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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외계인의 미묘한 관계
작가 : 문라이트
작품등록일 : 2018.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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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는 자와 숨는 자(1)
작성일 : 18-12-28     조회 : 82     추천 : 0     분량 : 5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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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부터 빡센 사건을 맡은 탓인지 오피스텔로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뻗었다. 조금만 누워있다 일어나자 생각했으나 그대로 잠이 든 탓에 일어나보니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으, 머리야.”

 

 두통이 밀려오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자리에서 일어난 효은은 옷을 갈아입지도 않고 씻지도 않은 채 잠이 들었다는 사실에 경악하며 얼른 욕실로 달려갔다.

 

 임무가 끝나고 나서는 하루나 이틀정도 휴일이라는 칼릭스의 말이 사실이었는지 휴대전화에서는 어떠한 연락도 오지 않았다. 하기야 제 전화번호를 다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팀장인 아이작에게 연락이 없는 것을 보니 확실했다.

 

 아니면 첫 임무를 끝낸 신입직원에 대한 배려일 수도 있고.

 

 “모르겠다.”

 

 쉬면 나야 좋지 뭐.

 

 뭐라도 먹기 위해 냉장고로 가 김치와 함께 얼려놓은 만두를 꺼내 전자레인지에 놓고 데웠다. 그것만으로 부족했는지 라면을 끓여 전자레인지로 데운 만두와 얇은 떡을 함께 집어넣고 팔팔 끓였다. 다 끓인 라면을 큰 그릇에 옮겨 식탁에 놓은 후 자리에 앉았다.

 

 “으, 역시 라면이 최고다.”

 

 꼬들꼬들하게 익은 면과 국물이 몸에 쌓인 피로를 풀어주는 기분이었다. 떡과 만두까지 들어갔으니 배가 덜 부를 느낌을 받지 않아도 되고. 엄마가 보낸 김치와 같이 먹으니 평소에 끓여먹는 라면보다 맛이 두 배였다.

 

 라면을 먹으면서 TV를 보기 위해 리모컨으로 TV를 켰다. TV에서는 예능 프로그램이 재방송 중이었는데, 다른 행성 출신 연예인이 나와 방청객과 시청자들 앞에서 자신의 재주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녀가 손짓하는 순간 주변에서 벚꽃잎이 생겨나 주변을 온통 분홍빛으로 물들였다. 눈이 떨어지듯 아름답게 떨어지는 벚꽃잎을 보며 패널을 포함해 거기있는 사람들 모두 놀라움과 경악의 눈초리로 바라봤다.

 

 [역시 블로섬 씨, 이름답게 벚꽃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블로섬이란 이름답게 벚꽃 같은 분홍빛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지닌 미인은 쥬피터 소속 행성 플로라에서 온 외계인이었다. 플로라인답게 자신이 태어난 꽃(플로라인들은 꽃에서 태어난다)에 맞는 색의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가지며 그 꽃을 조종할 수 있다.

 

 지구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꽃과 같은 머리카락과 눈동자, 요정 같은 귀를 제외하고는 인간과 흡사해 루나인과 마찬가지로 굳이 인간으로 변하지 않아도 지장은 없었다. 그래서 비너스인과 플로라인들은 대부분 연예계로 빠진다고 들었다.

 

 물론 예쁘장한 생김새 때문에 인신매매단에게 납치당하는 일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러고 보니 윤오 녀석도 블로섬 팬 아냐?”

 

 블로섬을 외치며 좋아하는 전 카페 직원을 떠올리던 효은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라면을 마저 먹었다.

 

 설거지까지 마치고 난 후 찌뿌둥한 몸을 풀며 TV앞에 앉았다. 인간과 외계인 연예인들이 같이 TV에 나와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살짝 묘했다.

 

 많은 발전을 이루고는 있고 공존도 어느 정도 이뤄진 상태이나 아직까지 인간과 외계인의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외계인이 인간에게 가지는 묘한 하대와 괄시, 인간이 외계인에게 가지는 경멸과 두려움으로 인해 갈등하고 서로를 믿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크다.

 

 더욱이 요즘 외계인과 인간과 엮여서 일어나는 사건사고들로 인해 갈등이 더욱 심해졌고, 심한 경우에는 무자비적으로 그들을 학대하고 다녔다. 외계인을 쫓아내려는 반 외계인파가 생겨날 정도이니까.

 

 ‘이럴 때 언니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효은의 언니 효원이 통역사로 일하게 된 것도 그러한 이유가 크다. 서로에게 가지는 악감정을 누그러뜨리고 진심을 전해 공존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그들의 언어와 습관을 이해하며 갈등을 없애기 위해 노력했었는데.

 

 “나도 참 주책이네.”

 

 언니를 생각하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고여 있었다.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울지 않기 위해 양손으로 뺨을 툭툭 쳤다.

