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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te Black Magician
작가 : 박티티
작품등록일 : 2018.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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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악령(3)
작성일 : 18-11-27     조회 : 263     추천 : 0     분량 : 5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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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없이 축 늘어져있는 동생의 몸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반사적으로 유리를 안아올리며 느낀 그 싸늘함에 이든의 마음 속에 있던 불안감이 더더욱 부풀어오르며 누이의 동공이 흔들린다. 이든은 유리를 흔들며 수없이 그 이름을 반복해 불렀다.

 ​

 "유리, 괜찮아? 나야, 이든이야! 유리!"

 ​

 평소 보기좋게 혈색이 돌던 예전과 달리 핏기 하나 없는 창백한 얼굴을 보니 심상치가 않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하지 않는 유리의 모습에 점점 더 누이의 마음이 요동친다. 절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이 다가온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엄습해오지만 지금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유리를 흔들며 소리치는 것 뿐이다. 그러나 유리에게서 아무런 반응이 없자 이든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

 ​

 "안 돼, 제발. 유리! 유리...!"

 ​

 코 끝이 시큰해지고 눈가가 땡기는 것이 느껴지지만 이든은 어떻게든 울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만약 이대로 울어버린다면 정말 유리를 잃을 것만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 그녀의 눈물샘을 억지로 꾹꾹 눌러막는다. 그러나 참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다. 아무리 어깨를 흔들고 뺨을 두드려봐도 꼼짝도 하지 않는 유리. 설마. 아니야, 그럴리가 없어. 하지만 꿈쩍도 않는 유리의 모습. 이든이 절망의 낭떠러지로 떨어질뻔한 순간, 마치 구원처럼 느껴지는 목소리가 그녀를 잡아당긴다.

 ​

 "으윽..."

 ​

 이든이 그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커다랗게 뜨고 유리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여전히 감겨있는 두 눈. 하지만 긴 속눈썹이 조금씩 떨리는가 싶더니 곧 서서히 위로 움직이며 감춰두었던 검은 눈동자를 내보인다. 이든은 모세의 기적이라도 본 것 처럼 홉뜬 눈으로 유리를 바라보다가, 곧 다시 한 번 자신을 부르는 유리의 목소리에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

 "누나...?"

 "으, 응! 나야! 유리, 괜찮아? 괜찮은거지?"

 ​

 허겁지겁 대답하는 이든의 목소리는 아직 어리둥절해 보였지만 그보다는 반가움이 훨씬 더 크게 느껴진다. 잠시나마 죽은 줄 알았던 동생의 귀환을 온전히 표현할만한 말이 과연 존재하기는 할까. 이든은 고개를 끄덕여 대신하는 유리의 대답을 듣자 왈칵 울음을 터뜨리며 그를 끌어안았다.

 ​

 "다행이야... 나는, 나는 네가 어떻게 된 줄 알고...!"

 ​

 그동안 애간장을 태워왔던 걱정이 한번에 사르르 녹아내리자 이든은 완전히 무방비 상태가 되어버렸다. 댐이 무너지고 물이 쏟아져 나오듯이 엉엉 우는 모습에서 그녀가 얼마나 가슴앓이를 했는지 엿보인다. 이든은 훌쩍거리며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고 고개를 들었다.

 ​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유리? 여긴 어디야?"

 ​

 하지만 유리는 아직 의식이 몽롱한지 멍하니 이든을 쳐다볼 뿐 말이 없다. 이든은 그런 유리의 모습에 다시 한 번 걱정스럽게 동생을 부른다.

 ​

 "유리?"

 ​

 대답이 없이 멀거니 이든을 바라보던 유리가 서서히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 그런데 왜일까. 유리가 웃는 것을 보는데도 이든의 마음은 이상하게도 편치가 않았다. 이유없이 느껴지는 위화감에 이든이 아무 말 못하고 가만히 동생을 쳐다본다. 검은 머리, 검은 눈, 길쭉한 팔다리와 마른 몸. 머리부터 발끝까지 어디하나 달라진 것이 없는데도 유리는 유리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뭐가 문제일까. 이든의 머릿속이 서서히 다시 엉켜가던 그 순간, 갑자기 무언가 눈 앞으로 번쩍하더니 뒤통수와 등에 아찔한 충격이 가해지며 턱하고 숨이 막혀온다. 그리고 배 위에 묵직하게 실려오는 괴로운 압박감. 당황스러움과 고통이 함께 뒤범벅되어 그녀가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만든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혼란스러운 가운데 시야에 불쑥 들어오는 것은 다름아닌 유리의 얼굴이다. 바로 자신 위에 올라타 목을 조르는 유리의 얼굴.

