든 하고 싶은 것이든 무엇이든 간에 손을 뻗기만 하면 품에 넣었다. 내게 세상은 설탕에 절인 장난감이었다. 달고 쉬웠다.

 

 ***

 

 '아가, 너는 황족이 될 거란다. 멋지고 강력한 황자님과 결혼해서 행복할 거야.'

 

  매일 밤 어머니는 나를 품에 안고 주문처럼 속삭였다. 어머니에겐 바람이었지만 내겐 존재하는 미래였다. 기다리기만 하면 실현될 일이었다. 적어도 마력 개화식까지는 그랬다.

 

 태어난 지 십 년 되는 생일이 그 사람의 개화식이고 이날 선명했던 고유문양이 자취를 감추고 타고난 마력이 모습을 드러낸다. 마력과 고유문양은 별개라지만 보통은 차이가 커야 두 단계일 뿐 둘의 관계는 비례하니, 누군가는 긴장감에 기절까지 한다는 마력개화식이 내겐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하는 치장의 이유가 되지 못하였다.

 

 "빨리 잠옷을 가져와. 잘 거야."

 

 수십 개나 되는 매듭 중 가장 윗것을 잡아당기며 의자에 몸을 끼워 맞췄다. 수를 헤아리기도 어려울 만큼 겹겹이 둘러싼 옷은 앉는 것조차 버거워 걸치듯 기대는 게 전부였다.

 

 "옷에 주름이..."

 

  깔아뭉개져 구겨지는 치맛자락에 옷 시중을 들던 하녀가 침음을 삼켰다. 내 얼굴에 진주 가루를 찍어 바르던 하녀와 머리를 매만지던 하녀들도 손을 멈추고 주뼛주뼛 주위를 맴돌았다. 거울을 들고 있던 어린 하녀 둘은 거울 뒤에 숨어 눈치 보기 바빴다.

 

 "아가씨. 하지만 주인마님이,"

 "너흰 내 하녀야. 어머니의 하녀가 아니라, 오늘이 내 개화식인걸 다행으로 여기렴."

 

  심기 불편한 내 말에 어린 하녀 한 명이 급히 문을 나섰다가 금세 귀환했다. 몇 초 만에 옷방에 다녀온 것은 아닐 텐데. 의문은 금방 풀렸다. 개화식 준비를 둘러본다던 어머니가 돌아왔다.

 

 "잠옷을 가져오라 했니?"

 "네. 그런데 그 단순한 일조차 못 하네요."

 

  땋아 올린 머리를 끄르며 불퉁하게 대꾸했다. 등받이에 머리가 닿자 몸이 좀 편해졌다. 어머니가 앉은 내 눈높이에 맞춰 몸을 숙였다.

 

 "아에리아. 개화식이 어떤 의민지 말했잖니. 오늘만 참으면 된단다고도."

 

  어머니는 평소처럼 나지막하게 타일렀다. 다만 떠받들며 살아온 내 인내심은 종이 한 장보다 더 얇았다. 오늘만 해도 세 번째 바꿔 건 목걸이를 어루만지면서 입을 열었다.

 

 "개화식은 저녁때서야 시작할 텐데, 그러기엔."

 

  시선을 돌려 어머니를 바라본 나는 말끝을 흐렸다. 삐져나온 것 하나 없이 말끔하게 틀어올린 은발, 부드럽고 묘연한 이목구비, 얇고 연한 입술까지 모두 친숙한 어머니의 모습이었건만 몹시도 생경했다. 어머니를 구성하는 중요한 무언가가 달랐다. 그

 느낌은 핏줄로 이어져 알 수 있는 초감각과 비슷했다. 앓는 소릴 내며 그녀를 불렀다.

 

 "...어머니?"

 "아가. 네 개화식은 완벽하게 끝나야 한단다. 아무도 그를 방해 하진 못해."

