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마저 삼킨 밤은 모든 것을 두려움에 물들게 만들었다.
과제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아직까지 버스가 다니는 시간임에도 달이 뜨지 않아서 그런지 주변이 무척이나 어두웠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절로 느껴질 정도로. 저를 집어삼킬 것 같은 어둠에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집으로 가기 위해 꾹 참고 걸어갔다.
한참을 걸어가던 차에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착각이나 여겼으나 앞으로 가면 갈수록 쫓아오는 느낌과 누군가의 인기척이 짙어졌다.
‘뭐, 뭐야?’
혹시나 하고 황급히 고개를 돌렸으나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도대체 뭐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걸어가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몸을 흠칫 떨었다.
뒤에 뭔가 있다.
식은땀을 흘리며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여자는 이내 들고 있는 가방끈을 꽉 부여잡으며 천천히 걸어가다 점점 속력을 높이더니 이내 소리가 날 정도로 무작정 앞으로 뛰어갔다. 뛰면 뛸수록 인기척이 강하게 느껴지며 저를 쫓아오는 소리가 점점 더 가까이 들려왔다.
뭐야, 뭔데 나를 따라오는 건데!!
단순히 저와 가는 방향이 같아서 따라오는 것이 아니었다. 방향이 같았다면 제 시야에 보여야하는 것이 정상이며 저와 같이 속력을 높이며 쫓아오진 않을 테니.
혹시나 하는 생각에 여차하면 뿌리기 위해 가방에서 다급히 치한퇴치 스프레이를 찾았다. 두려움과 공포심에 의해 손이 미끄러워 스프레이를 제대로 잡지 못했다. 겨우 스프레이를 잡아 뿌릴 준비를 했는데.
“아아악!!”
갑자기 무언가가 저에게 뛰어오른 탓에 여자는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스프레이를 뿌릴 생각을 하지 못한 채 몸을 부들부들 떨며 다음을 기다리고 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주변이 조용하고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자 놀란 여자가 천천히 눈을 떴다.
“뭐…… 뭐야?”
고양이였다.
그림자만큼이나 검은 고양이가 꼬리를 살랑살랑 거리며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초록빛의 눈동자를 바라보던 여자는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깜짝 놀랐잖아.”
심장이 철렁했네. 심장이 있는 부근에 손을 댄 채 다시 한 번 안도하던 여자는 저를 바라보는 고양이에게 뭐라도 주기 위해 가방을 뒤졌다.
“이거 먹을래?”
여자의 손에는 고양이용 간식이 들려있었다. 가끔 지나가는 고양이에게 주기 위해 가지고 다녔던 간식이었다. 고양이가 편히 먹을 수 있게 몸을 살짝 숙인 채 손을 내밀었다. 손에 든 간식을 보던 고양이가 야옹~ 하더니 환하게 웃었다.
환하게 웃는 고양이의 입이 귀까지 걸렸다.
“……응?”
귀까지 걸린 입을 활짝 벌리자 고양이의 이빨이라 생각할 수 없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그제야 뭔가가 잘못된 것을 느낀 여자가 주춤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저게 뭐야? 정체를 파악할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았다. 그저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고양이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뒷걸음질 치며 도망칠 각을 잡고 있을 때.
“어?”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방금까지만 해도 고양이였던 것은 사라지고 커다란 무언가가 제 앞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해파리처럼 투명한 그것은 보는 사람이 기분 나쁠 정도로 흐물거렸다. 흐물거리며 여자에게 다가온 그것은 마찬가지로 입을 크게 벌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여자를 향해 커다랗게 입을 벌린 그것은 이윽고 있는 힘껏―.
콰직!!
*
“이게 요번에 들어온 사건 내용이야.”
덤덤하게 말을 끝낸 아이작은 팀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폈다. 역시나 효은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있는 반면 나머지 팀원들의 표정은 무덤덤했다. 그런 척만 하는 수도 있으나 어쨌든 효은이 기겁할 내용인 것은 분명하기에 그녀의 파일에만 피해자들의 사진이 있지 않았다.
파일에 붙어진 사진에는 피웅덩이가 된 바닥에 남겨진 인간의 신체 일부였다.
피해자는 총 4명으로 남녀 할 것 없이 신체 일부만 남아있었다. 손이나 발 등 지극이 일부만 남겨진 신체 사진을 보며 아이작이 입을 열었다.
“엊그제 살해당한 사람을 포함해 총 4명이 살해당했어. 남자 둘의 여자 둘로 남아있는 신체 일부로 간신히 신원을 파악했지만 사진 속 신체를 제외하고는 전혀 찾을 수가 없었지.”
어쩌면 영원히 찾을 수 없겠지만. 범인의 정체가 짐작 가는지 아이작이 표정을 굳혔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이작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만 아까와 달리 다른 이들의 표정도 변하기 시작했다.
