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기를 잘한다고 해서 오성이 뛰어난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오성이 뛰어나면 암기를 잘하는 것이 일반적이기는 했지만, 암기를 잘 못하면서도 이해력이나 통찰력이 뛰어난 사람도 많이 있었다.
어려서부터 기초체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실제로 강호에 나가서 오래 살아남는 것이 아니었다.
즉, 장수오가 얼마나 오성이 뛰어난지, 또 강호에서 악착같이 살아남는 생존력이 있는지는 지생고를 시작해야 비로소 조금이나마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양진위는 장수오를 산으로 보내놓고 자리에 앉아 운기행공을 했다. 어느덧 시간이 지나 사시(9-11시)가 되었다. 양진위가 눈을 뜨니 열두 번째 사제인 소인구가 연무장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산으로 보낸 장수오는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소인구는 열다섯 살로 바로 위 사저인 종염방과 동갑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지생고를 나가지 않았다. 며칠 후면 곧 사문에서 쫓겨나 지생고를 나갈 예정이었다.
소인구 몰래 그를 보호하는 임무는 장초인이 맡게 될 것이다. 양진위는 소인구에게 곧바로 명령을 내렸다.
“소인구.”
“예, 사형.”
“선인봉(仙人峯) 중턱에 폭포가 있는 것을 알고 있지?”
“예!”
“그 폭포 아래에 조그만 물고기들이 살고 있을 것이다.”
“예!”
“지금 그 폭포까지 뛰어가서 물고기를 한 손에 하나씩 두 마리를 잡고 돌아온다. 제한 시간은 반 시진(한 시간)이다.”
“예!”
소인구가 명을 듣고 곧바로 산으로 뛰어갔다. 장수오에게 내린 명령과 똑같은 것이되 단지 제한시간이 반 시진으로 줄었을 뿐이었다.
소인구가 선인봉을 향해 뛰어간 후 일각(15분) 후에 장수오가 숨이 턱 끝에 닿아서 헐떡거리면서 달려왔다. 숨을 급하게 몰아쉬고 있는 장수오는 두 손을 펼쳐 보였다. 장수오의 손에서 조그만 물고기 두 마리가 땅으로 떨어졌다.
“장수오.”
“예! 사형.”
“제한시간 한 시진이 경과하고 일각이 늦었다.”
“예.”
“왜 늦었는지 이유를 말해 보거라.”
“예. 물… 물고기가 잘… 잘… 잡히지 않았습니다. 또 물고기를 잡고 오… 오다가… 자꾸 물고기를 떨어뜨려서 다시 주워오느라고 시간이 걸렸습니다.”
물고기는 미끈미끈하니 손에 쥐고 있는 것 자체가 힘든 것이었다. 그런데 물고기를 잡고 뛰어야 하니 자꾸 물고기를 떨어뜨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네가 물고기를 잡는데 시간이 걸리고, 물고기를 자꾸 떨어뜨리는 것은, 네가 평정심을 잃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아무리 촉박해도 평정심을 잃어서는 안 된다. 아주 급박한 상황에 몰려도 평정심을 잃지 않아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예! 사형. 알겠습니다.”
“일다경을 쉬고 다시 선인봉으로 뛰어간다. 제한시간은 한 시진이다.”
“예! 사형.”
일각의 시간이 지나고 양진위는 장수오를 다시 선인봉으로 보냈다. 장수오는 아직도 숨이 골라지지 않아서 헐떡거리며 뛰어갔다.
이곳 숭인문 연무장에서 작은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이 바로 선인봉 중턱의 폭포였다. 따라서 장수오는 꾀를 부려 양진위를 속이려 해도 속일 수가 없었다. 물고기를 잡으려면 꼼짝없이 선인봉 중턱까지 갔다 와야 하는 것이다.
소인구가 선인봉으로 떠난 지 제한시간 반 시진이 되기 전에 돌아왔다. 별로 숨을 헐떡이지도 않았고 물고기 두 마리를 완벽하게 쥐고 있었다. 생각보다 체력이 탄탄하게 다져져 있는 상태라는 것을 알았다.
양진위가 소인구에게 말했다.
“소인구.”
“예, 사형.”
“얼마 있으면 지생고를 나가야 하지?”
“예, 그렇습니다.”
“너는 듣자하니, 몇 년 전에 사문에서 지생고를 나가라고 명을 내렸는데 조금만 더 사문에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들었다. 그것이 사실이냐?”
“예, 그렇습니다.”
“왜 그런 것이냐.”
“…….”
“지생고를 나가는 것이 두려운 것이냐?”
“아닙니다.”
“그럼 왜 그랬는지 이유를 말해라.”
소인구는 주저하며 말을 고르는 듯했다. 그 모습을 보고 양진위가 호통을 쳤다.