 

  그녀가 말하며 내 흐트러진 가슴 위 매듭을 손수 매었다. 한없이 다정한 손길로 조이는 매듭이 숨통을 졸라맸다. 나는 그제야 알 수 있었다. 가까이 본 그녀의 얼굴은 눈동자가 달랐다. 시린 색임에도 따듯함만을 담던 어머니의 눈동자가 푸른 광기로 빛났다.

 

 "목걸이는 처음에 고른 게 좋겠구나."

 

  그녀의 손이 가슴에서 빗장뼈로, 목 뒤로 이동해 목걸이를 벗겨 냈다. 흔한 마찰음조차 없이 목걸이가 사라졌다. 대신 두 마디 만한 파란 다이아몬드와 자잘한 보석이 달린 목걸이가 빈자리를 차지했다. 목걸이는 색조처럼 차갑고 달린 가짓수만큼 묵직했다. 그로부터 소스라니 섬뜩한 감각이 몸에 퍼졌다. 한기에 떠는 나를 본 그녀가 웃었다.

 

 "두려워마렴. 개화식이 끝나면 너는 태자전하와 약혼하게 될 거란다. 그분이 너를 황후로, 나를 황후의 어머니로 만들어 주실 거야. 무엇이 겁나겠니."

 

  차마 그녀의 눈을 보지 못하고 희고 부드러운 손만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로 몇 시간쯤 되는 대기시간을 그럭저럭 버텨내었다. 그녀가 손님을 맞이하러 이르게 방을 떠났어도 흠 하나 없는 자태를 유지하기 위해 몸을 꼿꼿이 세웠다. 아침의 모습이 그저 착각일 거란 생각을 하면서도 목걸이부터 퍼지는 감각이 방만하게 풀어지는 것을 막았다. 덕분에 그녀가 원한대로 구김 하나 없는 모습으로 개화식을 시작했다.

 

  개화식장은 다섯 겹으로 층층이 쌓아올린 샹들리에에 부딪혀 산란하는 빛과 사방에

  둔 발광석장식 덕에 해가 지는 시간임에도 대낮보다 환했고 그 못지않게 음악과 말소리로 소란스러웠다. 여타의 다른 개화식이 아늑하고 경건함이 느껴지는 것과는 정반대였다.

 

  태어난 곳에서 치르는 개화식의 특성상 내 쪽이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다들 어느 정도 개화식을 염두에 둔다지만 어머니처럼 연회장 바로 옆방을 산실로 정하는 경우는 없었다. 덕분에 벽을 헐어 연회장과 이은 개화식장은 많은 수의 손님을 부담 없이 맞이하였다.

 

 "기대되네요. 멜버른 영애는 얼마나 많은 마력을 개화할까요."

 "드하스티니 연회장은 가득 채우겠죠."

 "개화 때 빛으로 눈이 멀어 버릴지도 모르겠네요."

 

  떠드는 소리를 흘려들으며 연회장 옆 산실로 걸음을 옮겼다. 내가 걸어갈 때마다 음악은 잦아들고 사람들은 입을 다물었다. 수많은 귀족이 침묵하며 오직 내게 이목을 쏟는 건 오싹한 느낌을 선사했다. 꺼림칙한 기분이 그 아래로 모습을 감췄다. 바닥에는 초대 황제의 고유문양과 같은 모양이라는 마법진이 산실 바닥 가득 그려져 있었다. 그 위가 내 자리였다.

 

 "앙트티엔의 축복을."

 "허커스의 가호가 함께하길."

 "드하스티의 마력을!"

 

  나를 중심으로 가외로 둘러선 집례자들이 내게 인사말을 건넸다. 마찬가지로 호응하며 아까일로 딱딱하게 굳은 얼굴을 피려 노력했다. 왼편에선 그라시에 영애가 그 모습을 보곤 부드럽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영애. 너무 서운해 마세요. 대신 이렇게나 많은 분이 참여 하신 걸요."

 

  그녀의 말을 의아하게 듣다가 산실과 연회장 경계에 붙어선 부모님을 바라보았다. 그라시에영애는 아마 집례자건을 말하는 듯했다. 집례자. 그러니까 개화식 마법진에 마력을 불어넣는 건 부모, 형제 등 가까운 친인척이 하는 일이다. 가족 하나 참여하지 않는 일은 거의 없었다.

