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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과 거짓말
작가 : 달려라
작품등록일 : 2018.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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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작성일 : 18-12-10     조회 : 369     추천 : 0     분량 : 5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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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눈을 뜬 하나는 그 때까지 자신이 울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하나가 택시를 탈 수 있게 도와준 것은 고성희 였다.

 낯선 여자와 연인이 함께 나가자, 불안함을 느낀 고성희가 뒤를 몰래 쫓아온 것이다. 그녀는 영문도 모른 채 맥없이 쓰러지는 하나를 부축해 주고, 택시를 잡아주고 기사에게 잘 부탁한다는 당부까지 해줬지만, 하나는 고성희에게 고맙다는 말은커녕, 고맙다는 생각도 못했다.

 호진이 죽은 상황에서, 하나가 무슨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호수에 뜬 시체를 발견한 것은 2시간 전으로 하나의 아반떼가 발견된 숲속 근처에 있는 호수였다. 부패로 얼굴은 망가졌지만, 남자 바지 뒷주머니에 ‘김호진’의 신분증과 ‘정하나’ 명의의 신용카드가 든 지갑이 있어서 하나에게 연락이 온 것이었다.

 

 호진이 죽었다.

 이나에 이어 호진까지 사라졌다.

 소중한 사람들은 왜 모두 떠는 거지?

 도저히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신은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고통만 준다는데, 왜 그녀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고통만이 오는 건지 하나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택시가 신월동 국립과학수사원 앞에 도착했을 때는 눈물은 그쳤지만 몸이 떨려서 좀처럼 내릴 수가 없었다. 택시기사의 짜증 끝에 겨우 요금을 내고 내린 후에도 하나는 한참을 계단에 앉아 있었고, 윤경장과 통화한 지 1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가 말한 지하 시체 안치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여기까지 오라고 한 것은..” 눈물 자국이 선명한 하나를 본 윤경장은 자꾸 말을 머뭇거렸다. “신원확인이 필요해서입니다. 신분증이 있긴 했는데..”

 “가짜여서요?”

 “…” 윤경장의 눈이 동그래졌다. 어떻게 알았냐 라는 뜻이다.

 평소라면, 동거남이 가짜 신분증을 가지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부터 따졌겠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윤경장은 하나에 대한 취조는 잠시 미루기로 했다.

 “오늘 힘들면 내일 오실래요?”

 하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 차가운 곳을 다시 올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볼게요.”

 떨리는 무릎을 붙잡고 일어섰을 때 윤경장이 말했다.

 “마음 단단히 먹으셔야 합니다.”

 “…”

 “사체 상태가 좋지는 않습니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 사체를 생각하면 안 되고, 부패가 진행되는 중이라 더 보기 안 좋을 거란 윤경장의 설명이 뒤따르지 않았다 해도 끔찍할 거란 생각은 들었다. 시체 안치실을 가득 채운 역한 냄새가 속을 계속 뒤집었기 때문이다.

 이틀 전 경찰서 유리벽 너머에 송원식이 앉아 있을 때처럼, 유리 너머 하얀 덮개가 씌워진 스테인리스 침대가 보였다. 윤경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흰 가운을 입은 남자가 덮개를 거뒀고, 하나는 순간 고개를 돌렸다. 화상이 사망원인인 듯 머리카락은 완전히 타버려 흔적만이 남았고, 얼굴과 상반신은 터져 버린 수포와 벌겋게 벗겨진 피부로 뒤덮여 있었다.

 “정확한 것은 검시를 해봐야 알겠지만.. 실질적인 사망 원인은 두부 손상으로 추정됩니다. 원한이 많았는지, 의식을 잃은 후에 몸에 불을 지른 것 같습니다. 호수에 버려진 건 죽은 다음인 것 같구요.”

 - 누군가 일부러 호진을 죽였다. 누가? 왜?

 새로운 의문은 흔들리던 하나의 정신을 바로 잡는 효과가 있었다.

 하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다시 정면을 바라봤다.

 호수에서 떠오른 시체답게 죽은 남자의 몸은 퉁퉁 불어 있었다. 피부가 하얗게 부풀어 오른 하체와 달리 화상을 입은 상체는 피부를 한 겹 벗긴 듯 붉었고, 터져버린 물집 때문에 벗겨진 살점이 군데군데 보였다. 눈썹은 타버려 흔적이 없었지만, 머리카락은 껍질이 벗겨진 두피에 조금 남아 있었다. 퉁퉁 불은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는 반지를 낀 흔적이 있었다. 하나의 눈길을 알았는지 윤경장이 설명을 덧붙였다.

 “반지는 없었습니다. 호수에 빠지기 전에 누가 뺀 것 같습니다”

 아니야.

