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카가 준 쪽지에는 부서 위치가 적혀 있었다.
909호라는 것은 9층이라는 소리였기에 효은은 연신 한숨을 내쉬며 안내데스크 기준으로 왼쪽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외계인 전담 특수수사대는 외계인을 상대한다는 이유로 인간 관리부가 아닌 외계인 관리부가 있는 왼쪽에 배치되었다. 장비가 없거나 외계인이 원래 모습으로 있지 않는 한 구별이 되지 않아 인간 직원임에도 외계인 취급 받는 헤프닝이 간간이 벌어졌다.
띵,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내리자마자 909호가 적힌 방을 찾아 돌아다녔다.
“여긴가.”
909호는 엘리베이터와 반대 방향, 건물의 끝에 위치하고 있었다.
‘뭔가 동떨어진 느낌이네.’
다른 호수와 달리 떨어져 있는 909호. 그도 그럴 것이 복도를 기준으로 양옆에 있는 다른 방과 달리 복도 맨 끝에 위치하고 있어서 강당 혹은 창고를 개조해서 만들어진 방 같았다.
신설되었던 건가? 고개를 갸웃거리다 빨리 배달을 끝내고 집에 가자는 심정으로 노크했다.
안쪽에서 들어오라는 말이 들려오자 효은은 가까스로 문고리를 붙잡아 문을 열었다.
“실례합니다.”
안으로 들어간 효은은 자신도 모르게 헉, 하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제가 생각하는 회사 사무실 풍경이 아니었다. 덕지덕지 붙어있는 책상과 책상을 가리는 파티션이 없다. 책상 위에 빼곡하게 쌓인 서류들도, 전자파를 마구 발산하는 컴퓨터들도 보이지 않았다.
한 가운데에 놓인 소파와 TV는 평범한 가정집의 거실 풍경이었다. 벽과 가까운 곳에 개인 책상이 있기는 하나 붙어있는 것이 아니며 그마저도 집에서 개인이 사용하는 책상이라 사무실로 보이지 않았다.
양손이 무거운 것도 잊은 채 멍하니 주변만 바라보고 있는데 ‘오셨네요?’ 라는 말과 함께 한쪽 구석에 앉아 서류를 정리하던 레이카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네.”
겨우 정신을 차린 효은이 고개를 끄덕이며 들고 있던 음료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수고하셨어요.”
“저, 그런데 직원 분은…….”
사람이 없는 것처럼 조용한 분위기. 레이카를 제외하고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리 외계인과 인간이 섞여 있다고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인기척이 없다는 것은―.
“다른 일을 처리하고 있어서 사무실에는 저와 팀장님뿐이에요.”
“아, 그래요?”
“뭐, 기껏해야 5명 정도 되지만요.”
모든 직원이 있어도 조용했을 거라는 말에 그렇구나, 라며 대꾸하던 효은은 자신이 가지고 온 음료수의 양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받은 음료수의 양은 총 24개였는데?’
설마 직원들이 먹는 양이 다른 걸까?
“다들 단 걸 너무 좋아하니 주문량이 많아졌어요. 오느라 고생했어요.”
예상했다는 표정으로 답하는 레이카였다.
“그, 그렇군요.”
배달은 다 마쳤으니 그만 가도 되나 싶어서 눈치를 보고 있는데 안쪽에 있는 방에서 누군가가 나왔다.
“레이카, 누구 왔…….”
“아, 안녕하세요.”
갑작스러운 만남에 당황한 효은은 얼떨결에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멍하니 눈을 깜빡이던 아이작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인사를 대신했다.
“실은 팀장님이 배달을 시키셨어요.”
“네?”
“할 말이 있어서 음료수도 마실 겸 배달을 부탁했습니다.”
“아, 그래요?”
나를 부르기 위해 일부러 배달을 시켰다는 건가. 왠지 모르게 기분이 나빴으나 애써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일단 앉으라는 말에 앉기는 했지만 가시방석에 앉은 것 같이 불편해 금방이라도 자리를 뜨고 싶었다.
“드세요.”
레이카는 효은에게 (효은이 배달한)키위 주스를 내밀며 마시라고 말했으나 받기만 할뿐 주스를 마시지는 않았다. 갑자기 뭐야? 왜 저러는 건데? 연신 이해가지 않는 상황에 효은은 들고 있던 음료수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먼저 말을 꺼내기 전에 제 소개부터 하겠습니다. 저는 외계인 전담 특수수사대 팀장 아이작.N.카론이라고 합니다. 짐작하셨는지는 모르지만 카론 행성 출신이죠.”
역시 카론 행성 출신이었어. 효은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은 부팀장인 레이카.L.루나로 루나 행성 출신이죠.”
“정효은입니다, 보다시피 인간이죠.”
의도치 않게 인간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며 말했다.
혹시라도 기분이 나빴을까 하는 우려와는 달리 두 사람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지 테이블 위에 올린 음료수를 한입 마셨다.(아이작은 초코라떼를, 레이카는 자몽에이드를 마셨다.)
