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지금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파악할 수가 없었다.
분명 여자 친구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온 것까지는 기억난다. 가볍게 술을 마시기도 하고 꽤 늦은 시간에 들어와 피곤하기도 했던 탓에 집에 오자마자 잠에 들었는데…….
‘왜 이렇게 목구멍에 뭔가 걸린 것 같지?’
무언가가 목구멍에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불쾌한 감각이었다. 목에 무언가 걸린 것은 아닌데 접착제처럼 진득하게 붙어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물을 마셔도 사라지지 않는 이물감은 어제 자신이 무언가를 ‘먹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제 자신이 집에 와서 무언가를 먹었던 건가? 그런 기억은 없는데?
진득하게 붙어있는 것을 보면 미트볼 같은 페이스트 형태의 고기가 분명했다. 고기? 피곤한 상태에서 고기를 먹을 정신이 있는 건가?
“그러고 보니 왜 나 벗고 있는 거야?”
온몸이 땀으로 젖은 채 벗고 있는 걸 보며 얼른 옷을 입었다.
집에 오자마자 옷을 벗고 잠을 잤던 건가? 침대로 간 거는 확실히 기억나는데 벗은 기억은 없다. 자신은 분명 옷을 입고 잠을 잤는데?
“뭐야, 도대체.”
비어있는 기억 속에서 자신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건가.
요즘 들어 건방증이 심해지는 탓에 기억나지 않는 일이 제법 일어났다.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건 다행이나 기억이 비는 횟수가 늘어난다면 내가 누군지 조차 잊어버릴 만큼 미쳐버릴 것 같아 두려웠다.
병원에 가서 상담이라도 받아야하나? 약이 떨어져서 조만간 가야 하긴 하지만. 비어가는 약통을 흔들면서 작은 한탄을 내뱉었다.
“이러다가 정말 범죄라도 저지르는 거 아냐?”
아니겠지? 아무리 기억이 비는 부분이 있어도 그 정도까지는―.
「정말 그렇게 생각해?」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들고 있던 약통을 떨어뜨렸다. 뭐에 홀린 사람처럼 눈만 깜빡이다 핸드폰 알람이 울려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으, 늦겠다.”
생각에 빠져있을 시간이 없었다. 오늘 아침수업이 있는데다 수업을 맡은 교수가 점수에 관해서는 깐깐하기로 유명한 서교수라 괜히 밉보이면 안 됐다. 지금이라도 학교에 갈 준비를 하기 위해 허둥지둥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가 방금 전까지 서 있던 곳에는 해파리처럼 끈적끈적한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꿈틀거리며 움직이던 그것은 이윽고 남자가 들어간 화장실을 향해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
“와, 건물 진짜 좋다.”
NK 대학교 앞에 선 효은은 저도 모르게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생겨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 학교라 건물 자체가 크고 넓을 거라고 생각했으나 막상 앞에 서니 ‘크다’라는 말이 부족할 정도였다. NK 부속 고등학교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학교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강한 기운이 느껴졌다.
보는 것만으로도 누군가를 주눅 들게 만들 것 같은 압박감은 마치 네가 이 학교에 올 자격이 될까? 라고 물어보는 것 같았다.
실제로 자신이 그렇게 느끼고 있으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다니던 학교보다 훨씬 좋다니까.’
자신이 다닌 대학도 크긴 했지만 그보다 몇 배로 좋은 건물과 시설에 연신 눈을 떼지 못 했다. 만약 운 좋게 이 학교에 다녔다면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녔을 거다. 현재 모든 학교를 통틀어 가장 유명하고 모두의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학교니까.
“뭔가 대학교의 느낌은 안 드네요.”
한참을 쳐다보던 효은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커다란 고층건물, 아니 현대식 건물로 제작된 성을 보는 느낌이었다. 공감하는지 옆에 있는 레이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NK 대학교를 처음 보는 사람들 모두 효은 씨처럼 생각해요.”
“그래?”
두 사람과 달리 아이작은 심드렁한 얼굴로 작게 부정했다.
다른 이들에게는 어떻게 보이는지 관심 없으나 적어도 자신의 눈에는 커다란 ‘감옥’ 같이 느껴졌다. 화려함에 무장해 있으나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지옥. 단순히 대학교일 뿐인데 왜 이런 생각이 드는 걸까.
“들어가자.”
