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진위는 사부가 거처하는 방 앞에 이르자 술기운을 말끔히 없애고 고했다.
“사부님 제자 양진위입니다.”
“들어오너라.”
숭인문의 문주 임군척은 50대 중반의 중년으로 외모가 전혀 무림인 같이 생기지 않았다. 얼굴이 둥근 편인데다가 눈초리도 밑으로 처져 있고 항상 미소를 머금고 있어서 편안한 인상을 주었다.
차라리 능수능란한 상인으로 보이는 인상이었다.
양진위는 사부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힐끗 보니 임군척이 앉아 있는 앞 교자상 위에 서찰 한 통이 펼쳐져 있었다.
“진위야.”
“예, 사부님.”
“연연의 혼인으로 네 마음이 심란하겠구나.”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
“예, 그렇습니다.”
“…….”
“…….”
“여기 서찰이 보이지?”
“예.”
“첫째한테서 온 서찰이다.”
“대사형이요? 무슨 일입니까.”
“진형이가 부상을 입었다고 하는구나.”
“대사형이 부상을 입었다구요? 서찰을 보낼 정도면 큰 부상이 아닙니까?”
“그렇다. 지금 임시방편으로 치료는 하였고. 내상을 다스리기 위해 사문으로 돌아온다고 쓰여 있다.”
“…….”
“그래서 말인데…….”
양진위는 사부의 말 ‘그래서 말인데…’의 다음 이어질 말을 순식간에 예측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예측은 그대로 적중했다.
“네가 돈을 벌러 나가야겠다.”
‘이런 젠장.’
3장. 숭인문의 무공 교습(敎習)
현재 숭인문에서 양진위의 대에 중성(中成) 이상의 성취를 이룬 문도는 세 명이었다. 대사형인 탁진형, 넷째인 양진위, 일곱째인 장초인 이들 세 명이다. 그리고 이들 세 명은 문파 내에서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 양진위가 지고 있던 책임은 사제의 지생고를 맡는 것이었다.
양진위가 지생고를 맡게 됨에 따라 지생고의 의무에서 벗어난 넷째 사숙이 기뻐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넷째 사숙은 소성을 달성했을 뿐이어서 문도들의 지생고를 맡는데 많이 어려워했던 것이다.
전대의 사숙들 중에 둘째 사숙과 셋째 사숙이 중성을 달성하였다. 정작 장문인인 임군척은 소성을 달성했으나 중성을 달성하는 데는 실패하였다.
소성에도 수준 차이가 있어서 임군척은 그나마 중성에 거의 접근해 있다고 평가되어 중성을 이루었다고 쳐주는 형편이었다.
양진위가 중성을 이루기 전까지 사형제들의 지생고는 모두 중성이나, 최소한 소성을 이룬 사숙들의 몫이었던 것이다.
그럼 일곱째인 장초인의 임무는 무엇이었는가. 양진위가 문파 밖에서 종염방의 지생고를 책임지고 있는 동안 장초인은 문파를 지키고 문도들을 가르치는 임무를 맡았다.
장초인은 스스로에게 투자하는 시간 외에 타인을 위해서 시간을 쓰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서 자신이 맡은 ‘문도를 가르친다’라는 임무를 짜증스러워했다. 하지만 양진위가 보기에 장초인이 맡은 임무는 정말 자신이 맡아서 하고 싶은 일이었다.
문파를 지키는 일이야, 쳐들어올 적도 특별히 없는 상태에서 별 의미가 없는 것이었고 혹시 누군가가 쳐들어온다고 해도 그것을 막는 일이 어려운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문도들을 가르치는 일은 어떤가. 이건 생각만 해도 즐거운 일이었다. 양진위는 원래 누구를 가르치는 것을 좋아해서 일례로 종염방의 지생고를 나가기 전 1년간은 거의 모든 시간을 사제 장초인을 위해 투자했던 것이다.
또한 종염방의 지생고 기간 동안에도 올봄까지는 장초인으로 하여금 주기적으로 찾아오게 하여 훈련을 시켰다.
소성에 머물고 있는 장초인을 대성까지 이끈 것은 거의 양진위의 공이었다.
양진위는 장초인을 죽도록 패고, 검으로 쑤시고, 뼈다귀를 부러뜨리며 교육을 시켜서 스스로도 생각해도 대단한 것이 문파의 문도 하나를 대성을 달성하도록 이끈 것이었다. 실로 누구를 가르치는 일은 정말 재밌는 것이었다.
자, 이제 양진위가 지생고의 임무를 끝내고 종염방을 사문으로 데리고 왔으니 양진위와 장초인의 임무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원래는 양진위가 맡고 있던 임무를 장초인이 맡고, 장초인이 맡고 있던 임무를 양진위가 맡게 될 예정이었다. 즉 조만간 장초인은 열두 번째 사제인 소인구를 데리고 지생고를 나가야 하는 형편이었다.
