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인구는 어느 순간 갑자기 종염방의 권이 눈에 보이는 것을 알았다. 비무에 온 신경을 집중하니 그 결과 드디어 상대의 권의 투로가 눈에 잡힌 것이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상대의 투로를 예측해서 최대한 효율적인 방법으로 방어를 하고 허를 찌르는 권을 날리려고 했다.
그런데 생각만 그렇게 했을 뿐,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 방어를 하는 순간 눈앞이 번쩍하며 정신을 잃었다.
이것은 종염방이 술수를 부린 것이었다. 종염방은 비무 중에 일부러 소인구의 눈에 익숙한, 즉 교과서적인 투로로 권을 날렸다. 그리고 예상대로 소인구의 눈이 빛나더니, 또 예상대로 방어를 해왔다.
하지만 종염방은 상대의 팔이 어떤 각도로 놓일지 순식간에 머릿속에 이미 그려져 있었고, 그 빈틈, 얼굴 중앙 급소 인중에 정확히 주먹을 꽂아 넣은 것이었다.
양진위와 종염방은 묵묵히 땅에 누워있는 소인구를 같이 내려다보았다. 소인구가 깨어나기 전에 양진위가 말했다.
“종염방.”
“네, 사형.”
“돌아가서 오시(11시-1시)에 다시 와라.”
“예.”
소인구가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는 종염방은 이미 자신의 거처로 돌아가고 없었다.
사형 양진위 앞에 선 소인구는 수치심으로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평소에 종염방을 사저라고 부르며 깍듯이 대하고 있었지만 내심 여자라고 얕보는 마음이 있었다.
자신이 사제이지만, 위급한 상황이 되면 자신이 보호해주어야 할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또한 소인구는 이제 막 춘정(春情)에 눈을 뜰 시기였고, 가장 가까이 있으며 비슷한 나이 또래가 종염방이었기 때문에 남몰래 야릇한 감정도 약간 있었다. 그런데 그런 종염방에게 무참하게 패하고 만 것이다.
양진위는 얼굴을 붉히고 있는 소인구를 보며 어린 사제의 심사를 나름대로 추측하고 있었다. 종염방하고 이 시점에서 정식 대련을 시킨 것은 잘못된 것일 수도 있었다.
만약 종염방이 소인구에게 패했다면, 종염방 역시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자기는 말로만 사저지, 실제로는 사제에게도 패하는 유명무실한 사저다,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소인구와 종염방을 대련시킨 건 그러한 안 좋은 점보다 누가 이기건 간에 둘 다 얻는 이익이 컸기 때문이었다. 종염방은 이번에 승리함으로 인해 보다 자신감을 가졌을 것이다.
소인구는 이번 패배를 통해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을 것이다. 원래 발전은 패배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 한 번 패했다고 패배감에 사로잡혀 의기가 꺾이는 자는 처음부터 무공을 시작할 필요가 없었다.
“소인구.”
“예. 사형.”
“이제부터 네가 종염방에게 패한 이유를 가르쳐주겠다.”
“예.”
소인구는 양진위가 패배의 이유를 가르쳐주겠다고 하자 잡념을 떨쳐버리고 양진위가 어떻게 알려줄 것인가 호기심을 가지고 집중했다. 자신도 자기가 왜 사저에게 졌는지 너무나 궁금했던 것이다.
양진위는 왼발을 왼쪽 한 발 앞으로 내민 궁보(弓步)를 취한 자세에서 오른 주먹을 소인구의 얼굴을 향해 천천히 내뻗었다.
양진위의 오른 주먹은 천천히 다가왔기 때문에 소인구는 양진위가 무얼 하는 건가 궁금해졌다. 천천히 내뻗다가 갑자기 빠르게 쳐서 때리려고 하는가? 소인구는 긴장했다. 그때 양진위가 말을 했다.
“자, 이 자세로 내가 이렇게 공격을 할 때, 너는 어떻게 방어를 할까.”
양진위의 주먹이 천천히 다가왔기 때문에 소인구는 급할 것 없이 그 대응방법을 생각할 수 있었다.
그때 양진위가 말을 이었다.
“내 생각에 너는 오른쪽으로 빠르게 발을 움직이며 너의 왼팔로 내 오른 주먹을 바깥으로 쳐내며 동시에 너의 오른 주먹으로 내 왼쪽 옆구리를 가격하려 할 것이다. 어떠냐. 내 말이 맞느냐?”
소인구는 자신이 생각한 대응방법을 양진위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알아맞히자 약간 놀라며 대답했다.
“예, 그렇습니다. 사형.”
양진위는 주먹을 내뻗는 동작 그대로 몸을 정지시킨 채 말을 이었다.
