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비밀과 거짓말
작가 : 달려라
작품등록일 : 2018.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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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 8년 전
작성일 : 18-12-10     조회 : 372     추천 : 0     분량 : 5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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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진교시에 사는 유현준의 가족은 현준이 사라졌다는 얘기에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이미 4년 전 겪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김형사는 그들을 만나고 싶은지 물었지만, 하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원하는 건 호진으로 알고 있는 현준의 행방이었지, 그의 행방을 모르는 가족이 아니었다. 데려다 준다는 김형사의 제안을 거절하고 홀로 지하철을 탄 하나는 머릿속에 흩어진 점들을 다시 정리하기 시작했다.

 

 • 호진의 본명은 유현준이다.

 • 호수에서 발견된 남자는 누군가에 의해 살해됐다. 그는 호진의 지갑을 가지고 있다.

 • 호진은 이나를 죽인 사람이 송원진이 아니란 걸 알았다. 하나 말 때문이 아니라, 처음부터

 어쩌면 누가 죽였는지 알 수도 있다.

 • 이나 죽음에는 ‘준’이란 사람이 관련되어 있다.

 • 송원진에게 가짜 자백을 지시한 자는 여자. 하지만, 누군지 모른다.

 • 호진은 낯선 여자와 동행했다.

 • 낯선 여자는 최지은과 만난 적이 있다.

 • 최지은은 호진이 사라진 날 이후부터 연락이 안 된다.

 

 낯선 여자, 최지은, 호진. 그들은 함께 있는 것일까? 가짜 자백을 시킨 사람이 용무늬 점퍼를 입은 그 여자일까? 호진이 가짜 이름을 쓴 건 왜일까? ‘준’은 누구일까?

 연이은 의문들이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해지고 있었다. 더 복잡해지기 전에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야했다.

 가장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그나마 정보가 많은 최지은 이었다.

 허민지는 최지은의 고향이 진교라고 했고, 진교에 있는 진교한방병원에서 일했다고 했다. 그녀의 예쁜 얼굴을 떠올리자 얼짱이란 단어가 함께 떠올랐다.

 진교시는 인구 12만이 채 안 되는 작은 도시다. 그곳에 최지은 정도의 미인이 있었다면 꽤 유명했을 터. 하나는 ‘진교시 얼짱’을 검색창에 입력한 후 돋보기 버튼을 눌렀다.

 제일 먼저 검색되는 것은 ‘얼짱몸짱 카페’와 ‘얼짱 자연효소’였다. 그 외는 얼짱 강아지, 얼짱 고양이 사진과 ‘얼짱 김민지랑 배우 김정원이 사귄다는데 맞아요?’ 라는 지식인 질문들이었다.

 ‘진교 간호대 최지은’ ‘간호사 최지은’ ‘진교시 최지은’으로 검색하자 ‘의인상을 받은 최지은 학생’이란 기사가 뜨긴 했지만, 얼굴이 달랐다. 검색으로 최지은의 정체나 행보를 아는 것은 무리일 것 같았다. 하지만 집까지 6개의 역을 더 가야 해서 하나는 마지막으로 ‘진교시 미인 간호사’를 쳤다.

 ‘진교시 간호사’와 ‘간호사’들에 대한 검색어 사이 ‘미인대회 입선 간호사’ 라는 검색어가 보였다. 해당 웹페이지를 클릭하자 ‘미인대회에 입선한 미모의 간호사’ 라는 제목아래 ‘제17회 진교 한방아가씨 眞’ 띠를 맨 최지은 간호사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짙은 화장과 과하게 부풀어진 머리가 어색했지만, 분명 허민지와 함께 사진을 찍은 최지은 간호사였다. 아래에는 간호사로 일하던 중 우연히 참여하게 됐다는 그녀의 인터뷰 내용이 실려 있었다. 기사를 읽어 내려가던 하나는 순간 멍해지는 바람에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칠 뻔했다. 문이 닫히기 직전 겨우 뛰어내린 하나는 사진 아래에 적힌 이름을 다시 확인했다. 제발 자신이 잘못 본 것이길 바라면서. 기사에는 사진 속 여성의 이름이 ‘최보람’이라고 적혀 있었다. 최지은이 아니라.

 최보람. 최지은. 이번에는 어떤 것이 그녀의 본명일까?

 호진과 최지은. 가짜 이름을 쓰고, 함께 사라진 두 사람.

 작은 실타래 하나가 풀리긴 했지만, 실뭉치는 더 복잡하고 단단해진 느낌이었다.

 **

 “정하나! 너 뭐하는 얘야!”

