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구대헌이 목검을 가져오자 양진위는 목검을 쥐고 말했다.
“비무를 시작한다. 준비되었느냐?”
“네.”
“자, 간다.”
뻑!
구대헌의 이마에 양진위의 목검 끝이 강렬하게 꽂혔다. 구대현은 극심한 통증을 느끼며 뒤로 자빠졌다.
“윽!”
“내 검을 보았느냐?”
“못 보았습니다.”
“좋다. 일어나라.”
구대헌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양진위가 다시 검을 들었다.
“자, 간다!”
뻑!
“컥!”
양진위의 검이 구대헌의 목에 꽂혔다. 구대헌은 목을 감싸 쥐고 다시 주저앉았다.
“내 검을 보았느냐?”
“큭… 큭… 못 보았습니다.”
“일어나라!”
“예!”
거의 반 시진(1시간) 동안 양진위의 검은 인정사정없이 구대헌의 몸 구석구석에 꽂혔다. 그 일 초 일 초가 강도를 조절하여 구대헌의 뼈를 부러뜨리지는 않았지만 극심한 통증으로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매서운 일격이었다.
구대헌은 덩치가 산만해서 찌를 곳이 많아 편리하다고 생각하는 양진위였다.
모질게 일격을 가한 후에는 반드시 ‘내 검을 보았느냐?’라고 물어보았다. 구대헌은 반 시진 동안 양진위의 검에 찔리면서도 한 번도 양진위의 검을 보지 못했다.
반 시진 만에 구대헌은 몸을 꼼짝할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양진위의 검이 꽂힌 배 부위를 잡고 새우처럼 허리를 접고 땅바닥에 쓰러져서 고통으로 자리에서 일어나지를 못했다.
“오늘 너는 도대체 몇 번을 죽은 것이냐.”
“죄… 죄송합니다, 사형.”
“어서 일어나지 못해!”
구대헌이 비틀거리면서 간신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가서 장초인을 불러오너라.”
“예.”
구대헌이 장초인을 데리러 갔다가 잠시 후 혼자서 돌아왔다.
“장사형은 바빠서 못 온다는데요?”
“지금 안 오면 내가 쳐들어가서 죽여 버린다고 전해라.”
구대헌이 다시 장초인을 데리러 갔다. 잠시 후에 구대헌이 장초인을 대동하고 연무장으로 돌아왔다. 키가 후리후리한 장초인은 양진위 앞으로 와서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말했다.
“뭡니까, 사형.”
“구대헌을 교육시키는 중이다. 네가 도와줘야겠다.”
“어떻게 도우라는 말입니까.”
“너하고 내가 검으로 비무를 한다. 그리고 그것을 구대헌이 본다.”
“싫습니다. 내가 왜 그래야만 합니까.”
“왜 그래야 하냐면, 넌 사제고 난 사형이기 때문이다. 내가 시키면 너는 해야 한다.”
“어차피 사형이 시키는 거 해도 죽는 거고 안 해도 죽는 건데 전 안 하겠습니다. 죽이고 싶으면 따라와서 마음대로 죽이세요.”
장초인이 피식 웃으며 몸을 돌려 걸어가자 양진위는 화가 잔뜩 나서 씩씩거렸다.
“아니, 저것이 미쳤군. 진짜 많이 컸군. 아 씨발…….”
양진위의 입에서 드디어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그러나 양진위가 뒤에서 욕을 하거나 말거나 화가 폭발하거나 말거나 장초인은 니 맘대로 해라라는 태도로 걸어갔다. 양진위가 얼굴을 울그락불그락하다가 구대헌에게 말했다.
“잠시 기다리거라.”
“예.”
양진위가 빠른 걸음으로 장초인을 따라갔다. 그리고 장초인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잠깐!”
“안 한다니까요.”
“잠깐 내 말 들어보라니까.”
“말해 보슈.”
양진위가 흥분을 가라앉히고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너 조금 있으면 소인구의 지생고를 따라가야 하지 않냐.”
“그런데요.”
“지생고를 몇 년 동안 시킬 생각이냐.”
“보고 있다가 싹수가 없어 보이면 얄짤 없습니다. 그냥 데리고 오겠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사숙들에게 욕먹지 않으려면 일정기간은 데리고 있어야겠지.”
“그래서요. 지금 약 올리는 겁니까?”
“그래. 약 올리는 거다. 소인구만 지생고를 시키면 마지막일 것 같냐? 장수오도 있다.”
“장수오요? 전 절대 안 합니다.”
“네가 해야 할걸?”
“그걸 왜 내가 합니까.”
“왜냐면, 앞으로 대사형이 사문으로 돌아와 무공을 가르칠 거고 난 돈을 벌러 나가야 하니까. 그렇다고 사숙들이 해줄 거 같냐? 너 말고 누가 한단 말이냐.”
