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진위, 장초인 두 사형제는 지금 영춘객잔의 지붕 위에서 얘기를 하고 있었으며, 지붕 아래에는 사매 종염방이 쪽방에서 자고 있었다.
시간이 축시(1시-3시)인지라 조그만 소리도 멀리까지 갈 수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장초인의 ‘그게 미친 짓이 아니고 뭐란 말이오.’라는 말은 목소리가 다소 높아져서 길거리에 사람이 걸어가고 있었다면 들을 수도 있는 목소리였다.
‘그게 미친 짓이 아니고 뭐란 말이오.’라는 장초인의 말에 양진위의 눈썹이 역팔(八)자로 휘어졌다.
“너 역시 사숙들이 돌봐준 은덕에 무공을 대성한 것을 잊었느냐?”
“내가 언제 그분들에게 돌봐달라고 부탁했소?”
장초인의 도전적인 눈초리를 접하고 양진위의 양미간에 주름이 깊게 패이며 눈에서 화광(火光)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더니 지금까지 점잖던 사형으로서의 말투를 버리고 상소리가 입에서 흘러나왔다.
“이런 개새끼. 눈 안 깔어? 이런 개 잡종 새끼. 사문의 은덕을 모르는 개새끼야. 죽도록 맞아볼래?”
장초인이 모욕을 느꼈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마치 지금까지 마신 술이 불꽃이 되어 눈으로 쏟아져 나오는듯한 사형 양진위의 위압감에 차마 계속 대거리를 못하고 눈을 돌렸다.
양진위는 장초인이 세상에서 무서워하는 단 한 사람이었다. 눈은 돌렸지만 입으로는 계속 뇌까리는 장초인이었다.
“사형이 뭐 라든 미친 짓은 미친 짓인 거요.”
“그래 미친 짓이라고 치자 그럼 네가 어쩌겠다는 것이냐.”
“내가 숭인문을 바꿀 것이오.”
“400년 역사의 숭인문을 어떻게 바꾼다는 것이냐.”
“산골짜기에 숨어서 후학들이나 가르치는 서당 같은 문파가 아니라 세상을 호령하는 문파로 바꿀 것이오.”
“누구 맘대로.”
“내 맘대로요. 또한 사숙들 역시 그렇게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고 알고 있소.”
“너에게 바꿀 힘이 있다고 생각한단 말이지.”
“그렇소. 왜 바꿀 힘이 없소. 사형과 내가 강호를 휘젓고 다니면 감히 누가 막는단 말이오.”
“그래, 너와 내가 강호를 휘젓고 다니고, 주루와 도박장과 농토와 상가와 여타 문파들을 접수하고 문도들을 늘려 수백에 이르게 하고 숭인문의 세력을 만방에 떨친다고 치자. 우리 다음 대에서 그 세력이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설사 유지할 수 없다면 어떻다는 것이오. 우리 다음 대의 일은 우리 다음 대가 책임져야 하는 것이오. 우리가 세력을 키워놓았다고 우리 다음 대가 우리를 욕할 일이 뭐가 있소.”
“숭인문이 강호에 큰 세력을 가진 문파로 등장한다는 것은 곧 강한 적들이 사방에 생긴다는 말과 같다. 만약 우리 다음 대에서 최소한 중성을 성취한 자가 여럿이 나오지 않으면, 숭인문을 기다리는 것은 피비린내 나는 처참한 종말일 것이다. 늙은 호랑이를 갈기갈기 뜯어먹는 늑대들에게 둘러싸여 처참한 종말을 맞을 것이다. 그것이 네가 바라는 바냐?”
“우리 다음 대에도 대성을 이룬 자가 계속 나오도록 하면 되는 것이오.”
“숭인문의 무공을 죽어라고 연공한다고 해서 그 결과 대성을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너도 잘 알고 있지 않느냐. 전장에서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겨도 타고난 오성으로 깨달음이 닿지 않으면 달성할 수 없는 것이다.”
“오성이 뛰어난 자를 문도로 받아들여 사지(死地)로 보내서 훈련시키면 되오.”
“그래? 그렇게까지 해서 거대세력 문파로 성장해서 얻는 것이 뭐란 말이냐.”
“명예, 미인, 돈, 권력, 그런 것 아니겠소.”
“그런 것을 원한다면 당장 철중장으로 가라! 거기서 수장이 되어 세상을 휘젓도록 해라. 여기 숭인문에서 하지 말고. 너 따위 숭인문에서 없어져도 상관없다.”
“내가 숭인문에서 하겠다면 어쩌겠다는 거요, 그리고 사형은 명예, 미인, 돈, 권력 그런 게 싫단 말이오?”
“…….”
양진위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 말을 이었다.
“나도 명예, 절세가인, 돈, 권력 따위가 싫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굳이 숭인문이 거대세력을 가진 문파로 강호에 모습을 드러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형제 열세 명과 사숙들을 모시고 오순도순 사는 것으로 만족한다.”