“어떻게 대답할까 말을 고르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라.”
“예, 사형. 제 생각에는 물론 지생고를 통해 제가 무공을 배울 수도 있을 것이지만, 지생고를 나가기 전에 최대한 사문에서 오랫동안 무공을 익히는 것이 제 무공이 발전하는데 더 유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소인구는 얼떨결에 말해놓고 양진위에게 질책을 들을까 겁이 났다. 보통 아이들은 사문에서 지생고를 나가라고 시키면 왜 나가야 하는지 이유도 모른 채 쫓겨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소인구는 어린 나이에도 스스로 손익을 판단해서 지생고를 늦게 나가는 것이 자신에게 더 이익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지생고를 안 나가고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소인구는 사실 이러한 것은 사형제들이나 사부, 사백들에게 솔직히 말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양진위가 호통을 치면서 물어보자 말을 둘러대지 못하고 솔직하게 털어놓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막상 솔직하게 말하고 나자 그에 대한 두려움이 몰려왔다.
양진위는 잠시 소인구를 쳐다보다가 말했다.
“왜 지생고를 나가는 것보다 사문에서 무공을 익히는 것이 더 이익이라고 생각했느냐.”
“예. 지생고는 제가 알기로 일정시간 동안 사문 밖에서 혼자 힘으로 살아가는 것으로 들었습니다. 물론 어려서부터 세상이 힘든 것을 알게 하고 또 그 와중에 절박한 상황에서 실전 격투를 겪게 한다는 취지는 저도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싸움은 분명 뒷골목의 파락호 같은 삼류무사도 안 되는 자들과의 싸움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는 오히려 문파 내에서 체계적으로 무공을 익히는 사형제들끼리 대련을 하는 것이 무공을 성취하는데 더 이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양진위가 소인구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명령을 내렸다.
“소인구.”
“네! 사형.”
“가서. 염방을 데려오너라.”
“예.”
소인구가 내전 쪽으로 가더니 잠시 후 종염방을 데리고 왔다. 종염방은 오시(11시-1시)에 교육을 받기로 되어 있었는데 이른 시간에 불려나오자 무슨 일인가 궁금해 하는 표정이었다.
양진위는 소인구와 종염방을 나란히 세워놓고 말했다.
“염방이가 인구보다 조금 더 빨리 사문에 입문하여 사저가 되었지만 너희 둘은 열다섯 살로 나이가 같지?”
“예.”
“예.”
“소인구.”
“예.”
“너와 네 사저는 나이가 같은데 너는 아직 지생고를 나가지 않았고 종염방은 이미 지생고를 마치고 돌아왔다. 그렇지?”
“예.”
“그리고 너희 둘은 사문에 입문한 시기도 거의 비슷하다 그렇지?”
“예, 그렇습니다.”
“자, 이제부터 인구와 염방은 이곳에서 비무를 시작한다. 지생고를 나갔다온 염방과 염방이 지생고를 나간 사이에 문파에서 무공을 닦은 인구가 비무를 해서 어느 쪽이 더 강해졌는지 이제부터 확인해보도록 하겠다. 너희 둘은 사형제 간이지만, 지금 이 순간은 서로가 사형제간이라는 것을 잊고 불구대천의 원수를 만났다고 생각하고 진정한 승부를 가린다. 다시 말하지만 단순히 무공연마를 위한 비무가 아니라 누가 더 강한지 승부를 내는 것이다.”
“네?”
종염방이 눈을 뜨고 당황해서 반문했다. 그 표정이 ‘난 하기 싫은데요?’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역력했다. 종염방은 소인구를 이길 자신이 없었다.
종염방 자신이 특별히 무공을 더 익힌 것도 아니거니와 소인구는 동갑이고 자신의 사제이기는 하지만 남자가 아닌가. 힘에서 밀리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내가 왜 사제와 승부를 가려서 꼴사납게 지는 추태를 보여야 하는가라는 것이 종염방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명령을 내리는 양진위의 표정이 너무나 단호해서 종염방은 울상을 짓고 말았다.
“자, 시작해!”
종염방은 여전히 울상을 짓고 있고 소인구는 그런 종염방을 보며 눈빛을 빛냈다. 한번 해 보고 싶은 표정이었다.
퍽!
소인구는 갑자기 눈앞이 번쩍하더니 정신을 차렸을 땐 자신이 연무장 바닥에 자빠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원래 소인구는 종염방이 비무를 시작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종염방은 계속 하기 싫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주먹을 날린 것이다. 소인구는 종염방이 이처럼 갑자기 비무를 시작할 줄은 몰랐기 때문에 턱을 강타당하고 뻗어버린 것이었다.
