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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과 거짓말
작가 : 달려라
작품등록일 : 2018.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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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작성일 : 18-12-10     조회 : 80     추천 : 0     분량 : 5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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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대호 퀵서비스는 대로에서 한 블록 들어간 골목 안쪽에 위치한 4층짜리 건물에 위치해있었다.

 페인트칠이 벗겨지고, 외벽에 금이 가 있는 낡은 건물이었지만, 1층에 입주한 편의점과 프랜차이즈 카페 덕에 겉에서 봤을 때는 그럭저럭 괜찮아 보이는 상태였다.

 어둑한 입구 벽에는 건물에 입주한 모든 사무실의 우편함이 있었고, 우편함에는 각 사무실 명칭이 적혀 있었지만, ‘대호 퀵서비스’와 ‘꽃집’이 적힌 우편함은 없었다.

 우편함은 없었지만, 3층 창문 중 하나에는 ‘꽃집’이란 글자가 시트지로 붙어있고, 그 위에 비바람에 색이 바랜 ‘대호 퀵서비스’ 간판이 작게 붙어 있었다. 대호 퀵서비스와 꽃집이 이미 이사 갔고, 외부 간판과 창문 시트지를 아직 떼지 못한 것일 수 있지만, 업체명이 없는 여러 우편함 중 하나가 대호 퀵서비스와 꽃집일수도 있었다.

 직접 확인하는 게 제일 나은 일이어서, 하나는 ‘꽃집’ 간판이 붙어 있던 3층을 향해 계단을 올라갔다.

 건물 내부는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낡고 관리가 안 된 상태였다. 2층 계단 중간에 위치한 남녀 공용 화장실은 문이 반쯤 떨어진 채 덜렁거리고 있었고, 역한 암모니아 냄새가 계단을 오르는 내내 따라다녔다.

 숨을 참으며 겨우 도착한 3층에는 총 6개의 사무실이 있었다.301호와 302호에는 ‘재인 기획’ ‘원구상사’ 라는 사무실 명이 붙어 있었지만, 303호부터 306호까지는 업체 명 없이 호수만 붙어 있었다. 6개의 사무실 어디에도 ‘꽃집’이나 ‘대호 퀵서비스’ 이름이 붙은 곳은 없었다.

 사무실 명이 없는 303호~306호 중 하나가 꽃집인 걸까? 아니면 진짜 이사를 간 걸까? 밖에서 봤던 ‘꽃집’ 시트지가 붙은 창문 위치를 따져보면 303호가 꽃집일 것 같았다.

 20대 여자 혼자,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게 내키지는 않았지만, 하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303호 문을 두드렸다.

 조용했다. 살짝 문고리를 잡고 돌려보니, 문은 잠겨있었다.

 응답이 없기는 304호와 305호, 306호도 마찬가지였다.

 하나는 다시 막막해짐을 느꼈다.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어서 2층과 4층을 확인하기 위해 계단을 다시 오르려는 순간 어디선가 작은 전화벨 소리가 들렸다. 둔탁하고 낮은 음이었다.

 전화벨을 따라 복도로 들어가자, 소리가 조금 더 크게 들렸다. 안쪽으로 더 들어가려는 찰라, 벨소리가 끊겼다. 벨소리의 진원지를 찾지는 못했지만, 하나가 서 있던 계단과 가까웠던 301호와 302호는 아니었다. 그 때, 꽃집 전화번호가 하나 머릿속을 스쳤다.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을 때, 이곳 어디에서 전화가 울린다면 그 곳이 하나가 찾는 꽃집일 것이다.

 하나는 핸드폰을 꺼내 02-741-1122 번호를 눌렀다. 핸드폰 너머 착신 연결음이 들리기 시작하자 어디선가 전화벨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일반 유선 전화벨 소리가 아니라, 멜로디가 있는 핸드폰 벨소리였다. 벨소리는 303호 문 너머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나가 전화를 끊자 303호 문 너머의 벨소리도 멈췄다.

 누군가 사무실에 핸드폰을 두고 나간 게 아니라면, 303호 안에 사람이 있다는 뜻이 된다.

 조금 전 노크했을 때 응답은 없었지만, 하나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힘차게 문을 두드렸다.

 “꽃집 맞죠?”

 몇 번의 두드림 끝에 문 너머로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잠금장치가 해제되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가는 문손잡이를 보자, 하나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18.

 “우린 고객에 대해 자세히 묻지 않습니다.”

