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다. 너무 예뻐서 망가뜨리고 싶을 정도로.
누군가를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에는 두 가지 인종이 있었다.
예쁜 사람과 예쁘지 않은 사람. 나아가 예쁜 인간과 예쁜 외계인으로 나눴다. 아무리 인간이 예쁘다해도 외계인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 그들이 예쁘다고 생각할수록 머릿속에는 부러움을 동반한 시기와 질투, 외계인에 대한 온갖 부정적인 감정만이 생겨났다.
다른 외계인은 그렇다 쳐도 원래 모습이 예쁜 외계인을 선호했다. 그녀의 눈에 들어온 이가 바로 플로라인과 비너스인, 루나인이었다.
세 행성의 외계인 전부 예뻐서 부럽고 질투가 났다.
원래 모습이 너무 예뻐 굳이 인간의 모습으로 있지 않아도 된다. 신비롭고 아름답다는 이유로 쉽게 연예인이 되고, 쉽게 대중들에게 사랑받는다.
저런 사람들 때문에 내 외모가 더 묻히는 거야, 인간이 외계인보다 못하다고 외모품평을 당하면서 더 비교당하는 거라고.
아무리 피부에 좋다는 약과 몸매 유지가 되는 약, 다이어트 식품을 먹어도 외계인들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먹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먹지 못하고 하루 종일 굶어야 간신히 마른 몸매를 유지할 수 있다. 조금이라도 살이 찐다면 살쪘다는 이유로 온갖 비난을 받는다. 피부 관리는 필수이며 늙어도 늙었다고 욕을 먹는다.
예뻐지도록 노력하여 제 몸을 혹사하는 인간과 달리 외계인들은 살이 찌지 않아 몸매 걱정이 없다. 수명도 달라 쉽게 늙을 걱정이 없다. 피부도 깨끗해 따로 관리 받아도 된다. 조금의 세월이 지나도 변하는 인간과 달리 오랫동안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었다.
“말도 안 돼!”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했다.
자기들이 뭔데 이곳에 와서 누군가를, 나를 비참하게 만드는 건데? 굳이 이곳에 오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으면서, 그런데 왜……?
“아아아아악!!”
주변에 있는 것을 모조리 부숴버리며 분풀이를 했으나 화가 풀리지 않았다. 악을 쓰며 이리저리 날뛰던 그녀는 이내 지쳤는지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녀의 주변에는 최근 먹기 시작한 다이어트 보조제가 나뒹굴고 있었다.
“나도 이딴 거 없이 살고 싶다고.”
저에 대한 자괴감과 외계인에게 질투나 해대는 자신에 대한 비참함에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들처럼 예뻐지고 싶다. 변하지 않는 외모와 몸매로 사랑받고 싶다. 이 생각을 가지며 살아가던 어느날.
“뭐야?”
그런 그녀 앞에 두 개의 약병이 담긴 상자가 도착했다.
하나는 붉은 알약이 들어간 병이었으며, 또 하나는 다크 푸니카가 든 병이었다. 같이 들어있던 편지를 찬찬히 읽어보던 그녀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입꼬리를 최대한 얼려 비릿한 웃음을 짓던 그녀는 이내 그것을 들었고―.
*
“지금 뭐하는 거야?”
갑작스러운 난입에 당황한 사람들 틈에서 더 당황한 표정을 보이는 사람. 효은은 주변에 들려오는 원성을 아랑곳하지 않고 인상을 팍 쓰며 바닥에 떨어진 초콜릿을 들어 그 사람에게 내밀며 물었다.
“다크 푸니카가 든 초콜릿으로 뭐하려고 하신 거죠?”
“다크 푸니카라고?”
유리아가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크 푸니카’라는 단어가 나오자 외계인인 연예인들과 스태프들이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며 효은의 앞에 있는 인물을 쳐다봤다.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간신히 열려고 했으나 그마저도 효은에 의해 잘렸다.
“혹시라도 핑계될 생각하지 말아요. 당신과 얘기 나눈 스태프가 이 약병을 들고 있는 걸 봤어요.”
스태프는 창백하게 질린 표정으로 몸을 떨더니 제 앞에 있는 자의 시선을 피했다.
“다크 푸니카는 먹는 순간 독성에 의해 온몸이 타오르는 고통을 느낍니다. 그로 인해 벌써 피해자가 3명이나 나왔죠.”
“네? 저, 저는 정말 몰랐어요. 다크 푸니카라는 것도 처음 듣고요.”
스태프는 손사래를 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냥 언니가 평소에 먹는 약이랑 비슷해서 가지고 가던 중이었어요. 정말이에요, 믿어주세요.”
“저 아이가 한 짓이야, 나는 그저 초콜릿을 받아서 준 것뿐이야.”
예상대로 상대방은 자신의 스태프에게 죄를 뒤집어 씌웠다.
“내가 왜 유리아 씨를 해쳤겠어요? 저는 그냥 스태프에게서 초콜릿을 받아서 준 것뿐인데.”