종염방은 자신이 내지른 주먹에 소인구가 얻어맞고 뒤로 자빠지자 순간 당황했다. 저잣거리에서 싸우던 버릇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었다.
원래 종염방이 지생고의 기간 동안 싸움이 벌어지면 항상 써먹던 수법 중 하나였다. 전혀 싸울 의사가 없는 척하다가 갑자기 선공(先攻)을 하는 것이었다.
사실 마음속으로 그래야겠다고 생각하고 한 것이 아니라 은연중에 몸에 그 버릇이 배어 있어서, 순간적으로 소인구가 비무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며 방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자 자기도 모르게 주먹이 나간 것이었다.
자, 원래는 이 방법이 통해서 상대가 기습을 허용하고 얻어맞으면, 뒤로 자빠지지는 않더라도 몸의 균형을 잃게 된다. 그럼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죽어라고 쥐어 패는 것이 다음 수순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뒤로 자빠진 소인구를 따라가서 차마 쥐어 패지는 못하고 소인구가 자리에서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소인구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입을 이죽거렸는데, 목소리가 새어나오지는 않았지만, 그 이죽거림이 ‘비겁하게…’라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종염방은 그 모습에 약간 얼굴이 붉어졌는데, 양진위는 오히려 속으로 혀를 차고 있었다.
비무가 시작됐는데 방심하다가 선공을 허용한 소인구가 멍청한 것이다. 승부의 세계에서 비겁한 게 어디 있는가. 승부의 세계는 이기는 것이 정당한 것이다.
오히려 뒤로 자빠진 소인구를 일어나도록 기다려주는 종염방 역시 멍청한 것이다. 자, 처음 한 수부터, 저잣거리에서 익인 무공과 사문 내에서 익힌 무공의 차이가 났다. 이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
소인구는 정신을 가다듬고 종염방에게 달려들어 권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종염방이 그것을 피하며 권을 마주 내지르고 또 서로가 상대에게 퇴와 각을 내지르며 본격적으로 비무가 시작되었다.
몇 초를 주고받는 사이에 양진위는 이미 승부가 났음을 알았다. 처음 바짝 긴장해있던 종염방은 어느덧 여유 있는 표정이 되었고 종염방 스스로도 자신이 무난히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소인구는 온 정신을 집중해서 종염방을 상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손과 발이 이미 종염방의 범위 안에서 지배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소인구와 종염방, 무엇이 차이인가.
종염방은 상대의 손과 발이 날아오면, 머리로 생각하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하여 손과 발이 대응해 나갔다.
그에 비해 소인구는 손과 발을 내지르기 전에 아주 짧은 시간이나마 머리로 어떤 권을 내지를 것인지, 어떤 퇴를 내지를 것인지 생각을 하며 내질렀다.
그것이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아니 아주 아주 아주 짧은 찰나의 시간이라도, 생각을 하면서 내지르는 권과 퇴는 생각 없이 반사적으로 나오는 권과 퇴보다 빠를 수가 없는 것이었다.
또 다른 문제는 소인구의 권과 퇴가 무공서에 소개되어 있는 동작 그대로 시전되고 있다는 것이다. 무공서에 아무리 많은 종류의 권이 그려져 있다고 해도, 그것은 무공서를 통해 익힌 투로를 따라서 움직이는 권이었다.
그렇기에 소인구의 권이 지금보다 몇 배가 더 빨라진다고 해도 종염방은 그것의 투로를 순간적으로 알아차리고 쉽게 피할 수 있는 것이다.
그에 비해 종염방의 권은 무공서에 그려져 있는 투로 대로 나오지 않았다. 소인구의 입장에서는 완전히 변칙적인, 즉, 정상적인 방법이 아닌 방법으로 날아오는 종염방의 권을 코앞까지 오기 전에는 전혀 예측할 수가 없었다.
소인구는 초조했다.
왜냐면 종염방의 권을 보고 순간적으로 그 권을 판단하여 종염방의 권이 이렇게 날아오니, 나는 가장 효과적인 이 방법, 즉, 공수를 겸하는 이 방법으로 막으면서 그다음에는 이런 식으로 상대를 압박해 나간다는 방식으로 비무를 해야 했다.
그런데 종염방이 한 번씩 내지르는 권은 순간적으로 그런 판단을 할 수 없게 하는 변칙적인 투로로 또 예상치 못한 순간에 날아오기 때문이었다.
양진위는 종염방이 최선을 다해 비무에 임하면 소인구가 30초 이상 버티지 못할 것을 알았다. 그런데 생각 밖으로 소인구는 5초를 버티지 못하고 자빠지고 말았다.
양진위는 종염방의 그 교활한 방법에 실소를 내뱉었다. 어떻게 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