 낡고 냄새나는 복도와 달리 사무실은 쾌적했고, 상큼한 꽃향기까지 났다.

 넓고 깨끗한 책상과 매끄러운 가죽 쇼파, 서류가 빽빽한 책장. 구석에 놓인 공기 청정기와 앙증맞은 디퓨저 까지. 책상에 놓인 다섯 대의 핸드폰과 두 대의 전화기만 아니라면, 세무사나 법무사 사무실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았다.

 예상과 다른 사무실처럼, 낮고 굵은 목소리를 가진 남자도 예상 밖의 모습이었다.

 이런 음습한 건물에서 심부름센터를 운영하는 남자라면, 굵은 금목걸이에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불룩 나온 배를 허리띠로 지탱하고 있는 스타일일거라 생각했지만, 쇼파에 앉아 있는 남자는 날렵한 몸에, 매끈하게 재단된 양복을 무심히 걸친 평범한 30대 후반의 사무직 남성 같은 이미지 였다.

 303호 남자는 이 곳 ‘꽃집’이 심부름센터라는 것을 숨기지 않았지만, 하나가 내미는 호진의 사진이나, 4년 전 이나 장례식장에서 찍힌 사진에 대해서는 모두 처음 보는 것들이라 했다. 하나 집에서 발견된 ‘꽃집’ 서류 봉투는 자신들의 것이 맞지만, 그 봉투가 왜 거기에 있는지도 알 수 없다고 했다.

 “워낙 의뢰자가 많으니.. 4년 전 일까지 제가 일일이 기억할 순 없죠.”

 “여기 혼자 운영하세요? 다른 직원들 중에서 알 만한 사람은 없을까요?”

 “직원들이야 몇 명 있지만, 4년 전이면.. 남아있는 직원들이 없다고 봐야죠. 이쪽일이 워낙 이직률이 높아서요.”

 “그럼 서류로는 확인 안 되나요? 여기도 기록 같은 건 남겨 놓으실 거잖아요. 4년 전이면, 아직 폐기 안하셨을 것 같은데요?”

 “지금 의뢰인 정보를 알려달라는 겁니까?”

 “공짜로 알려달라는 건 아니에요. 돈 드릴게요.”

 “…”

 “4년 전 이 사진에 대해 의뢰한 사람이 목요일 밤에 다른 사건을 의뢰했을 거예요. 목요일에 온 사람도 기억 안 나는 건 아니시죠? 의뢰비로 200만 원 정도를 냈을 거예요”

 “손님” 차분한 남자의 목소리가 하나의 말을 멈추게 만들었다. 낮고 담담한 목소리였지만, 하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차가운 냉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우리가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게 뭔 줄 아십니까?”

 “…”

 “신의입니다. 의뢰자가 우리에게 입 닥치는 걸 요구하면, 우린 입을 닥쳐야 합니다. 그게 이 사업의 룰 이구요.”

 “…”

 “손님이 보기에는 우리가 불법이나 저지르고, 돈이면 뭐든 하는 사람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돈만 쫓았다면, 이 바닥에 이렇게 오래 버틸 수 없죠. 특이 우리처럼 치부를 드러내는 사업들은 그런 신의가 더 중요한 법이국요”“… 이 사람이 실종됐다면요?”

 남자의 눈썹이 꿈틀, 하긴 했지만, 그게 다였다.

 “우리 때문입니까?”

 “…”

 “우리 때문도 아닌데.. 왜 우리한테 희생을 요구하는 겁니까?”

 맞는 말이었다. 지금 하나는 303호 남자에게 진상을 부리는 것이다.

 하지만, 303호 남자가 순순히 입을 열지 않는 것처럼, 하나도 순순히 물러날 생각은 없었다. 303호 남자를 어떻게 설득할 지를 고민하던 그 때, 303호와 어울리지 않는 물건 하나가 하나의 눈에 들어왔다.

 서류가 빽빽한 책장 선반에 303호 남자와 5살가량의 여자아이와 찍은 작은 사진 액자가 놓여있었던 것이다. 사진 속 남자는 지금보다 몇 년 전인 듯 꽤 젊어보였고, 활짝 웃고 있었다. 옆으로 아이의 사진이 몇 개 더 있었지만, 5살 또래거나 더 어릴 때일 뿐, 5살 이후의 사진은 없었다.

 딸의 최근 사진이 없다는 건 무슨 뜻일까? 이혼일까? 사고일까.

 “따님이세요?”

 순간, 303호 남자의 얼굴에 날카로운 살기가 스쳤다. 하나가 그의 상처를 건드린 게 확실했다.

