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고, 이거 완전 처참한데?”
엉망진창이 된 세트장을 보며 특수수사대 3팀 팀장인 현우가 혀를 끌끌 찼다.
혼자서는 수습이 되지 않으니 와서 도와달라는 아이작의 부탁으로 오기는 했으나 주변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처참했다.
폭격을 맞은 것처럼 여기저기 파인 바닥과 위에 붙은 조명이 떨어질 정도로 커다란 구멍이 뚫린 천장,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장소라는 흔적을 아예 찾아볼 수 없게 무너져 내린 세트장까지. 폭탄이 터진 거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가끔 외계인을 상대하느라 주변이 엉망이 되는 광경을 보긴 했으나 이 정도까지 처참한 모습은본 적이 없어 당황스럽기만 했다. 도대체 어떻게 싸웠길래 세트장이라는 것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변해버린 걸까.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세트장이 이 지경이 돼?”
현우가 어이없단 표정으로 아이작을 쳐다봤다.
“설명하려면 길어.”
아이작은 바닥에 떨어졌던 코트를 주워 탈탈 털었다. 바닥에 붙은 먼지보다는 물에 젖고 가시에 찢어진 게 더 컸다. 이거 루시에게 잔소리 꽤나 듣겠는데? 엉망이 된 코트를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최근 일어난 사건과 깊은 연관이 있으니까.”
“그렇다면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네.”
현우는 한숨을 푹 내쉬며 시선을 돌렸다.
“그건 그렇고, 저 아가씨가 요번에 새로 온 팀원?”
현우가 가리킨 곳에는 레이카에게 치료를 받고 있는 효은이 있었다. 아이작은 작게 어, 라고 대답하며 엉망이 된 코트를 걸쳤다.
“내가 전에 말한 그 사람이야.”
“아, 외계인과 인간을 구별할 수 있다는…….”
“범인을 잡은 것도 저 아이의 공이 커. 내가 얼려버린 여자하고 이 사달을 벌인 장본인도 다 효은이 구별해냈지.”
“아, 그래서―.”
현우가 속한 3팀 직원에게 뺨에 난 상처(효은이 찌른 상처)를 치료받고 난 후 특수수사대 팀원에게 붙잡혀 끌려가던 지윤은 효은을 있는 힘껏 노려보며 저주에 가까운 말을 내뱉었다. 악을 쓰고 발악하며 끌려가지 않으려는 와중에도 오롯이 효은만 쳐다보며 저주하고 또 저주했다.
정작 저주의 말을 들은 장본인은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있어서 듣지 못했지만. 맨정신으로는 도저히 듣기 힘든 폭언이라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와, 나 서지윤 팬이었는데…… 진짜 실망이다.”
“사인받은 거 다 버려야겠어.”
TV에서 나오는 모습만 기억한 팀원들은 서지윤이 이렇게 표독스러운 성격인줄 몰랐다며 혀를 차곤 곧바로 관심을 거뒀다. 저게 사람들에게 사랑받은 아이돌의 처참한 말로라니. 다른 이들의 폭언과 망언에 망가진 그녀에게 조금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으나 어차피 자업자득이었다.
다른 이들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저보다 이쁘다는 이유로 아무 상관없는 외계인에게 풀었으니까. 심지어는 저와 친한 친우까지 죽이려고 했으니. 안타깝기는 하나 전혀 동정의 여지는 들지 않았다.
“아, 본관과 별관 사이 휴게실에도 서지윤과 비슷한 케이스의 인간이 있는데.”
“안 그래도 그거 때문에 물어보려고 했다. 너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무슨 짓을 했길래……. 뭔가를 떠올린 현우는 어이없음에 말을 잇지 못했다.
본관과 별관 사이에 위치하는 휴게실은 무언가로 인해 얼어붙어 있었다. 냉동창고라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창문과 문을 포함한 모든 것이 얼어붙어 남극 혹은 북극에 있다고 착각이 들 정도였다.
간신히 문을 열고 들어갔으나 그 안에 있는 것은 더 가관이었다. 트리톤인처럼 생긴 외계인이 얼어붙은 채 휴게실 한 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무언가를 보고 절규하듯 얼어붙은 그것은 얼음으로 새겨진 조각 혹은 냉동실에 넣어둔 생선 같았다.(이런 표현을 사용하면 안 되지만 그것 외에는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강력한 외계인이라도 스스로가 깨지 못하게 온몸의 세로를 죽일 정도로 강력하게 얼어붙은 탓에 해동하려면 시간이 걸렸다. 아니 그 전에 살아있기라도 하면 기적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어. 직원이 위험하다는 신호를 보내서 최대한 빨리 끝내놔야 했거든.”
