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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과 거짓말
작가 : 달려라
작품등록일 : 2018.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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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작성일 : 18-12-10     조회 : 405     추천 : 0     분량 : 5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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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주말임에도 연신 사람들이 드나드는 약초시장과 달리, 건너편 3층에 위치한 다방은 문을 열고 있는 게 신기할 정도로 한적한 분위기였다. 손님이 없는데다, 음악도 틀지 않아서 빨간 머리의 종업원이 하품하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였다.

 “저긴 금연 건물이라”

 유현수는 사무실이 아닌 이곳으로 온 이유를 짧게 설명하고는 10분 째 담배만 피워대고 있었다.

 내일 출근을 위해서는 현준의 행방을 찾고, 자신의 모든 궁금증을 해결한 후 5시 서울행 차를 타야 했기에 하나에게는 1분 1초가 아쉬운 상황이었지만, 막상 유현수와 마주앉자 좀처럼 입이 열리지가 않았다. 가해자 가족이란 공통점 탓인지, 유현수를 보자 자꾸 죽은 C양과 A씨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얼굴 좋아 보인다?”

 “가족들은 안녕하시죠?”

 “재밌네” 유현수가 한쪽 입술을 비틀며 찌그러진 미소를 지었다. “네가 우리 가족 안부를 물을 줄은 몰랐다?”

 “…”

 “용건이 뭐야?” 연이어 말을 내뱉는 걸 보니, 최대한 빨리 하나를 떨궈내려는 생각인 것 같았다. “우리가 서로 안부를 궁금해 하는 사이는 아니잖아. 지나다가 생각나서 들릴 사이도 아니고. 이유가 뭐야? 8년 만에 나타난 이유가”

 “제가 누군지 아세요?”

 유현수는 할 말을 잃은 채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하나를 바라봤다.

 사실 하나는 유현수의 얼굴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8년이 지나기도 했지만, 진교에 사는 동안 그녀가 유현수를 만난 건 열 손가락을 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름을 먼저 말했던 건, 그의 얼굴이 현준의 얼굴과 매우 닮아서였다.

 하나는 그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데, 유현수는 어떻게 하나의 얼굴을 바로 알아봤을까?

 뒤늦게 떠오른 의문 덕에 하나는 C양과 A씨의 생각을 몰아낼 수 있었다.

 “저희 별로 안 친했고, 얘기한 적도 거의 없잖아요. 전 오빠 얼굴도 잘 기억 안 나는데.. 오빤 어떻게 절 바로 알아보셨어요?”

 “너 여기 얼마 만에 왔지?”“…”

 “그 사건 이후 처음이지?”

 “…”

 “진교시가 생긴 이래 제일 큰 사건이 뭔 줄 아니?” 유현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더 큰 사건이 있을 수도 있지만, 진교 사람들은 이나 네 사건을 제일 크고 끔찍한 걸로 생각해”

 그는 8년 전 사건을 ‘이나의 사건’이라 명했다. 8년 전, 하나의 부모님 앞에서 모든 것이 이나 때문이고, 동생은 아무 죄가 없다고 소리치던 유현수의 모습이 떠올랐다. 얼굴은 뿌연 필터를 씌운 듯 명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부모님에게 공포를 주던 몸의 느낌만은 분명하게 떠올랐다. 8년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모든 것이 이나 탓일 뿐 다른 사람은 아무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명백히 무죄 판결 난 사건이고, 나도 그 날 사건은 그냥 사고라 생각해. 문제는 말야.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 안 한다는 거야. 사람들은 네가 그 남자를 죽이고, 현준이가 널 도운 거라고 생각해. 툭하면 그 때 그 얘기가 나오고.. 나만 보면 사람들이 쑥덕대고 난리인데.. 어떻게 네 얼굴을 잊겠어?”

 “외아들인 척 한 것도 그거 때문이겠네요? 사업 확장하는데.. 범죄자 동생이 있으면 안 되니까?”

 그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바로 욕설이 튀어나오거나 판을 엎을 거라 생각했지만, 놀랍게도 그는 순식간에 여유로운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에 온 사람치고는.. 많은 걸 알고 있다?”

 “…”

 “기쁘다 정이나.. 8년 전 그대로라서”

 “…”

 “시간 낭비 하는 거 정이나 스타일 아니잖아? 빨리 말해 봐. 날 찾아온 진짜 이유가 뭐야?”

 “현준이 때문에 왔어요”

 “우리도 몰라” 그는 단칼에 하나의 말을 잘라냈다. “연락 끊긴지 오래야”

 “언제 끊겼어요?”

 “4년쯤 전에 마지막으로 연락 온 게 끝이야”

 “…”

 “걔 서울에 있는데 그건 아니?”

 “네”

 “만났구나?”

 “네”

 화가 나는 듯 그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얼핏 입에서 미친 새끼.. 집에는 연락안하고.. 라는 혼잣말이 새어 나왔다.

 “그 새끼가 너 많이 좋아했으니까.. 언젠가는 찾아갈 거란 생각은 들었지만.. 진짜 찾아갈 줄은 몰랐다..”