 계단 중간을 돌아서자마자, 날카로운 목소리가 하나의 귀를 때렸다. 며칠 째 전화를 해댔던 엄마 박부진이 현관 앞 계단에 앉아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여긴 왜 왔어”

 “이나 죽인 새끼 어떻게 됐어”

 “조용히 좀 해!”

 더러운 진흙탕에 발이 빠진 기분에 엄마까지 나타나니 하나는 허리까지 진흙탕에 들어간 기분이었다. 호진과 함께 살던 공간에 엄마를 들인 적 없고, 엄마도 그녀의 집에 들어가려 한 적은 없었지만, 밖에서 이나에 대해 얘기할 일은 아니어서, 하나는 현관문을 열었고, 엄마 박부진은 하나를 밀치고 먼저 집으로 들어섰다.

 “형사 놈이 뭐래. 이나 죽인 놈 다시 잡았데?”

 “욕 좀 하지 마! 그 사람 범인 아냐”

 “말이 되는 소릴 해! 그 새끼가 자기 입으로 자백했잖아. 우리 이나 죽였다고!”

 “아니래! 미친 놈이래! 정신병자!

 하나는 화가 났다.

 왜 엄마는 다른 엄마들처럼 자식을 따뜻하게 감싸 안지 않는 거지?

 왜 자식의 문제보다 자신의 문제를 더 크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지?

 “궁금하면 엄마가 직접 가서 알아봐! 아니면 엄마 남편 시키던가! 괜히 여기 와서 귀찮게 하지 말고!”

 “야!”

 “아! 쫌! 나도 힘들다고!”

 한계에 부딪힌 하나가 화를 내며, 가방을 집어던지는 바람에 식탁에 있던 견과류 상자가 가방에 밀려 바닥으로 떨어졌다.

 호진의 실종, 그의 거짓말에 이어 시체 확인에 엄마의 신경질까지. 하나는 이제 진짜 한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분노가 심상치 않다고 느꼈는지 박부진도 잠깐은 입을 닫았다. 하나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돌아봤을 때, 박부진은 바닥에 흩어진 아몬드를 줍고 있었다.

 됐어. 그냥 가. 라고 말했지만, 박부진은 못 들은 척 계속 아몬드만 주웠다. 불쌍한 엄마 코스프레를 하듯. 그 모습이 더 얄밉고 싫어서 고개를 돌리려는 찰라, 박부진의 시선이 어딘가 멈추더니 그대로 몸이 굳는 게 보였다. 그녀가 본 것은 선반 옆에 세워진 액자, 이틀 전 하나가 깨뜨린 호진과 하나의 커플액자였다. 하나는 엄마가 호진의 얼굴을 본 게 처음이어서 유심히 보는 것이라 생각했다.

 집으로 친구들이 놀러올 때마다 엄마는 ‘너희 부모님은 뭐하시니?’ ‘넌 반에서 몇 등이니?’ 라고 물었고, 친구가 돌아간 후에는 걘 공부를 못하니까 놀지 마, 걘 부모가 이혼해서 안 돼 라며 하나와 이나의 주변을 차단했던 것이 박부진이었다. 아빠의 손찌검은 막지 않으면서, 친구들은 막는 엄마가 혐오스러워서, 하나는 단 한 번도, 그 누구도 엄마에게 소개하지 않았다. 소중한 사람이라면 특히 더.

 “얘 누구니?” 박부진은 액자에 시선을 둔 채 물었다. “얘가.. 네 남자친구니? 여기 같이 사는?”

 “뻔한 걸 왜 물어”

 “얘 어딨니?” 툭하면 목소리를 높이고, 성질내기 일쑤인 박부진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하나는 그제야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이나 죽인 놈 때문에 통화할 때 얘도 옆에 있었니?”

 “왜 그래? 호진이 본 적 있어?”

 “호진이? 호진이라... ”

 불길했다. 박부진은 의문이 가실 때까지, 질문을 던지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지 말을 삼키는 사람이 아니었다.

 “너 언제 얘 처음 만났다고 했지? 너한테 처음부터 호진이랬니?”

 처음부터? 하나는 의아해졌다.

 “무슨 뜻이야. 처음부터라니. 엄마 호진이 알아?”

 “…”

 “엄마?”

 “너 나랑 가자” 박부진은 다짜고짜 하나의 손을 끌고 나가려 했다.

 “뭘 어디가!!”

 “이 자식 오기 전에 가야 할 거 아냐!”

 “얘가 누군데!”

 울 것 같은 박부진의 얼굴을 순간 하나의 머릿속에 유현준이란 이름이 번쩍 하고 떠올랐다.

 바보. 어떻게 그 이름을 잊었을까?

 들어본 이름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그 이름일 줄은 짐작도 하지 못했다.

