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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외계인의 미묘한 관계
작가 : 문라이트
작품등록일 : 2018.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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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1)
작성일 : 18-12-14     조회 : 76     추천 : 0     분량 : 5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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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집에 왔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몸이 물에 젖은 스펀지마냥 무거웠고, 한 것도 없는데 무척이나 피곤했고…… 지쳤다.

 

 어제 일이 워낙 정신없고 현실감이 없던 탓에 오늘이 쉬는 날이 아니었으면 병가를 냈을 만큼 무척이나 힘에 겨웠다.

 

 “분명 어제 다 치료받았는데.”

 

 상처가 난 것처럼 욱신거리는 다리를 바라보며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루나 행성 출신 외계인의 치료를 받아 멀쩡해진 다리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감촉. 살이 찢어질 정도로 깊게 찔린 아픔과 움직이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공포 등등 피투성이가 된 흐르는 피가 너무나 생생해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샤워를 한 것 같은데도 온몸에서 피 특유의 철분냄새가 나는 것 같아 더욱 속이 메슥거렸다.

 

 “뭐라도 먹을까.”

 

 침대에 누워 눈을 깜빡이다 어제 일어났던 일을 떠올렸다.

 

 

 

 

 효은이 인간과 외계인을 구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아이작의 눈빛이 사뭇 달라졌다.

 

 인간이 외계인을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은 특수한 장비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장비를 몸에 심어두거나 가지고 다니지 않는 이상은 절대로 구별할 수 없으며 설령 감이 좋아 인간이 아니라는 걸 알아도 어떤 외계인인지는 알아차릴 수 없다.

 

 아이작은 효은과 처음 마주쳤을 때부터 이상한 느낌을 받긴 했었다. 자신을 뚫어져라 보는 눈빛은 다른 이들과 달리 두려움과 경계심이 가득 담긴 눈빛이었다.

 

 마치 자신이 외계인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처럼.

 

 처음에는 그저 우연이겠구나 싶어서 신경 쓰지 않고 있었는데, 카페에서 일하는 그와 다시 마주쳤을 때 미묘한 변화를 눈치 채자마자 왜 효은이 자신을 그런 눈빛으로 쳐다봤는지, 저와 최대한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는지 깨달았다.

 

 “외계인을 구별할 수 있어서 나와 눈이 마주치려고 하지 않았던 거지?”

 

 나름 상냥한 어조로 얘기했으나 이미 제 비밀이 밝혀졌다는 사실에 효은은 두려움이 가득담긴 얼굴로 떨고만 있었다.

 

 그냥 모른척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었으나 이미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하는데 모른 척해봤자 소용없었다. 자신이 하는 말을 놓치지 않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텐데 무슨 대답을 해야 저 사람을 이해시킬까.

 

 푸른 눈동자와 눈을 맞추며 생각에 잠겨있던 사이 누군가가 두 사람의 곁으로 다가왔다.

 

 “팀장님,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너무 겁주시는 거 아니에요?”

 

 루나 행성 출신이자 힐러인 레이카였다.

 

 뭔가 두 사람 사이에 미묘한 기운을 느낀 레이카가 끼어들었다. 제가 끼어듦으로서 안도하는 효은과 미간을 좁히는 아이작, 두 사람의 상반된 반응에 레이카는 작게 혀를 내둘렀다.

 

 “이분은 저 외계인 때문에 하마터면 목숨이 날아갈 뻔했다고요. 저 같아도 외계인이라면 치가 떨리는데 그렇게 잔뜩 겁을 주시면 어떡해요.”

 “겁주지 않았는데.”

 “팀장님이 무표정하게 있으시면 다른 사람들도 무서워할 겁니다.”

 

 저 무표정한 얼굴이 어디가 멋있다는 건지. 그 말을 들은 효은은 하마터면 웃음이 나올 뻔한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어쨌든 조사 다 마치셨으면 이제 그만 집에 보내주세요. 많이 지치셨는데 이러다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어쩌시려고요?”

 “아직 못 보내.”

 

 집에 갈 수 있을 거라는 작은 희망이 아이작의 말 때문에 사그라지려 했다. 제 비밀을 알아차린 이상 조사를 핑계로 보내주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불안함에 입술만 깨물었다.

 

 “상황설명도 듣지 못 했어.”

 “아니 지금까지 뭐하셨길래 피해자 진술도 듣지 않고 계셨어요?”

 “다른 것에 정신이 없었으니까.”

 

 그제야 아이작은 효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얼떨떨해하던 효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제가 겪었던 일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얘기를 하는 내내 아이작은 어떠한 추임새도 넣지 않았다. 그저 묵묵하게 얘기를 들을 뿐.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얘기를 마친 아이작은 아까와 달리 무덤덤한 어조로 말했다.

 

 ‘이걸로 끝이야? 나야 좋기는 하지만.’