 한참을 바라보던 하나는 스테인레스 침대에 누워 있는 남자가 호진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호진보다 살집이 많고, 털이 없는 것은 물에 있어서 분 것일 수 있고, 화상을 입었을 때 털도 타버렸다고 생각할 순 있지만, 여자의 직감은 그가 호진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고, 직감에 쐐기를 박은 것은 왼손 중지였다. 호진은 특이하게도 중지와 약지 길이가 같았지만, 스테인리스 침대에 누워 있는 남자는 중지가 약지 보다 길었다.

 “아니에요. 저 사람 호진이 아니에요”

 “원래 물에 빠진 시체는 잘 못 알아봅니다. 다시 보시면..”

 “호진이는 세 번째 손가락이랑 네 번째 손가락 길이가 같아요. 아무리 물에 오래 있었다고 해도 손가락 길이가 달라지는 건 아니잖아요? 저 남자 확실히 호진이 아니에요”

 “… 아..씨. 맞는 거 같은데..”

 “그럼 형사님이 직접 증명해보세요. 전 아니니까”

 “… 씨..발.. ”

 무례한 말이었지만, 기쁨이 마음을 가득 채운 탓에 하나의 귀에는 윤경장의 무례함이 들어오지 않았다.

 

 호진이 죽은 게 아냐

 호진이는 살아있어.

 

 하지만 빠르게 차올랐던 기쁨만큼 두려움이 빠르게 찾아왔다. 스테인리스 침대에 누워 있는 남자가 호진이 아니란 것이 호진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호진 역시 저 남자와 같은 형태일 수 있다는 생각과 함께, 호수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호진의 모습이 떠올랐고, 하나는 순간 몸이 부르르 떨렸다. 쓸데없는 생각을 떨쳐내기 위해 고개를 저었지만, 한 번 떠오른 망상은 좀처럼 하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21.

 “정하나씨!”

 “제가 김형사님께 일일이 보고할 의무는 없잖아요!”

 윤형식 경장이 몰래 정하나의 신원을 확인한 끝에 김진만 형사가 담당한 사건과 관련된 걸 알게 되기까지, 김진만 형사가 호진으로 추정되는 시체가 발견됐다는 소식을 들을 때까지, 하나 아반떼에 묻은 피가 호수에서 발견된 남자의 피라는 사실이 확인되는데 까지는 채 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김호진씨가 가짜 신원을 사용하고, 정이나 살인용의자한테 접근까지 하려고 했는데.. 차가 발견됐다는 얘기를 왜 안 해요? 도대체 무슨 생각입니까! 설마 정하나씨도 김호진씨랑 같은 편입니까!”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

 “그럼 김형사님은.. 송원진 그 자식 풀어주고 왜 말 안했는데요. 피해자보다 가해자 보호가 더 중요했어요?”

 경찰은 ‘수사 중’이란 핑계로 아무 말도 안 하면서, 하나가 ‘수사 중’이어서 말을 안 했다고 범인 취급하다니, 하나는 경찰의 행태가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다.

 김형사가 범인을 잡기 위해 증거를 모으는 것처럼, 하나에게도 사랑하는 이가 죄를 지었는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증거를 모으는 과정이 필요했다. 죄를 지었다면, 죗값을 치르게 해야 하지만, 죄를 확신하기까지 진실을 소화할 시간은 필요했고, 하나도 진실을 소화하기 위한 과정에 놓여 있을 뿐이었다.

 “참 재밌어요. 경찰 아저씨들. 범인은 그렇게 못 찾으면서 용의자 만들기는 엄청 빠르잖아요. 호진이가 거기 연관됐다는 증거가 어딨어요? 김형사님은 호진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전 아직 호진이 믿거든요? 만약에 호진이 시체가 발견되면.. 그 땐 어쩔 건데요? 미안하다고 하고 또 4년 잠수 탈거예요?”

 “…”

 또 저 표정.

 김형사 얼굴에 드리워진 표정이 보기 싫어서 하나는 고개를 돌렸다.

 4년 전, 경찰대학 졸업 후 2년간의 파출소 근무를 마치고 마포 경찰서 강력반에 배정된 김형사는 자신도 딸을 가진 아버지이니 딸을 위해서라도 꼭 범인을 잡겠다고 했었다. 그 때 김진만 형사의 얼굴에는 자신감과 열의가 가득했다.

 두 달 뒤 이나의 사건이 미제사건이 됐을 때, 그의 멱살을 잡고 날뛰던 박부진이 기절했을 때, 병원 복도에서 박부진이 깨어나길 기다릴 때의 표정이 딱 지금의 표정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음을 깨달은 자의 얼굴.