 “엄마.. 호진이 이름 뭔지 알지?”

 “…”

 “유현준.. 맞지?”

 박부진의 몸이 떨리더니 감은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마치 무성 영화의 한 장면처럼 소리 없는 오열이 시작됐다. 하나의 눈도 감겼다. 눈물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멍청함이 부끄러워서.

 유현준. 어떻게 그 이름을 잊을 수 있을까?

 유현준. 죽은 이나의 첫 번째 남자친구이자 8년 전 그 사건의 공범이었다.

 

 

 23. 8년 전.

 

 “아. 씨발. 졸라 더워”

 “…”

 “버스는 왜 이렇게 안 와.. 으.. 짱 나”

 버스 안내 표지판만 덜렁 서 있는 허허벌판에서 언제 올지 모르는 버스를 기다린 지 10분.

 햇살이 뜨거운 6월 말 오후 2시임을 감안한다 해도, 이나의 짜증은 참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씨.. 그냥 네 방에서 자면 안 돼? 몰래 들어가면 되잖아. 이불 뒤집어쓰고 꼼짝 안 하면 아무도 모를 거라고.”

 외부인 출입금지인데다, 3명이 같이 쓰는 기숙사 방에 들어가겠다니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안 된다는 말을 수없이 반복한 터라, 하나는 대답대신 이나를 째려봤다.

 “됐다. 됐어. 아 씨 졸라 짱 나”

 계속 불만을 쏟아내던 이나는 급기야 담배를 꺼내 물었다. 학교가 바로 길 건너인데 담배라니, 하나는 어이가 없어서 이나 입에 문 담배를 뺏어 던졌다.

 “정이나 미쳤어?”

 “씨발! 무슨 짓이야!”

 “씨발? 야!” 하나도 화를 참지 못해 소리를 질렀다.

 “이.. 씨,,”

 스스로도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더 이상 하나를 향해 눈을 부라리지는 않았지만, 뭐가 그렇게 화가 나고 못마땅한지 이나는 욕설과 함께 버스 안내 표지판 기둥을 발로 차며 성질을 부렸다.

 원래도 말을 예쁘게 하지는 않았지만, 누군가에게 이유 없이 욕을 하거나 쓸데없는 고집을 피운 적은 없었다. 갑자기 하나 학교를 찾아와서 기숙사에 며칠 있겠다고 고집피우고, 같이 가출하자고 하는 것은 이나 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혹시…

 못마땅하게 이나를 보던 하나 마음에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아.. 뭐야!”

 하나가 다짜고짜 이나의 티셔츠를 들춰서 등과 배를 확인하자 놀란 이나가 거칠게 뿌리쳤다.

 “아빠가 또 때린 거야?” 너무 빨리 뿌리치는 바람에 제대로 보진 못했지만, 이나 옆구리에는 누렇게 변한 멍이 있었다.

 “아냐”

 “정이나!”

 “진짜 아니라니까!” 이나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

 “요즘은 안 때려”

 “그럼 멍은 왜 들었는데!”

 “…”

 “정이나!”

 이나의 팔을 잡는 순간 하나의 가슴이 철렁 했다. 이나의 팔이 떨고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 무슨 일이 생긴 것이다. 이나에게.

 갑자기 하나를 찾아온 것도, 집으로 가기 싫어하는 것도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나 너.. 무슨 일 있지..”

 이나는 미간에 주름을 잡은 채 멀리 길 끝만 바라봤다. 결국 초조해진 하나가 먼저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야!”

 “하나야”

 갑자기 이나가 목소리를 깔며 진지한 얼굴로 하나를 바라봤다.

 “넌 내 편이지?”

 “…”

 “내가 뭘 해도 날 믿어줄 거지?”

 이나의 눈이 떨리고 있었다. 술 취한 아빠를 피하기 위해 벽장에 숨었을 때, 어둠 속에 보였던 눈이 딱 이런 눈이었다.

 “… 버스 왔다”

 “이나야”

 하나가 이나의 팔을 잡으려는 순간 갑자기 이나가 하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얼마나 힘껏 끌어안았는지, 하나는 잠깐 동안 숨이 막혔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이나는 버스에 탄 뒤였다. 지갑이라도 있었다면 하나도 그 버스를 따라 탔겠지만, 기숙사에 모든 것을 두고 몸만 나온 상태라 하나는 “이나야!”를 외치며 손을 흔들 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나는 하나를 볼 수 있는 오른쪽 창가가 아닌, 왼쪽 창가에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있었다. 하나가 아무리 이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이름을 불러도 이나는 고개를 들지 않았고, 그것이 사건 전 이나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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