 

  몇 안 되는 가까운 촌수의 친가와 외가 모두 참여를 원했지만 어머니가 거부하였다. 정작 본인은 비마력자라 참여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 아버지는 어머니 곁을 지키길 원했다. 처음엔 못내 섭섭해 했지만, 지금은. 글쎄. 서늘한 눈을 떠올렸다가 고개를 저었다.

 

 "말은 고맙지만 제게 위로는 필요 없답니다."

 

  드하스티에게 동정은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그것도 겨우 백작가의 커미네마에게 들을 소린 아니었다. 싸늘한 미소에 그라시에 영애는 입을 다물었고 마찬가지로 말을 건네려던 몇이 제자리를 지키며 조용히 마력을 불어넣었다.

 

  고요하기까지 한 주위에 현을 튕기는 듯한 마력 공명음이 유일한 소리로 존재했다. 각자의 마력이 뭉쳐 가시화되며 색색으로 얽혀 몽환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산실을 넘어 연회장 경계까지 색이 침범했다. 개화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단순히 마력의 밀도를 높이고 볼거리를 제공하는 허례허식이었지만 사람들의 기대를 고조시키기에 이만한 행위도 없었다.

 

  허공에 퍼지던 마력이 빨려 들어가며 마력을 불어넣은 사람 수만큼의 덩어리를 만들어냈다. 커졌다가 작아지며 서로 마력을 뺏고 빼앗기길 한참 개화시간이 가까워지자 겨루길 멈추고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돌았다. 열 개의 빛 뭉치는 작은 순서대로 하나씩 터지며 다시 공기 중의 마력밀도를 높였다. 마침내 남은 단 하나의 덩어리가 터져나가며 화려한 문양을 그렸다.

 

 개화의 순간이었다.

 

  몸 속에서 무언가 퍼지는 느낌이 나며 주위 마력이 울렁거렸다. 입은 새하얀 예복이 은빛으로 미약하게 물들었다가 잦아들었다. 강박적일 정도로 흰색이 아니었다면 알아챌 수조차 없을 만큼 희미한 빛이었다. 끝인가? 공들인 것에 비해 허무한 결말이었다. 다음 식순은 집례자부터 다가와 축복을 건내야 하는데, 그들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 볼 뿐 움직일 생각을 안했다. 가지각색의 농밀한 마력과 고요만이 존재했다.

 

  슬쩍 손등을 바라보았지만 손끝까지 꽁꽁 둘러싼 예복 덕에 문양이 사라졌는지 알

 수 없었다. 개화가 끝났다면 마력을 쓸 때에만 고유문양이 드러나므로 얼굴에 있는 문양이 사라져 바로 알 수 있을텐데.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제자리에 얼어 붙어 있었다. 대신 집례자를 제외한다면 내게 가장 먼저 말을 걸거라 기대한 사람이 예상치 못한 반응으로 침묵을 깨트렸다.

 

 "안돼."

 

  내 예복만큼이나 하얗게 질린 어머니가 단말마의 외침음을 토해냈다. 이어 무릎을 꿇듯 무너져 내졌다. 그녀는 아침과는 다른 의미로 생경했다. 어머니를 부축하는 아버지곁으로 걸음을 옮겼다. 걸음마다 이목이 쏠리며 침묵을 깨트리는 조소가 뒤따랐다. 개화식 전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인데도 쾌감 대신 소름이 돋았다. 불길함이 뒤늦게 따라왔다.

 

 "저게 드하스티라고?"

 

  가식하나 없이 날 것 그대로 말하는 자의 말에 그 옆 모호한 표정의 누군가가 말을 골랐다.

 

 "마력이 없는 것은 아니니까요."

 "이 마력량은 귀족이라고 하기조차 민망할 지경이군요."

 "제가 본 것 중 가장 초라한 개화에요."