“자, 내가 너의 대응방법을 알아맞힌 이유를 알려주겠다. 내가 이처럼 왼발을 앞으로 구부린 궁보의 자세로 오른 주먹을 내지르면 너에게는 여러 가지 대응방법이 있다. 그렇지?”
“예.”
“첫째, 그냥 뒤로 물러서는 방법이 있다. 이건 나의 한 초를 피한 후 다음 초를 보고 다음 기회를 노리기 위해서이다.”
“…….”
“둘째, 너는 왼쪽으로 발을 옮기며 내 주먹을 피한 후 공격하는 방법이 있다. 이 경우는 내 오른 주먹이 앞으로 뻗어졌기 때문에 힘이 그 방향으로 쏠려서 네가 반대방향으로 피하면 순간적으로 동작이 끊어지면서 공백이 생기기 때문에 그 틈을 이용해 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너는 왼쪽, 즉 나의 오른쪽으로 발을 옮기며 피하는 방법을 선택하지 않고, 오른쪽, 즉 나의 왼쪽으로 발을 옮겨 피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왜냐면, 오른쪽으로 발을 옮겨 나의 왼쪽으로 피할 경우 내가 힘을 쏟아낸 방향으로 몸을 피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 오른 주먹을 피했더라도 다시 2차 공격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너는 그 2차 공격의 위험을 감수할 생각을 했다. 왜냐면 나의 왼쪽으로 움직여 피할 경우 내가 힘을 쏟아낸 방향으로 피하는 것이지만, 내 하체를 보면 왼발이 앞쪽으로 궁보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내 몸의 무게 중심이 왼발 앞쪽으로 쏠려 있기 때문이다. 만약 네가 조금 위험하지만 재빠르고 크게 오른쪽으로 움직이면, 즉 나의 왼쪽으로 크게 움직이면, 나의 무게중심이 왼발 앞으로 쏠려 있었기 때문에, 내가 너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서 너를 놓치기만 하면, 난 내 왼쪽으로 돌아들어 간 너에게 완전히 무방비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내 말이 맞느냐?”
“예, 바로 그렇습니다.”
“자, 난 이처럼 네가 대응할 방법을 예측해내었다. 그리고 상대의 대응을 예측하고 있다면, 그 상대를 이기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
“네가 염방에게 당한 마지막 한 수는 이와 같다. 염방은 너와 권각을 다투면서 네가 내뻗는 권과 각의 성향을 파악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함정을 팠다. 염방이는 일부러 너의 눈에 잘 뜨이게 쉬운 동작으로 공격을 했다. 그 공격을 하면서 염방이는 네가 그 공격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지금까지 너의 권각의 성향을 분석한 것을 토대로 정확히 예측했다. 넌 염방이의 예측대로 몸을 움직였으며, 염방이는 바로 그 대응의 허점에 그냥 주먹을 꽂아 넣었을 뿐이다. 누워서 떡 먹기처럼 쉬운 일이었을 것이다.”
“…….”
“네가 염방이에게 패한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패했는데 어떻게 패했는지 모르는 것이다. 만약 어떻게 패했는지 안다면, 그 패했던 상황은 몸에 기억되어서 나중에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연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패했는지 조차 알지 못한다면, 패배의 원인을 분석할 수 없고, 그러면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을 때 똑같이 패할 수밖에 없다.”
“…….”
“자, 염방이가 마지막 순간에 어떤 동작을 취했고, 네가 어떻게 반응했으며, 염방이가 어떻게 너의 대응을 파훼하고 너에게 결정타를 먹였는지 머릿속에 그려지느냐?”
소인구는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종사저의 마지막 공격 때 왼쪽 주먹은 허초였군요.”
“그렇다. 바로 맞추었다. 염방이는 오른 주먹으로 결정타를 날리기 위해서 왼쪽 주먹으로 허초를 날려 너의 대응 자세를 이끌어 낸 것이다.”
“사형, 제가 어떻게 맞고 쓰러진 것인지 완전히 이해했습니다.”
“좋다. 아주 좋아.”
“하지만 어떻게 종사저가 그 순간에 그런 자세로 왼쪽 주먹을 허초로 날릴 수 있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종사저의 마지막 그 허초 공격은 마치 무게 중심을 앞으로 두고 있으면서 뒤로 발차기하는 것처럼 말이 안 되는 자세입니다. 만약 무게 중심을 뒤에 두고 있다면 상대가 속지 않을 것이고, 무게 중심을 앞에 두고 있으면, 열 번 시도하면 일곱 여덟 번은 자세가 엉킬 수밖에 없는 자세가 아닙니까.”
“바로 그렇다. 하지만 염방이는 그 자세를 여러 차례 실전에서 사용한 결과 몸에 익힌 것이다.”
“…….”
“자, 염방이는 너의 권초를 파악하고 너의 투로를 예측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넌 대련 도중 내내 염방이의 투로를 파악하기 힘들었을까.”