 “이거 언제 찍힌 건지 모르시죠?” 하나는 4년 전 자신의 사진을 다시 내밀었다.

 “동생이 살해당했는데, 걜 납골당에 묻고 나왔을 때에요”

 303호 남자의 차가운 눈이 하나를 바라봤다.

 “쌍둥이 여동생이었는데, 시체를 발견한 게 저예요. 유일한 목격자도 저고. 근데.. 범인은 못 잡았어요.” 착각일까? 하나는 303호 남자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4년 만에 동생을 죽인 용의자가 잡혔는데.. 지난 목요일 밤에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어요.”

 정확히 말해 진짜 용의자는 아니었지만, 세세한 설명은 건너뛰기로 했다.

 “근데 호진이가 담당형사를 찾아가서 그 용의자를 만나게 해달라고 했데요. 당연히 경찰은 거절했구요. 9시 40분에 경찰서에서 나와서, 10시 30분에 역삼역 ATM에서 200만원을 뽑았더라구요. 그 뒤로 연락이 안 되구요”

 “…”

 “4년 전 동생을 죽인 범인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호진이가 뭘 아는 건 확실해요.”

 “…”

 “경찰은 자기들이 조사할 테니까 저더러 집에 가 있으래요. 근데 전 못 그러겠거든요. 4년 전에도 범인 꼭 잡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랬는데.. 결국 못 잡았잖아요. 그런데 제가 어떻게 경찰을 믿고 가만히 있겠어요?”

 “…”

 하나는 잠깐 말을 멈추고 303호 남자를 바라봤다. “전 호진이가 뭘 찾으려 했는지, 알고 싶을 뿐이에요. 그게 동생 죽음이랑 관련 있다고 생각하구요”

 “…”

 “사장님 말씀이 맞아요. 의뢰인 정보는.. 기밀에 해당하는 거겠죠. 그래서 부탁드리는 거예요. 제발 도와주세요.”

 “…”

 303호 남자는 하나를 가만히 바라볼 뿐 말이 없었다. 좀이 쑤시던 하나가 참지 못하고 먼저 입을 열려는 순간 남자가 입을 열었다.

 “원칙상 저희가 해드릴 말은 없습니다. 다만 의뢰비용에 대해서는 설명드릴 수 있습니다.”

 “…”

 “200만원이면, 긴급으로 누군가의 신원을 파악할 때 의뢰하는 금액입니다. 이름이나 집 위치, 핸드폰 번호, 차번호 중에서 하나만 가져오면 나머진 저희가 알아내는 거죠. 보통 2시간에서 4시간 정도 걸린다고 안내하지만, 사실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습니다. 보통.. 1시간 내외면 충분하죠. 알고 싶은 사람의 주소나, 이름, 연락처.. 개명했으면, 개명 전 이름이나, 전과까지도 알 수 있습니다.”

 303호 남자는 호진의 사진을 들어올렸다.

 “낯익은 얼굴이지만 솔직히 제가 만나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 헷갈리기도 합니다.”

 이번에는 호진의 사진을 내려놓고, 하나의 사진을 들어올렸다.

 “4년 전에 우리가 찍은 사진이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습니다. 일단 카메라 종은 우리가 갖고 있는 게 맞거든요. 이 사건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4년 전에 좀 특이한 의뢰가 하나 들어오긴 했습니다.”

 “…”

 “어떤 남자가 신문기사를 갖고 와서 신문에 나온 여자를 찾아 달랬거든요. 제 기억이 맞는다면, 살인사건에 대한 기사였고, 찾아달라는 여자는 유족이었구요”

 살인사건과 유족. 하나는 속이 메슥거리기 시작했다.

 “호진이가 송원진에 대해 의뢰한 거 맞죠?”

 “… 송원진이란 이름으로 의뢰한 사람은 없습니다”

 “…”

 “차번호로 의뢰한 사람은 있었습니다만.”

 “차주가 송원진이구요?”

 “아뇨. 50대 여자였습니다. 아들이 하나 있는”

 “…”

 4년 전, 이나가 죽었다는 기사를 보고 하나를 찾으려 한 호진.

 4년 후, 이나를 죽였다고 가짜 자백을 한 송원진을 찾으려 한 호진.

 그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 걸까? 거의 예상했던 결론이었지만, 충격이 없지는 않았고, 머릿속이 빙글빙글 도는 듯해서 하나는 중심을 잡기 위해 의자 손잡이를 꽉 잡아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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