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것이라 생각할 수 없는 음성이 튀어나왔다. 아이의 등에는 칼날이 촉수처럼 튀어나와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그의 옆에 있는 남자는 주저앉아 몸을 웅크린 채 벌벌 떨고 있었다. 공격을 안 하는 것을 보면 공범이거나 미끼일 가능성이 높았다. 아니 지금 중요한 것은 저 외계인에게서 어떻게 벗어나냐는 거였다.
“내가 인간이 아닌 걸 어떻게 알았지?”
또다시 낮은 음성이 귓가를 파고들었다. 궁금해서인지 방심하게 만들기 위해서인지는 모르나 저 질문에 굳이 대답할 필요는 없었다.
“…….”
효은은 대답대신 입술을 깨물었다.
정말 찰나의 순간이었다.
아이의 정체를 꿰뚫어보지 않았더라면, 등 뒤에 난 이상한 그림자를 보지 않았더라면, 재빨리 옆으로 피하지 않았다면 저것에 의해 꼼짝없이 목이 베였을 거다.
이 생각이 들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쫙 돋아난 동시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네가…… 요번 사건의 범인이구나.”
핸드폰을 꽉 쥔 채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런 셈이지.”
그것은 낄낄거리며 웃더니 겉모습을 찢으며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인간처럼 생겼으나 회색빛의 몸과 더불어 몸에서 칼날 같은 촉수를 튀어나오게 만드는 종족은 위험랭크 A+에 속하는 아이언 행성의 외계인이었다.
“젠장!”
왜 하필 저런 위험한 것에 엮인 거야?! 당황한 효은은 기다시피 자리에서 일어나 옆으로 몸을 피했다.
쾅! 소리와 함께 옆에 세워뒀던 차에 칼날이 박혔다.
“제법 눈치가 빠른 인간이네?”
자신이 죽인 여자들은 모두 눈치 채지 못했다고 말하며 칼날을 사방으로 뻗었다. 사정거리가 어디까지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몸이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 무작정 몸을 틀어 골목길 안쪽으로 들어갔다.
“쓸모없기는.”
그것은 제 옆에서 벌벌 떠는 남자를 보고는 혀를 차더니 효은의 뒤를 쫓았다.
“어떻게든 도움을 요청해야 해.”
골목길을 뛰어다니며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번호를 눌렀다. 이럴 때를 대비해 특수수사대 번호를 알아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보세요?
몇 번의 신호음을 끝으로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5번가 베타 오피스텔 근처 골목길인데요, 아이언 행성 외계인에게 습격을 받아―.”
뒷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뒤에서 날아온 칼날로 인해 핸드폰이 두 동강이 나 바닥에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푹, 하는 소리와 함께 효은의 다리에 칼날이 박혔다.
“아악!!”
고통에 찬 비명이 사방으로 울려 퍼지며 효은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끄, 끄아악…….”
칼날이 생각보다 깊게 박힌 탓에 다리 주변으로 피웅덩이가 생성되었다. 칼날이 빠지면서 느껴지는 고통에 절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잘리지 않는 것에 감사하며 피투성이가 된 자신의 다리를 가까스로 움직여 앞으로 기었다.
콱!
그마저도 제 눈앞에 박힌 칼날로 인해 막히게 되었다.
“그러게 왜 도망을 가서 피곤하게 만들어?”
한방에 죽으면 좋았잖아? 킬킬거리며 제게 가까이 오는 외계인을 보며 인상을 쓰던 효은은 흩어진 가방 안쪽에 보이는 뭔가를 발견하고 다급히 손을 뻗었다.
“이제 그만 죽―.”
“꺼져!”
효은은 들고 있던 외계인 전용 스프레이를 뿌렸다.
“끄아아악!!”
스프레이는 정확히 외계인의 눈에 맞았고, 외계인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외계인 전용 스프레이를 사놓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계인들이 싫어하는 물질로 만들어진 스프레이를 정통으로 맞았으니 쉽게 다가오지는 못 할 거다.
다가오지 못 하게 만든 건 좋았으나 특수수사대에게 전화를 도중 끊겨 그들이 올지 안 올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시간은 벌었으나 다리에 부상이 심해 도망가지 못 하는 것이 흠이었다. 다시 연락을 취해야 하는데 핸드폰이 두 동강이 나버렸으니.
하는 수 없이 주변의 도움이라도 받으려던 찰나, 샥! 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날아와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엇…….”
뺨에 생채기가 났는지 피가 흘러내렸다.
제 옆에 박힌 것이 칼날이라는 걸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공격하겠다는 생각으로 인해 칼날을 던진 것 같은데, 운 좋게 급소가 빗겨나갔다.
