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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과 거짓말
작가 : 달려라
작품등록일 : 2018.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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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작성일 : 18-12-10     조회 : 59     추천 : 1     분량 : 5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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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무슨 정신으로 지하철을 타고, 어떻게 집까지 걸어왔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집 근처 골목길이었다. 비슷비슷한 빌라들 사이, 하나와 호진이 사는 빌라 2층이 보였다. 불이 꺼져 있고, 환기를 위해 살짝 열어둔 창이 그대로 인 걸로 봐서 호진은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 같았다.

 • 한적한 시골길에서 발견된 차.

 • 병원에서 사용한 유현수란 이름.

 • 이나 살인범을 만나려고 한 행동.

 • 살인범과 유사한 신체조건.

 오늘 알게 된 사실들을 계속 곱씹었지만, 그들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지 전혀 짐작이 안 됐다. 모호함 속에서 확실한 건, 호진이 하나를 속였다는 사실뿐이었다.

 어젯밤. 하나가 이나 살인범을 만났다고 말했을 때 호진은 당황한 얼굴이었다. 그 때는 ‘이나가 교통사고가 아닌 살인으로 죽었다는 사실에 놀란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가짜 살인범이 나타나서 놀란 것임이 분명했다.

 가짜에 반응한다는 건, 그가 진짜를 안다는 걸까?

 - 아냐. 그건 불가능해.

 하나는 힘껏 고개를 저었지만, 한번 피어오른 불신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딱 한번. 호진과 살인범 발사이즈가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사랑하는 남자를 끔찍한 범인과 비교했다는 생각 자체가 미안해서 그날 저녁 더욱 호진에게 다정하게 굴었었다. 그날 하나가 느낀 죄책감은 단순한 느낌일 뿐일까?

 그날의 기분을 떠올리자 하나는 기분 나쁜 전율이 흘렀다.

 

 - 아냐. 정하나. 쓸데없는 생각이야. 호진이는 네가 제일 잘 알잖아.

 그를 안지 4년이고, 함께 산지 2년이다. 그가 이렇게까지 그녀를 속였을 리 없고, 누군가에게 해를 끼칠 성격이 아니었다. 절대로.

 갑자기 사라진 것도, 이나 살인범을 만나려 한 것도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뿐이다. 호진은 4년 전 이나 사건과 아무 관련이 없고, 그가 하나에게 가짜 이름을 쓴 것도 모두 하나를 위한, 미처 말하지 못한 어떤 사정 때문임이 분명했다. 하나는 지금이야 말로 호진을 믿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를 믿기 위해서는 그의 대답이 필요했고, 대답을 듣기 위해서라도 하나는 꼭 호진을 찾아야 했다. 문제는 어떻게 찾느냐 였다.

 가족이나 본인이 아니니 핸드폰 위치 추적이나 통화내역 확인은 불가능할 것이다.

 웹소설 작가라는 직업적 특성 때문에 호진의 인맥은 넓지 않았고, 그들마저도 하나가 아는 사람들뿐이었다. 그들이 호진의 비밀을 알거나, 호진이 그들에게 연락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돈은? 사람이 움직이려면 돈을 쓸 수밖에 없다. 카드를 쓰든, 현금을 쓰든.

 목요일 밤에 나갔으니 최소한 한번은 카드를 썼을 것이고, 사용처를 확인하면 그의 이동경로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호진의 지갑에 든 카드 역시 하나 명의로 된 것이어서 내역을 확인하는 건 어렵지 않았고, 하나의 핸드폰에 해당 카드사의 앱도 깔려 있었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앱을 클릭해서 내용을 확인했지만, 목요일 오후 집 근처 마트에서 쓴 49,000원이 마지막 사용내역이었다.

 집을 나간 후 한 번도 카드를 쓰지 않았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자신의 흔적을 감추기 위함일까. 진짜 사고를 당한 것일까? 다시 피어오르는 불길한 기운을 떨치기 위해 하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 때 호진의 체크카드에 있는 현금인출기능이 떠올랐다.

 호진은 현금보다 카드를 선호하는 사람이었지만,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현금을 쓸 수도 있었다. 인터넷 뱅킹을 확인하자 목요일 밤 10시 30분, 역삼역 ATM에서 70만원을 3번에 걸쳐 인출한 내역이 있었다. 총 210만원. 밤 10시 30분에 뽑기에는 꽤 많은 돈이었다.

 왜 갑자기 200만원이 넘는 돈이 필요했을까?

