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비밀과 거짓말
작가 : 달려라
작품등록일 : 2018.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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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 토요일
작성일 : 18-12-10     조회 : 52     추천 : 0     분량 : 5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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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토요일

 

 금요일 밤이 지난 거리는 흩뿌려진 토사물과 누렇게 짓밟힌 목련꽃으로 더럽혀져 있었다.

 고개를 조금만 들면 푸른 하늘을 수놓는 하얀 벚꽃의 향연을 볼 수 있었지만, 햇살 때문에 눈이 아픈 하나는 벚꽃 대신 짓밟힌 목련꽃만 바라봤다.

 8시 20분.

 한의원 진료는 9시 부터라고 적혀 있었다.

 제일 먼저 출근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막내인 허민지 간호사일 가능성이 높았다.

 8시 24분.

 잰걸음으로 건널목을 건너는 통통한 볼의 허민지가 보였다. 하나가 1층 카페 문을 열고 나오자 허민지는 잠깐 멈칫했지만, 가벼운 목례를 하며 하나를 지나치려 했다.

 “최지은 씨는 오늘 출근 안 해요?”

 “…”

 돌아본 허민지의 눈이 빨갛게 충혈 되어 있었다. 잠을 설친 걸까? 운걸까? 하나는 허민지에게 눈을 떼지 않은 채 자신의 핸드폰에 저장된 용무늬 점퍼 차림의 여자 사진을 보여줬다.

 “이 사람 누군지 알아요?”

 “…”

 허민지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입을 열진 않았지만, 핸드폰 속 여자가 누군지 알아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이 최지은 씨예요?”

 허민지는 대답 대신 30분까지 출근이란 말을 남기고 한의원으로 향했고, 하나는 그녀를 따라 한의원으로 올라갔다.

 분홍색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허민지가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고, 선반과 책상을 마른 걸레로 닦는 동안 하나는 전날 저녁에 앉았던 쇼파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허민지가 하나를 데리고 1층 카페로 간 것은 깡마른 조무사가 출근한 8시 45분경이었다. 커피가 나오자마자 허민지는 캡쳐한 사진 속 여자가 최지은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는 얘기부터 꺼냈다.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데다 화질이 나빠서 였다. 하지만, 짐작 가는 다른 여자는 있다고 했다.

 “지은언니랑 여기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거 봤어요. 얼굴을 본 건 아니구요. 뒷모습만 봤는데 그 때도 이 옷을 입고 있었어요. 체격도 비슷하구요.”

 허민지가 용무늬 점퍼를 입은 여자의 뒷모습을 본 것은 지난 수요일 점심때였고, 수요일은 아현 지구대에 이나를 죽였다는 살인범이 나타난 날이기도 했다.

 “항상 같이 점심을 먹는데 그 날은 약속 있다고 언니가 먼저 나갔거든요”

 “최지은 씨는 오늘 출근 안 했어요?”

 커피 잔을 쥔 허민지의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불길한 징조였다.

 “집에 안 들어왔어요.” 허민지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유현수 씨는요.. 언제부터 연락이 안 되신 거예요?”

 “목요일 밤이요”

 허민지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햇살이 따뜻한데다 실내였으니 추워서 떤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최지은 씨도 목요일에 안 들어왔어요?”

 허민지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급하게 고향에 갈 일이 있다고 오후에 조퇴했어요. 어제는 월차였구요”

 “그럼 오늘 출근해야 하는데.. 안 한 거네요?”

 “전화도 안 받고, 카톡해도 답장이 없어요. 목요일 밤.. 부터요. 오늘 아침에도 연락했는데 전화가 아예 꺼져 있어요.”

 “최지은 씨 가족 연락처 없어요? 그쪽으로는 연락 안했어요?”

 이번에는 허민지가 고개를 저었다.

 “이미 해봤는데.. 다른 사람이었어요. 언니 이름 처음 듣는데요.”

 “…”

 “비상연락망에 가짜 연락처를 적은 것 같아요.”

 가짜 연락처를 적은 최지은과 가짜 이름을 쓴 호진이 함께 사라진 건 우연일까?

 두 사람을 연결해서 생각하기는 싫었지만, 분리해서 생각할 순 없는 상황이었다.