“거기 있구나.”
상처로 인해 생긴 피 냄새를 맡았는지 눈을 가리며 괴로워하던 외계인의 표정이 환하게 바뀌었다. 효과도 차츰 사라질 시기라 효은은 입술만 꽉 깨물었다.
다리의 통증은 두려움에 지배당해 느껴지지 않았다. 다친 다리로는 움직일 수 없으니 어떻게든 다가오지 못 하게 해야 하는데 두려움에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었다. 제 옆에 있는 칼날이 뽑히며 원래 주인에게 돌아가는 것을 본 연화는 마지막 발악으로 손에 든 스프레이를 꽉 쥐었다.
밑져야 본전이라고 던지면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심정으로 스프레이를 있는 힘껏 외계인에게 던졌다, 예상대로 저에게 날아오는 무언가를 칼날로 잘라낸 외계인은 그것이 스프레이라는 걸 알고 더욱 발악했다.
“아아악!! 인간 주제에!!”
칼날 촉수가 마구잡이로 휘둘려졌다. 고통을 삼키며 촉수가 닿지 않는 곳으로 몸을 웅크렸다.
“죽일 거다, 죽일 거다, 죽일 거다!!”
마지막 발악으로 무작정 앞으로 돌진하는 외계인. 효은은 새된 비명을 지르며 옆으로 몸을 피했는데.
“거기까지 해.”
낯선 목소리가 들린 동시에 외계인의 몸이 바닥에 그대로 처박혔다. 캭, 소리와 함께 땅에 처박힌 외계인은 방금 전과 같이 칼날 촉수를 이리저리 휘둘렀으나 그마저도 낯선 이로 인해 묻히게 되었다.
“너, 넌 뭐야?”
“글쎄, 내가 누구일까?”
검은 제복을 입은 남자가 굳은 얼굴로 물었다.
푸른 눈동자에서 느껴지는 살기를 느낀 외계인은 기겁하며 도망치려고 했으나―.
“어딜 가려고?”
갑자기 날아온 고드름으로 인해 두 다리가 박혀 움직일 수 없었다.
“끄아아아악!!”
그 광경을 보고 있던 효은은 귀를 틀어막고 고개를 돌리고 싶었으나 힘이 빠져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움직이고 싶어도 움직일 수 없는 답답함에 다리만 멀쩡했으면 진즉에 도망갔을 텐데, 라는 한탄만 내뱉을 뿐.
“한기?”
그러던 와중 겨울이 아니었음에도 주변에 한기가 몰려왔다. 외계인 중심으로 몰린 갑작스러운 한기로 인해 주변에 꿈틀거리던 칼날 촉수가 얼어붙더니 얼음뭉치가 떨어지듯 땅바닥에 떨어졌다.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깨진 칼날은 산산조각이 났다.
“끄아아아아아악!!”
그와 동시에 외계인의 비명소리가 거세졌다.
“시끄러우니까 제발 입 좀 닥치고 있어.”
딱, 손가락 튕기는 소리와 함께 외계인의 발끝에서부터 얼어붙기 시작했다. 제 몸이 얼어붙어가자 싫다며 발악했으나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얼어붙는 속도가 빨랐다. 마침내 머리끝까지 얼어붙어서야 외계인의 비명소리도, 움직임도 그대로 멈췄다.
하, 꽤 성가신 상대라 입에서 한숨이 새어나왔다.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주변을 살피던 그의 눈에 효은이 들어왔다.
“괜찮으십니까?”
남자의 물음에 효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 당신은…….”
어두워서 제대로 보지 못 했는데 달빛이 비춰서야 그의 얼굴이 제대로 들어왔다.
푸른빛이 도는 검은 머리카락과 사파이어 같은 짙은 눈동자는 잊고 싶어도 잊을 수가 없었다. 우연히 마주치고 우연히 재회하게 된 푸른빛의 외계인. 주변이 어두운 탓에 푸른 눈동자가 더욱 빛나보였다.
*
“조금만 참으세요.”
온몸이 눈과 같이 새하얀 여성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효은의 다리에 손을 댔다. 손을 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쳤던 부위가 순식간에 치료되었다.
“가, 감사합니다.”
“다른 곳은 아픈 데가 없으시나요?”
“네? 네…… 다른 곳은 괜찮습니다. 치료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여성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사람들과 합류했다.
‘역시, 예쁘네.’
눈 같이 새하얀 모습은 말할 것도 없으며 은색 같은 푸른 눈동자는 루나 행성 외계인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대부분 누군가를 치료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 지구에서는 의료계 쪽에서 일했다.
