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몰랐다면, 특수수사대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은화의 말에 공감하며 말도 안 되는 말이라고 그저 흘러들었을 텐데.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아니 세 번 씩이나 인간이 외계인으로 변하는 걸 제 눈으로 직접 목격했기에 그런 소문이 있었냐며 부정할 수도 없고, 거짓말하지 말라며 웃으며 넘어갈 수도 없었다. 그저 입을 꾹 다문 채 은화가 다른 얘기로 화제를 돌리기를 바랄 수밖에.
그러나 효은의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한 은화는 이 주제를 가지고 계속 떠들었다. 그 중에는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인간과 외계인 사이에 괜한 분란을 조장하며 금이 갈까 정부에서 막고 있다는 얘기도 있었다.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이상하게 속이 뒤집혔다. 저번 서지윤 아니, 갑자기 나타난 여성에게 보였던 그것처럼. 역겨운 것을 본 것처럼 구역질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입술을 깨무는 것으로 간신히 참았다.
“어? 나 전화 좀 하고 올게.”
“그, 그래.”
은화가 휴대전화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해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만 더 이 대화가 이어졌다면 헛구역질이 튀어나올 뻔했다. 냉장고로 달려가 콜라를 한 모금 마신 후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은화 얘기 중에 진실도 있을 거야.’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지 않는다고 완전히 다라고 할 수 없으나 일부는 실제 상황이 섞여 들어갔을 거다. 아까 기사에서도 서지윤이 외계인으로 변했다는 기사가 나오진 않았으나 조만간 그녀에 대한 소문도 찌라시처럼 돌아다닐 테지.
몇 개는 확실하지 않으나 정부에 관한 추측은 소문에 가려졌을 뿐인지 완전히 거짓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실제 제가 겪은 두 사건(갑작스럽게 나타난 의문의 여자까지 포함하면 세 사건이라고 친다) 모두 인간이 외계인으로 변했었다는 사실이 일체 나오지 않았으니까.
‘아이작 팀장은 외계인과 관련된 사건만 맡는다고 했지.’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나, 지금 생각해보면 모순적인 말이었다.
아이작이 속한 9팀은 최근에 생겼다. 8팀 밖에 없던 특수수사대에 새로운 팀이 만들어진 것도 그렇고, 외계인 전담인데도 불구하고 ‘외계인과 관련된 사건만 맡는다’고 말하다니.
‘어쩌면 인간이 외계인으로 변하는 일이 예전부터 있었을 지도.’
제가 아이작과 만난 시점부터 팀장이 된 건지, 그 전부터 팀장이었는지는 모르나(시청에서 그를 본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9팀이 만들어진 계기와 요번 일이 깊은 연관이 있다는 건 추리력이 약한 자신이라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내게 특수수사대에 들어오라고 부탁한 것도 요번 일 때문이겠지.’
특수장비나 외계인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외계인. 그 실체가 외계인으로 변한 인간이었으니까 알아차리지 못 하는 것도 당연하다. 외계인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을 왜 자신만 알아차릴 수 있는 건지 알 턱이 없지만.
어쨌든 아이작은 떠도는 소문의 실체를 알고― 어쩌면 직접 겪었을지도 모르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인간과 외계인을 구별할 수 있는 저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특수수사대에 들어온 직후 세 번이나 겪은 사건과 더불어 도시괴담처럼 들려오는 소문, 아이작이 자신에게 말하려고 하는 진실, 자신을 특수수사대에 들어오라고 권유했던 모든 것이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다 아파왔다.
“아, 진짜 괜한 일에 끼어든 느낌이야.”
언니를 죽인 범인을 알아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복잡한 것을 싫어하는 효은으로서는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죽을 맛이었다. 두 손으로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테이블에 엎드렸다.
“언제쯤 얘기해주려나.”
저를 이곳에 부른 이유를 나중에 얘기해준다고 아이작 본인이 직접 얘기했으니 타이밍만 좋으면 바로 얘기해줄 거라고 생각하며 기다리고 있지만…… 자신의 인내심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장담할 수는 없었다.
*
한편, 아이작은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누군가를 기다렸다. 소파 팔걸이를 손으로 툭툭 치며 생각에 잠겨있던 사이 누군가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저 왔어요.”
희준이 한 손에 콜라를 든 채 태연하게 걸어와 아이작과 마주보는 곳에 앉았다.
“팀장님 설마 이제껏 저를 기다린 거예요?”
“너 기다릴 겸 벤도 기다리는 중이야.”
아이작은 단호하게 답하며 다시 눈을 내렸다.