효은이 위험하다는 걸 알게 된 아이작은 최대한 빨리 상황을 해결하고 가려고 했으나 상대방의 움직임이 점점 더 거세졌다.
‘젠장, 적어도 약점이라도 알면 좋으련만.’
약점을 볼 수 있는 건 오직 효은뿐이라 이 상황이 더 답답하고 짜증이 났다. 약점이 어딘지 모르니 함부로 공격할 수도 없었다. 괜히 잘못 공격했다가는 원래대로 돌아가기는커녕 목숨이 날아갈 수 있었으니까.
최대한 방법을 찾던 아이작은 있는 힘을 다해 냉기를 최대한으로 방출했다. 아이작의 주변을 시작으로 벽과 바닥에 냉기가 가득 퍼지며 얼어갔다. 주변에 물이 가득한 덕분에 주변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뭔가를 느낀 그녀가 다급하게 도망가려고 했으나 제가 사용한 물이 고여 있는 탓에 얼어붙어 도망갈 수 없었다. 자신이 사용한 물이 오히려 제 발목을 잡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는지 발악하지 못하고 그대로 얼어버렸다.
여자가 움직이지 않는 것을 확인한 아이작은 얼어붙은 문을 부수고 순식간에 이동해 효은을 구해냈다. 조금만 늦었어도 위험했던 일촉즉발의 상황. 다시는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었는지 아이작은 얼굴을 찡그렸다.
“어쨌든, 살아있다는 게 중요하지.”
“하여튼 너는 진짜…….”
“그리고 혹시라도 해동하면 나 불러, 효은이가 약점을 알고 있으니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을 거야.”
“약점?”
“응, 효은이가 말한 곳을 공격하면 원래대로 돌아가더라.”
아무리 생각해도 믿을 수 없다니까. 현우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번번이 일어나는 거야.”
현우는 한숨 쉬듯 작게 중얼거리며 골치 아프다는 듯 관자놀이를 눌렀다. 그러다 뭔가를 얘기하려는지 주변을 살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두 사람에게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걸 알자 방금 전보다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너도 알지? 이런 일이 요즘들에 많이 발생하고 있는 거.”
아이작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지금처럼 인간이 갑작스럽게 외계인처럼 변하는 사건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아직까지는 그 수가 적었으나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 어떻게든 해결방안을 찾아야 했다.
원인도 알지 못하고 언제, 누가, 어디서 변할지조차 모르는 난감한 사건.
감정이 격해지면 누가 말릴 세도 없이 외계인으로 변한다. 분명 그들은 인간이었음에도. 외계인으로 변했어도 인간이었다는 사실 때문에 함부로 공격할 수도 없다.
제작된 특수장비는 그들에게 전혀 통하지 않는다. 외계인들의 눈도 소용이 없다. 이렇듯 누가 어떻게 변할지 몰라 쉽게 해결이 되지 않아 답답하던 차에 조그마한 희망이 보였다.
“그거 때문에 효은이에게 우리 팀으로 들어오라고 부탁했으니까.”
인간이면서도 인간과 외계인을 구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외계인으로 변할 인간을 알아차릴 수 있다. 심지어 그들을 원래대로 되돌릴 약점(스위치)까지 볼 수 있다. 이쯤 되면 그녀가 요번 사건을 해결할 유일한 열쇠였다.
“엄청난 거물을 들였네. 아직 다른 팀은 모르는 거지?”
“당연히 모르지. 어차피 그들은 이 사건에 큰 신경을 쓰지 않잖아.”
아이작이 날이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그렇지.”
원래 외계인 전담 특수수사대는 8팀 밖에 없었다. 그러나 요번 같은 일이 일어나자 이 사건만 따로 맡아서 해결할 새로운 팀을 꾸렸고 그게 아이작이 속한 9팀이었다.
“그래서 다들 나를 주시하고 있잖아. 좋은 쪽이든, 안 좋은 쪽이든.”
날카로운 눈이 금방이라도 저를 꿰뚫을 것만 같았다. 차갑고 냉정한 얼굴의 아이작은 자신이 평소 알던 그의 모습이었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사람(외계인). 혹시라도 제 등에 칼을 꽂을까 전전긍긍하며 주시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물론 다른 이들이 그를 주시하는 이유가 그가 생각한 것과 한참 떨어지는 거였지만. 현우는 장난기를 거두고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아, 너도 알고 있듯이 다른 팀 녀석들은 너를 주시하고 있지.”
현우가 팀장으로 있는 3팀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9팀을, 특히 아이작을 안 좋은 쪽으로 주시하고 있었다. 그가 조금이라도 틈을 보여 임무에 실패하기를, 방심하여 일이 엉망이 되기를 바라면서.
