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왜소하다는 것과 소심한 성격은 다른 이들에게 괴롭힘의 구실이 되었다.
주호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다 그들에게 찍혀 언제나 괴롭힘을 당했다. 거슬린다는 이유로 자기들 기분에 따라 폭행의 강도가 달렸으며, 상납금이라는 이유로 돈을 빼앗겼다. 돈을 빼앗은 상태로 심부름을 시키는 등 자신을 집요하게 괴롭혔고, 간혹 말도 안 되는 일을 시키곤 했다.
처리하지 못할 것을 알고 시키는 것이 분명했다. 시키는 것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본보기로 또 맞았으니까.
같은 반 학생들은 도와주면 자신이 그런 꼴을 당할까 모두 무시하거나 방관했다.
선생님에게 도움을 청해도 돌아오는 건 ‘네가 뭔가를 잘못했겠지.’라는 어처구니없는 대답뿐이었다.
자신을 괴롭히는 학생 중에 집안 좋고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 있었다. 하긴, 학교가 워낙 좋은 탓에 부잣집 자제가 다니는 건 당연했지만…… 어쨌든 그가 돈이라도 찔려줬는지 반항도 하지 않으니까 더 괴롭히는 거 아니냐면서 괴롭힘 당하는 건 당연하단 식으로 말하는데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
어떻게 알았던 건지 담임과 상담이 있고 난 후, 담임에게 말했다는 이유로 옥상에 불러가 심하게 얻어맞았다.
부모님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동네 슈퍼를 운영하는 부모님에게 도움을 청해봤자 자신을 도와줄 수는 없었다. 자신만 이상한 학생 취급당할 것이 뻔했다.
전학가고 싶어도 사정상 갈수도 없어 하루하루 지옥을 경험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거슬린다는 이유로, 자신들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건물 뒤편으로 불러가 구타를 당했다. 그날따라 폭력의 강도가 짙어진 탓에 주호는 찍소리도 못 한 채 정신을 잃었다.
“야, 가자.”
“괜히 힘만 뺐네.”
퉤, 침을 뱉으며 사라지는 무리들을 멀리서 지켜보던 누군가는 주변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자 곧바로 주호에게 다가갔다.
“이런, 의식을 잃었네.”
그래도 지금쯤이면 괜찮겠지. 그는 주호를 업은 채 병원으로 향했다. 심신이 지쳐있는 탓인지 병원에 입원해 링거가 꽂힐 때까지 그는 일어나지 못했다.
“불쌍한 것.”
그는 혀를 쯧쯧 차며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회색빛의 액체가 담긴 주사기를 링거에 꽂아 주입시켰다.
회색빛의 액체는 링거액과 섞여 주호의 몸에 섞여 들어갔다. 액체가 링거액을 타고 주호의 몸에 들어가자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죽여 버리고 싶어…….”
눈을 뜨지 않았음에도 주호의 목소리가 병실 안에 울려 퍼졌다.
“누굴? 그 녀석들을?”
의식이 희미해 몽롱한 상태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호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 번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모조리 다 죽여 버리고 싶어!”
자신을 괴롭히는 네 명의 무리들을, 폭력에 시달리는 자신을 외면하는 담임을, 구경만하는 반 아이들 모두 다 죽여 버리고 싶어.
누가 나타나도 좋으니 제발 저들을 죽여줬으면. 아니 죽일 수 있게 해줬으면!!
“그래, 그런 식으로 본성을 깨우쳐. 하고 싶은 걸 떠올리라고.”
그들에게 복수하고 싶잖아. 숨겨왔던 살기를 내보내는 거야. 그럼 그 살기가 곧 너의 욕망으로 변질되어 너에게 힘을 줄 테니까.
그의 생각이 귓가를 파고들며 알 수 없는 기운에 사로잡혔다. 그동안 품어왔던 증오가 한꺼번에 분출되는 느낌. 모든 증오를 떠올렸음에도 고통스럽기는커녕 오히려 머릿속이 개운해짐을 느꼈다.
저에게 말을 건 그가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루가 지났을 무렵, 미동도 하지 않던 주호 스스로 눈을 떴다.
살기로 일그러진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주호는 곧바로 병원 창문으로 뛰어내렸다. 3층 건물에서 뛰어내렸음에도 아무렇지 않은 몸. 제 몸의 변화를 느낀 주호는 하늘이 떠나가라 크게 웃었다.
고개를 젖히며 웃던 주호는 곧바로 어딘가로 향했다. 그가 향한 곳은 학교와 가까운 골목길 안쪽이었다. 그가 골목길 안쪽으로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발밑에는 심장이 꿰뚫린 채 살해당한 소년이 있었다.
살해당한 소년의 다리를 우악스럽게 뜯은 채 깔깔거리던 주호는 이내 모습을 감추었다.
*
“크악.”
갑작스러운 공격에 의해 나가떨어진 칼릭스의 몸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칼릭스가 바닥에 떨어지기가 무섭게 요번에는 우드리에게 팔을 뻗었다. 마찬가지로 날카롭게 변형된 팔은 칼날처럼 우드리에게 날아갔다.