 불길했고, 불안했다. 무슨 일이 생긴 게 확실한 것 같아서.

 떨리는 마음을 누르며 빌라 입구 문을 잡는 순간, 필로티 형태의 1층 주차장 구석에 서 있는 아반떼가 하나 눈에 들어왔다. 범퍼가 찌그러지고, 핏자국이 묻은 상태 그대로였다.

 그제야 하나는 자신의 멍청함을 깨달았다.

 호진이 타고 나갔고, 그 후 버려진 차라면 분명 그곳에 호진의 흔적이 남아있을 터. 가까운 곳에 증거를 내팽개쳐두고 멀리서 찾다니 바보 같은 짓이었다. 하나는 자신의 한심함에 혀를 차며, 아반떼를 향해 빠르게 다가갔다.

 

 뭔가 나올 거야. 라는 기대감에 차를 뒤졌지만, 나온 것은 주유소 스티커가 붙은 휴지와 선글라스, 음료수 병들 뿐이었다. 호진의 행방을 추론하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단서들이었다.

 참담한 기분이 든 순간, 시거 잭에 연결된 충전선이 하나의 눈에 들어왔다. 하이패스 단말기에 연결되어 있던 충전선 이었다. 블랙박스와 내비게이션을 가져간 사람이 하이패스 단말기까지 제거한 것이다.

 블랙박스와 내비게이션에 이어 하이패스 단말기까지.

 누군지 알 수 없지만, 호진의 행보를 알리기 싫은 사람임은 분명했다.

 그가 누구든 호진의 행보를 100% 감추는 것에는 실패했다. 다행히 하이패스는 하나 명의로 가입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차가 오천읍에서 발견되었으니, 서울 톨게이트를 지나갔을 것이고, 하이패스에 결제 시간이 찍혀 있을 것이다. 하이패스를 이용하지 않았다면 이 역시 쓸모없는 일이지만, 일단 확인은 해봐야 했다.

 ‘빙고!’

 놀랍게도 썩은 동아줄인 줄 알았던 것이 탄탄한 새 동아줄이었다.

 하이패스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사용 내역을 확인하자 금요일 새벽 1시에 중랑 톨게이트를 나갔고, 2시 10분에 서진교 톨게이트로 진입했다가 4시에 서진교 톨게이트를 빠져나온 기록이 나왔다. 즉, 아반떼는 서울에서 진교시로 이동했고, 진교시에서 나온 후 오천읍 외진 숲 속에서 어떤 사고를 당한 것이다.

 그리고 아반떼에는 ‘GS칼텍스 중랑주유소’ 스티커가 붙은 휴지가 있었다. 최근 한 달 간 호진은 차를 쓴 적이 없었고, 하나가 아는 한 중랑에 아는 사람도 없었다.

 그렇다면 톨게이트를 나가기 전 GS칼텍스 중랑주유소에서 주유를 했다는 뜻이 된다.

 운이 좋으면 호진을 기억하는 직원을 만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에 하나는 빠르게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13.

 택시가 주유소에 도착한 것은 밤 11시가 막 넘은 시간이었다.

 

 “아 네. 오늘 새벽에 오셨어요”

 턱과 볼에 여드름 자국이 선명한 알바생은 하나가 내민 핸드폰 속 사진을 한눈에 알아봤다.

 “싸운 건지.. 다친 건지.. 입술에 피가 묻어 있고, 눈이랑 이런 데 있잖아요? 거기가 빨갛게 된 게 누구한테 맞은 거 같았어요. 좀 횡설수설하기도 하셨고.. 확실히 좀 이상하셨어요.”

 호진이 누군가에게 맞았다?

 호진이 일부러 잠적한 것이 아니라, 진짜 위험에 빠졌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여드름 알바생이 호진을 확실히 기억하는 건 그의 얼굴에 남은 상처와 핏자국 때문도 있지만, 도착한 시간이 손님이 뜸할 때이고, 조수석에 앉은 여자가 상당히 예뻐서라고 했다. 예쁜 여자란 말에 하나는 한의원의 최지은 간호사가 떠올랐다. 호진이 관심을 표현했던 여자이자, 같은 고향 출신이라고 거짓말했던 상대.

 최지은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최지은의 사진이 없었다. 여드름 알바생이 최지은의 얼굴을 확인할 수 없다면, 하나가 직접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CCTV를 보고 싶다는 요청에 알바생이 난색을 표했고, 하나가 건넨 십만 원도 머뭇대며 받지 않으려 했지만, 이어진 하나의 말에는 다른 의미로 머뭇댔다.