타인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는 일을 극도로 싫어하는 장초인이 지생고를 나가 사제의 곁에서 오랫동안 몸이 묶여 있어야 하다니, 장초인이 극도로 이 임무를 싫어하는 것은 당연했다.
장초인이 영춘객잔 지붕 위에서 양진위가 ‘사조부(師祖父)께서는 40년 동안 사형제와 사질들의 지생고를 위해 투자하셨다고 들었다.’라고 말했을 때, ‘그게 미친 짓이 아니고 뭐란 말이오.’라고 절규했던 것은 다 이처럼 이제 자신이 후배의 지생고를 위해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형편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열두 번째 사제 소인구는 벌써 나이가 열다섯으로 지생고를 나가는 시기가 이미 많이 늦은 터라 더 이상 미룰 수도 없었다.
따라서 이제 양진위가 맡게 될 임무는 원래 장초인이 맡고 있었던 임무, 즉, 사문을 지키고 문도를 가르치는 것이 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문파 내에서 중성 이상을 달성한 또 한 명의 문도, 대사형 탁진형의 편지가 당도했다.
그럼 탁진형이 맡고 있던 임무는 무엇인가. 바로 숭인문의 문도들이 먹고살 수 있도록 돈을 벌어오는 것이었다. 전날 쌍하객잔에서 종염방이 대사형은 뭘 하고 있냐, 대사형도 15년째 지생고를 하고 있는 둘째 사형처럼 아직도 지생고를 하고 있냐고 물었을 때 양진위는 이렇게 대답했다.
‘대사형은 지생고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강호에 나가서 이것저것 일을 처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사실 대사형 탁진형이 이것저것 처리하고 있는 일이란 바로 돈을 벌어오는 일이었다.
숭인문은 도대체 뭘 해서 먹고사는 것인가. 어떤 문파처럼 주루를 경영하는 등 이권(利權)에 참여해서 수입을 얻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문도들에게 무공을 가르쳐주는 대가로 돈을 받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산중에 농토를 개척해서 농작물이나 약초 등을 재배해 거기서 수익을 내는데, 만약 농작물이나 약초를 재배해서 얻어지는 수익만으로 숭인문의 문도들이 먹고살려면 그 생활수준이 불쌍할 정도로 빈한해 질 것이다.
그래서 숭인문의 전대 사숙들은 아직도 문파를 위해 뼈 빠지게 일해서 돈을 벌고 있었다.
그리고 문파의 재정을 책임지는 문도 중 가장 큰 비중의 돈을 벌어오는 존재가 바로 탁진형이었다. 이것이 바로 탁진형의 임무였다.
탁진형은 지금까지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실행하여 뼈 빠지게 돈을 벌어 사형제들을 먹여 살렸던 것이다.
그런데 탁진형이 얼마 전에 큰 부상을 당했다. 그래서 더 이상 돈을 벌어오는 임무를 수행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건가.
장초인은 예정대로 지생고의 임무를 맡아 사문 밖으로 나갈 것이다. 그리고 원래 양진위가 맡을 예정이었던, 사문을 지키고 문도들을 가르치는 임무는 바로 부상을 당해 사문으로 돌아오는 탁진형이 맡게 될 터였다.
왜냐, 부상을 당했어도 문도들을 지도하는 것은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문도를 가르치는 일은 원칙적으로 중성을 달성한 문도만 할 수 있었기 때문에 탁진형이 맡는 것이 당연했다.
그럼 당연히 그동안 탁진형이 맡고 있었던, 문파의 문도를 먹여 살리기 위해 돈을 벌어오는 임무는 양진위가 맡아야 하는 것이다.
탁진형이 부상을 당했는데 문파를 지키는 임무를 어떻게 수행 하냐고? 문파를 지키는 임무보다 문도를 먹여 살리는 임무가 더 급한 것이었다.
그리고 문파를 지키는 임무는 강적이 오지 않는 이상 사숙들 선에서 처리될 것이고 진짜 강적이 올 경우 지생고에 나가 있는 장초인을 급히 소환하면 처리할 수 있었다.
바로 이상의 사실이 사부 임군척이 말꼬리를 늘린 ‘그래서 말인데…’ 라는 말이 나온 순간 양진위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여 예측된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예측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네가 돈을 벌러 나가야겠다.’
결론은 이것이었다. 양진위는 속으로 ‘젠장!’하고 외쳤지만 한숨을 내쉬며 공손히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사부님.”
“그럼, 연연의 혼사가 끝나면, 염방을 데리고 염방의 사가(私家)에 갔다 온 후 곧바로 길을 떠나도록 해라.”
“예. 알겠습니다.”
종염방은 아직 모르고 있었지만, 종염방의 할아버지가 여름에 돌아가셨다. 그동안은 지생고를 하고 있는 터라 종염방에게 알리지 않았고, 지금은 문파에 혼인이라는 경사가 있어서 종염방에게 알리지 않고 있었다.