“큭!”
다행히 우드리가 옆으로 피해 칼릭스처럼 심한 부상은 면했으나 칼날이 스친 것처럼 옆구리에 상처가 생겼다. 저를 막고 있던 자들이 사라지자 주호는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양쪽 팔은 긴 장검처럼 칼날로 변형되어 있었다.
“말도 안 돼, 저 녀석 인간이었잖아.”
벤자민이 준 자료에도 그렇고 시청에 등록된 자료를 보더라도 인간이 확실했다. 외계인이었던 사실을 숨겼다 해도 NK 학교에 입학했을 과정에서 들켰을 텐데. 그런데 어떻게 인간이 아이안 행성 외계인들처럼 팔이 칼날처럼 변한 걸까.
“그 새끼를…… 죽일 거다…….”
낮고 거친 음성에 정신을 차렸다.
생각에 잠겨있을 틈이 없었다. 넋 놓고 있다 그를 놓치게 되면 더 큰 피해가 올 수 있었다. 민수가 있는 곳으로 달려갈 낌새가 보이자 아이작은 재빨리 손을 뻗었다.
아이작이 손을 뻗자 주변에서 얼음 덩어리가 생성되어 주호에게 날아갔다.
“이건…… 뭐야?”
당황한 주호가 제 팔로 얼음덩어리를 베었으나 날아오는 얼음덩어리를 모두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날아온 얼음덩어리가 주호의 몸에 닿자, 닿은 부분을 기준으로 녹아내리듯 몸을 감싸며 빠른 속도로 얼어갔다.
아아악! 새된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하던 주호의 몸이 차츰 둔해지더니 이윽고 얼음동상이 된 것처럼 얼어붙었다. 꼼짝도 하지 않는 주호를 지켜보던 아이작은 인상을 찡그리더니 바로 칼릭스에게 달려갔다.
“칼릭스 괜찮아?”
의식을 잃은 건지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배를 심하게 꿰뚫린 탓에 온몸이 피투성이였다. 효은은 창백한 표정으로 칼릭스를 바라보다 시선을 피했다.
“우드리 씨 괜찮아요?”
대신 우드리에게 다가가 상처를 살폈다.
“저는 괜찮습니다만…….”
그의 시선에는 피투성이의 붉은 늑대가 있었다.
인간이었으면 진즉에 즉사였으나 외계인이라 인간보다 신체능력이 월등히 높은 덕에 무사할 수 있었다. 거기다 운 좋게 급소를 피해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회복력도 인간에 비해 빠르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이대로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우드리, 레이카에게 전화 해.”
“알겠습니다.”
우드리는 간신히 손을 들어 레이카에게 연락을 취했다. 피는 멎었으나 옆구리는 이미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우드리의 원래 모습이 나무와 비슷한 탓인지 그의 피는 초록빛이었다. 초록색의 피를 보던 효은이 다시 칼릭스가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조금만 참아.”
레이카가 오기 전 지혈이라도 하기 위해 아이작은 인상을 쓰며 칼릭스의 주변에 냉기를 생성해 피가 새어나오지 않게 막았다.
‘역시 저 사람은…….’
카론 행성 출신, 나아가 나흐트크라프 가문의 특성으로 인해 아이작은 자연능력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는 냉기를 조종할 수 있어 얼음덩어리를 생성할 수 있고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얼어붙게 만들 수도 있었다.
저번에 워낙 정신이 없어 신경 쓰지 않았는데, 냉기를 조종하는 모습을 보니 확신에 찼다. 저 사람은 나흐트크라프 가문 출신이라는 것을.
얼마 지나지 않아 레이카가 민수와 같이 현장으로 다가왔다. 민수는 얼어붙은 주호를 보며 굳어버렸고, 레이카는 칼릭스에게 다가가자마자 손을 뻗었다.
레이카의 손에서 빛이 나오며 칼릭스의 몸이 차츰 치료되기 시작했다. 치료됨에 따라 칼릭스의 얼굴도 차츰 편안해졌다. 다행이다. 안심을 하던 아이작은 민수를 보고는 미간을 찌푸리며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 자식은 왜 데리고 온 거야?”
“자신이 직접 가해자의 얼굴을 보고 싶다면서 멋대로 따라왔습니다.”
“젠장, 얼려놓기는 했지만 무슨 일이 벌어지면―.”
그때, 일렁거리는 무언가의 움직임이 거세졌다. 놀란 효은이 고개를 돌리자 주호 옆에 보이는 검은 그림자가 이리저리 꿈틀거리며 아이언 행성 외계인과 똑같은 생김새로 변하는 것을 보며 소리쳤다.
“팀장님, 얼음이 깨지려고 해요!”
“뭐?”
쨍그랑!
가뭄에 갈라지듯 쩍쩍 갈라지던 얼음은 커다란 파열음을 내며 깨졌다.
“뭐야?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인간이었는데!”