 실패를 받아들이기 싫지만, 누가 봐도 실패이자,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걸 안 사람의 표정.

 “미안합니다.”

 “…”

 “범인 못 잡아서 미안합니다. 그건 진심입니다”

 “…”

 4년 전 그날의 얼굴을 본 탓인지. 조금 전 흥분을 쏟아낸 탓인지, 자리를 일어나려던 하나는 맥이 탈 풀리면서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놀란 김형사가 하나를 부축하려 했고, 하나는 그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좀처럼 다리에 힘이 주어지지 않아서 끝끝내 김형사의 손을 뿌리치지 못했다.

 **

 “어디까지 알아냈습니까?”

 하나가 이틀 동안 거의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걸 안 김형사는 그녀를 지하 구내 식당으로 끌고 가, 김밥과 컵라면을 안겨줬다.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후라, 제대로 된 음식은 그것뿐이었다. 텅 빈 위장이 요동치는 탓에 좀처럼 김밥이 넘어가지 않았지만, 겉으로는 그런 티를 내지 않고, 하나는 연신 김밥과 라면 국물을 들이켰다.

 김형사의 질문에 가능한 천천히, 유리하게 대답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 어디까지 말하면 좋을까?

 호진이 정말 죄를 지었다면. 그것이 이나와 관계된 것이라면. 절대 그를 용서할 수 없지만, 만약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것이라면. 어떻게든 그를 보호해야 했다.

 호진이 송원진의 신상내역을 돈으로 샀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마음 같아서는 아무것도 알려주고 싶지 않았지만, 뭐라도 내밀지 않으면 김형사는 절대 물러나지 않을 터여서, 하나는 그가 아는 것이자, 가장 관계가 적을 것 같은 내용을 말했다.

 “호진이랑 같이 있던 사람이 있었어요”

 하나는 라면과 김밥을 연이어 먹으며, 주유소 CCTV 화면에서 캡쳐한 용무늬 점퍼 차림의 여자 사진을 보여줬다. 어차피 뒷모습이고, 화질이 좋지 않아 얼굴도 잘 보이지 않았지만, 김형사는 핸드폰 속 여자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누군지 모릅니까?”

 하나는 고개를 저으며 계속 김밥을 먹었다.

 “예뻤데요. 주유소 직원 말이”

 “…”

 “김형사님은 알아낸 거 없어요?”

 사진을 보던 김형사의 눈이 빠르게 하나를 향했다가 다시 핸드폰 사진으로 돌아갔다.

 하나를 살피던 눈빛이었다. 뭔가를 기대하고 던진 것은 아니었지만, 분명 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하나는 한참 움직이던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뭐예요?”

 “…”

 “김형사님!”

 “유현수 씨가 누군지 알았습니다.”

 “전에 말하셨잖아요? 진교시에 사는 사람이라고”

 “…”

 “말을 꺼냈으면 말을 해야죠! 김형사님은 자꾸 왜 말을 먹고 그래요?”

 목소리가 꽤 컸는지 주방에 있던 아줌마가 고개를 삐쭉 내밀었다. 늦은 오후라 식당에는 하나와 김형사밖에 없었지만, 하나는 목소리를 낮췄다.

 “유현수가 누군데요”

 “김호진씨가 유현수씨 신분을 도용한 건 맞습니다. 유현수씨는 진교시에서 태어나서 그 곳을 떠난 적이 없고, 지금도 거기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동생이 있답니다.”

 “…”

 다시 김형사는 말을 멈췄고, 하나의 마음속에 불길한 생각이 빠르게 번져갔다.

 왜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 걸까? 엄마의 꿈은 왜 꼭 들어맞는 걸까?

 “동생과 연락이 끊긴 지는 4년이 넘었답니다. 동생 이름이 유현준인데,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김형사는 핸드폰 화면에 사진 하나를 띄운 후 내밀었고, 하나는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받아 들었다. 그곳에는 눈부신 햇살 때문에 눈살을 찌푸린 군인의 사진이 있었다. 까맣게 그을린 얼굴과 촌스러운 스포츠머리 때문에 깡마른 얼굴이 더 초췌해 보였다. 컴퓨터 앞에 박혀 있느라 허여멀건 해진 피부와 부스스한 헤어스타일, 웃으면 주름이 잡히는 눈은 없었지만, 사진 속 군인이 호진이란 건 명백한 사실이었다.

 떨리는 눈을 들었을 때 그녀를 지켜보는 김형사와 눈이 마주쳤다.

 “유현준이 전역 직전에 찍은 사진이랍니다.”

 유현준. 그것이 호진의 본명이었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지만, 낯설지 않다는 건 하나의 착각이었을까?

 다시 하나에게 알 수 없는 점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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