“아뇨, 스태프는 몰랐을 거예요. 그러니까 당신과 달리 맨손으로 초콜릿을 건네줬겠죠.”
정곡을 찔렸는지 상대방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스태프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니 초콜릿을 맨손으로 줬으나 그는 유리아에게 껍질을 벗겨준다는 핑계로 초콜릿을 감싸줬다. 안에 다크 푸니카가 들어있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인간은 다크 푸니카가 뭔지 모르니까 스태프처럼 행동할 거예요. 저 역시 다른 분을 통해서 다크 푸니카에 대해 알게 되었고요. 그런데도 당신을 초콜릿을 껍질로 감싸 줬어요. 그렇다는 건 이것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소리 아닌가요?”
“…….”
“게다가 초콜릿에 넣었다는 자체가 당신이 다크 푸니카를 넣었다는 증거죠. 인간이었다면 열매 그대로 먹였을 테지만, 유리아 씨가 외계인이니까 그냥 주면 의심할까 초콜릿에 넣어서 먹이려고 했던 거 아닌가요? 말해보세요, 서지윤 씨.”
효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서지윤이라고? 대기실에서는 아무것도 확인하지 못했는데.”
“저 사람에게 낚인 셈이네요.”
차안에 약통을 숨겨놓은 채 방송국에 왔으니 그들이 찾아보지 못한 것은 당연했다. 평소 다이어트 보조제를 먹고 있다고 알려져 있어 약통이 발견되더라도 의심이 덜했을 테니.
사람들이 술렁거리는 소리에도 지윤은 여전히 아무 말 없이 효은을 쳐다봤다. 살기 짙은 표정으로 효은을, 주변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는데 그녀 옆에 움직이고 있는 검은 그림자 같은 무언가가 아까와 마찬가지로 징그럽게 꿈틀거렸다.
“당신 설마…….”
금방이라도 몸을 뚫고 나올 것 같이 격한 움직임을 보였다. 검기만 했던 그것이 방금 전과 마찬가지로 다른 행성의 외계인으로 변하는 것을 본 효은이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모두 피해요!!”
그리고 그와 동시에 천장과 바닥 여기저기서 검은 가시덩굴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꺄아아아악!!”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가시덩굴에 세트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는 사람들 사이에는 그녀의 스태프도 포함되어 있었다. 겁에 질린 채 살기 위해서 도망치는 그녀를 보던 효은의 시선에는 검은 가시덩굴을 조종하는 지윤이 있었다.
밝은 갈색의 머리카락은 흑장미처럼 검은빛이 강한 붉은 색으로 바뀌었으며 눈동자 또한 검정이 섞인 붉은색으로 변해 반짝였다. 피부도 전보다 더 새하얗게 변했다. 다른 것도 눈에 띄나 가장 눈에 들어온 것은 엘프 귀처럼 엘프 귀처럼 뾰족하게 변한 귀였다.
“플로라인…….”
플로라인처럼 변한 지윤은 자신의 모습이 만족스러운지 환한 웃음을 지었다.
“어때? 예쁘지 않아?”
‘흑장미’
마치 흑장미에서 태어난 플로라인처럼, 그녀를 보면 흑장미가 절로 떠올랐다. 흑장미가 상징이 된 탓에 그녀가 조종하는 검은 가시덩굴에는 흑장미가 간간이 피어있었다. 장미를 만지작거리며 지윤이 입을 열었다.
“내가 원하는 대로 플로라인이 되었어. 역시 효과가 확실하다니까.”
효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요번에 루나인이 피해를 입는다면 이 망할 프로그램에 출연한 외계인 연예인이 없을 수도 있었는데. 그럼 내가 눈에 띌 수 있었는데…… 그런데 네가 다 망쳤어.”
가시덩굴이 날아오는 것을 본 효은이 옆으로 피했다. 피하는 과정에서 가시가 스쳤는지 뺨에 작은 상처가 생겼다. 뺨을 타고 흐르는 뺨을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 뭐야? 너 뭔데 내가 이상하다는 걸 아는 거야?!”
“적당히 해!”
원래 모습으로 변한 칼릭스가 가시덩굴을 입으로 물어 뜯어냈다. 우드리가 손에 쥔 씨앗을 바닥에 뿌리자 순식간에 자라나 나무로 변해 지윤의 가시를 감쌌다. 두 사람이 지윤을 상대할 동안 레이카는 효은에게 다가갔다.
“괜찮아요?”
“네, 나름대로 잘 피했네요.”
레이카가 손을 대자 뺨에 났던 상처가 순식간에 아물어졌다.
“팀장님을 빨리 불러야겠어요, 이러다가―.”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땅에서 나온 가시덩굴이 튀어나와 두 사람의 몸을 각각 감싸 위로 올렸다.
“끄윽!”
“효은아, 레이카!”
칼릭스가 두 사람을 묶은 가시덩굴을 끊어내려고 점프해서 달려들었으나.
퍽!
여러 갈래의 가시덩굴이 튀어나와 칼릭스를 붙잡아 내동댕이쳤다.
“크악!”
“칼릭스!”