칫, 그렇다고 해주면 어디가 덧나나. 희준은 입을 삐죽 내밀어 삐진 척을 하더니 이윽고 진지한 얼굴로 가방에서 파일 하나를 꺼내 아이작에게 내밀었다.
“팀장님이 말씀하신 것 조사했습니다.”
아이작은 건네받은 파일을 펼쳐 안에 있는 무언가를 찬찬히 살폈다. 그가 보고 있는 것은 방송국에 갑자기 나타나 저와 효은을 습격한 여자에 대한 신상정보였다.
“그 여자 예전에 방송국에서 일하던 스태프라고 합니다.”
“스태프?”
“네, 행성 담화요.”
익숙한 프로그램이죠? 희준이 노트북을 아이작 쪽으로 돌려 화면에 뜬 여자의 이력서를 보여주었다.
“동료 스태프 말에 의하면 다른 행성 출신 연예인에 대한 동경과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올리비아가 다크 푸니카에 중독된 것을 보고 경솔하게 SNS에 올려 조롱하다가 PD에게 들켜 징계를 받았더군요.”
“애초부터 성질이 못돼먹었네.”
만약 그녀가 그곳에 일했다면 아마 유력용의자 중 하나였을 거다. 어쩌면 그녀가 범인의 죄를 뒤집어썼을 수도 있다. 그나마 징계로 인하여 용의자에게 배제되었으니 본인 입장에서는 다행이었지만.
아니 외계인으로 변했으니 다행이라 할 수도 없다. 애초에 왜 징계를 먹은 사람이 방송국에 있던 건지 이해되지 않았다.
“월급 감봉에 며칠 나오지 못하게 되었는데 그걸 외계인의 탓으로 돌렸다고 합니다. 그날 왜 방송국에 간 건지는 모르지만 징계에 대해 불만이 있어서 따지러 왔다가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PD에게 따지러 갔다가 루나인인 레이카를 보고 참아왔던 열등감과 분노가 폭발해 외계인으로 변했다? 평소에도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면 나름대로 납득될 만한 말이었다.
“그래서 레이카를 보고 그렇게까지 반응한 건가.”
「너 예뻐…… 그래서 싫어.」
레이카를 본 직후 큰 파장과 함께 트리톤으로 변한 여자.
「이건 아니야!!! 나는 이런 모습을 원하지 않았어!!!」
그러나 제가 원하던 모습이 아니자 분노하며 마구잡이로 힘을 남발했다. 트리톤인이 물을 조종한다는 것을 알지만, 제 모습이 원하지 않은 외계인으로 변한 탓에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해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제 냉기를 최대한으로 발산해 얼어붙게 만들어서야 망할 물이 더 이상 흐르지 않았지만. 그 모습 그대로 얼어붙은 여자는 해동직후 효은이 가리킨 약점을 찔러서야(오른쪽 뺨이었다) 간신히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팀장님이 주신 약을 분석했는데요.”
희준이 엔터키를 누르자 화면에는 이력서 대신 약통과 함께 타원형 모양의 투명한 붉은 알약 사진이 띄워져 있었다. 사진 속에 있는 약통은 트리톤인으로 변한 여자가 들고 있던 약통이었다.
“알아보니까 최근 인터넷에서 유명한 다이어트 제품 중 하나더군요. 하나만 먹어도 삼시세끼 다 챙겨먹고 집에만 있어도 살이 찌지 않는 약으로 알려진 약이에요.”
“삼시세끼 다 챙겨먹고 집에만 있어도 살이 안 찐다고? 그런 약이 어딨어?”
“처음에 사람들도 팀장님처럼 생각했는데, 살이 찌기는커녕 오히려 조금씩 빠지자 입소문을 타고 순식간에 완판 되었다고 합니다.”
운동을 하지 않아도, 칼로리를 걱정하지 않아도 약만 먹으면 아무리 폭식을 해도 살이 찌지 않거나 오히려 빠지니 살에 고민이 있는 사람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심지어는 다른 사람에게 판매가의 몇 배가 되는 값을 주고 사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약을 먹은 사람들의 후기도 믿을 만하고, 연예인이나 유명 스트리머들이 나와서 약에 대한 효과를 찬양하니까 나오는 대로 완판이 되어 구하기 힘든 제품이에요.”
“어이가 없네.”
“근데 말이죠.”
말은 하던 희준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뭔가 이상해서 조사를 해보니 역시나더군요.”
“뭐가?”
“보기에는 평범한 약이지만 성분 분석 결과 외계인의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외계인의 흔적이라고?”