 “남자친구가 유서를 남기고 사라졌어요.” 뻔한 연기력에 뻔한 얘기였지만, 갓 스물이 된 소년티를 벗지 못한 어린 청년에게는 꽤 효과적인 얘기였다.

 “사람들은 그 사람이.. 저랑 헤어지려고 사기 치고 여자랑 떠난 거라는데.. 전 못 믿겠거든요. 여기서 그 사람 봤다는 사람이 있어서 온 거예요. 진짜 남자친구가 사람들이 말하는 그 여자랑 같이 있는 거면, 전 깨끗이 잊을 거예요. 여기서 봤다는 말은 절대 안 할게요. 그냥 확인만 하는 거예요. 부탁드려요”

 눈물이 나지 않았음에도 하나의 목소리는 울음을 머금은 듯 잠겨있었다.

 하나는 오만 원짜리 지폐 두 장을 추가로 알바생 손에 쥐어주며, 절대 비밀로 할게요. 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십 만원이란 현금 덕인지, 가라앉은 하나 목소리 덕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한참을 머뭇대던 알바생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아무한테도 말하시면 안 돼요 라고 말했다.

 “네! 말 안할게요!”

 그 순간 얼마나 기뻤는지 하나는 순간 환한 미소를 지을 뻔했다.

 

 CCTV 모니터는 주유소 편의점 안쪽 창고 겸 사무실에 있었다. 마침 알바생이 밤 10시부터 아침 6시까지 홀로 편의점과 주유소를 책임지고 있던 덕에 하나 혼자 조용히 CCTV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알바생이 호진을 봤다는 자정이후부터 중랑 톨게이트를 빠져나간 1시 이전까지의 기록만 확인하면 됐지만, CCTV가 편의점 입구, 편의점 제일 안쪽, 편의점 계산대, 주유소 진입로, 주유소 퇴로, 주유소 중앙 등 총 6군데에 설치되어 있어서 확인할 내용은 꽤 많았다.

 제일 먼저 확인한 것은 진입로 CCTV 였다.

 눈에 익은 아반떼가 주유소로 들어온 것은 12시 35분. 차 안에 호진과 여자 한명이 앉아 있었지만 여자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주유소 중앙을 비추는 CCTV 영상을 확인하니, 주유기 앞에 멈춰서는 아반떼의 측면이 보였다. 뛰어나온 알바생이 운전석에 앉은 호진과 얘기를 나눈 후 주유를 시작했다. 그 사이 조수석에 앉아 있던 여자가 내리더니 화면 좌측으로 사라졌다.

 - 저 여자가 최지은 일까?

 CCTV카메라가 약간 부감인데다 여자가 모자를 눌러쓴 탓에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다시 편의점 입구에 설치된 CCTV 영상을 확인하자 화장실로 들어가는 여자가 보였다. 등에 그려진 용그림은 또렷하게 보였지만, 얼굴은 모자 그늘에 가려진데다 밤이어서 잘 보이지 않았다.

 용무늬 점퍼를 입은 여자가 화장실을 갔다 오는 동안 호진은 주유를 끝내고 차를 퇴로 구석으로 옮긴 후 누군가와 통화를 시작했다. 여자가 돌아온 후에도 통화는 계속 됐다. 통화 시간은 거의 8분에 달했고, 틈틈이 주먹을 쥐고 손을 아래위로 흔드는 등 호진은 꽤 흥분한 모습으로 통화를 했다. 누군가와 전화로 싸우는 것이다. 누구와 싸우는 것일까?

 전화를 끊은 호진이 차를 타고 주유소를 빠져나가는 영상까지 본 후, 다시 처음부터 진입로, 퇴로, 주유소 중앙 쪽 영상을 모두 확인했지만, 용무늬 점퍼를 입은 여자의 얼굴이 보이는 영상은 없었고, 통화 외에 다른 일을 하는 호진의 영상도 없었다.

 하나는 알바생 몰래 용무늬 점퍼를 입은 여자가 찍힌 CCTV영상을 캡쳐한 후 자신의 메일로 보냈다. 허민지 조무사라면 그녀가 최지은인지 아닌지 알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주유소를 나와 시계를 보니 막 3시가 지나고 있었다. 카카오 택시를 호출하기 위해 꺼낸 핸드폰 화면에는 김형사에게 온 부재중 전화 1통이 찍혀 있었다. 전화가 온 시간은 1시 30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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