“이건 이미 사람의 것이라 보기 어려운데요?”
웬만해서는 말을 하지 않는 우드리가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맞아, 이 정도면 이미 인간의 형태라 보기 힘들 정도지.”
역겨운 것은 마찬가지일 텐데 정작 말을 하는 아이작의 태도는 덤덤했다. 미세하게 좁혀진 미간만 아니라면 냉정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착각했을 수도 있었다. 효은은 아이작의 표정을 읽었다는 사실에 당황하다 다시 사건에 집중했다.
“그건 그렇고 이거 진짜 외계인의 짓이에요?”
이미 두 번(어쩌면 세 번)이나 인간이 외계인으로 변하는 광경을 눈앞에서 목격한 탓에 사선이 자신들에게 온 이유가 범인이 인간이 아닐까 의심을 했으나,
“요번에는 진짜 외계인의 짓이야.”
아이작은 칼릭스의 말을 단번에 부정했다.
“다만 범인이 상대하기 까다로운 외계인이라 우리에게 넘어왔지.”
뒤를 이어 나온 말에 다들 표정이 굳어졌지만.
“네? 이미 범인이 누군지 아는 거예요?”
“외계인의 정체만. 사건현장에 외계인의 흔적이 발견됐는데 그걸 보면 정체를 알 수 있을 거야.”
다들 말없이 서류를 넘겼다. 발견된 흔적은 세포 혹은 아메바 같은 형태로 피해자들의 혈액 속에서 기생충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고 쓰여 있었다.(그 모습을 상상하던 효은은 헛구역질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어라? 이거……. 사진 속에 있는 흔적을 찬찬히 살펴보던 레이카의 눈이 경악에 물들어갔다.
“팀장님? 이거 설마…….”
말을 잇지 못하는 레이카의 표정을 읽은 아이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네가 짐작한 대로 아메바인의 짓이야.”
아메바인이란 말을 듣자 효은을 포함해 그곳에 있는 외계인(벤자민 포함)들의 얼굴도 삽시간에 굳어졌다.
아메바[amoeba]인은 지구, 나아가 모든 행성에 입국이 금지되어 있는 외계인인 동시에 위험랭크 A 에 속하는 위험한 외계인이었다.
해파리 혹은 액체괴물처럼 생긴 아메바인은 형태가 없이 우주의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닌다.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다 어느 행성에 불시착하게 되는데, 문제는 그들은 살기 위해 살아있는 생명체를 잡아먹는다.
말 그대로 ‘살아있는 생명체’를 잡아먹기에 ‘인간’과 ‘외계인’도 전부 그들의 먹이에 포함이 되었다.
이유도 목적도 없다. 그들은 그저 살기 위해, 본능이 이끌리는 대로 살아있는 생명체에게 접근해 삼켜버린다. 형태가 없는, 누군가에게 기생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바로 아메바인이었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살아있는 것을 먹으며 살아간다.
누군가가 그들을 처리하지 않는 이상,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계속해서.
“너희도 알다시피 아메바인들은 살아있는 모든 것을 양식으로 삼아.”
“인간과 외계인을 전부 포함해서 말이죠.”
“그래, 게다가 자신이 삼킨 생명체로 변할 수 있어서 흔적을 왕창 남기더라도 제가 먹은 생명체로 변하면 되니까 금방 들키지도 않아.”
먹은 것이 고양이면 고양이로, 인간이면 인간으로 변해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그러다 배가 고프면 원래대로 돌아가 먹이를 찾아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사냥을 하고. 본능만으로 움직이는 탓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조차 파악할 수 없다.
이렇듯 본능에 충실해 터무니없는 짓을 반복하다보니 피해가 상당해 모든 행성에서 위험랭크 A 로 지정하며 발견즉시 사살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하필이면 지구에 아메바인이 있을 줄이야.”
칼릭스가 혀를 차며 말했다. 언니를 통해 아메바인의 위험성을 들었던 효은도 충격에 일그러진 표정을 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발견즉시 사살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지.”
“그건 그렇지만 우리에게 너무 위험한 일 시키는 거 아니에요? 우리가 아무리 외계인의 수가 많다지만 인원이 적은데요?”
“위에서 떨어진 명령이라 어쩔 수 없어. 따지고 싶으면 네가 직접 따져.”
우~ 하고 볼멘소리를 했으나 위에서 명령을 내린 거라면 자신이 어쩔 수 없었기에 불만 섞인 얼굴로 입을 꾹 다물었다.
“그건 그렇고, 아메바인이 먹이를 먹는 방식이 잔인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흔적을 남기지는 않을 텐데요?”