얼음이 깨지며 보인 것은 인간이라기보다는 아이언 행성 외계인처럼 보였다. 교복을 입지 않았으면 그가 주호라는 것은 까맣게 몰랐을 정도로 그의 원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저를 노려보는 눈빛을 느낀 민수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뒷걸음질 쳤다.
“너, 너…… 자, 장주호야?”
“전민수…….”
민수의 얼굴을 알아본 주호의 몸에서 무언가가 날아왔다.
“위험해요!”
효은이 달려와 그의 팔을 붙잡고 옆으로 몸을 피했다.
“크아악!!”
피하긴 했으나 다리에 큰 칼날이 박혔다. 간신히 빠지긴 했으나 상처가 워낙 깊어 걸을 수 없는 지경이었다. 놀란 레이라가 치료를 하기 위해 그에게 다가갔다.
괴로워하는 민수를 쳐다보며 주호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칼날로 변형된 칼을 또다시 뻗었다.
“죽일 거다…… 네 녀석을 죽일 거다!”
“어딜.”
아이작의 얼음덩어리가 날아왔으나 온몸에 뻗은 칼날로 인해 사방으로 흩어졌다.
“뭐야, 저건?”
외모뿐만 아니라 능력 사용까지 외계인처럼 변했다. 아이언 행성 외계인이 누군가와 싸울 때처럼 제 몸에 칼날을 돋아내게 만들거나 상대방을 향해 칼날을 휘둘렀다. 영락없는 외계인이었다.
“전민수!!”
주호는 집요하게 민수의 심장이나 다리를 노리고 있었다. 특히 다리를 뜯어낼 것처럼 달려드는데 보다 못한 아이작이 냉기를 최대한 발산하여 주호의 주변에 얼음벽을 만들었다.
“젠장!”
그러나 주호의 발악이 거세진 탓에 칼날이 얼음을 꿰뚫었고, 그로인해 얼음벽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우드리, 방법이 없는 거야?”
“주변에 나무가 있으면 막아보겠지만…….”
주변에 나무라고는 찾아볼 수 없어 우드리가 능력을 발동시킬 수 없었다. 젠장! 아이작은 계속해서 얼음벽을 세웠으나 그마저도 한계에 부딪쳤다.
“칼릭스의 상태는 어때?”
“치료를 받아서 나아졌지만 아직 움직이기 힘듭니다.”
“젠장,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
거세지는 움직임과 칼날에 갈린 얼음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얼음벽과 흩날리는 얼음이 많아지면 질수록 주변의 온도는 더욱 내려갔다.
온도가 내려가 주변에 불어오던 바람이 뼛속까지 시린 냉기로 변했다. 사방으로 느껴지는 냉기에 효은은 몸을 감쌌고 우드리는 얼어붙으려는 제 몸을 필사적으로 움직여 몸이 굳는 것을 가까스로 막았다.
‘젠장, 이대로는 우리쪽 체력만 떨어져.’
죽일 듯이 달려드는 상대에게는 뒤가 없다. 있는 거라고는 짙은 증오와 분노뿐. 그런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건 강한 힘과 강한 체력이었다.
칼릭스는 아직 움직이기 힘든 상태였고 민수는 레이카로 인해 치료가 되고 있으나 추위와 다리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거의 실성한 사람처럼 몸을 떨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아이작이 우드리를 보며 말했다.
“여긴 내가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너는 레이카의 치료가 끝나는 대로 저 녀석을 데리고 도망쳐.”
“알겠습니다.”
“레이카 너는 치료가 끝나면 다른 팀에게도 지원요청하고.”
“네.”
“효은아, 너는 일단 레이카와 같이 있어. 치료가 끝나는 대로 이곳을 피해.”
“아, 알겠습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얼음벽이 무너졌다. 젠장! 아이작이 다시 한 번 얼음벽으로 주호의 움직임을 봉쇄하는 동안 레이카에게 다가가던 효은은 얼음벽, 정확히는 주호에게서 뭔가를 보고는 그 자리에 멈췄다.
“다리…….”
“뭐?”
효은이 중얼거림을 들은 아이작이 고개를 돌렸다.
“다리를 공격하세요, 오른쪽 종아리 부분이요.”
“갑자기 무슨 소리야?”
“설명할 시간이 없으니까 어서요!”
“알았어.”
쾅! 또다시 얼음벽이 갈라지며 사방으로 부서졌다.
“다 죽일 거야!!”
주호는 있는 힘을 다해 민수에게 달려들었다. 그와의 거리가 좁혀질 순간, 아이작은 효은이 말한 오른쪽 종아리를 향해 고드름을 만들어 화살처럼 날렸고.
푹!
고드름이 정확히 효은이 말한 곳을 관통했다.
“으아아아아아악!!”
관통당한 다리에서 검붉은 피가 튀어나오며 주호의 몸을 감싸던 칼날이 풍선처럼 터지더니 회색빛의 액체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컥…….”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 주호는 바닥에 쓰러진 채로 회색빛의 액체를 입에서 게워내듯 쏟아냈다. 온몸에 남은 액체를 쏟아내서야 끝이 났는지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