이씨세가와의 혼사가 끝나면 양진위는 종염방을 데리고 종염방의 고향에 갔다 와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까지는 시간을 내어서 문도들을 가르치도록 해라.”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상이다. 질문이 있느냐?”
“없습니다.”
“그래, 밤이 늦었으니 그만 가서 쉬어라.”
“예.”
다음날 새벽, 양진위는 묘시(새벽 5시-7시)가 끝나갈 무렵에 연무장으로 향했다. 연무장에는 새벽 운공을 마치고 사제들이 모두 모여 기다리고 있었다. 양진위는 일렬로 쭉 늘어선 사제들을 쳐다보고는 입을 열었다.
“오늘부터 며칠 동안 내가 교육을 맡게 되었다.”
“예!”
사제들 모두가 좋아하였다. 그동안 문도들의 교육을 맡았던 장초인은 자신의 임무를 싫어해서 하는 둥 마는 둥 대충대충 성의 없이 가르쳤기 때문이었다.
아니, 성의 없이 가르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는 티를 내고 성실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이제 양진위가 교육을 실시하니 뭔가 더 얻는 것이 많을 것으로 기대하는 사제들이다.
양진위는 서열 역순으로 사제들을 호명하기 시작했다.
“장수오!”
“예! 사형.”
12살로 사형제 중 막내인 장수오가 앳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진시(7시-9시)에 연무장으로 나온다.”
“예!”
“아침식사는 훈련이 끝나고 혼자 먹는다.”
“예!”
“소인구!”
“예!”
“사시(9시-11시)에 연무장으로 나온다.”
“예!”
“종염방!”
“예!”
“오시(11시-1시)에 연무장으로 나온다.”
“예!”
“점심식사는 훈련이 끝나고 혼자 먹는다.”
“예!”
“고채란!”
“예!”
“미시(1시-3시)에 연무장으로 나온다.”
“예!”
“구대헌!”
“예!”
“신시(3시-5시)에 연무장으로 나온다.”
“예!”
“사마평!”
“예!”
“유시(5시-7시)에 연무장으로 나온다.”
“예!”
그다음은 장초인이었으나 장초인은 이미 대성을 달성하여 공개적으로는 양진위가 교육하지 않았다.
“임억!”
“예!”
“술시(7시-9시)에 연무장으로 나온다.”
“예!”
“저녁식사는 훈련이 끝난 후에 혼자 먹는다.”
“예!”
그다음은 임연연이었는데 혼인을 앞둔 관계로 교육에서 제외시켰다. 그다음은 양진위보다 서열이 위로 셋째 사형인 도현성이었다.
양진위보다 윗서열이나 무공을 성취하지 못해서 양진위나 장초인에게 지도를 받고 있었다.
사제에게 교육을 받는 것이 모양새가 좋지 않은 면이 있어서 만약 본인이 원한다면 교육에서 빠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처럼 연무장에 모습을 드러냈으니 양진위에게 교육을 청하고 있는 것이었다.
“사형께는 해시(9시-11시)에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알았다.”
그 외, 둘째 사형인 도무백은 현재 사문 밖에서 15년째 지생고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대사형 탁진형은 중성을 성취한 터라 더 이상 공개적으로 문파에서 교육을 받지 않는다. 오히려 문도들을 가르쳐야 하는 입장이었다.
“이상이다. 장수오를 제외하고 모두 해산!”
“예!”
막내인 장수오를 연무장에 남겨두고 모두들 뿔뿔이 흩어졌다. 양진위는 자신을 똘망똘망한 눈으로 쳐다보는 어린 장수오를 마주 쳐다보았다. 한 사람 앞에 한 시진씩, 시간이 많지 않았다. 양진위는 곧바로 교육에 들어갔다.
“장수오.”
“예!”
“선인봉(仙人峯) 중턱에 폭포가 있는 것을 알고 있지?”
“예! 사형.”
“그 폭포 아래에 조그만 물고기들이 살고 있을 것이다.”
“예!”
“지금 그 폭포까지 뛰어가서 물고기를 한 손에 하나씩 두 마리를 잡고 돌아온다. 제한 시간은 한 시진(두 시간)이다.”
“예!”
“한 시진 안에 돌아오지 못하면 내 장담하건대 너는 눈물을 줄줄 흘리게 될 것이다. 알겠냐?”
“예!”
“자, 갔다 와!”
장수오는 아침 산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장수오의 나이는 이제 열두 살, 다른 문파 같았으면 이미 싹수가 보이느니, 오성이 뛰어나니 하며 평가를 내릴 나이이다.
하지만 숭인문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장수오는 아직 체력 훈련 단계에 있었다. 장수오가 앞으로 소성을 성취할 수 있을지 중성, 대성을 성취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