의뢰인에게서 연락을 받은 아이작이 턱짓으로 본관을 가리키며 말했다.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작을 따라 본관 안으로 들어섰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뭔가를 느낀 효은은 저도 모르고 숨을 삼켰다.
안으로 들어선 순간 왠지 모를 두려움이 온몸을 지배했다. 그 두려움으로 인해 그 자리에서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새하얀 대리석은 너무 깨끗해 함부로 발을 디딜 수 없었다.
발을 디딘 순간 제 그림자로 인해 건물 자체가 더럽혀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마치 흰 잉크에 떨어지는 한 방울의 검은 잉크처럼. 깨끗한 것을 저로 인해 순식간에 더렵혀질 수 있다는 생각과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되는 불안함과 두려움이 숨이 막혔다.
‘어째서?’
바깥에서 보았던 광경과 사뭇 다른 느낌.
건물로 들어서자마자 다른 곳으로 홀로 떨어진 느낌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지나가는 소리도, 주변을 울리는 발소리도 전부 들리지 않았다. 저에게서 소리를 차단한 것처럼 그 어떠한 것도 귓가에 들려오지 않았다.
제가 서 있음에도 깨끗한 바닥. 많은 사람이 다니는 길임에도 먼지하나 없는 깨끗함이 이질적으로까지 느껴진 동시에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느껴졌다. 도대체 왜 자신이 이런 느낌을 받는 걸까. 그것도 이 건물에 들어온 직후에.
“……은아, 효은아!”
생각에 빠진 채 의식을 잃던 효은은 제 어깨를 붙잡은 손과 목소리에 놀라 눈을 깜짝였다.
“티, 팀장님?”
제 앞에는 아이작이 두 손으로 자신의 어깨를 붙잡은 채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네? 아…… 제가…….”
왜 가만히 서 있던 거죠? 하마터면 엉뚱한 말이 튀어나올 뻔했다.
“어디 아픈 거야?”
아이작이 이마에 손을 올려놓으며 물었다.
“아, 아뇨. 그냥 딴 생각을 하다가 그만…….”
“무슨 생각을 그리 깊게 하길래 불러도 대답하지 않는 거야?”
아까부터 불러도 따라오지 않고 그 자리에 넋 나간 사람처럼 서 있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가가서 이름을 불렀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죄송해요.”
얼른 사과를 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다행히 그들 외에 다른 사람의 모습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다, 다행이다. 건물 앞쪽에 서서 멍 때리는 모습을 봤으면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했겠어. 속으로 안도했다.
“정말 괜찮은 거야? 열은 없어 보이는데.”
“정말 괜찮아요.”
아무렇지 않은 척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누가 봐도 어색해 보이는 미소였다. 그렇기에 아이작은 괜찮다는 말에도 의심을 거두지는 않았으나 일단은 알겠다고 말하며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정말 괜찮은 거예요?”
눈치를 보던 레이카가 작게 물었다.
“네, 정말로 괜찮아요.”
아니 나는 왜 건물로 들어오자마자 넋을 놓은 거야. 뒷머리를 살짝 헝클어뜨리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진짜 이상하단 말이야.’
자신의 방문을 거부하는 걸까? 효은은 제가 서 있던 곳을 바라보다 이내 아이작의 뒤를 따라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힌 순간, 위층 난간에 서 있던 누군가 밑으로 내려왔다.
세 사람이 건물 안에 들어선 순간부터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다른 이들도 그렇지만 유독 효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어디서 본 것 같은 익숙한 얼굴이었다. 어디서 봤는지는 모르나 굉장히 익숙한 탓에 신경을 끌 수 없었다.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효은의 얼굴을 찬찬히 떠올리다 이내 떠오르는 무언가가 있는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저 여자 설마…….”
*
그들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왼쪽 끝 방으로 향했다. 문 옆에는 [이동준] 교수라고 적혀 있었다. 아이작이 문을 두들기자 안에서 들어오라는 말이 들렸다.
“실례합니다, 저번에 연락드린 아이작.N.카론입니다.”
안으로 들어가자 온화한 얼굴의 남성이 환한 얼굴로 그들을 맞이해줬다.
“어서 오세요, NK 학교의 교수인 이동준입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작과 악수를 한 후 소파를 가리키며 앉으라고 권유했다.
이동준 교수는 50대 초반 정도 보이며 염색을 할 때가 다 되었는지 검은머리 틈으로 흰머리가 제법 보였다. 그가 차를 탈 동안 세 사람은 쭈뼛거리며 소파에 앉았다. 이 교수는 차를 들고 자리에 앉아 세 사람 앞에 컵을 내려놨다.