어쨌든 루나인 덕분에 다리가 멀쩡해졌다는(병원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감사하던 효은은 자리에서 일어나다 아이작과 눈이 마주쳤다. 푸른 눈동자와 눈이 마주치자 잘못한 것도 없음에도 자신도 모르게 아이작의 시선을 피했다.
다행히 연락이 닿았던 건지 외계인 담당 특수수사대가 제시간에 도착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들은 사람들이나 외계인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주변을 통제하며 정리했다. 그 중심에는 당연 아이작이 있었다.
“팀장님, 말씀하신 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대처했습니다.”
뭐, 팀장님에게 얼려져서 하루종일 저 신세겠지만요. 그의 시선에는 금속으로 만든 우리에 갇힌 외계인이 있었다.
“저 녀석이 요번 사건의 범인 맞겠죠?”
“아마, 혹시 모르니까 촉수를 포함해 깨진 칼날에서 혈액 채취해. 피해자들의 혈흔이 발견되면 범인이 맞고 아니면 모방범인 가능성이 높으니까.”
“알겠습니다.”
‘특수수사대 팀장인 건가.’
능수능란하게 지휘하는 것을 보면 팀장 직위에 있는 것이 틀림없는데, 인간이 아닌 외계인이 팀장을 맡았다는 경우를 본 적이 없어 저도 모르게 흥미를 가졌다.
팀장인 아이작을 포함해 수사대 팀원 대부분이 외계인이었다. 특수수사대에는 일하는 자 중에 외계인이 있는 건 어찌보면 당연했으나 대부분 인간이 차지하는 비율이 더 높았다. 그 탓인지 외계인의 수가 많고 팀장이 외계인인 5번가는 다른 이들 사이에서도 화제였다.
‘그나저나 나는 언제 집에 돌아갈 수 있는 걸까.’
일단 목격자이고 피해자이니까 쉽게 집에 돌려보내줄 것 같진 않았다. 그렇다면 빨리 끝내고 집에서 쉬고 싶은데. 한숨을 쉬며 주변이 정리되기만을 바랐다.
“아이작 팀장님, 여기 수상한 자가 있습니다.”
그때 팀원의 목소리를 들은 아이작이 고개를 돌렸다. 팀원이 누군가를 데리고 아이작 앞에 섰다.
“어?”
그는 자신에게 말을 걸었던, 아이언 외계인에게 이용(혹은 조력)당한 남자였다.
“저기서 벌벌 떨고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나, 나는 몰라, 아무것도 몰라…….”
잔뜩 겁에 질린 채 같은 말만 번복해서 말하는 남자. 몸을 사시나무 떨 듯 떨며 다른 이들과 눈일 마주치지 않게 시선을 밑으로 고정했다. 도저히 연기라고 생각할 수 없는 모습에 아이작은 혀를 끌끌 찼다.
“일단 목격자인 것 같기는 한데, 어떻게 할까요?”
“글쎄. 혹시 모르니까 저것하고 같이 두는 것이―.”
“잠깐만요, 저 사람은 인간이에요!”
효은의 말에 흠칫 놀란 아이작은 고개를 돌렸다.
“뭐라고?”
“네? 저 사람 인간이니까 외계인하고 같이 두면 위험하지 않을까 해서…….”
뭔가 실수했나 싶었던 효은이 입을 다물었으나 이미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었다. 의아해하는 팀원과 달리 아이작은 뭔가를 깨달았다는 표정을 짓고는 표정을 굳혔다.
“역시 그런 건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아이작은 팀원에게 그를 맡기고 효은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흠칫! 아이작의 원래 모습을 볼 수 있는 효은으로서는 두 사람이 제게 오는 것 같아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어디서 봤나 싶었더니 시청에서 일하는 카페 직원이었네.”
자신을 알아봤다는 사실에 효은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다른 이들에게 매혹적으로 느낄 얼굴과 목소리가 왜 이렇게 섬뜩하게만 느껴질까. 지금의 효은에게 있어 아이작의 모습은 공포영화에 나오는 살인마처럼 느껴졌다.
빛이 보이지 않는 어둠속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푸른 눈동자가 얼음송곳이 되어 금방이라도 저를 꿰뚫을 것만 같아 두려웠다. 처음 마주쳤을 때 느꼈던 압박감을 다시 한 번 느끼자 금방이라도 정신을 놔 버릴 것 같았다.
“시청에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이제는 확실하게 알 것 같아.”
처음에는 착각인가 싶었는데, 이거 때문이었어. 아이작은 몸을 숙인 채 다른 이들에게 들리지 않게, 오롯이 효은에게만 들릴 수 있게 속삭이듯 말했다.
“당신…… 외계인을 구별할 수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