 그의 말에 하나의 가슴에도 시린 바람이 불었다.

 어릴 때부터 현준은 이나 바라기였고, 하나와는 눈도 마주치지 않는 사이였다.

 호진이 ‘유현준’이란 사실을 안 순간, 하나는 그가 그녀와 사랑에 빠져서 함께 산 것이 아니라, 이나와 닮았기 때문에 함께 산 것이 아닌가 라는 의심을 품었었다.

 이나를 사랑하는 마음은 누구보다 강했지만, 지난 4년간 함께 살았던, 사랑했던 남자가 이나 때문에 자신과 살았다는 생각을 하면, 이나에 대한 사랑 못지않게 이나에 대한 미움도 증가하던 차였다. 이나에 대한 미움을 끝내려면, 어떻게든 호진으로 알았던 유현준을 찾아 그의 의도를 파악해야 했다.

 “4년 전에 연락오고 그게 끝이에요?”

 “끝이야”

 “… 왜 거짓말 하세요?”

 “…”

 “그저께 경찰한테 연락 받으셨잖아요. 현준이 실종됐다고. 그 전에 오빠 민번으로 병원 다닌 건 언제부터 알고 있었어요? 경찰한테 처음 들은 건 아니죠?”

 “너 뭐야” 상대가 말을 낚아채기 전, 하나가 먼저 말을 이었다. “저한텐 김호진이라고 했어요”

 “!!”

 “저도 현준인거 이틀 전에 알았구요.”

 “너...” 뒷말을 잇지 못하는 걸 보면, 유현수는 여전히 상황파악이 안 되는 것 같았다. 하나를 이나로 생각하고 있었으니, 이나가 현준을 못 알아본다는 게 쉽게 이해되지 않는 것이다.

 “이나는..” 하나는 잠깐 망설였다. 이나가 죽었다는 사실을 밝혀야 할까 말아야 할까.

 조만간 드러날 사실이긴 했지만, 자신의 입으로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이나가 살아있는 척 할 만큼 마음이 단단하지도 못해서 하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입을 열었다.

 “이나는 죽었어요. 4년 전에 사고로요” 차마 살해당했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사고 직후에 현준이가 찾아왔는데.. 모습이 많이 달라져서 전 못 알아봤어요. 오빠 말대로 현준인 이나랑 친한 거지 저랑은 거의 안 어울렸잖아요.”

 “… 네가 그럼..”

 “네. 저 하나예요”

 동거했던 애인이 현준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느낀 하나의 충격만큼, 현준이 동거하던 여자가 하나라는 사실에 유현수도 적잖이 충격 받은 듯, 손에 든 담배가 손가락 가까이 타 들어갈 때까지도 멍하니 하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

 “4년 전에.. 가족이랑 연락 끊고. 널 찾아가서, 김호진이라고 했다고?”

 담배를 한 대 다 피운 후에야 유현수는 입을 열었다.

 “연락 끊은 직후인지 직전인진 모르죠. 어쨌든 절 찾아온 건 4년 전 4월이었어요.”

 “…”

 “현준이 실종 소식 들었을 때 왜 찾을 생각 안 하셨어요? 4년 전에는 본인이 직접 연락한 거지만.. 이번에는 경찰이 연락한 거잖아요.”

 “4년 전에도 그랬어”

 “…”

 “그 때도 걘 나한테 연락을 했지 부모님이랑은 그전부터 아예 인연을 끊은 상태였어.”

 “…”

 “그 여자.. 그러니까, 너한테도 똑같이 하는 거라 생각했지. 그냥 인연을 끊는 걸로.”

 “현준이가 연락을 끊는다고 했을 때 전혀 안 찾았어요?”

 “걔가 그걸 원했으니까. 여기랑 모든 인연을 끊고 새 출발 하고 싶다고 했거든”

 “…”

 “나중에.. 세상이 조용해지면 그 때 연락할 테니까 찾지 말아달라더라.”

 “…”

 “걔도 가족들한테 미안했던 거지. 자기 때문에 가족이 피해를 보니까.. 스스로 사라진 거야.”

 “…”

 “너도 잘 알잖아? 가족 중에 범죄자가 있을 경우에 어떤 취급을 받는지”

 “…”

 누구보다 잘 아는 사실이었다. 하나는 8년 전 그녀를 바라보던 반 친구들의 표정이 떠올랐다. 이나의 무죄를 주장하던 그녀에게 ‘동생이라고 편드네?’라던 혐오 섞인 표정들.

 사람들은 하나가 이나와 함께 있기 위해 고등학교를 자퇴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하나는 그녀를 향한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견딜 수 없어서 진교를 떠났던 것이었다.

 자신의 선택이었음에도 이나를 위해 포기한 척 연기했던 것은 마음 속 이나에 대한 앙금 때문이었다. 너 때문에 내 인생 망쳤어 라는. 그 앙금은 오래 가지 않았지만, 이나가 하나의 앙금을 알았다는 게 문제였다.

