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범인을 만나? 오늘 너 혼자?”
꽤 놀랐는지, 호진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교통사고로 죽은 줄 알았던 이나가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는 사실보다, 하나가 직접 범인을 만났다는 사실에 더 충격 받은 것 같았다.
“그 놈이 뭐랬는데?”
“나한테는 한마디도 안했어. 형사한테는 이나 살인범이라고 자백했고”
“…”
“근데 거짓말이야.”
“…”
“그 새낀 날 알아보지도 못했어. 쌍둥이 치고는 안 닮긴 했지만.. 그래도 우린 쌍둥이야. 이나를 짝사랑했다는 놈이 날 못 알아본다고? 이건.. 완전히 말이 안 돼”
6살 때 사진을 보면 하나와 이나는 데칼코마니를 떠올릴 정도로 똑같이 생겼지만, 16살 때 사진을 보면 쌍둥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두 사람은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165cm 55kg인 이나와 170cm 47kg인 하나.
긴 생머리에 볼륨감 있는 몸매가 돋보이는 이나와 짧은 머리에 깡마른 몸을 가진 보이쉬한 분위기의 하나. 6살이든, 16살이든, 얼굴 자체는 똑같이 생겼지만, 분위기와 체형이 너무 달라서 잘 모르는 사람은 쌍둥이 보다는 많이 닮은 자매정도로 생각했다.
범인이라 주장하던 작자가 하나를 알아보지 못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진짜 짝사랑 했던 여자라면 쌍둥이란 사실을 몰랐을 리 없고, 하나를 못 알아볼 리 없었다.
“범인도 아닌데.. 왜..” 한참 만에 입을 열었지만 호진도 하나 못지않게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 얼굴이었다. “인터넷에서 기사 보고.. 거짓말 하는 놈일 거야. 관종 같은 애들 있잖아. 페이스 북에 자살 방송도 올리고.. 그런 놈들 중 하나겠지.”
위로라고 꺼낸 말이겠지만, 그 말이 하나의 화를 더 돋웠다.
“그렇다고 사람을 죽였다고 해? 너라면 그러겠니?”
“… 내가 그 형사랑 통화해 볼까? 연락처 알려줘 봐봐”
“뭐라고 할 건데? 그 놈이 범인 맞아요? 라고 물어볼 거야?”
“…”
“범인은 자기가 알아서 할 테니까. 신경 쓰지 말라더라. 웃겨 진짜.”
배웅하던 김형사가 모든 것은 경찰이 알아서 할 테니 아무 걱정하지 말라 했을 때, 하나는 실소를 내뱉었다.
- 4년 전에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요? 김형사님?
차갑게 돌아서긴 했지만, 하나 역시 무기력하기는 마찬가지 였다. 무기력한 자신 때문에, 안일한 김형사의 말 때문에, 가짜 자백을 한 가짜 범인에 대한 의문 때문에 하나의 불안감은 커졌고, 이는 분노와 흥분으로 표출되었다.
“범인인지 아닌지 확인해 달래놓고는 내가 범인 아니라니까.. 완전 굳어서 어쩔 줄 몰라 하더라. 그래놓고 어떻게 범인을 잡겠다는 거야. 그것도 4년이나 지난 지금에서! 그래놓고 자기가 무슨 형사라고!”
“누가 시킨 걸 수도 있지” 호진이 불쑥 말을 내뱉었다. “죽이라고 시킨 걸 수도 있고.. 거짓 자백을 시킨 걸 수도 있고”
“누가? 왜?”
“…”
“말이 되는 소릴 해. 누가 그런 짓을 시켜? 그리고 어느 미친놈이 누가 시킨다고 사람을 죽였다고 해. 잘못했다가는 진짜 살인범으로 몰릴 수도 있는데!”
짜증을 주체할 수 없던 하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냉장고에서 냉수를 꺼내 벌컥 마시는 바람에 목이 얼어붙을 것 같았지만, 끓어오르는 화는 식지 않았다.
등 뒤로 호진이 일어나 작업실로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하나도 잘 알았다.