“쳇, 될 대로 되라지. 내가 알게 뭡니까.”
“장수오가 끝일 것 같냐? 이제 대사형이 제자를 받으면 사질들도 네가 해야 할 것이다.”
“전 파문을 당하겠습니다.”
“파문을 당하지 않고도 네가 네 임무를 벗어날 길이 있다.”
“…….”
장초인이 거기서 대답을 멈춰서 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장초인이 ‘아무래도 엮이는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하며 망설이듯 물었다.
“그게 뭡니까.”
양진위가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너와 내가 시간 나는 대로 구대헌을 닦달해서 구대헌이 중성을 달성하면 된다.”
“…….”
장초인은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장초인은 무슨 말인지 단번에 알아들었다. 물론 후배의 지생고를 보는 일을 소성을 이룬 문도가 맡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양진위 대에 중성 이상을 이룬 사람이 셋이었기 때문에 십중팔구는 장초인이 지생고를 맡게 될 터였다. 구대헌이 중성에 도달하게 되면, 사문의 귀찮은 임무를 구대헌에게 넘겨버리면 된다.
앞으로 있을 장수오의 지생고라든지, 문도들의 무공을 가르치는 것이라든지… 말이 되는 말이었다. 중성을 도달한 문도가 한 명이 늘어날 때마다 양진위와 장초인이 짊어진 책무가 줄어드는 것이다.
특히나 구대헌은 성격이 순박하고 성실해서 사형이 시키는 것을 틱틱 거리며 거절할 인물이 아니었다. 훨씬 편하게 인생을 살 수가 있는 것이다. 장초인은 한참 뒤에 말을 꺼냈다.
“저놈이 중성에 도달할 수 있겠소?”
“안 되면 두들겨 패서 되도록 만들어야지. 내가 시간이 없으면 네가 두들겨 패고. 네가 시간이 없으면 내가 두들겨 패고.”
구대헌은 양진위가 장초인과 저쪽에서 무슨 말인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잠시 쉬고 있었다. 그런데 긴장이 풀리자 양진위의 목검에 찔린 부위들이 통증이 점점 더 심해져서 인상을 찌푸렸다.
통증이라는 것이 갈수록 약해져야 정상인데, 도대체 양사형은 어떻게 찔렀기에 시간이 가면 갈수록 통증이 더 심해지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저쪽에서 양진위가 장초인을 데리고 돌아오는 것이 보였다.
순박한 구대헌은 자신에게 통증을 안겨준 양진위를 원망하지도 않고 이제 곧 자신이 존경하는 양진위와 장초인의 화려한 비무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양진위는 장초인과 목검을 들고 마주 선 다음 구대헌에게 말했다.
“구대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잘 보아라.”
“예!”
“핫!”
양진위가 기합을 넣으며 목검을 휘둘렀다. 장초인도 목검을 들어 양진위의 검초를 막았다. 두 사람을 빠르게 움직이며 순식간에 수십 합을 주고받았다.
일다경 정도 지났을까. ‘퍽!’ 소리가 나며 장초인이 이마를 쥐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장초인의 입에서 나지막하게 신음 소리가 새어나왔다.
“으… 빌어먹을…….”
양진위가 구대헌에게 물었다.
“몇 초를 보았느냐.”
“죄송합니다. 하나도 보지 못했습니다.”
“좋다.”
양진위와 장초인이 다시 비무를 시작했다. 다시 일다경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때 장초인이 이번에는 왼쪽 가슴께를 쥐고 주저앉았다. 장초인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아… 씨발.”
“뭐? 씨발?”
“그래 씨발. 빌어먹을 새끼야.”
구대헌은 양진위가 욕을 하는 것은 자주 목격했지만 장초인이 욕을 하는 것은 처음 본지라 많이 놀랐다. 그것도 사형한테 하는 욕이라니.
양진위는 장초인이 욕지거리를 하자 이에 더욱 흥분했는지 막말을 하려다 말고 구대헌에게 물어보았다.
“몇 초를 보았느냐.”
“죄, 죄송합니다. 못 보았습니다.”
양진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 보거라.”
“예.”
양진위는 다시 장초인과 비무를 시작했다. 그런데 구대헌은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장초인의 검은 보이지 않는데 양진위의 검은 언뜻언뜻 보이기 시작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장초인의 검이 양진위의 검보다 더 빠르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장초인의 검이 더 빠르니 당연히 양진위가 수세에 몰려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고 둘은 계속해 검초를 나누고 있는 것이다.
잠시 시간이 지나니 양진위의 검은 더욱 느려져서 이제 구대헌의 눈에 일 초 일 초가 확연히 보이기 시작했다. 구대헌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사형의 검초를 눈여겨보았다.
