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담배를 꺼내던 홍선중이 하나를 빤히 봤다.
“이나랑 현준이 퇴학당할 때, 걔들 말고 퇴학당하거나 징계 먹은 사람 없었나요?”
“그건 왜?”
“얼마 전에 준이라는 친구가 이나를 만나고 싶다고 회사로 찾아왔거든요. 그 친구가 이나한테 주라고 뭘 두고 갔는데 저희가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더라구요. 돌려줘야 하는데 그 친구 연락처가 없어서요. 8년 전 친구고, 그 때 사건이랑 관련됐다고 했으니까.. 선생님은 그 사람이 누군지 아실 것 같아서요.”
“이나 친구라며?”
왜 이나에게 묻지 않았냐는 말이다. 하나의 고민이 시작됐다.
사실대로 말해야 할까? 이나는 죽었다고.
죽음에 대해 말하면,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 물을 게 뻔했다. 100% 사실을 말할게 아니라면, 거짓말을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이나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지금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거든요.”
“… 그래서 찾아왔다? 서울에서 여기까지? ‘준’이 연락처 하나 알자고 여기까지 오기에는 공력이 너무 많이 드는데?”
홍선중은 하나의 서툰 거짓말에 놀아날 사람이 아니었고, 하나는 자신의 판단미스에 머리를 후려치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제 와서 이나가 죽었다고 말하면, 그런 거짓말까지 하면서 ‘준’을 찾는 이유에 대해 알려 들 것 같아서 하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빨리 판단이 안 섰다.
“이나가 퇴학당했을 때.. 현준이랑 준이란 친구도 같아 퇴학당했던 거죠?” 홍선중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빼기 위해 아무렇게나 던진 말이었지만, 의외로 홍선중은 하나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퇴학이라고 하지?”
“…”
“자퇴한 거잖니”
“…”
“너랑 현준이 어머니가 직접 자퇴서 냈잖니.”
새로운 거짓말.
부모님은 일관되게 이나가 퇴학당했고, 학교가 불쌍한 아이를 내친 거라 했다. 퇴학이든 자퇴든 학교를 그만둔 건 피차일반인데, 왜 그런 사소한 것까지 거짓말 한 것일까.
“그 때 준이란 친구도 자퇴한 거예요?”
“아니”
“…”
“그런 얜 없었어. 우리 반에도 없었고, 학교에도 없었어. 아.. 뭐 동명이인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만.. 그 사건에 관련된 ‘준’이란 얘는 없었고, 그런 이름은 나도 처음 들어봐.”
“…”
사실일까? 홍선중이 거짓을 말할 이유는 없었으니 사실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준’은 학교 친구는 아니란 뜻이다.
“날 찾아온 게 그 이유가 전부야? 준이란 얘가 누군지 그거 알려고?”
“…”
“그럴 거면 경찰을 찾아가거나.. 부모님께 물어보는 게 빠르지 않니? 그 쪽이 더 확실할 텐데”
“…”
“아~” 홍선중의 얼굴에 재밌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이해된다. 가해자 가족이 담당경찰을 찾아가서 이것저것 묻는 건 좀 부담스럽지? 부모님께 물어봐도 옛날 일 왜 끄집어 내냐고 화를 내셨을 거고. 솔직히 말하면.. 이나가 병원에 있다는 것도 못 믿겠는데? 8년 전 일이 지금 본인한테 어떤 영향을 주는데.. 이나도 입을 다물고, 부모님도 입을 다무니까.. 나한테 찾아온 거 아냐? 정보 좀 캐내려고.”
씨발. 재수 없는 수홍
같은 반 친구에게 원조교제를 강요하고, 아버지뻘 되는 어른을 협박해서 돈을 뜯어내던 이나였지만, 30대 초반이었던 담임 선생님만큼은 그녀도 감당하기 힘든 존재였는지 늘 담임에 대한 욕을 하며, ‘당했다’는 표현을 썼었다. 왜 이나가 홍선중을 싫어했는지 하나는 알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난 솔직히 이나가 왔다고 했을 때, 연희 때문에 온 줄 알았다? 늦었지만 그 일에 대해서 사과하려고”
“…”
무거운 돌이 하나의 심장을 누르기 시작했다.
연희. C양. 잊을 수 없는 그 이름.
8년 전 이나가 유치장에서 나온 그날, 엄마 박부진은 이나와 하나를 서울 외숙모 집으로 보냈다. 외삼촌이 사고로 돌아가신 후, 연락이 끊긴 외숙모에게 두 사람을 보낸 것을 보면 엄마도 어지간히 급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 뒤 찾아온 엄마가 아현동 쓰리 룸 빌라로 두 사람을 데려갈 때 하나가 궁금했던 것은 오직 하나, 연희 가족에게 사과를 했는가 였다. ‘사과’라는 말로 덮을 수 있는 사건은 아니지만, 인간이라면 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였다.