 ​

 "윽... 유, 유리...! 왜...!"

 "몸... 몸이 필요해..."

 ​

 유리가 무어라 말했지만 무슨 소린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러나 지금 가장 급한 것은 꽉막힌 숨통이었다. 이든은 발버둥을 치면서 유리의 팔을 붙잡았지만 스스로 떼어내기에는 너무나 역부족이다. 유리가 이렇게 힘이 셌던가? 또래에 비해서 키가 큰 편이기는 해도 아직 열다섯도 안 된 소년이건만 지금 이든의 목을 조르는 손아귀힘은 다 큰 어른의 그것을 방불케한다.얼마 지나지 않아 몸 안에 남아있던 산소가 서서히 바닥을 보이자 이든의 몸짓도 점점 둔해졌다. 머리가 아득해지며 눈앞이 흐려지고 코 앞에 있는 유리의 얼굴도 불투명해진다. 이렇게 죽는건가? 초점없는 이든의 눈동자가 안타깝게 동생을 향해있다. 이해할 수 없다. 대체 왜, 어째서? 정신을 잃어가는 그 순간까지도 머릿속을 가득 채운 의문이 이든을 더욱 괴롭히고 있었다.

 ​

 "새로운 몸...!"

 ​

 잔뜩 들뜬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유리의 입가에는 광기어린 미소가 띄워져 있다. 이든이 힘을 잃기를 기다리며 입맛을 다시던 그가 갑자기 입을 쩍 벌리더니 그 안에서 뭔가 시커먼 덩어리가 삐죽삐죽 흘러나온다. 이든은 평생 듣도보도 못한 끔찍한 광경에 소름이 돋았다. 유리에게서 흘러나온 정체모를 그것이 쇄골 근처에 끈적하니 달라붙었지만, 당장 몸부림은 커녕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힘없는 손가락을 덜덜 떠는 것 말고는 없었다. 불길한 덩어리가 슬슬 목을 타고 올라오며 얼굴에 가까워지는 순간, 이든은 이제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데 그 때.

 ​

 "캬아악!"

 ​

 괴상한 비명소리와 함께 갑작스레 공기가 몸 안으로 비집고 들어온다. 꽉 막혀있던 기도가 너무 갑작스럽게 열린 탓에 굵은 기침이 제멋대로 튀어나와 그녀의 시야와 함께 제3자의 존재마저 가린다. 머릿속 안개를 걷어내기 위한 충분한 산소를 받아들인 뒤에서야 겨우 눈을 뜨고 앞을 바라보니, 어느새 저 멀리 튕겨나간 유리를 반쯤 가린 커다란 뒷모습이 보인다. 전신을 감쌀만큼 커다란 검은 망토. 그는 다름아닌 쟝이었다.

 ​

 "분명 방에서 나오지 말라고 말했을텐데... 죽고 싶어서 작정한건가?"

 ​

 쟝은 차가운 시선으로 이든을 힐끗 쳐다보고는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유리는 연신 괴로운 신음소리를 내더니 고개를 쳐들어 쟝을 노려본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이든이 알고 있었던 유리의 얼굴이 아니었다. 욕망에 가득차 무언가를 갈구하는 시커먼 눈동자, 당장이라도 거친 욕설을 뱉어낼듯한 비뚤어진 입꼬리. 평소의 온화하고 상냥한 미소는 온데간데 없이 거칠게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는 모습에서 인간적인 면모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이든은 지금 직접 제 눈으로 보면서도 현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저건, 저런건 유리가 아니다!

 ​

 "저건 악령이다. 네가 아는 그 사람이 아니야."

 ​

 자신의 속내를 읽어내기라도 한 듯한 쟝의 대답에 이든이 눈을 커다랗게 뜨고 공허하니 물었다.

 ​

 "악령이요...?"

 "원한과 욕망으로만 가득찬 사념이지. 아까 그 시커먼 덩어리가 녀석의 본래 모습이다, 네 동생을 삼켰지만 그가 수명을 다하자 새로운 숙주로 널 노리는 거다."