“그들은 네가 조금이라도 임무에 실패하기를 바라고 있어. 만약 네가 조금이나마 실패하거나 사고를 친다면 눈에 불을 켜고 너를 붙잡으려고 할 거야. 서로 나서서 취조를 가장한 고문을 하려고 들겠지.”
“알아.”
아이작은 무덤덤하게 답하며 시선을 돌렸다.
“외계인이 낙하산처럼 새로운 팀의 팀장을 맡았다는 것부터 속이 쓰리겠지.”
“그렇지, 그래서 유독 4팀이 너희 팀을 안 좋게 보잖아.”
특수수사대에서 가장 권한이 높은 팀은 3, 4팀이었다. 특히 4팀은 자존감이 높은 탓에 다른 부서를 깔보는 경향이 있었다. 대화를 하면서 은연중에 저를 무시하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4팀에게 뭐라 할 수 없었다.
다른 팀보다 사건을 해결하는 수가 많고 직원들 능력이 워낙 탁월한 탓에. 비교하면 끝이 없기에 그저 묵묵히 참을 뿐.
그런 그의 신경을 거슬리는 팀의 등장은 적잖은 파란을 주었다. 외계인으로만 구성되었다는 것이 일단 마음에 들지 않는데, 자신들의 견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순식간에 사건을 해결하니 그들의 입장에서는 아니꼬울 수밖에.
“그 녀석들은 애초에 외계인이란 존재를 못마땅해 하지. 실제로 4팀에는 외계인이 루나인을 제외하고는 한 명도 없잖아.”
“그건 그래.”
“그것을 제외하더라도 내 출신 행성을 운운하며 쓸데없는 걸로 시비를 거는 것도 같잖아 죽겠는데.”
잠시 침묵하던 아이작이 이내 일그러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내가 나흐트크라프 가문의 유일한 생존자라는 게 가장 거슬리겠지.”
*
“몸은 좀 괜찮아?”
집으로 가는 도중 운전석에 앉은 아이작이 효은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사건 경위서는 나중에 작성해도 된다며 다른 직원을 돌려보낸 아이작은 차로 효은을 데려다주고 있었다. 아이작의 물음에 잠시 생각하던 효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정말?”
“네, 저 정말 괜찮아요.”
다친 곳은 레이카에게 치료받아 괜찮아졌다. 조금 지치기는 했으나 다음 날이 휴가이니 집에 들어가 푹 쉬면 문제없었다.
“위험한 일을 당할 뻔했지만 팀장님이 제때 와주셔서 무사할 수 있었으니까요.”
효은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팀장님의 냉기를 쓸 수 있게 된 것도, 저를 구해주신 것도 제게 문양을 새겨주셔서 가능한 일이잖아요.”
제 오른쪽 손등을 보여주며 말을 이었다.
“팀장님 아니었으면 저는 진작 그 사람에게…… 어쨌든 정말 고맙습니다.”
“고맙기는 당연한 건데.”
아이작 입가에 옅은 미소가 새겨진 것을 보며 효은은 나름대로 안심했다. 그러다 아이작이 입은 코트를 바라보며 살짝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 코트 벗어주셨는데 엉망으로 만들어서 죄송해요.”
추워하는 자신을 위해 벗어준 코트는 가시덩굴로 인해 해져있었다. 수선이 아니라 새 것을 사야할 만큼 찢어진 곳이 많았음에도 정작 코트의 주인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충분히 수선할 수 있으니 신경 쓰지 마.”
네가 다치지 않은 것이 중요하지. 뒷말은 왠지 쑥스러워서 말하지 못 했다. 말투가 친절하지 못해 효은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손을 뗐다.
“여기 맞지?”
보아하니 차는 어느새 오피스텔 앞까지 다다르게 되었다.
“네, 여기 맞아요.”
차가 멈춰 서자 효은은 안전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렸다.
“데려다주셔서 감사드려요, 그럼 조심히 돌아가세요.”
“응, 푹 쉬어.”
그 말을 끝으로 효은은 차 문을 닫고 오피스텔 안으로 들어갔다. 효은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아이작도 이내 차를 움직여 빠른 속도로 오피스텔을 벗어났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홀로 들어온 아이작은 소파에 앉아 몸을 기댔다. 모든 것이 지치고 피곤했다. 이대로 의식을 놓을 수도 있었으나 아직은 그럴 수 없었다. 해결해야 할 것이 남아있었으니까.
굳은 표정으로 무언가를 생각하던 아이작은 이내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이 가고,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려서야 입을 열었다.
“나야, 조사를 해줬으면 하는 게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