아이작이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네, 미세하긴 하지만 트리톤인의 세포가 들어있었습니다.”
외계인의 세포가 들어간 약을 먹고 인간이 외계인으로 변했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세포를 직접 주입한 것도 아닌데 단순히 성분이 들어간 약을 먹었다고 인간을 외계인으로 만들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외계인의 세포가 인간을 외계인으로 만들 힘을 가지고 있는 걸까? 이해가지 않고 혼란스러운 상황의 연속이었다.
“참고로 이 약은 몇 년 전에 테스트용으로 나왔었는데 개발한 곳에 문제가 생겨서 회수 아닌 회수가 된 약입니다. 개발한 곳이 어딘지는 팀장님도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뭐? 그럼 설마―.”
“네, 몇 년 전 폐쇄당한 병원에서 개발한 약이에요. 팀장님 형이 발견된 그 병원이요.”
충격적인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한 얼굴은 블레이즈라는 이름이 나온 순간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것을 그나마 남아있는 이성으로 간신히 참고 있는데 희준이 평소와 달리 낮고 써늘한 음성으로 말했다.
“이건 제 생각입니다만, 요번 사건 팀장님의 형인 블레이즈와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
“여기 계셨군요.”
팀장실 소파에 앉아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아이작에게 누군가가 다가왔다. 익숙한 목소리라 아이작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생각보다 늦었네?”
“네, 최대한 빨리 살펴보려고 했습니다만 폐건물인데도 불구하고 병원으로 사용한 곳이라 워낙 넓어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벤자민은 죄송하다고 사과를 한 뒤에야 아이작과 마주보는 곳에 앉았다.
그는 요번 사건 내내 아이작이 개인적으로 시킨 일을 처리하기 위해 요번 임무에서 자연스럽게 빠졌다. 벤자민이 온 것을 확인했음에도 아이작은 여전히 벤자민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았다.
“아이작 님의 말씀대로 블레이즈 님이 발견된 병원을 이 잡듯 샅샅이 뒤졌습니다만 어떠한 흔적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
“병원에서 사용했다고 말하기엔 수상한 장소가 있더군요.”
“수상한 장소?”
“네, 본관 1층 수술실 밑에 지하로 가는 문이 있더군요. 혹시나 하고 문을 열어 지하로 내려갔습니다만, 이미 누군가가 다녀갔는지 흔적도 없이 깨끗하더군요.”
역시 그날 CCTV에 찍힌 것은 흔적을 지우기 위해서였나.
“대신 이걸 하나 발견했습니다.”
벤자민은 제 안쪽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손수건을 펼치자 익숙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다크 푸니카의 씨앗입니다.”
으득. 분노를 참지 못 한 아이작이 저도 모르게 이를 갈았다.
“지하에 떨어진 것을 주웠습니다. 이게 왜 거기에 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 별과 맞지 않은 탓에 자라나지 못한 채 썩어버린 것 같습니다.”
“역시 그랬군.”
아이작은 테이블 위에 있는 다크 푸니카를 지나쳐 그 옆에 있는 약통을 들었다. 달그락 소리와 함께 익숙한 향이 풍겨왔다.
“설마, 라고 생각했었어. 다크 푸니카가 이곳에 있을 리가 없다고, 그저 우연히 다크 푸니카와 같은 증상이 있는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아이작 님…….”
“요번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었어. 그러면 안 됐었는데…….”
「요번 사건에 범인이 쓴 다크 푸니카 말인데, 그거 ‘카론’ 행성에서만 나는 식물이잖습니까.」
희준의 말을 떠올린 아이작은 입꼬리를 끌어올리고 웃었다. 그것은 자신을 향한 냉소 혹은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험악하게 변한 얼굴과 어울리지 않게 자조적인 미소를 짓던 아이작은 이내 한쪽 손에 들고 있던 약병을 벽을 향해 있는 힘껏 던졌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약병이 열리며 다크 푸니카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흩어진 다크 푸니카는 아이작의 발밑에 짓밟혀 뭉개졌다. 뭉개져 터진 열매는 마치 누군가가 흘린 핏방울 같았다. 핏방울 끝에 서 있는 누군가의 모습을 떠올린 아이작은 악을 쓰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아이작 님…….”
당황한 벤자민이 자리에서 일어났으나 아이작은 어떠한 대꾸도 하지 않았다.
“블레이즈…….”
그저 분노와 한탄이 섞인 목소리로 블레이즈의 이름만 읊조릴 뿐이었다.
형님, 도대체 이 별에서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