 "뭐... 뭐라구요?"

 ​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이든의 목소리가 공허해졌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악령? 사념? 난생 처음 듣는 황당한 소리에 이든은 믿어지지 않는 듯 멍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다시 유리를 쳐다보자 쟝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이 느껴진다. 까맣게 물든 피부, 도마뱀처럼 납작 엎드린 자세, 그리고 살짝 벌어진 입 안에서 넘실대는 검은 무언가. 유리는 그런 기괴한 모습으로 뭔가에 홀린듯이 연신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

 "몸을 줘... 몸..."

 ​

 육체를 갈구하는 끔찍하고도 애타는 목소리를 듣던 쟝은 망토 아래에 가려져있던 팔을 우아하게 꺼내들었다. 그러자 공중에서 금색의 띠같은 것이 여러개 나타나더니 동시에 사방으로 뻗어나가며 빠른 속도로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한다. 커다란 원을 테두리 삼아 그 안에 새겨지는 다양한 도형과 본 적이 없는 정체모를 문자. 난생 처음보는 광경에 놀란 이든은 미동도 없이 그것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아름답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한 이건 대체 무엇일까? 정확한 답은 알 수 없지만 이든은 그것이 아까 지하실 바닥에 있던 문양과 비슷한 것임은 알 수 있었다. 순식간에 완성된 원은 쟝이 가볍게 손짓하자 곧장 유리를 항해 날아갔고, 녀석은 거기에 닿자마자 커다란 비명을 질러댄다.

 ​

 "크아아아아악!"

 ​

 유리는 괴성을 지르며 꿈틀거리더니 결국 의식을 잃고는 축 늘어진다. 이든은 멍하니 그 광경을 보고 있다가 유리의 고함 소리에 흠칫거리며 겨우 정신을 차렸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이해할 수가 없지만, 확실한 것은 아까 목이 졸려 남은 새빨간 얼얼함이었!다. 쟝은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든을 보며 말했다.

 ​

 "당장 여기서 떠나라. 네가 죽든말든 상관은 없지만 저것에게 육체를 넘겨줄 순 없다."

 ​

 냉랭하기 그지없는 말투가 눈물을 쏙 뺴놓을법도 하지만 이든의 부릅뜬 눈은 아까와는 달리 건조하게 메말라있었다. 아직 통증이 채 가시지 않은 목을 만지작거리고 있던 그녀가 쉰 목소리로 묻는다.

 ​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유리한테 무슨 일이 생긴거에요...?"

 ​

 쟝이 대답하기도 전에 이든은 유령같은 몸짓으로 자리에서 비틀거리며 일어나더니 유리쪽으로 다가가려 한다. 그러나 그 위태로운 움직임은 얼마 못가서 쟝의 긴 팔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그것은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던 이든의 이성을 끊어뜨리는 칼이 되었다. 심상치 않게 번뜩이는 검은 동공. 그녀는 결국 폭발하는 화산처럼 수많은 질문을 쏟아내었다.

 ​

 "대체 왜 유리가 저렇게 된 거에요? 당신은 누구죠? 왜 유리를 모른다고 했어요? 여긴 어디에요? 이게 다 뭐에요? 이게 전부 다 뭐냐구요?"

 ​

 이든의 질문은 정말 궁금함을 해결하고자 던지는 질문이 아니었다. 거듭된 충격에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진 나머지 여러가지 생각과 격한 감정들이 마구잡이로 튀어나오는 것이었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몰라 모호하게 흐려진 작은 얼굴이 서글프게 일그러져 있다. 쟝은 가만히 그 모습을 보다가 작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

 "우선 방으로 돌아가. 여긴 위험하다."

 "난 못가요. 유리를 두고 혼자서는 갈 수 없어요. 왜 저한테 거짓말한거죠? 유리한테 무슨 짓을 한거에요? 당신은 왜...!"

 ​

 맘 같아서는 그의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지만 몸이 따라주지를 못했다. 이든은 쟝에게 매달리듯이 달려들다가 갑자기 말을 잃더니 그대로 눈을 뒤집고 쓰러지고 말았다. 와르르 무너지는 이든을 얼떨결에 받아든 쟝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내려다보다가 결국 또 한번의 한숨과 함께 양팔로 그녀를 들어안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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