 

 나를 두고 떠드는 무리와 깔보는 듯한 시선, 모욕적인 어조. 동정. 연민. 우월감. 무엇하나 받아들이기 힘든 것들 뿐이었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제자리에 우둑하니 섰다. 시간이 흘렀다. 사람들은 눈길조차 주지 않고 떠났으며 나는 무슨 일이 있던 것인지도 모르게 인생의 한번 뿐인 개화식을 끝냈다.

 

 "아에리아."

 

  홀에 유일하게 남은 타자인 아버지가 나를 불렀다. 차갑고 시렸다. 그제야 내 세상이 바뀌리라는 것을 예감했다. 사라진 문양만큼이나 내 미래는 흐려졌다. 황태자와의 약혼은 흐지부지하게 사라졌고 가문은 그대로 남작위에 머물렀다.

 

 '아에리아. 마법을, 마법을 써보렴. 무언가 잘못된 게 분명하단다. 분명 너는 드하스티잖니. 그런데 불르조차 미치지 못한 마력량이라니. '

 

  어머니는 그 사실을 믿을 수 없다는 나를 재촉했다. 내가 울먹여도 애원해도 멈추지 않았다.

 

 '울지 말고 마법을 써! 아냐 아냐. 너는 아에리아가 아니야. 아에리아 내 아가. 어디로 간 거니?'

 '그것 아니? 생존의 위험을 느끼면 마력은 강력한 반응을 보여준단다. '

 

  날 향한 폭거가 멈춘 건 황제의 명에 의한 부모님의 이혼이었다. 황제는 나까지 합해야 겨우 3대째 마력을 갖게 된 부계에서 내 빈약한 마력의 이유를 찾았다.

 

  어머니는 고유문양도 마력도 강력한 아이의 탄생을 위해 대공의 다섯 번째 재혼상대로 정해졌다. 그때부턴 아버지도 내게 갖고 있던 희망을 버리고 빠르게 대안을 찾았다. 자신이 물려줄 것도 지키지 못할 나는 그의 눈길을 끌 수 없었다.

 

  숨소리 하나에도 관심이 쏟아졌던 과거와 다르게 그 누구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어머니는 대공 저로 떠났고 아버지는 나를 보지도 않았다. 끊이지 않고 이어지던 손님들은 자취를 감췄다. 보호하듯 늘 둘러쌌던 하인과 하녀들 또한 각자의 일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거대한 저택에서 나는 존재하지 않는 아이가 되었다.

 

  요람 속에 살던 나는 적응하지 못했다. 잊히지 않으려 발악했다. 나를 봐줘요. 사랑해줘요. 애정을 주세요. 밀어내지말아요. 외치고 갈구하고 매달렸다. 다만 늘 받는 것에만 익숙했던 이가 관심을 받기 위한 행동을 한다는 건, 그리고 그 방법이 긍정적이라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화를 내거나 사고를 쳐도 사람들은 내게 관심을 보였다. 그게 곁에 있는 사람들을 더 빨리 떠나보내는 방법이었지만 나는 그 당연한 사실을 알기 위해서 많은 일을 겪어야 했다. 처음엔 어색하게 웃어주며 돌려보내더니 아예 무시하거나, 비웃거나 화내다가 결국엔 말조차 전할 수 없었다. 나는 그제야 내 처지를 이해했다.

 

 내 요람은 부서졌다.

 

  나를 사랑한다고, 좋아한다고, 귀히 여긴 건 모두 거짓이었다. 가짜로 범벅된 요람의 조각을 그러 모으며 울고 있을 때 은색의 섬광이 몰아쳤다.

 

  그곳엔 새로운 세상이 있었다. 거기선 외롭지 않았다. 따듯하게 감싸주는 가족이 있었고 즐거움을 함께할 친구들이 있었다. 전부 현실에는 없는 것들이었다. 다시 만나지도 못할 것들이었다.

 

 은색의 섬광, 각성한 고유마법이 가져다준 것은 나의 전생이었다.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잘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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