어렵게 ‘연희 가족 만났어?’ 라고 물었을 때 박부진은 인상을 쓰며 ‘다시는 그 이름 말하지 마’라고 으름장을 놨었다. 그 때는 ‘연’자만 들어도 이나가 경기하듯 떨던 때라 이나를 걱정해서 한 말이라 생각하고 넘겼지만, 사실 하나도 연희란 이름이 거북하긴 마찬가지여서 그 후 다시는 ‘연희’란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았던 터였다.
“연희.. 가족이랑 연락하세요?”
“너라면 하고 싶겠니?”
“…”
“장례식장에서 본 게 마지막이야. 살다 살다.. 그런 도둑 장례식은 처음 봤다? 기자들이 들이닥치니까 연희 유해를 밤에 몰래 태우고 몰래 묻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시종일관 화통하던 홍선중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하나는 다시금 죄인의 기분이 들었다. 아니, 기분이 아닌 죄인이 맞았다.
부모님이나 이나가 연희 가족에게 사과를 하지 않은 걸 알면서, 모른 척 했던 지난 8년.
하나라도 찾아가서 사과를 해야 했지만, 하나는 그러지 않았다.
마음이 불편해서. 단지 불편해서, 인간의 도리를 다하지 않은 것이다.
“자식 앞에서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너희 부모님도 그렇고 현준이 부모님도 그렇고 진짜 너무들 하더라. 꼭 그렇게 몰아세웠어야 했니?”
“…”
“딸이 그렇게 죽은 것도 억울한데.. 원조교제 했다는 소문까지 돌고, 직장에서 쫓겨나고.. 증인까지 매수당했으니.. 연희 부모님 마음이 마음이었겠니?”
“증인이요? 증인이 있었어요?”
손에 든 담배가 타 들어가는지도 모른 채 열변을 토해내던 홍선중의 말이 딱 끊겼다.
“몰랐니?”
“…”
“그럼.. 연희 부모님 쫓아낸 게 네 아버지란 것도 몰랐겠네?”
“!!”
하나는 누군가에게 한 방 맞은 듯 머리가 멍해졌다.
“이해는 된다.” 눈의 초점이 나간 하나를 빤히 보던 홍선중이 말을 바꾸었다. “부모라면 자식을 위해 괴물이 될 수도 있지. 우리 첫째가 유치원생인데.. 그 얘가 커서 그런 짓을 저질렀다면 나도 어떻게든 형량을 줄이려고 애썼을 지도 몰라. 둘째가 친 사고 때문에 첫째가 피해 받는 것도 싫었을 거고. 그래. 이해해. 충분히 그럴 수 있어. 근데 그건 괴물이 됐을 때 얘기지. 모든 부모가 괴물이 되는 건 아니거든”
“선생님 얘기는..” 목소리가 갈라지는 바람에 하나는 헛기침을 한 후 말을 이었다. “연희 부모님 쫓아내고, 증인을 매수한 게 저희 부모님이란 말씀이세요?”
“둘 다”
현준 부모님까지 합세했다는 뜻이었다.
하나는 이해가 안됐다. 그녀와 연희의 아버지 모두 진교한방병원이 직장이었다.
하지만 하나 아버지는 인사과 과장이었고, 연희 아버지는 물리치료사였다. 아무리 인사과 과장이래도, 일개 직원이 물리치료사를 해고할 권한은 없었다. 약재상을 운영하며 한방병원에 약재를 납품하던 현준 아버지 역시 해고를 종용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었다. 다시 ‘준’이란 이름이 떠올랐다. 하나와 현준의 아버지가 아니라면, ‘준’의 주변인이 해고를 종용한 당사자 일거란 생각이 들었다.
“증인은 누구였어요? 어떤 증인인지.. 아세요?”
“몰라” 홍선중은 세 번째 담배를 꺼내 물며 말을 이었다. “내가 수사관이나 재판관은 아니잖니? 궁금하면 부모님께 물어봐. 담당 형사를 찾아가던지”
“…”
부모님, 담당 형사.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굴레.
손에 흙을 묻히지 않은 채 열매를 딸 수 없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누구를 먼저 만나는 게 덜 괴롭고, 덜 부끄럽고,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부모님? 담당 형사? 빙글빙글 돌던 하나의 나침반이 멈추더니, 누군가를 가리키기 시작했다.
유현수. 가해자 현준의 가족이지만 부모가 아닌 존재. 현준이 신분을 도용한 걸 알았지만, 입을 닫은 인물. 나침반의 바늘이 그를 향해 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