“…….”
“그건 염방이가 사용한 권각의 투로가 네가 배운 권, 각의 서책에 있는 그대로가 아니고 약간씩 변형되어 있었으며 순서가 변칙적이었고 권각을 내뻗는 속도 역시 변칙적이었기 때문이다.”
“종사저는 그것을 지생고를 통해 배웠다는 건가요?”
“그렇다. 염방이가 특별히 인구 네가 본 책 외에 다른 책을 보고 다른 무공을 배운 것이 아니다. 단지 염방이는 사문에서 제공한 권각의 서적 내용을 머릿속에 외우고 있다가 그것을 적용할 때 그대로 적용하지 않고 응용해서 사용하고 그 응용법을 몸에 익숙하게 익혔을 따름이다.”
소인구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저… 저는 종사저가 제가 배운 권각무공과 다른 무공비급을 익힌 줄 알았습니다.”
“자, 네가 염방이의 허초에 당해서 패했으니 허허실실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허허실실은 대련을 할 때 가장 최초로 터득하게 되는 공략법이다. 하지만 이처럼 기초적인 허허실실도 그 허허실실을 조금 사용할 줄 아는 자가 있는가 하면 그 허허실실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몸에 익히고 있는 자도 있다.”
“…….”
“사문에서 책을 보고 연구하고 대련을 통해서 허허실실을 터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그러한 방법으로 허허실실을 연습하고 터득하는데 만약 소인구 네가 3년이 걸린다고 치자. 만약 네가 저잣거리에서 질 나쁜 놈한테 잘못 걸려서 싸움이 붙고, 만약 그 싸움에서 지면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했다고 치자. 너는 무조건 이겨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허허실실을 사용했다고 치자. 만약 네가 그 싸움에서 살아남는다면, 3년 동안 연구해야 겨우 그 진의를 터득할 수 있는 허허실실의 묘리를 단 한 순간의 싸움으로 몸에 영원히 잊히지 않게 터득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 숭인문에서 문도들을 지생고로 내보내는 이유 중 하나이다. 지생고를 내보내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의 한 가지 이유라는 것이다. 내 말뜻을 알겠느냐?”
소인구는 크게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사형.”
“그렇다고 지생고를 나가서 무조건 싸울 상대를 찾아다녀서는 안 된다. 그러다간 살아남지 못한다. 오히려 최대한 몸을 사려야 겨우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객기를 부리지 않더라도 지생고를 하는 동안 자연히 이것저것 터득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알겠느냐?”
“명심하겠습니다.”
“자, 그동안 공부를 하며 궁금했던 점을 물어 보거라.”
이후 소인구는 평소에 가지고 있던 의문점을 양진위에게 물어보고 양진위가 그에 대해서 해답을 내려주는 방식으로 교육이 진행되었다. 소인구는 그동안 지생고를 미루고 안 나갔던 것을 크게 후회했다.
오시가 되어 종염방이 연무장에 나타났을 때, 소인구는 양진위에게 여기저기 얻어맞아 낑낑거리고 있었다. 소인구가 질문을 할 때 양진위가 해답을 내려주는 방법은 정답을 쥐어 패면서 가르쳐주는 것이었다.
양진위는 사제들을 가르치는데 있어서 쥐어 패는 방법을 가장 선호했다.
사제의 무공이 강하면 강할수록 더 심하게 두들겨 팼고, 사제들 중 가장 강한 장초인의 경우 양진위에게 한 번 가르침을 청하려면, 말 그대로 죽음을 각오해야 했다.
오늘 하루를 보내고 나면 사제들은 장초인의 교육법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양진위의 교육법도 썩 좋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 틀림없었다.
평소 은연중에 사제들은 무공을 가르쳐주는 사숙들 외에 소성을 달성한 구대헌에게 무공 교습을 의지하고 있었다.
이제 양진위가 며칠 동안 지도를 하고 나면 하루빨리 양진위의 교육이 끝나고 다시 예전처럼 구대헌에게 가르침을 청하게 되기를 바라게 되리라.
종염방이 뭐가 좋은지 헤실 거리며 나타나자 양진위는 눈살을 찌푸렸다. 사제 소인구에게 대련에서 이겨서 기분이 좋은 것이리라.
“소인구를 보아라.”
종염방이 소인구를 쳐다보았다.
“상태가 어때 보이냐.”
소인구는 머리가 어지럽게 헝클어져 있었고 흙이 묻어 있었다. 머리뿐만 아니라 땅바닥에 얼마나 뒹굴었는지 전신이 흙투성이였으며 눈에 멍이 들어 있었다.
“음… 누가 많이 때린 듯하네요.”
“오늘 미시(1시-3시)가 되면 너도 저렇게 되어 있을 것이니 각오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