“시중에서 판매하고 있는 녹차입니다만 입에 맞으실지 모르겠습니다.”
“괜찮습니다.”
아이작은 괜찮다는 말과는 달리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답했다. 레이카와 효은은 녹차를 한 모금이라도 마셨으나 아이작은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
녹차를 싫어하시나? 효은이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다 이내 찻잔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일전에 연락주신 대로 죽은 피해자는 전부 제가 가르친 학생입니다.”
그래서 이 교수를 찾아온 건가?
“실례지만 교수님이 지금 가르치시는 전공이…….”
“외계인 심리학입니다. 평소에도 외계인에 관심이 많아서요.”
외계인 심리학이라고? 처음 듣는 얘기에 효은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의 학교에서도 외계인이 다니기도 하고 외계인에 대한 과목이 있긴 했으나 외계인 심리학이라는 과목은 없어 의아하기만 했다.
“외계인 심리학은 NK 대학에만 있는 과목입니다. 신생 학교라 그런지 다른 학교에 없는 과목이 많습니다.”
이 교수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답했다.
“아, 그렇군요.”
시험적으로 외계인에 관한 과목을 만들어서 가르치고 있다며 인간과 외계인이 지금보다 더 공유를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는 말을 덧붙였다.
“얘기가 살짝 딴 곳으로 샜습니다만, 어쨌든 죽은 학생들 대부분이 착하고 성실한 학생이었습니다. 지각이나 결석도 한 번 한 적이 없고 리포트도 한 번도 빠짐없이 냈습니다.”
“그렇군요.”
그들을 죽인 범인이 누군지 범인을 알고 있으나 ‘누구의 모습’으로 변했는지 모르니 섣불리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적어도 눈앞에 있는 교수가 아메바인이 아니라는 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가 아메바인이었으면 효은이 제일먼저 반응을 했을 테니.
“사실 요번 사건을 일으키는 범인이 아메바인인데, 이 학교 학생으로 위장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이작은 말을 돌리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아메바인이라, 그것 참 흥미롭군요.”
이 교수는 흥미가 가득한 얼굴로 턱을 쓰다듬었다.
“확실히 아메바인이 범인이라면 지금까지 잡히지 않은 이유가 납득됩니다. 자신들이 먹은 생명체의 모습으로 변하면 되니까요.”
역시 외계인과 관련이 있는 자라서 아메바인에 대한 지식이 상당했다. 일어나는 사건에 대해 단번에 꿰뚫어보았으며 흔적을 남기지 않는 아메바인이 왜 신체의 일부를 남겨놓았는지에 대한 의문도 얘기할 정도였으니까.
“저희는 아메바인이 실종된 자의 모습으로 다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확실히 살해당한 학생들 전부 이 학교 출신이고 9번가에서 살해당했으니 이 학교 학생이라 변했다는 의견에 동의하는 바입니다.”
다만…… 뭔가가 마음이 걸리는지 이 교수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만약 학생이 실종이 되었다면 학생들 사이에서 진즉에 소문이 났을 텐데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없거든요.”
“수업에 빠지는 학생이 없습니까?”
“자주 빠지는 학생이 있지만 실종된 건 아닙니다. 저번 주에 한 번 마주한 적도 있으니까요.”
“……그렇군요.”
“뭐, 이 학교가 워낙 유명한 학교이니 실종이 되었다 해도 금방 잠잠해지겠죠.”
학교의 치부를 아무렇지 않게 말하다니.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걱정된다고 해야 할지. 효은은 저도 모르게 이 교수를 안쓰럽게 쳐다봤다.
“혹시 모르니 윤 조교에게 말해두겠습니다. 윤 조교라면 저보다 학생들과 친하니 뭔가를 알 수 있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이 교수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윤 조교에게 연락을 취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시간이 괜찮다는 긍정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교수는 흡족한 얼굴로 전화를 끊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범인이 하루빨리 잡으면 좋겠습니다.”
세 사람은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으로 나가려던 세 사람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이 교수의 시선이 누군가를 향했다.
“거기, 잠깐.”
“네?”
이 교수는 효은을 불러 세웠다. 효은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는 놀라움과 당혹스러움이 섞여 있었다.
왜 그런 거지?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혹시 정효원을 알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