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과 인간은 오래전부터 공존해왔다.
인간의 틈에 숨어서 살거나 자신의 행성에서 살며 가끔씩 지구로 오기로 했다.
다른 행성에 생명체가 존재하는 것이 밝혀지고 뒤를 이어 외계인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었다.
과학적이냐 비과학적이냐 하며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문제가 해결된 느낌이었다. 외계인에 대한 신비로움과 흥미로움, 두려움과 공포심 등등 온갖 감정이 교차했는지 대중매체에서는 한동안 외계인에 대한 얘기로 떠들썩했다.
‘외계인의 존재가 있다, 없다’로 나누던 시절은 옛말이 된지 오래였다. 지금은 이곳에 외계인이 살고 있냐, 아니면 잠시 놀라왔냐에 초점을 뒀다.
나라 곳곳에 숨겨진 UFO 전용 주차장도 생겼으며,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인간에게 호의적인 외계인과 호의적이지 않는 외계인을 구별해놓은 사전도 생겨났다. 외계인의 말을 통역하는 통역사와 외계인이 일으키는 사건을 처리하는 ‘외계인 담당 특수수사대’ 등 외계인과 관련된 직업도 생겨날 정도로 ‘다른 행성에 사는 인간’의 등장은 의외의 결과를 낳았다.
“어서 오십시오, 에일 시티입니다.”
외계인과 인간 두 종족간의 공존에 대해 여러 논쟁이 오갔으며 그 결과 중 하나로 생겨난 곳이 바로 에일 시티(alien city)였다.
지구에 존재하는 에일 시티는 많은 수의 외계인과 인간이 공존하며 살아가는 도시였다.
외계인과 인간의 화합과 공존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생겨난 도시인 탓에 이곳에 사는 대부분이 외계인이었다. 여러 행성에서 온 외계인의 생김새나 특징이 워낙 다양한 탓에 이곳에서 살고 있는 외계인들은 전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외계인이 인간의 모습으로 변하면 평범한 사람은 누가 인간인지 외계인인지 알지 못한다.
같은 외계인이거나 특수한 장비 혹은 특별한 ‘눈’을 지니고 있지 않은 이상은.
“에일 시티 시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무엇 때문에 오셨습니까?”
평범한 사람은 특수한 장비 없이는 외계인과 인간을 구별할 수 없었다. 외계인을 구별하는 장비는 시중에서 비싸게 판매되며, 대부분 시청에서 일하는 특히 외계인을 상대하는 ‘특수수사대’에 속한 이들이 가지고 있다.
장비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소문으로만 알려져 이를 이용해 외계인과 인간을 구별해준다며 가짜를 만들어 파는 자들도 있을 정도로 귀했다.
어쨌든 평범한 사람은 두 종족을 쉽게 구별할 수 없어 일어날 수 있는 사고를 대비하기 위해 외계인들은 시청에서 발급하는 외계인 전용 팔찌를 착용해야 한다.
차별이라 여기는 자들도 있지만 어쩔 수가 없다.
이게 여기 에일 시티의 규칙이며,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이곳에서 살아갈 수 없으니까.
“외계인 등록하려고 왔습니다.”
어느 손목이든 붉은색의 팔찌를 착용하고 있는 자는 시청에 등록된 외계인이었다.
외계인이 이곳에 살게 된 이후로 시청은 인간만 담당하는 [인간 관리부]와 외계인만을 담당하는 [외계인 관리부]로 따로 나뉘게 되었다.(특수수사대도 외계인 관리부 소속이다.)
시청에 들어오자마자 안내데스크에 종족을 얘기하면, 안내원이 친절하게 가는 방향을 알려준다.
인간이면 오른쪽, 외계인이면 왼쪽으로.
“어서 오십시오, 어떤 목적으로 오셨습니까?”
카페 주변을 청소하고 있던 효은은 안내데스크 앞에 선 사람을 유심히 바라봤다.
아는 사이도 아니고, 딱히 흥미가 동한 것은 아니었으나 예전부터 있던 저의 버릇 때문이었다. 안내데스크 앞에 선 사람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외계인.
“외계인 등록하려고 왔습니다.”
인간.
“아기가 태어나서 문서를 작성하려고 왔는데요.”
“종족은 어떻게 되시나요?”
“인간입니다.”
인간.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자리를 알아보려고 왔습니다.”
외계인.
“외계인 전용 일자리를 찾아보려고 하는데 어디로 가야 하나요?”
인간.
“학교 때문에 교육부로 가려는데 어느 층으로 가야 할지 몰라서요.”
“……하, 역시.”