“사실 효은 씨를 부른 건 다름이 아닙니다. 저번에 일을 사과하는 겸 부탁 하나를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부탁이요?”
“네, 실례인줄은 알지만…….”
아이작은 들고 있던 음료수를 내려놓고 몸을 앞으로 숙였다. 푸른빛으로 빛나는 눈동자가 유난히 반짝였다. 인간의 모습 옆에 보이는 그의 원래 모습. 푸른빛의 눈동자는 사파이어 혹은 라피스라줄리처럼 짙고 아름다웠다.
그의 정체를 알아차리지만 않았다면, 외계인과 관련된 일에 휘말리지 않았다면 저 눈동자가 아름다워서 빠져들었을 텐데.
더 이상의 두려움은 들지 않았으나 그만큼 경계심은 높아졌다. 내게 무슨 부탁을 하려고 저렇게 분위기를 잡아가는 걸까. 온몸이 빳빳하게 굳을 정도로 긴장한 가운데, 아이작은 눈동자만큼이나 매력적인 목소리로 작게 속삭였다.
“괜찮으시면 저희와 같이 일해주시지 않겠습니까?”
*
“으, 피곤해.”
뭔가 한 것은 없는데 왠지 모르게 지친 탓에 집에 오자마자 침대에 뻗었다. 멍하니 눈을 깜짝이던 효은은 제 배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한숨을 내쉬었다.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나는데 무언가를 먹고 싶지는 않았다.
“미치겠네.”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아까 아이작이 한 말을 떠올렸다.
「외계인과 인간을 구별하실 수 있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아이작은 이 말을 이유로 붙이며 효은에게 자신과 같이 일하자고 제의했다. 강요가 없는 정중한 목소리와 태도였으나 덧붙인 이유가 어딘가 시원찮았다.
아무 경력도 없는 카페 직원에게 특수수사대로 들어오라는 것 자체가 난센스인데 외계인과 인간을 구별할 수 있다는 이유로 들어가라고 하니 더욱 납득이 되지 않았다.
흉흉하게 일어나는 사건의 범인이 인간인지 외계인인지 밝히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두 종족을 구별하는 건 정부에서 개발한 특수장비로도 충분하며, 외계인끼리는 인간인지 외계인인지 알아차릴 수 있어 더더욱 자신이 필요가 없었다.
다만 자신이 인간과 외계인을 구별할 수 있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부터 달라진 아이작의 미묘한 태도와 더불어 지금의 정중한 태도는 뭔가 숨겨진 이유가 있음을 짐작케 했다.
「단순히 외계인과 인간을 구별하기 위해서 저에게 특수수사대에 들어오라 권유를 하시는 건 아니죠?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제대로 된 설명 없이는 들어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아이작은 얼굴을 살짝 굳혔다. 화가 난 것은 아니었으나 입가에 미소가 지워지자 자신이 잘못한 것 같아 주눅이 들었다.
그런데도 이유 없이는 들어가지 않겠다며 다시 한 번 단호하게 내뱉었다. 내 대답을 들은 그가 무슨 말을 했더라.
띵동.
그때 적막을 깨는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뭐야? 평소 찾아올 이가 없는 걸 알지만 혹시나 싶은 마음에 자리에서 일어나 문 앞에 가까이 다가갔다.
“누구세요?”
“나야.”
익숙한 목소리에 안심을 한 효은이 문을 활짝 열었다. 역시나, 문을 열자마자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은화 네가 웬일이야?”
“할일 없으면 나랑 술이나 마시자고~”
퇴근하는 길에 사온 건지 양손에 든 샴페인을 흔들며 물었다. 둘 다 알코올이 제법 낮은 여성들이 주로 마시는 과일향이 물씬 풍기는 샴페인이었다. 마침 답답하던 차에 스트레스나 풀자 싶어 은화를 집안으로 들였다.
“연락이라도 하고 오지.”
“연락했는데 네가 씹은 거거든?”
“아, 그래?”
정신이 없어서 그랬다며 적당히 넘어간 후 안주 거리를 찾기 위해 냉장고를 열었다. 장을 보지 않았으나 다행히 두 사람이 먹을 것은 충분했다.
“어디보자, 식은 치킨하고 소시지볶음 있네……. 그냥 시켜줄까?”
“됐어, 그거면 충분하지.”
“그래? 그럼 조금만 기다려.”
효은이 식은 치킨과 소시지볶음을 데우는 동안 은화는 싱크대 선반에서 앞 접시와 컵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몇 번 놀러 온 적이 있어서 컵이나 접시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어 준비가 수월했다.
잠시 후, 맛있는 냄새가 주변에 풍겨 식욕을 자극했다. 은화는 데운 치킨과 소시지볶음을 접시에 담에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음, 맛있어.”
“다행이네, 식은 거라서 맛없을까 봐 걱정했다.”