“평생 사형제 또 나중에는 사질들 뒤치다꺼리나 하면서 오순도순 사는 것을 말하는 것이오? 나는 사형과 달리 남자로서 포부가 큰사람이오. 소심한 사형이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할 권리가 어디 있소.”
“그런 권리가 있다. 난 너의 사형이니까. 이유 없이 난 그런 권리가 있지. 아가리 닥치고 특별히 할 말 없으면 그만 사문으로 돌아가도록 해라.”
장초인이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말했다.
“특별히 할 말이 있긴 있지. 사형이 3년 동안 염방이 뒤치다꺼리하고 있는 동안 임사저가 혼인 날짜가 잡혔소. 상대는 이씨세가의 삼남 이세척이고. 내가 3개월 전에 서한을 보내 경고를 했는데, 사형이 멍청하게 염방이 뒤치다꺼리나 하다가 일이 이리된 것이니 참이나 잘났소. 차라리 염방이 따라다니다가 잘 키워서 염방이와 혼인이나 하시오. 잘난 사형.”
장초인이 비웃음이 가득한 말을 남기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는데 양진위는 장초인이 사라진 것조차 인식하지 못했다.
‘연연이 혼인을 한다고?’
양진위는 아직까지 ‘임연연이 혼인을 한다.’라는 말의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이것이 칠일 전의 일이었다. 안 그래도 종염방의 지생고를 끝낼 때가 되었다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종염방의 지생고가 이 시점에서 끝난 것은 솔직히 임연연의 혼인 소식이 이유이기도 했다.
양진위는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밤하늘에 총총히 떠 있는 별들을 임연연이 양진위 자신이 아닌 이세척이라는 놈과 보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술이 자신도 모르게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목구멍을 화끈하게 태우고 넘어가는 술을 마시며 양진위는 깊은 상념에 빠졌다.
다음날 아침이 되어 양진위는 종염방을 데리고 다시 길을 떠났다. 양진위는 일부러 종염방이 따라오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걸었는데, 종염방은 지생고를 겪는 동안 단련이 잘 되었는지 어렵지 않게 양진위를 따라왔다.
양진위는 기특한 생각을 하면서도 더욱 속도를 내었다. 그러자 종염방은 결국 걸음걸이로는 따라오지 못하고 사형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반 시진(1시간)이나 달리며 땀을 뻘뻘 흘리다가 종염방이 숨을 헐떡거리며 말했다.
“사형, 사형은 걷고 있는데 왜 저는 달리고 있죠?”
“그야 네 다리가 나보다 짧으니 그런 거지.”
“아, 그랬군요. 사형.”
양진위는 종염방의 말이 웃기면서도 귀여워서 발걸음을 늦추었다. 종염방은 걸어가도 사형을 따라갈 수 있자, 다시금 조잘대면서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사형, 사형들과 사저하고 사제들하고 다들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해요. 소성을 달성한 사람 누구 없나요?”
“구대헌이 올해 소성을 성취했다고 들었다.”
“헤~ 구사형이 소성을 성취했다구요? 아 얼마나 좋을까. 부러워라. 사형 저도 소성을 성취할 수 있을까요?”
“어림없다…….”
종염방의 얼굴이 실망으로 가득해지는데 양진위의 말이 ‘어림없다’에서 잠시 멈추었다가 이어졌다.
“…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사실 넌 자질이 있다. 운이 좋으면 소성을 넘어서 중성, 대성까지 갈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정말, 정말요? 제가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어떻게…….”
종염방의 얼굴이 확 펴지며 좋아하며 묻는데 양진위가 툭 내뱉었다.
“지생고보다 열 배 정도 더 심한 고생을 하면 잘하면 되겠지.”
양진위의 말에 종염방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렇게 하다간 소성, 중성을 이루기 전에 살아남지 못하겠어요.”
양진위는 쓴웃음을 지었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살아남지 못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목숨을 걸면서까지 무공을 성취해야 하는 것일까? 오성이 뛰어난 문도를 받아들여 사지(死地)로 보낸다고 했던 사제 장초인의 말이 생각나서 양진위는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양진위도 숭인문이 세력문파가 되는 것이 싫을 리 없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문도들을 강압적으로 죽음의 문턱을 넘도록 해야 한다. 그게 옳은 일일까?
양진위는 그 길은 문도들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죽음의 문턱을 넘는 경험을 한다고 해도 숭인문의 무공을 성취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문파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문파는 문도들을 위한 것이다. 그런데 문파를 위해 문도를 죽음의 문턱으로 내모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사실 ‘지생고’라는 것은 숭인문의 문도들에게 숭인문의 무공을 대성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통관 절차였다.
‘지생고’를 통해 죽도록 고생을 하고 밑바닥부터 싸움을 경험한 뒤 숭인문에서 문도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깨달음이 있어야 알아들을 수 있는 심법과 권법, 장법, 검법 등의 기본과 이론뿐이었다.