시청에 들어오는 자가 인간인지 외계인인지 전부 알아맞혔다는 사실에 자괴감만 들었다. 요번에는 틀리겠지 싶어 대충 내뱉었으나 웬걸, 100% 다 구별해냈다.
“종족이 뭔지 알아맞히면 좋지 않아? 일일이 팔찌를 볼 필요도 없으니까.”
청소를 하던 은화가 조용히 대꾸했다.
자기 딴에는 위로하기 위해 얘기했겠으나 효은에게 있어선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 말이었다.
“모르면 아무 말도 하지 마.”
이거 때문에 얼마나 심란한데. 효은은 작게 투덜거리며 퇴식대에 놓인 쟁반과 쓰레기를 정리했다.
스스로 조절이 가능하다면 모르나 전혀 조절이 되지 않아 의도치 않게 정체를 보게 된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외계인의 정체를 알게 되는데 그것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외계인도 종류가 다양하잖아. 인간과 비슷한 종족이면 상관없지만 징그러운 외형을 가지고 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할 것 같아.”
은화가 몸을 움츠리며 말했다.
“그래, 그러니까 좋은 게 아니라고.”
효은은 작게 투덜거리며 스태프룸으로 들어갔다.
“하아, 내가 보기 싫어도 보게 되니까 더 골치 아파.”
머리를 살짝 헝클어뜨리며 개인캐비닛을 열었다.
효은은 남들과 다른 ‘특별한 눈’을 지니고 있었다.
그 눈 덕분에 그녀는 팔찌를 보지 않아도 눈앞에 있는 자가 외계인인지 인간인지 구별할 수 있었다. 그것을 자각한 것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였다.
「너 눈동자 안에 뭔가가 있어.」
평소와 마찬가지로 친구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것저것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헤어지는 길이 가까워질 무렵, 무심결에 친구의 얼굴을 보다 눈동자가 반짝거리는 것을 보았다.
연두색? 혹은 짙은 녹색으로 보이는 빛이 동공 안에 있었다. 어린아이였으니 단순히 뭔가 눈에 들어갔다고 생각했기에 아무렇지 않게 눈동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무것도 아닐 거라는 효은은 들었던 손을 내리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눈동자 안에 본 빛을 느낀 순간, 그 말을 들은 친구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마치 어떻게 알았어? 라고 묻는 것처럼. 일그러진 얼굴로 효은의 얼굴만 뚫어져라 친구는 인사도 없이 그대로 뒤돌아 도망치듯 그 자리를 벗어났다.
왜 저러지? 하고 잠시 생각하다 급한 일이 있었겠구나 싶어서 신경 쓰지 않고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다음 날, 여느 때처럼 등교한 효은의 귀에 들리게 된 것은 그 친구의 전학 소식이었다.
다소 뜬금없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틈도 없이 교무실에서 선생님들이 하는 말로 인해 어린 나이에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도망치듯 전학 간 친구는 사실 외계인이었으며, 그것도 불법으로 들어와 살고 있었다고.
그리고 자신이 다른 이들과 달리 유일하게 인간과 외계인을 구별할 줄 안다는 사실을.
‘그 후로 웬만해서는 내 앞에 있는 사람과 눈을 맞추려고 하지 않았지.’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고 상대의 정체를 구별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으나 당황한 자신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을 상대방에게 들키지 않기 위한 효은의 눈물겨운 노력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유니폼에서 출근했을 때 입었던 옷으로 갈아입은 후, 스태프룸에서 나와 모두에게 인사를 건네며 밖으로 나갔다.
시청 안에 있는 카페에서 일한 탓인지 시청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방문자가 섞여 있었다. 섞여 있는 방문자 틈을 빠져나와 시청 밖으로 나가려던 효은은 마침 안으로 들어오던 한 남자와 마주치게 되었다.
푸른빛이 도는 검은 머리카락과 사파이어 같은 짙은 눈동자, 연예인 뺨치는 외모와 큰 키는 마치 웹툰에서만 보던 꽃미남이 그대로 튀어나온 것만 같았다.
잘생긴 남자의 등장으로 시청에 있는 모든 여성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안내데스크로 걸어가는 모습도 모델처럼 보일 정도였다. 외모도 외모였으나 남자의 주변에서 나오는 아우라는 사람을 끌어들이는데 충분했다. 효은 역시 밖으로 나가는 것도 잊은 채 남자의 모습만 빤히 쳐다봤다.
다만, 쳐다봄의 의미가 다른 사람과 달랐다.
‘외계인!’