 

 “정신을 차리자.”

 

 다시 한 번 뺨을 치며 눈물이 흐르지 않게 하고 있는데 옆에 놓인 휴대전화에 진동이 울렸다. 혹시나 아이작일까 봐 얼른 확인해보니 익숙한 이름이 눈에 뗬다.

 

 “엄마!”

 -효은아 잘 지내니?

 

 엄마였다. 엄마와 오랜만에 통화 효은의 목소리가 환하게 바뀌었다.

 

 “나야 잘 지내지, 엄마는? 저번에 통화했을 때 감기 걸렸었다며.”

 -효은이 네가 보내준 약 먹고 다 나았어.

 “엄마도 참.”

 

 언니의 죽음 이후 엄마는 원래 살던 고향으로 내려가고 효은만이 에일 시티에 남았다. 따로 살게 된 지 그다지 오래되진 않았으나 간간이 연락을 주고받을 때마다 애틋한 목소리로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조만간 엄마에게 연락해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정신이 없던 탓에 잊고 있었는데. 엄마가 먼저 연락이 와서 좋으면서도 민망한 상황이었다.

 

 -잘 지내보여서 다행이다. 저번에 일자리가 바뀌었다고 들었을 때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나름 잘 적응하고 있어.”

 

 아직까지 적응되지 않았고 외계인과 같이 일한다는 것은 굳이 얘기하지 않았다. 엄마에게 괜한 걱정을 끼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엄마는 정말 괜찮은 거야?”

 -응, 정말 괜찮아. 엄마가 보내준 반찬은? 다 먹었어?

 “아직 많이 남았으니까 보내주지 않아도 돼. 엄마 번거롭게 뭐 하러 보내.”

 -내가 보내주고 싶어서 그렇지.

 “미안하니까 그렇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첫 임무로 인해 지친 마음이 엄마로 인해 치유되는 기분이었다. 어느 정도 얘기를 나누다 엄마도 할 일이 있으니 적당한 선에서 끊어야겠다 싶어서 말을 꺼내려는데.

 

 -그나저나 효은아, 아직 석오 소식은 없는 거야?

 

 엄마의 물음에 효은이 멈칫했다.

 

 석오는 효원의 남자친구 이름이었다. 엄마에게 외계인인 것을 숨기기 위해 지어낸 이름. 언니가 살해당한 후 실종되어 소식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 그리우면서도 씁쓸한 이름을 엄마를 통해 들으니 더욱 입을 열 수 없었다.

 

 효은은 효원의 남자친구, 결혼할 사람을 형부라고 불렀다. 너무 이르지 않냐는 언니와 다르게 형부라는 말이 마음에 든다며 오글거리게 오빠 대신 불러달라고 했던 형부. 어차피 결혼할 사이이니 형부가 당연하다면서 쭉 형부라고 불렀었는데.

 

 “응…… 아직.”

 -그렇구나…… 소식이라도 들렸으면 좋을 텐데.

 

 싸늘하게 식은 언니를 데리고 온 그날부터 석오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언니의 장례식에도 오지 않았고 발인일에도 오지 않은 형부. 내심 서운하게 생각한 효은과 달리 엄마는 혹시라도 나쁜 생각을 먹은 것이 아닐까 연신 걱정했다.

 

 언니의 곁을 따라간 것이 아닌지, 언니를 살해한 자들을 찾아 복수하려고 그를 찾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한 생각. 엄마의 말이 공감했기에 시간이 날 때마다 석오에 대한 소식을 찾으려고 했으나 지금까지 찾을 수 없었다.

 

 “형부의 소식은 내가 시간이 나는 대로 찾아볼게. 그러니까 엄마는 걱정하지 말고 있어. 몸 조심하고.”

 

 나도 사랑해. 마지막까지 말을 하며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역시 엄마는 형부의 실종이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구나.’

 

 언니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잊지 못한 채 사라져버린 형부.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형부의 흔적을 조금이나마 찾을 수 있을까.

 

 “그러고 보니…….”

 

 석오의 실종도 실종이었으나 효원의 죽음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많았다. 살해당한 것은 확실하나 목격자도, 살해당한 현장도 어딘지 알아내지 못했다. 살해당한 피해자는 있으나 피해자가 살해당한 현장과 가해자(외계인의 흔적은 남았으나 정말 범인이 외계인인지 조차 확신하지 않는)가 없는 기묘한 사건.

 

 인간과 외계인의 교류가 싫었던 반 외계인파의 짓이라는 소문이 있으나 모든 것이 확실치 않았다. 이 탓에 효원의 죽음은 미스터리한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원인과 이유도 모른 채 목숨을 잃은 언니와 실종된 형부. 도대체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형부…….”

 

 도대체 어디 계시는 거예요.