 “원장님은 주말까지만 더 두고 보자고 하셨어요. 내일까지 연락 없으면.. 그 때 경찰에 신고하신다고. 원래 언니는 지각 한 번 안 했던 사람이거든요.”

 “최지은씨 고향이 진교시인건 확실해요?”

 “네. 언니가 그렇게 말하기도 했고. 이력서에도 그렇게 적었데요. 제가 이력서를 본 건 아니지만, 원장님이 언니가 일했던 병원이랑 졸업 증명서 확인하셨으니까 맞을 거예요.”

 평소 최지은에 대한 평가가 나쁘지 않았는지, 허민지는 필사적으로 최지은을 옹호하고 있었다.

 “근데요..” 허민지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언니 남편은.. 좋은 사람이었어요?”

 “…”

 “그냥.. 언니가 너무 걱정돼서요. 나쁜 일이 생긴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말을 돌리긴 했지만, 허민지의 말에는 최지은과 같은 날 사라진 유현수-하나는 호진으로 알고 있는-를 의심하는 감정이 숨어 있었다. 그가 최지은을 위험에 빠뜨린 게 아닌가 하는.

 호진을 나쁘게 생각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선뜻 좋은 사람이에요 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 그는 좋은 사람일까?

 그동안 다른 사람 행세를 하고, 하나 몰래 이나 살인범을 만나려 한 것을 생각하면 좋은 사람이라 말할 순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그를 좋은 사람이 아니다 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하나의 자살을 막고, 다시 웃음을 찾도록 도와준 것은 좋은 사람이란 증거니까.

 *

 6시간 전, 핸드폰에 찍혀 있던 김형사의 부재중 전화 1통이 하나 머릿속에 떠올랐다.

 새벽 3시. 전화하기 적당한 시간은 아니었지만, 하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벨이 세 번 울릴 때까지 받지 않으면 끊을 작정이었지만, 벨이 두 번 울렸을 때 전화를 받았다.

 “이 시간에 전화하는 거 실례 아닙니까.”

 새벽임에도 김형사의 목소리는 꽤 쌩쌩했다.

 “형사님도 늦게 하셨잖아요.”

 “…”

 “뭐 알게 된 거 있으시죠?”

 그렇지 않고서야 1시 30분에 전화할 리는 없으니까.

 잠깐의 침묵에서 김형사의 머뭇거림이 느껴졌다.

 “신원도용 이었습니다.”

 신원도용. 반쯤은 각오했던 일이지만, 막상 현실이 되니 하나는 자신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유현수란 사람은 지금 진교시에 살고 있답니다. 김호진이란 이름은 처음 듣는다고 했구요”

 또 진교시.

 “정하나씨?”

 “형사님이 보시기에..”

 “…”

 “이제.. 전 뭘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집 아니죠?”

 “네”

 “집에 가세요. 나머지는 제가 더 알아보겠습니다.”

 “…”

 이나의 죽음도, 이나를 죽였다는 범인도, 호진의 정체도 알아내지 못했으면서 김형사는 또 자신이 알아서 하겠다고 했다.

 

 알람음에 눈을 뜨니 횡단보도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건널목을 건너며 하나는 김형사와 허민지에게 들은 정보를 머릿속으로 조합했다.

 • 호진이 사라진 목요일 저녁, 최지은도 행방을 감췄다.

 • 호진은 진교시에 사는 유현수 명의를 도용했다.

 • 사라진 최지은은 호진의 본명이 유현수란 걸 알고 있었고, 두 사람은 같은 고향 출신이었다.

 • 호진이 타고 나갔던 아반떼는 진교시 인근인 오천읍에서 발견됐고, 아반떼의 하이패스에도 진교시를 다녀온 흔적이 있었다.

 모든 것의 중심에 진교시가 있었다. 진교시에 뭔가 있는 건 확실했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진교시 보다 더 하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건 책장에서 발견된 사진 한 장 이었다.

 6시간 전, 김형사와 통화를 할 때 하나는 하나의 기억을 떠올렸다.

 ‘이사 온 첫날의 기억’

 호진이 사는 집에 하나가 들어온 날 새벽. 잠에서 깬 하나는 옆에 호진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침실을 나오자 닫혀 있는 서재 문 아래로 불빛이 새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호진아. 라며 문을 열자 책장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던 호진이 소스라치게 놀라 일어나는 바람에 책 한 권과 책에 끼워진 봉투 하나가 떨어졌다. 책 제목이 뭔지, 어떤 봉투인지 보기 전, 호진이 봉투와 책을 재빨리 집어 들어 등 뒤로 감췄고 갑자기 들어오면 어떻게 하냐며 하나를 서재에서 밀어냈다.