그것도 숭인문 고유의 권법, 장법, 검법 등의 무공은 없고 일반론일 뿐이었다. 즉 숭인문에는 숭인이십사검과 같은 정해진 초식으로 이루어진 검법이 아예 없었던 것이다.
여기서 숭인문도들은 당황하기 시작한다. 익혀야 할 숭인검법도 숭인장법도 없다니. 그럼 어떻게 무엇을 익혀서 고수가 된단 말인가.
숭인문에서 고수가 되는 방법은 ‘지생고’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지생고는 앞으로 숭인문의 문도들이 무공을 연마하기 위한 방법의 맛보기라고 할 수 있었다.
숭인문에서는 검법, 장법, 도법 등의 무공의 일반론을 가르칠 뿐이었다. 고수가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세상에서 적을 맞닥뜨리며 깨우침을 얻는 방법밖에 없었다.
양진위의 경우 8살에 숭인문에 입문했다. 그리고 12살까지 산을 뛰어다니며 체력훈련을 했다.
그리고 13살에 지생고를 시작했다. 15세에 복건성에서 부잣집 아들을 대신하여 왜구를 토벌하는 군인이 되었고 16세까지 2년 동안 군인생활을 했다.
지생고를 시작하기 전 머릿속에 잔뜩 외워놓았던 무공들을 실전에서 터득했다. 쾌검을 쓰는 법. 중검(重劍)을 쓰는 법. 벽공장을 쓰는 법. 상대의 힘을 빌려 쓰는 법. 전자결, 착자결, 파자결의 방법 등을 모두 실전에서 터득했다.
지생고가 끝났을 때 양진위는 이미 소성을 달성한 상태였다. 숭인문 사상 거의 최단 시간에 소성을 달성한 것이라 사숙들을 모두 놀래켰다. 그리고 20세가 되었을 때 중성을 달성했고 바로 2년 뒤에 대성을 달성했다.
장초인은 양진위가 무공을 거의 전수하다시피 했다. 물론 둘이 같은 공간에서 같이 시간을 보내는 시간은 극히 짧았지만 양진위가 장초인과 함께 있을 때마다 양진위는 장초인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왔다.
장초인은 20세에 소성을 달성한 뒤 23세에 중성을 달성하고 25세, 즉 올해 봄에 대성을 달성했다.
숭인문의 문도 중 어떤 사람은 소성을 달성하고 평생 동안 중성을 달성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또한 어떤 사람은 중성까지는 달성했으나 대성을 달성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양진위와 장초인이 중성을 20대에 달성한 것은 그렇다 쳐도 중성에 도달하자마자 대성까지 곧바로 내달린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역대 숭인문의 인재들 중 대성을 이룬 사람들이 대성을 달성한 시기는 대부분 40세가 넘어서 중년이 된 이후였다.
세파를 겪을 대로 겪고 수없이 많은 비무를 경험하고 절세고수를 만나서 죽을 위기를 겪는 비무를 경험한 후에야 대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양진위는 남들이 30년을 동안 겪는 비무를 아주 짧은 시간에 수십 번 죽을 고비를 넘기며 경험했다. 그리고 장초인에게는 바로 곁에 양진위라는 고수가 있었기 때문에 중성에서 대성으로 가는 수순을 쉽게 달성한 것이다.
양진위가 종염방의 지생고를 감독하고 있는 동안 장초인은 양진위를 수도 없이 찾아와 지도를 청했다.
장초인이 중성을 달성한 23세 때부터 대성을 달성한 25세까지는 비록 2년밖에 안 되지만, 그 2년 동안 장초인은 양진위와 비무를 하며 수십 번을 죽을 뻔했다.
양진위는 사제를 죽인 죄로 파문을 당할 각오를 하고 있다는 것을 장초인에게 각성시키며 비무를 했고, 몇 번은 심장 근처에 검을 꽂아 넣어 실제로 장초인이 죽을 뻔했다. 그 결과 2년 만에 장초인은 대성을 성취했다. 그 역시 장초인의 오성이 뛰어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양진위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염방아.”
“네, 사형.”
“지생고를 하는 동안 사문에서 몰래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은 인구나 수오에게는 말해서는 안 된다.”
소인구와 장수오는 종염방 아래 사제로 아직 지생고를 시작하지 않았다.
장수오는 12세니 체력 훈련이 충분하다고 생각되면 지생고를 시작할 것이고 소인구는 종염방의 사제이지만 나이는 종염방과 같은 15세인데 아직도 지생고를 시작하지 않았으니 많이 늦은 편이었다. 종염방은 혀를 쏙 내밀며 말했다.
“그럼요. 당연하죠. 제가 왜 그걸 걔네들한테 알려줘요.”
사문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몰라야 지생고가 죽을 것 같이 힘든 것이다. 종염방은 자신은 죽을 것 같았던 지생고를 끝냈고 이제 사제들이 그 고생을 시작할 거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져서 헤헤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