양진위와 장초인의 비무는 계속해서 길게 이어졌다. 구대헌은 거의 반 시진 가까이 두 사람의 대련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변화가 생겼다. 지금까지는 양진위의 검초는 보였지만 장초인의 검초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얼핏얼핏 장초인의 검초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잠시 후 비무가 멈춰졌다. 양진위가 구대헌에게 물었다.
“내 검초는 보였지?”
“네.”
“장초인의 검초가 보였느냐?”
“마지막에 조금씩 보였습니다.”
“음… 좋다.”
구대헌이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마지막에 장사형의 검이 느려진 것입니까?”
“아니다. 장초인의 검은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속도였다. 네 눈이 적응해서 빨라진 것이다.”
“아…….”
“검초의 의미는 알겠느냐?”
“모르겠습니다.”
“질문이 있으면 해라.”
“예… 처음에는 양사형과 장사형의 검이 모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중도에 장사형의 검은 보이지 않지만 양사형의 검초는 보였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치는 실전을 통해 배워야지. 이리 와라.”
구대헌은 온몸을 지배하는 통증을 누르고 자리에서 일어나 씩씩하게 양진위 앞에 섰다. 장초인에게 목검을 받아들고 비무 준비를 했다.
“공격해라.”
“예.”
구대헌의 목검이 기쾌하게 양진위를 향해 쏘아졌다. 양진위는 자신의 목검을 들고 마중 나갔다. 구대헌은 이번에는 양진위의 검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아니 똑똑히 볼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양진위의 검은 구대헌의 검보다 훨씬 느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구대헌은 자신의 검이 양진위의 검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검로가 막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양진위의 목검에 자신의 목검이 부딪치는 순간 더 이상 검로를 이어가지 못하고 정지해버렸다.
구대헌은 양진위의 목검이 휘두르는 궤적에서 단순한 물리적인 무게가 아닌 엄청난 중압감을 받았다. 두 사람의 검이 떨어지고 양진위의 검이 구대헌의 이마를 노리고 다가왔다.
그 검은 너무나 느려서 구대헌은 쉽게 그 검을 쳐 낼 수 있어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구대헌의 목검은 이미 양진위의 목검이 발산하는 중압감에 눌려서 움직이지를 못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뻑!
구대헌은 이마에 극렬한 통증을 느끼고 뒤로 자빠졌다.
“연구해보도록 해라.”
구대헌은 머리를 감싸고 대답했다.
“예, 사형.”
이미 유시(5시-7시)가 되어 있었다. 사마평이 연무장에 도착해 기다리고 있었다. 양진위는 구대헌과 장초인을 돌려보냈다.
사마평은 멀어져가는 구대헌과 장초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부러워하고 있는 눈이었다. 구대헌의 훈련이 끝나기를 기다리면서 지켜보는 동안 부러운 마음이 생겼으리라. 양진위가 말했다.
“어딜 보고 있는 것이냐.”
“아, 죄송합니다. 사형.”
사마평은 지금 23세로 장초인을 제외하고는 27세인 양진위와 제일 나이가 가까운 사제였다. 그런데 양진위나 장초인이 대성을 달성하고 있는 데 비해서 사마평은 여섯째인 임억과 함께 20세가 넘도록 발전이 느린 문도였다.
양진위가 생각하기로 사마평은 무재(武才)라기 보다는 상재(商材)였다. 이미 그 점을 사마평이 상처받지 않도록 말을 다듬어서 얘기해 준 적이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사마평은 몇 년 전부터 사문 밖에서 장사를 하고 있었다. 사문에서는 사마평이 장사를 해서 얻는 수익은 숭인문을 위해 쓰지 않고 사마평 자신의 개인 재산으로 축재하도록 허락을 했다.
양진위는 한 시진 동안 사마평과 권각을 나누며 대련을 했다. 그리고 사마평의 권법이 조금이나마 발전할 수 있도록 지도를 했다. 수련이 끝나갈 무렵 양진위가 말했다.
“사마사제.”
“예. 양사형.”
“지금은 너에게 내가 권각술을 가르치고 있지만, 나중에 밤에는 거꾸로 너에게 내가 가르침을 구하면 안 될까?”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사형.”
“사부께서 내게 명령하시길, 이제 곧 나가서 돈을 벌어오라고 하시는데,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할지 막막하다.”
“하하. 사형. 알겠습니다. 제가 몇 수 전수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음. 좋군.”
사마평은 밝게 웃으면서 훈련을 끝냈다. 사마평은 나름대로 포부가 있었다. 지금은 장사를 해서 개인적으로 돈을 모으고 있지만, 자본금이 커지면 사업을 확대해서 숭인문이 재정 걱정을 하지 않도록 만들 생각이었다.
언제나 먹고살 일로 걱정하는 숭인문으로서는 큰 기대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