 이나가 죽은 후 발견한 일기에서, 그녀가 하나의 앙금을 처음부터 알았고, 그 때문에 더욱 집 밖을 나가려 하지 않았다는 걸 알고, 하나는 죄책감에 가슴이 무너져 내렸었다.

 하나도 이나에 대한 앙금이 있던 마당에, 엄마 박부진은 이나를 하나에게 떠넘긴 채 재혼까지 한 마당에, 현준을 찾지 않은 그의 가족들을 비난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어떻게 한 번도 안 찾았어요?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지도 않았어요?”

 유현수는 즉각적인 대답 대신 담배에 새로 불을 붙인 후 입을 열었다.

 “너한테 이나는 어떤 의미야?”

 “무슨 뜻이에요?”

 “쌍둥이들은 서로 특별한 텔레파시가 있다면서? 하나가 아프면 또 다른 하나가 따라 아프고. 진짜 그래?”

 전혀 상관없는 얘기였지만, 하나는 유현수의 질문에 순순히 입을 열었다.

 “꼭 그렇진 않아요. 하지만 늘 혼자가 아닌 거 같은 느낌은 있죠. 내 생일이 아니라 ‘우리’ 생일이라던가.. 내 옷이 아니라 ‘우리’ 옷이라던가.”

 “감동적이네”

 “…”

 “비꼬는 거 아냐. 사이좋아서 보기 좋다는 뜻이야. 나한테 현준인 말이지.. 그냥 동생이야.” 담담한 유현수의 표정은 현준에 대한 미안함일까? 이미 현준을 남처럼 느낀다는 뜻일까? 하나는 현준에 대한 그의 진심이 뭔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린 4살 터울이라서 잘 어울리지도 않았고.. 성향도 달라서 별로 안 친한 형제지. 그렇다고 아주 사이가 나쁜 건 아냐. 그냥.. 같은 부모에게 태어난 형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냐. 가족으로써 소중하게 생각하긴 하지만.. 내 인생 저당 잡힐 정도로 아끼진 않아”

 손목에 찬 피아제 시계가 현준 대신 택한 선택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하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준이란 이름 들어보셨어요?” 유현수의 얼굴에 물음표가 떴다. 처음 듣는 이름이란 듯이.

 “8년 전 사건에 관련된 사람 같아요. 현준이 사라지기 전에 ‘준’이란 남자에 대해 얘기했다는데.. 엄마가 그 이름을 알더라구요. 엄마도 이름만 알지 누군지는 모르구요. 그리고 현준이 사라지기 전에 진교시를 왔다간 흔적이 있어요. ‘준’이 진짜 8년 전 사건에 관련된 사람이고, 아직 진교시에 살고 있다면 현준일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은 ‘준’인 것 같아요. 그래서 찾아온 거예요. ‘준’에 대해서 아는지 해서요”

 “난 처음 듣는데? 어머니가 이름만 아는 거 확실해?”

 “말로는요.”

 “…”

 “8년 전 사건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우리 엄마나, 오빠네 부모님, 아니면 담당 경찰이잖아요. 아니면..”

 “연희 쪽 가족이거나” 머뭇대는 하나의 말을 유현수가 이었다.

 “경찰을 찾아가는 것 보다는 현준이 부모님을 만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왔어요. 어쨌든 그 사건에 대해 제일 잘 아는 건 당사자들이니까요. 그리고.. 현준이가 연락했을 수도 있으니까”

 “그건 확실히 아냐.” 유현수가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아까 말했지만, 부모님이랑 연락 끊은 지는 거의 7년이 돼 가”

 “확실해요?”

 “확실해. 어머니 돌아가신 게 7년 전이거든”

 “제가 아버지 만나도 되요?”

 “만나서 어쩌려고? ‘준’이란 놈에 대해 물어보게? 현준이가 가짜 이름으로 너랑 살았는데 갑자기 없어져서 찾으러 왔다고 할 거야?”

 “…”

 “정이나라면 지금도 이를 가시는 분이야. 네가 가봤자 도움 되는 거 없어. ‘준’이란 얘는 내가 물어볼게”

 “…”

 “아니면 경찰을 만나보던가. 그 사건 담당 경찰이 제일 잘 알 거 아냐”

 “…증인이 있었던 건 아세요?”

 “증인?”

 “증인이 있었는데, 저희 부모님이랑 오빠네 부모님이 그 증인을 매수했다던데요. 그 덕에 이나가 무죄 난 거고”

 “누가 그래?”

 “알죠?”

 “… 매수하진 않았어. 그냥 증언이 폐기 된 거지”

 “누구예요?”

 “…”

 “오빠”

 “동생”

 “??”

 “연희 동생”

 “동생이요?!” 하나는 홍선중이 말한 ‘증인’이 ‘준’일 거라 생각했지, 연희의 동생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한 터였다.

 “나도 정확히 아는 건 아닌데.. 증인이 피해자 동생이니까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증언이 폐기 됐다고 들었어.”

 “연희가족.. 어디 사는지 아세요?”

 유현수는 고개를 저었다. “알고 싶지도 않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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