“방해하지 말고, 꺼져!”
지윤이 소리치자 가시덩굴이 점점 커지더니 우드리가 자라게 한 나무를 뚫고 우드리의 몸을 묶었다.
“크, 크윽!”
“우드리 씨!!”
“당신 원래 모습이 나무 인간이지? 나무로 상대하는 건 좋은데, 내가 만든 가시덩굴을 이길 순 없어.”
가시덩굴에 독이 발라져 있는지 우드리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칼릭스 또한 독이 발려진 가시덩굴에 당한 탓에 몸이 마비되어 움직이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었다.
움직이지 않는 두 사람을 보며 깔깔거리던 지윤은 독이 묻은 가시덩굴을 효은과 레이카 사이에 두고 이리저리 움직였다. 마치 다음 희생자를 고르는 것처럼. 그러다 땅에서 가시덩굴이 하나 튀어나와 독이 발라진 것과 똑같이 움직였다.
“어느 쪽에 독이 묻어있을까?”
지금의 지윤은 흑장미라기 보단 독을 잔뜩 품고 희생량을 기다리는 거미 같았다.
악에 받쳐 독을 품은 장미로 변한 지윤은 깔깔 웃으며 가시덩굴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휘두른 가시덩굴로 인해 레이카와 효은의 몸에 상처가 생겼다. 움직임이 격해질수록 피부를 파고드는 고통이 거세지며 상처도 깊어졌다.
“으윽!”
뚝, 뚝.
상처로 인해 생긴 피가 가시덩굴을 타고 바닥에 떨어졌다. 제가 만든 상처 피를 흘리는 광경을 황홀하게 바라보며 광기어린 미소를 지었다.
“꺄아아아아, 너무 예쁘다. 어쩜 피 흘리는 것도 아름답지?”
왜 아파하는 것도 예쁜 거냐고, 짜증나게. 웃고 있던 얼굴이 일순간에 험악하게 바뀌었다. 아름다움에 대한 그녀의 광기와 분노는 오롯이 레이카를 향해 있었다.
“같은 루나인이라 그런가? 어쩜 저렇게 예쁠까?”
저 얼굴을 엉망으로 만들면 좋을 것 같아. 덩굴에 달린 가시의 크기가 점점 굵어졌다.
“아악!!”
“레이카 씨!”
가시가 파고드는 고통이 거세짐에 따라 상처가 늘어났다. 깊어지는 상처와 고통에 레이카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으나 지윤은 그마저도 황홀해하며 좋아했다.
“너무 좋아. 몸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나서는 얼굴이야.”
‘어떡해야 하지?’
이대로 있다가는 레이카 씨가.
가시가 파고드는 고통을 참으며 방법을 생각하던 효은은 바닥에 떨어진 아이작의 코트를 발견하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네가 위험한 일에 휘말리면 나에게 즉각 알리게 되어있어. 그럼 내가 네 앞으로 오거나 내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했으니까 위험할 일은 없을 거야.」
제 오른쪽 손에 새겨진 나흐트크라프 가문의 문양. 제가 위험한 상황에 처하면 즉각 알리거나 자신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문양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효은은 다시 한 번 입술을 꽉 깨물며 오른손을 들어 가시덩굴에 손을 뻗었다.
“꺄하하하하, 이제 그만…… 어?”
뭔가를 느낀 지윤이 효은에게 고개를 돌렸으나 이미 그녀의 주변에 알 수 없는 냉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너, 너 뭐하는 거야?”
“뭐하긴, 얼려서 깨뜨리는 거지!”
오른손의 푸른빛으로 빛나는 문양이 떠오른 동시에 주변에 냉기가 최대한으로 발산됐다. 냉기로 인해 주변에 있던 가시덩굴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제 아무리 가시덩굴을 조종할 수 있다 해도, 독을 가지고 있더라도 얼어붙게 만들면 소용이 없다. 얼리고 부숴버린다면 더더욱.
“꺄아아아아아아악!!”
가시덩굴을 붙잡은 손을 기준으로 냉기가 퍼지며 주변을 순식간에 얼어붙게 만들었다. 제가 만든 아이가, 나아가 자신의 몸까지 얼어붙으려 하자 비명을 지르며 막아보려고 했으나 식물에서 태어난 플로라인으로 변한 탓에 차디찬 냉기를 버티지 못하고 고통에 몸부림쳤다.
오히려 자신도 발밑을 시작으로 몸이 점점 얼어붙었다.
“그만 둬, 그만 두라고!!”
“그대로 얼어붙어!!”
소리치며 온몸에 힘을 다해 냉기를 발산시켰다. 마침내 지윤의 몸이 냉기로 인해 얼어붙어 움직이지 않게 되자―.
쨍그랑!
제 몸을 묶인 가시덩굴이 얼음조각처럼 산산조각 났다.
“어? 잠깐!!”
제가 공중에 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던 효은은 밑으로 떨어지려는 것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눈을 감았다. 바닥과의 거리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탁!
타이밍 좋게도 누군가가 나타나 그녀를 안으며 안전하게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