 

 아까는 잡아먹을 것처럼 굴더니 지금은 순순히 납득하고 물러난다? 뭔가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에 고개만 갸웃거리고 있는데, 뭔가를 깊게 생각하던 아이작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안주머니에서 손을 집어넣고는 무언가를 꺼내 효은에게 내밀었다.

 

 “제 명함입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이나 나중에 무슨 일이 있으시면 이쪽으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외계인 전담 특수수사대

 9팀 팀장 아이작.N.카론]

 

 “아, 알겠습니다.”

 

 명함을 주머니에 넣으며 답했다.

 

 “그럼 저는 이만…… 수고하세요.”

 

 그 길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무작정 집으로 돌아왔다.

 

 주변에 있던 팀원들의 표정이, 그의 표정이 어떤지는 알바가 아니었다. 그저 빨리 그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내가 미쳤지.”

 

 거기서 왜 수고하세요, 라는 말이 튀어나온 거냐고. 지금 생각해도 바보 같은 말이었다.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가까스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응?”

 

 부엌으로 가려던 차에 협탁 위에 있는 명함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작.N.카론

 

 왠지 모를 익숙한 성에 눈이 절로 갔다.

 

 이곳에 오는 외계인 대부분이 에일 시티에 등록할 때 자신의 출신 행성을 성으로 사용했다. 옆집에 사는 레나의 이름이 레나.Y.비너스인 것처럼. 중간 성이 자신의 진짜 성씨 일수도 있고 혹은 이름을 수도 있다.

 

 다른 때 같으면 그러려니 넘겼을 텐데, 성으로 쓴 그의 출신지가 문제였다.

 

 ‘카론? 카론 행성 출신인가? 하지만 그곳은…….’

 

 몇 개월 전, 카론 행성을 지배한다고 알려진 나흐트크라프(Nachtkrapp) 가문이 누군가의 습격으로 일가친척 모두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며 행성 뉴스에서 크게 다뤄졌었다.

 

 조그마한 행성이었음에도 어느 누구도 건들 수 없다고 알려진 카론 행성.

 

 다른 외계인들보다 뛰어나며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어 카론 행성뿐만 아니라 그 주변에 있는 행성을 지배해왔다. 그 중심에는 단연 나흐트크라프 가문이 존재했고. 스스로를 왕이라 칭하며 주변 행성들을 차례차례 지배했던 가문이 하루아침에 누군가에 의해 멸문당한 탓에 외계인뿐만 아니라 평범한 인간들도 관심을 가졌었다.

 

 그 과정에서 나흐트크라프 가문의 후계자로 지목되었던 현 당주의 아들인 블레이즈 나흐트크라프가 실종되었는데, 세간에서는 그가 가문의 모든 자들을 죽이고 도주했다고 쑥덕거렸다. 그가 현 당주와 사이가 틀어졌다는 소문이 돌던 탓에 제법 신빙성이 있는 루머였다.

 

 단순한 루머인지 진실인지는 그의 흔적이 끝끝내 밝혀지지 않아 진실이 뭔지는 알 수 없게 되었지만.

 

 어쨌든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카론 행성이 보이자 왠지 모를 미묘한 기운이 온몸을 스쳐 지나갔다.

 

 “설마…… 아니겠지?”

 

 카론 행성에 나흐트크라프 가문만 있는 건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영 꺼림칙했다. 중간에 들어간 성이 N 들어가는 것도 그렇고, 카론 행성 출신이라는 것도 그렇고.

 

 만약 그가 정말로 카론 행성 출신이라면 그의 원래 모습을 보았을 때 자신이 아는 외계인이 아니라는 점이 나름대로 이해갔다. 카론 행성 출신들의 생김새는 인간과 비슷하다는 것 외에는 모든 것이 베일에 싸여 있었으니까.

 

 ‘아니 그렇다 해도 왜 나는 이걸 기억하고 있는 거지?’

 

 평소 같았으면 외계인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라 치부했을 텐데. 멍하니 있던 효은은 골치 아픈 일은 그만 생각하자고 작게 중얼거리며 들고 있던 명함을 협탁 위에 내려놓고 부엌으로 향했다.

 

 저도 모르게 떠올려진 기억.

 

 무엇으로 인해 뇌리에 박혀 떠올려진 ‘카론 행성’에 대한 사건. 왜 카론 행성에 대해서, 나아가 나흐트크라프 가문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던 건지 그 당시 효은은 깨닫지 못 하고 있었다.

 

 *

 

 효은을 습격하던 외계인이 연쇄 살인사건의 범인이 맞았던 건지 범인이 잡혔다는 뉴스로 인해 아침부터 떠들썩했다.

 

 제 동료를 살해하고 불법으로 에일 시티에 들어왔던 그 외계인은 아이의 모습으로 접근, 상대방을 방심하게 만든 후 제 칼날 촉수를 이용해 단숨에 목숨을 끊었다. 이런 식으로 당한 피해자가 5명 이상이었으며, 마지막 피해자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특수수사대 덕분에 운 좋게 목숨을 건졌고.