짠~ 술잔을 들어 서로 부딪힌 후에야 본격적으로 마시기 시작했다.
안주와 술이 들어가니 이런저런 얘기가 거침없이 튀어나왔다. 적절한 선을 지키며 대화를 나누던 효은은 이내 진지한 표정을 짓더니 며칠 전 있었던 일과 함께 퇴근 전에 있었던 일을 털어놨다.
“진짜? 아니 왜 그런 중요한 일을 내게 말하지 않은 거야?”
“괜한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아서 그렇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죽을 뻔했으면서 뭐가 그리 태연해?”
“태연한 척 하는 거야, 바보야.”
그날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오금이 다 저리다고. 효은은 들고 있던 술을 단숨에 마신 후 제법 거칠게 잔을 내려놨다. 분명 단맛이 강한 술인데도 불구하고 쓴맛만 느껴지는 걸까. 효은은 인상을 찌푸리며 술을 따랐다.
“가뜩이나 이런저런 일 때문에 정신이 없는데 친구 걱정까지 끼치냐?”
“그건 알지만.”
너는 너무 숨기려한다는 것이 문제야. 은화는 뒷말을 삼키며 제 잔에서 술을 따르는 효은을 나지막이 바라봤다.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옛날부터 지금까지 힘든 일은 내색하려하지 않고 속으로만 삼켰다. 괴로운 일이 있었다는 걸 숨기며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노력하는데 제 3자의 입장으로 보자면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도와달라는 말을 하지 않고 티조차 내질 않으니 힘든 일이 있더라도 함부로 끼어들 수도, 그렇다고 아예 모른 척할 수 없어 답답하기만 했다. 차라리 도와달라고 한마디라도 내뱉으면 좋으련만.
“네 능력이야 특이하니까 어떻게 보면 특수수사대에 들어갈 만하다고 볼 수 있지만.”
은화는 자신과 효은의 잔에 술을 따르며 말을 이었다.
“들어가고 싶진 않은 거지?”
“뭐? 어, 그렇지. 외계인과 인간을 구별해주는 특수장비가 있는데 굳이 내가 들어가야 싶기도 하고, 또―.”
“그거뿐만이 아니잖아.”
“응?”
“효원 언니 때문이잖아.”
정곡을 찔린 탓에 효은의 입가가 일그러졌다. 미소가 사라진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있었다. 핏기하나 없는 얼굴로 뭔가를 생각하던 효은은 이내 인정한다는 표정으로 작은 한숨을 내뱉었다.
역시 은화에게는 못 당하겠다니까.
“네 말이 맞아. 언니 일이 있어서 외계인들하고 일하는 거 좀 그래…….”
가뜩이나 힘든데 더는 그들과 엮이고 싶지 않아. 효은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녀의 시선에는 어머니의 옆에서 행복하게 웃고 있는 언니가 있었다.
정효원(鄭曉原).
효은의 세 살 터울인 언니로 그녀 또한 효은과 마찬가지로 남들에게 없는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어떤 외계인이든 말을 알아듣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능력인데(에일 시티에 사는 외계인들 모두 인간 모습으로 변하면 자연스럽게 그 나라의 언어가 나오도록 몸 어딘가에 통역기를 부착한다.), 워낙 희귀하고 귀한 능력이라 그녀의 능력을 눈여겨보고 있던 정부의 부탁으로 외계인 통역사로 일하고 있었다.
외계인들과 인간의 교류를 나누며 공존을 위해 노력하던 언니.
그 과정에서 만난 남자친구와의 행복한 결혼을 꿈꾸며 살아가던 차에…… 외계인으로 인해 잔혹하게 살해당했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살해당한 언니, 마찬가지로 피투성이가 된 채 언니를 안으며 울고 있던 언니의 남자친구.
피투성이가 된 두 사람을 보던 효은은―.
“네 심정은 이해해. 나 같아도 그런 상황이면 외계인의 외자만 들어도 싫을 거야.”
티를 내진 않지만 외계인이 자주 드나드는 시청에서 일하는 것도, 외계인들이 유독 많이 사는 이 오피스텔도 싫을 텐데.
“그래도 특수수사대에 있으면 언니를 그렇게 만든 자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언니를 그렇게 만든 자라…….”
외계인의 짓이라고만 밝혀졌을 뿐 범인은커녕 작은 실마리조차 밝혀지지 않은 사건.
미해결사건으로 남게 된 사건은 어머니를 한동안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만들었으며, 언니의 남자친구 또한 누군가에 의해 실종되었다. 모두에게 불행을 빠뜨리게 만든 범인은 용서할 수 없다. 마음 같아서는 붙잡고 왜 그랬냐고 묻고 싶었다.
왜 언니를 죽였냐고, 왜 하필 언니였냐고 물으며 복수하고 싶었다.
“잡을 수 있다면 좋겠는데…….”
과연 그들이 밝혀줄 수 있을까? 사건의 진실과 더불어 우리 언니를 죽인 범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