호진에게 화낼 이유가 없다는 걸. 하나를 위로해주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걸.
머리로는 알았지만, 가슴이 따라주지 않는 게 문제였다.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다시 물을 따를 때,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박부진’이었다. 경찰서를 나온 이후 5번째 울리는 전화였다. 이 순간 가장 받고 싶지 않은 사람의 전화지만, 받지 않으면 받을 때까지 걸 게 뻔했다. 차라리 받는 게 나은 일이라 하나는 침실로 들어가, 방문을 닫고 전화를 받았다.
“왜?”
하나의 목소리는 날카로웠지만, 늘 있었던 일인 양 박부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너 무슨 일 있지”
김형사가 눈치 없이 엄마에게까지 연락했나 싶었지만, 하나는 일단 잡아떼기로 했다.
“뭐가?”
“좀 전에 꿈을 꿨는데.. 양이 나무에 매달린 채 울고 있더라. 이거 분명히 네 꿈이야. 너 무슨 일 있지. 그렇지?”
“일은 무슨 일. 개꿈 꿔놓고 왜 또 난리야”
“개꿈이라니! 내가 너 공무원 합격할 때도 그렇고.. 그 때 그 사건 때도 그렇고.. 내 꿈 틀린 적 한 번도 없다!”
그 사건이란 이나의 사건을 두고 한 말이다.
4년 전 그날에는 “꿈에 이나가 나와서 나한테 울면서 인사하더라. 이나한테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혹시 어디 아프니?”라고 했고, 2년 전 하나가 호진과 살림을 합칠 때 “하나야 집으로 염소 한 마리가 들어가던데 무슨 일 있니?”라고 했다.
자식에게 아무 관심도 없고, 왕래도 없는 사람이 자식에게 생기는 일에는 귀신같은 촉을 발휘하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지만, 하나는 엄마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줄 생각 따윈 전혀 없었다.
“별일 없으니까 신경 꺼. 전화 끊는다.”
“잠깐 하나야..”
문 너머 둔탁하게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침실 문을 열자 도어락이 잠기는 게 보였다.
“? 호진아?”
현관에 놓여있던 호진의 신발이 보이지 않았다. 작업실 문을 열었지만, 방안은 텅 비어 있었다. 거실 겸 부엌을 지나 베란다로 나가 창문을 열자, 1층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아반떼 뒤꽁무니가 보였다. 호진과 하나가 함께 쓰는 차였다.
“호진아!”
있는 힘껏 외쳤지만, 차 소리에 묻힐 뿐이었다.
그 때까지도 엄마 전화가 연결되어 있던 탓에 ‘하나야’ 라는 애끓는 외침이 들렸지만, 하나는 전화를 끊고 호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은 갔지만, 받는 사람이 없었고, 그 사이 아반떼는 골목 모퉁이 너머로 사라졌다. 다시 전화를 걸자, 이번에는 통화대기음으로 연결되었다. 호진이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너 갑자기 어디 가. 전화는 왜 안 받아’
짧은 카톡 메시지를 쓰는 순간에도 손이 떨려 하나는 몇 번이나 오타를 고쳐야 했다.
이나를 죽였다는 범인이 나타난 날, 가짜임을 알게 된 날, 누구보다 위로해줘야 하는 사람이 아무 말 없이 집을 나가다니. 아무리 하나가 소리를 지르고, 화를 냈다고 해도. 호진의 행동은 이해되지 않았다. 하나의 화에 기름을 부은 것은 곧이어 도착한 카톡 메시지였다.
‘일이 있어서 잠깐 어디 가는 중이야. 미안. 나중에 전화할게. 오늘 못 들어 갈 거야’
“야!”
결국 하나의 분노가 폭발했고, 손에 들린 핸드폰이 벽에 걸린 커플 액자를 향해 날아갔다.
7. 금요일
“정주임. 사람 죽은 거 봤다며?”
말이 어떻게 돌았는지, 하나는 교통사고 목격자에서 뺑소니 사망사고 목격자로 변해 있었다.
“누가 그래요?”