 

 특수수사대 쪽에서 수를 썼는지 마지막 피해자에 대한 신상이 알려지진 않았으나 효은은 혹시라도 주변에서 알려질까 조마조마하며 사건에 대한 얘기를 일절 하지 않은 채 묵묵히 일만 했다.

 

 사건당시 저에게 말을 걸었던 인간은 그저 그 외계인에게 이용당한 피해자였던 건지 조사 후 풀려났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을 죽인 광경을 보고 충격을 많이 받은 탓에 병원에 입원중이라고 것까지 상세하게 보도되었다.

 

 어쨌든 범인이 잡히기는 했으나 이 뉴스로 인해 역시 외계인 놈들이라며 이곳에서 쫓아내야 한다고 욕을 퍼붓는 사람들과 모든 외계인이 범인과 같진 않으니 무작정 욕하지 말라는 사람들의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했다.

 

 팽팽하게 대립 속에서 행동에 나선 것은 당연 반외계인파였다.

 

 “외계인은 자신의 행성으로 돌아가라!!”

 

 오죽하면 저렇게 시청 앞까지 와서 저렇게 떠나가라 소리를 지를까. 시위하는 사람들 틈을 가까스로 빠져나온 은화는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미간을 찌푸렸다.

 

 “와, 아침부터 저렇게 서서 시위하는 것 좀 봐. 무섭다, 무서워.”

 “그러게 말이야. 덕분에 시청 직원 모두 비상사태잖아.”

 “우리야 손님이 없으니 편하긴 하지만, 저러다가 뭔 일 생길까봐 걱정이다.”

 

 옷을 갈아입고 나온 은화는 싱크대에서 설거지를 하다 문뜩 뭔가 떠올랐는지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너 괜찮아? 범인이 잡힌 곳 네가 사는 오피스텔하고 가깝던데.”

 “어? 나야 괜찮지.”

 

 사실은 괜찮지 않지만 괜한 걱정을 끼치게 하고 싶지 않아 아무렇지 않은 척 굴었다.

 

 “물론 사건 현장과 가까워서 지금도 시끄러워.”

 “너도 참 고생이 많다.”

 “어쩌겠어, 범인이 잡힌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해야지.”

 

 사건의 여파와 시위로 인해 시청은 찾는 사람이 별로 없어 평소보다는 여유로웠다. 테이블을 정리하며 슬슬 퇴근 준비를 잡고 있는데, 누군가가 아는 척을 하며 그들에게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웨이브진 아름다운 은발의 머리카락, 모델 같은 키와 몸매와 더불어 은색으로 빛나는 푸른 눈동자. 남들에게 드러낼 만큼 신비롭고 아름다운 모숩의 여인은 자신의 다리를 치료했던 루나 행성 외계인이자 특수수사대 팀원인 레이카였다.

 

 갑작스러운 레이카에 등장에 당황한 효은이 어버버 거리고 있는데 얼굴만큼이나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주문 가능하죠?”

 “네? 아, 그럼요. 무엇으로 드릴까요?”

 “잠시만요.”

 

 레이카는 주문 대신 조용히 쪽지를 내밀었다.

 

 쪽지에 꽉 찰 만큼 많은 양의 주문 내용에 효은과 은화 모두 경악에 찬 표정을 지었다.

 

 팀원 전부가 시키는 건가? 아니 그래도 이건 좀 너무 많은 거 아냐? 심지어 주문한 음료도 하나로 통일되지 않고 제각각이었다.

 

 “주문량이 많아서 죄송스럽지만 부탁드릴게요.”

 “네? 아,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더 죄송한데 음료가 완성된다면 저희 부서로 배달 부탁드려도 될까요?”

 “배달하는 거야 어렵지는 않습니다만…….”

 

 왠지 모르게 자신에게 배달을 부탁하는 표정이었다.

 

 “제가 가야 하나요?”

 “네, 부탁드릴게요.”

 

 예상대로 레이카는 배달 상대로 자신을 지목하고 있었다. 일단은 알겠다고 했으나 찝찝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들고 있던 카드로 계산을 하면서도 연신 부탁한다는 말을 늘어놓은 레이카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부서로 돌아갔다.

 

 부서로 돌아가는 레이카의 뒷모습을 나지막이 바라보던 효은은 들고 있던 쪽지에 다시 눈을 돌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양이 너무 많았다. 음료도 제각각에 수도 너무 많아 두 명이서 만들기에도 벅찰 정도의 양. 직원이 많아 하나씩 시킨 건지 별로 없는데 여러 가지를 시킨 건지는 알 수 없으나 하나만은 알 수 있었다.

 

 쪽지에 적인 음료를 모두 만들면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나갈 거라는 것을.

 

 “퇴근하면서 배달 가야하는 내 신세도 참…….”

 

 은화가 쏟아내는 동정의 눈길을 애써 무시하며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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