 호진이 하나에게 화를 낸 것이 그 때가 처음이기도 했지만, 지나치게 큰 화여서 하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새벽에 서재 문을 열었다는 것 때문에 그 정도로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낸다는 건 분노 장애가 있거나, 성격에 심각한 결함이 있는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다음날 호진은 전날 화낸 것을 사과하며, 가능한 서재에 들어오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했다. 자신의 일터이니, 방해받고 싶지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 18평짜리 작은 집에 굳이 출입금지 공간을 만드는 것이 못마땅했지만, 동거 첫날부터 싸우고 싶지 않아서 하나는 호진의 요청을 받아들였고, 지난 2년간 호진의 동의 없이 서재에 들어간 적은 거의 없었다.

 2년 전 그 날 호진이 등 뒤로 감췄던 것은 무엇일까?

 왜 하나가 서재에 들어오는 걸 막았을까?

 하나는 2년 전 호진이 쪼그려 앉아 있던 책장 앞에 섰다.

 제일 아래 칸은 잘 보지 않는 책을 두는 곳인 듯, 책들이 가로 세로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어서 책 한권을 빼려 해도 힘을 꽤 주어야 했다.

 2년 전, 호진은 어떤 책을 빼서 살피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 그 때 뺐던 책이 아직 있다는 보장도, 같은 자리에 뒀다는 보장도 없었다. 하나는 다시 서재를 둘러봤다.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들어왔던 서재이니, 낯설지는 않았지만 하나는 낯선 눈으로 공간을 살피기 시작했다.

 서재는 가로 세로 2.5m정도의 방으로 창문 오른쪽에 책상이 있고, 2m높이의 책장이 왼쪽 벽을 꽉 채워져 있는 구조였다. 책상에는 모니터 하나와 A4종이와 노트, 연필과 볼펜들이 흩어져 있었고, 책상 옆 선반에 프린터기의 전원이 꺼지지 않은 채 놓여있었다. 하나는 프린터기의 전원을 끄며 서재를 찬찬히 살폈다. 벽에 걸린 하나와 호진의 폴라로이드 사진들. 모니터 위쪽에 가득한 메모가 적힌 포스트잇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풍경이었다.

 다시 서재를 찬찬히 살펴볼 때 책장 제일 아래 칸에 쌓인 A4 상자들이 살짝 어긋나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호진은 PC로 소설을 썼고, 파일로 업로드했지만, 업로드 전 항상 썼던 내용을 프린트해서 읽어본 후 수정하는 과정을 거쳤기에 늘 500매짜리 A4 묶음을 넉넉히 보유하고 있었다. 그 묶음 중 하나가 살짝 틀어진 채 밖으로 튀어나온 것이다.

 호진이 집을 나서기 전 마지막으로 들어갔던 곳이 서재란 것이 떠올랐다. 서재에서 마지막으로 한 것이 A4 종이를 만진 것일까?

 삐뚤어진 A4 묶음을 꺼냈지만, 특별한 게 없었다. 제일 아래까지 모두 꺼냈을 때 접혀 있는 서류 봉투 하나가 A4묶음 사이에서 떨어졌다. ‘꽃집’이란 업체명이 적힌 봉투였고, 안에는 10cm*6cm 사이즈 의 사진 한 장이 나왔다. 사진을 본 하나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여러 번 깜빡였다. 뭔가 잘못 본 게 아닌가 싶어서였다. 그러나 아무리 눈을 감았다 떠도, 사진 속 여자는 하나, 본인이었다.

 상복을 입은 채 납골당 입구에 앉아 울고 있는 4년 전 하나의 사진이 거기 있었던 것이다.

 하나와 호진이 만난 것은 이나의 장례식이 끝난 지 두 달이 지난 후였다. 두 사람이 만나기 전에 찍힌 사진을 호진이 갖고 있다? 왜? 어떻게?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발견에 하나의 뇌는 움직임을 멈췄다.

 인생은 예측불허라지만, 지금의 예측불허는 끔찍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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