“다들 그러던데 뭐. 어제 반차도 그래서 낸 거라며? 경찰이 온 거 보면 진짜 큰 사고였나 보다~ 목격자가 정주임 혼자야? 무섭지 않았어?”
걱정하는 척 말을 꺼냈지만 박주임의 눈은 호기심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나에게 일어나는 범죄는 싫지만, TV나 신문으로 타인이 겪은 잔혹 범죄를 시청하길 좋아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그 대상이 본인이 되는 건 불쾌한 일이었다. 그들의 호기심을 깨뜨리려면 타인의 사건이 아니라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이라고 느끼게 할 필요가 있었다.
“무서웠죠. 그 여자 머리가 완전히 으깨졌었는데.... 피가 거의 시냇물처럼 흘렀거든요.”
“아우~ 뭘 그렇게 디테일하게 기억해~ 정주임 비위도 좋다. 난 그런 거 못 볼 것 같거든~”
귀까지 막으며 호들갑 떨면서도 미소는 짓고 있어서, 하나는 속이 뒤틀리는 느낌이 들었다.
“근데 그 여자 이름이 박현주란 것도 들으셨어요?”
박주임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못 들으셨구나~ 이름도 똑같고.. 체격도 비슷해서.. 처음에는 주임님인 줄 알고 얼마나 놀랬는데요~”
박주임의 얼굴이 창백해지자, 하나의 속도 조금 편안해졌다.
“어제 들었는데, 나이도 똑같더라구요. 주임님이랑.”
“…”
“주임님도 신기하죠? 이름이랑 나이가 같은 여자가 죽었다니까”
“…”
*
- 짜증나.
굳은 표정으로 서둘러 화장실을 나가는 박주임을 보며 속이 후련한 것도 잠시. 하나는 속 좁게 반응한 자신에게 화가 났다.
- 이렇게 밖에 안 되는 인간이야. 정하나?
찾아오는 민원인들마다 날카롭게 반응하고, 보다 못한 옆자리 김주무관이 화난 민원인을 달래기를 수차례. 하나는 오전 내내 날 선 칼날을 내뿜고 있었다.
날선 감정은 연락이 되지 않는 호진 때문이니, 애꿎은 타인에게 화를 내선 안 된다 생각했지만, 몸의 반응이 좀처럼 머리를 따라가지 못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하나는 머리가 아프다는 이유로 점심을 건너뛰고 휴게실로 향했다. 벽에 ‘금연’이란 표어가 붙어 있었지만 하나는 창문을 열고 쇼파에 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하얀 연기가 스르르 흩어지기 시작하자 들끓던 속도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마음이 차분해지자, 호진에 대한 화도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전날 밤 집을 나간 호진은 끝내 아침까지 돌아오지 않았고, 지금까지 전화한통 없었다. 이나의 살인범을 직접 만났다고 고백한 날, 하나가 가장 괴로운 날, 사라진 호진의 행동을 이해할 순 없었지만, 평소 호진답지 않은 행동이란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호진이 하나를 홀로 둔 적이 있었던가?
하나가 우울하거나 아플 때, 누구보다 살뜰히 챙겼던 것이 호진이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겼나?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지만, 하나는 그런 불안감 따위는 떨쳐버리기로 했다.
26세 남자. 완벽한 성인이니, 나갈 이유가 있어서 나간 거고, 전화를 못할 이유가 있어서 못한 것일 뿐이다. 호진에 대한 화를 가라앉히고, 그에게 다시 전화를 걸려는 찰라, 하나의 전화가 울렸다. 액정에 뜬 것은 031로 시작하는 낯선 번호였다.
“12가5678 번 차주 되시죠?”
전화를 건 남자는 다짜고짜 호진이 타고 간 아반떼 차번호를 댔다.
“네”
“17번국도 근처에 차가 버려져 있는데.. 잠깐 여기 와주셔야겠습니다.”
“제 차가요?”
“전화거신 분은 누구시죠?”
"파출소 윤형식 경장입니다.”
‘오천파출소?’
오천이란 말을 듣는 순간 하나는 4년 전 죽은 이나가 떠올라서,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