 

 *

 

 “아이작 팀장님이 생각한 게 맞아요.”

 

 외계인 흔적 분석팀 팀장이자 레이카와 같이 루나 출신인 로제타가 파일 하나를 건네주며 말했다.

 

 “그 학생에게서 나온 액체는 아이언인의 것과 흡사합니다.”

 “역시 그런가.”

 

 아이작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파일 속 자료를 찬찬히 살펴봤다. 움직임이나 공격 패턴 등이 아이언인과 흡사했다. 원래대로 돌아간 주호가 내뱉은 것도 아이언인의 혈액과 똑같아서 혹시나 싶었는데 예상대로였다.

 

 “혹시나 싶어 그 아이의 몸을 정밀분석 했습니다만 외계인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효은이 말해준 약점을 찌른 직후 주호는 아이언인의 혈액을 모두 내뱉었다. 마치 원래대로(인간으로) 되돌아가는 스위치처럼. 혈액을 몽땅 뱉자 효은의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한 것이 그 증거였다.

 

 도대체 왜 평범한 인간이 아이언인의 혈액을 가지고 있었던 걸까. 그리고 왜 아이언인처럼 변해버린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다른 흔적은 발견된 것이 없나요?”

 “뭔가 이상한 것이 있기는 합니다만 더 분석을 해야 자세히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분석결과가 나오는 대로 연락주세요.”

 

 정중하게 인사하며 밖으로 나가려는 아이작의 뒷모습을 나지막이 바라보던 로제타가 입을 열었다.

 

 “아이작 나흐트크라프.”

 

 자신의 풀네임이 들리자 흠칫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아이작과 눈이 마주친 로제타의 얼굴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정말 블레이즈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

 “어, 찾을 수 있어.”

 

 로제타가 반말을 내뱉자 아이작도 반말로 응수했다.

 

 “나 역시 블레이즈가 이곳에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정말 그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낼까?”

 “드러낼 거야.”

 “근거는?”

 “내 팀원이 블레이즈의 흔적을 찾았거든.”

 “뭐?”

 

 정말이냐며 경악에 찬 얼굴로 물어보는 로제타를 뒤로 하고 분석실을 나갔다. 아이작은 밖으로 나가자마자 일그러진 표정으로 벽을 쳤다. 주먹 쥔 손을 중심으로 얼음이 뻗어 주변에 있는 벽을 전부 열렸다.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던 벤자민이 굳은 표정으로 벽에 손을 대자 얼음이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흥분하셨습니다.”

 “흥분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아이작 님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보는 눈이 많습니다. 조금 진정하시죠.”

 “알았어요.”

 

 겨우 마음을 가다듬으며 909호로 돌아왔다.

 

 휴가를 줘서 다른 직원들의 모습은 없었다. 단 한 사람, 909호를 찾아온 낯선 손님을 제외하고는. 노트북을 두들기던 그는 아이작이 들어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이제 오시네요? 팀장님.”

 

 사정상 자택에서 근무를 하는 팀원이자 효은이 오기 전 9팀의 유일한 인간 직원인 희준이었다. 언제 왔데. 아이작은 한숨을 푹 내쉬며 희준의 맞은편에 앉았다. 벤자민은 익숙하게 두 사람 앞에 컵을 내려놓고 아이작의 컵에는 레몬티를, 희준의 앞에는 콜라를 따랐다.

 

 감사합니다. 희준은 콜라를 마시면서도 노트북에 시선을 떼지 않았다.

 

 “내가 말한 건 어떻게 되었어?”

 

 거두절미하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찾고 있습니다.”

 “그거 말고.”

 

 싸늘한 음성에 키보드 두들기는 소리가 멈췄다. 희준은 고개를 들어 아이작과 눈을 맞췄다. 눈에서 살기가 짙게 찬 것을 보니 빨리 얘기해주지 않으면 제 명에 못 살 것 같아 하던 일을 멈추고 화면에 무언가를 띄웠다.

 

 “우드리에게 전해 들으신 그대로입니다. 블레이즈의 흔적을 찾았습니다.”

 

 희준은 아이작이 볼 수 있게 노트북을 돌렸다. 노트북 화면에는 CCTV 영상에 찍힌 누군가의 사진이 띄워져 있었다. 흐릿해서 잘 보이지는 않으나 사진 속 인물이 누군지 알아차린 아이작의 표정이 일순간에 일그러졌다.

 

 “팀장님의 형님, 블레이즈 나흐트크라프 맞죠?”

 “……당연하지, 이 얼굴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어.”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얼굴이니까.

 

 “블레이즈.”

 

 아이작은 형의 이름을 나지막이 부르며 자신도 모르게 강한 분노를 드러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모습을 드러낸 거냐, 블레이즈.

 

 자신의 흔적조차 남기지 않던 네가 지금에서야 무슨 이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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