눈을 마주쳤을 때, 그녀는 그가 외계인이라는 것을 단번에 눈치 챘다.
약간의 푸른빛이 도는 검은 머리카락은 눈동자처럼 짙은 푸른색이었다. 피부는 밀랍인형 혹은 뱀파이어처럼 핏기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새하야며, 외모는 인간과 비슷했으나 생전 느껴보지 못한 기운이 남자의 주변을 이리저리 돌고 있었다.
주변에 돌고 있는 알 수 없는 기운이 금방이라도 누군가의 목을 조를 것만 같았다. 숨 막힐 듯한 압박감에 정신을 놓으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으며 남자를 주시했다.
‘평범한 사람이었으면 그저 잘생겼구나 하고 넋을 놓고 쳐다봤을 텐데.’
외계인이라는 걸 안 순간부터 잘생김은 잊혀진지 오래였다.
그저 누군가를 짓누를 것만 같은 압박감을 가지고 있는 외계인이 왜 이곳에 있을까? 하는 의문만 들었다.
‘어, 얼른 나가야 하는데.’
머릿속에서는 금방이라도 밖으로 나가라고, 저 남자에게서 도망가라고 경고를 내뱉고 있는데 몸이 따라주질 않았다. 문과 가까운 곳에 서 있어 마음만 먹으면 도망갈 수 있지만, 여전히 다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제발 좀 움직여라, 좀!! 이를 악문 채 최대한 다리에 힘을 줬다.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가까스로 움직여 밖으로 나가려던 찰나, 안내원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남자가 고개를 돌리다 저를 보고 있는 효은과 눈이 마주쳤다.
“어?”
효은과 눈이 마주친 순간, 뭔가를 본 건지 남자의 얼굴이 미묘하게 굳어졌다.
그가 바라보는 사람이 자신이라는 걸 깨달은 효은은 뒷걸음질 치다 이내 문을 열고 쏜살같이 밖으로 나갔다.
‘저 여자…….’
효은이 밖으로 나갔음에도 남자의 시선은 오롯이 그녀를 향해 쫓고 있었다. 시청 밖으로 나간 효은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서야 남자는 비로소 시선을 돌렸다.
남자를 피해 전속력으로 도망치듯 밖으로 나간 효은은 버스 정류장과 가까워서야 겨우 걸음을 멈췄다. 운동부족이라는 걸 생각하지 못하고 무작정 뛴 탓에 숨이 가빠 금방이라도 먹은 것이 올라올 것만 같았다.
“주, 죽겠다.”
헉헉 거리며 가방에서 물을 꺼내 마신 후에야 간신히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겨우 살 것 같네.”
소매로 입가를 닦아내며 들고 있던 물병을 가방에 집어넣었다.
“그건 그렇고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외계인이었어.”
인간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종족.
아니 인간이라기보다는 뱀파이어라고 칭하는 것이 어울릴만한 종족이었다.
사파이어 같은 짙은 머리카락과 눈동자, 밀랍인형 같은 피부와 이성들에게 매력적인 외모는 (뱀파이어가 남주로 나오는)로맨스 소설에 자주 나오는 모습이었으니까.
평소에도 인간과 비슷한 외형의 외계인은 많이 본 적이 있으나 저렇게까지 비슷한 모습은 처음 봐 당혹스럽기만 했다. 저런 종족이 있었나? 책에서도 보지 못한 것 같은데. 게다가 그에게 느껴지는 낯선 기운 또한 처음 느껴보는 기운이었다.
“온몸이 압박당하는 느낌이었어.”
낯선 감각으로 인해 느껴진 압박감에 몸이 굳어 움직이지 못한 것을 떠올리니 다시금 등골이 오싹해졌다. 온몸의 소름이 돋아나며 털이 쭈뼛 서는 기분에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누군가를 압박할 강하고 오싹한 기운을 가진 그는 도대체…….
“그만 생각하자.”
생각해봤자 나만 괴로우니까. 더는 떠올리고 싶지 않아 몸서리쳤다.
“그건 그렇고 시청에 왔다면 외계인 등록을 하려고 온 건가?”
그게 아니라면 굳이 시청에 올 필요는 없을 텐데. 아니 방금 전에 그만 생각하자고 말해놓고 뭘 그렇게 궁금해 하는 거야. 어이가 없어 효은은 자신도 모르게 잔뜩 인상을 썼다.
그래도 다시는 만날 일이 없겠지, 라고 생각하며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그러나 효은이 ‘다시는 만날 일이 없겠지’ 라고 생각한 남자와 다시 마주치게 되게 된 것은 그 후로 사흘이 지나고 나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