“벤자민 씨 말이 맞습니다. 분명 한 번에 삼킬 수도 있었는데 굳이 신체 일부를 남겨놓은 이유가 뭘까요?”
“글쎄. 네 말대로 증거를 인멸하려했다면 다 삼키는 것이 나을 텐데 말이야. 다 삼킬 수도 있는데 굳이 피해자들의 신체 일부를 남겨둔 이유가 뭘까?”
아메바인 특성상 자신의 흔적을 많이 남기기는 하나 아무리 본능만 남은 존재라 해도 살고 싶은 욕망도 가지고 있어 무의식적으로 살아있는 자의 흔적을 이런 식으로는 절대 남기지 않는다. 제가 들킬 수도 있는데 무슨 생각으로 이딴 짓을 벌인 걸까.
“일부러 남겼을 가능성도 있나요?”
효은의 물음에 아이작은 턱을 괸 채 글쎄, 라고 작게 중얼거렸다.
“일부러 일 수도 있고,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지. 어쨌든 여기 있는 자로 끝이라는 보장도 없고 말이야.”
“흔적을 남기지 않는 누군가로 변해서 살아가고 있을 가능성이 높겠군요.”
“그래, 그래서 골치가 아프지.”
네 건의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는 아무런 말도 없었던 것을 보면 그 당시에는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살아있는 생명체를 먹었을 가능성이 높다.
아메바인이 왜 이곳에 있는지, 언제부터 있었으며, 어떻게 누구를 통해 들어왔는지는 알지 못하나 적어도 피해자가 이들이 끝이 아니라는 건 확신할 수 있었다. 무슨 변덕인지는 모르나 흔적을 남겨준 탓에 제대로 된 수사에 들어갈 수 있었다.
문제는 어디서부터 수사를 시작해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범인이 누군지 알면 뭐하겠어요, 다른 사람으로 변할 수 있어 찾기 어려운데요.”
“사건현장에 사는 인간과 외계인을 모두 조사한다고 찾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더욱이 고양이나 강아지로 변했다면 더욱 찾기 어렵고요.”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것도 아니고 너무 광범위했다. 에일 시티에 많은 인간과 외계인이 있는데 일일이 다 조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더욱이 아메바인은 살아있는 거라면 모든지 먹어치우기에 인간이나 외계인이 아닌 조그마한 동물로 변했다면 찾을 가능성은 더욱 희박했다.
“하지만 효은 님이 있으니 아메바인을 찾을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을까요?”
갑작스러운 벤자민의 말에 모든 시선이 효은에게로 쏟아졌다. 확실히 그녀의 눈이라면 어떤 모습으로 변했든 아메바인을 찾는 것은 일도 아닐 테지만…….
“그건 나중에 내가 생각해보고 결정하면 되고 혹시나 싶어서 피해자들의 공통점을 살폈는데 말이야.”
뭐가 마음에 걸리는지 아이작은 은근슬쩍 화제를 돌렸다. 어라? 팀장님? 저에게 떨어진 시선을 돌리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는 걸 눈치 챈 효은이 놀란 표정으로 아이작을 바라봤으나 그는 효은에게 시선을 주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지만 피해자들 전부 NK 대학에 다니는 학생이었어. 만약 아메바인이 NK 대학의 학생으로 위장했다면 찾는 것이 조금 수월해지겠지.”
“네? 또 NK 학교예요?”
고등학교에 이어 요번에는 대학교냐고, 도대체 무슨 악연이 있길래 NK와 자주 엮기는 거냐는 칼릭스의 절규 아닌 절규가 이어졌다.
저번에 겪은 일 때문인지 다른 이들도 조금 꺼리는 분위기였다.
“나도 가기 좀 그런데 어떡하겠어, 우리가 하는 일이 이건데.”
“진짜 무슨 마가 꼈는지.”
“어쨌든 두 팀으로 나눠서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을 만나보고 얘기를 들어보자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조사하다보면 조그마한 단서라도 찾을 수 있겠지.”
팀은 칼릭스와 우드리, 아이작과 레이카로 나눠졌다.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효은은 아이작과 레이카를 따라다니기로 했다.
“벤은 우선 그 녀석에게 가 봐. 아메바인으로 인한 다른 피해자가 없는지 아니면 최근에 실종된 인간이나 외계인이 있는지 철저하게 조사하라고 한 뒤 칼릭스 조에 합류해.”
“알겠습니다.”
벤자민은 정중한 태도로 고개를 숙였다.
“다들 알겠지만 아메바인은 외계인이 상대하기 까다로울 정도로 어디로 튈지 모르고 위험한 종족이야. 괜히 자극해봤자 이쪽만 손해야, 그러니 아메바인을 발견한 즉시 어떤 모습으로 변해있더라도 그 자리에서 사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