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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외계인의 미묘한 관계
작가 : 문라이트
작품등록일 : 2018.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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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을 품은 꽃(1)
작성일 : 18-12-30     조회 : 73     추천 : 0     분량 : 5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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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 사건이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고 며칠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임무에 나가거나 맡지 않으면 할 일이 없어 모두 딴 짓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지루했던 시간이 지나고 퇴근시간에 가까워진 찰나 문을 두들기며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왔다.

 

 “실례합니다, 아이작 팀장님 자리에 계시나요?”

 

 새하얀 블라우스의 짙은 파란색의 H라인 스커트를 입은 지적이면서도 도도한 인상의 여성이었다. 나이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보였다. 무언가 전달할 것이 있는지 그녀의 가는 손에는 자주색의 파일이 들려있었다.

 

 누구지? 처음 보는 얼굴에 의아해하는 효은과 달리 아는 사람이었는지 레이카가 자리에서 일어나 안쪽 방을 가리켰다.

 

 “네, 안쪽에 계세요.”

 

 그녀는 그렇군요, 라고 중얼거릴 뿐 고맙다는 말 한 마디 없이 안쪽 방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는 걸 확인한 효은이 레이카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저분은 누구예요?”

 “송시영 씨라고 시장님 개인비서 중 한 분이세요.”

 

 네? 시장님의 개인비서라고요? 경악하는 효은과 달리 다른 이들에게는 놀라운 일이 아니었는지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다.

 

 “효은 씨는 비서님을 한 번도 뵌 적이 없나요?”

 “네, 한 번도 없었어요.”

 

 카페에 있었을 때도 시장님은커녕 그 옆에 있는 비서님의 모습조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다른 직원과 매니저도 이곳에서 오랜 시간 일했음에도 본 적이 없었으니까.

 

 시장님도 시장님이었으나 그를 보좌하는 비서도 관심대상이었다. 본 적이 없으니 당연히 모든 것이 베일에 싸여 성별이나 외모, 나이에 대해 다양한 추측들이 오갔다. 온갖 추측들이 이리저리 엉키고 범벅이 된 탓에 개인비서라는 존재가 의도치 않게 유니콘처럼 신비로운 대상이 되었다.

 

 아니 그보다 비서님 중 하나라면 개인비서가 더 있다는 소리인가? 그렇다면 소문 속 비서님의 모습이 다양했는지 이해가지만.

 

 “제가 알기로는 네 명의 비서님이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그 중 시영 씨는 외계인 전담 특수수사대를 담당하고 있어서 가끔씩 이곳을 들리시죠.”

 “아, 그래요?”

 

 그래서 고맙다는 인사도 안하고 팀장님 방으로 들어간 건가.

 

 “그건 그렇고, 비서님은 인간이죠?”

 “네, 인간이세요. 경호를 담당하는 비서님을 제외하고는 전부 인간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렇군요.”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얘기 중에는 시장의 비서는 절대 인간이 아닐 거라는 말이 나왔었다. 일부러 인간 시장이 외계인 비서를 고용했다며 보여주기 식이라는 음모론을 믿고 떠들어대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경호를 담당하는 자를 제외하고는―거짓으로 판명되었으니 이 얘기가 또다시 오간다면 적당한 선에 정정해줘야겠다 생각했다.

 

 방으로 들어간 지 10분이 지나서야 시영이 밖으로 나왔다. 아이작의 손에는 시영이 건네준 파일이 들려있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아이작에게 인사를 하며 밖으로 나가려던 시영은 뭔가 걸리는 것이 있는 몸을 뒤로 돌렸다. 그녀의 시선에는 자리에 앉아있는 효은이 있었다. 누군가의 따가운 시선을 느낀 효은이 고개를 돌리자 저를 쳐다보고 있는 시영과 눈이 마주쳤다.

 

 ‘뭐지?’

 

 저와 눈을 마주친 시영은 눈을 크게 뜨며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효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그녀가 뿌린 걸로 추정되는 향수 냄새가 강하게 풍겨왔다.

 

 장미향 같으면서도 은은하게 풍겨오는 아카시아향, 언니가 평소 즐겨 쓰던 향수의 향과 똑같은 향이었다.

 

 “정효원?”

 “네?”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는 정확히 언니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이 사람이 어떻게 언니의 이름을 알고 있는 거지?

 

 “정효원이요?”

 “……죄송합니다. 제가 착각했나봅니다.”

 

 효은의 반응을 오해한 시영은 사람을 잘못 봤다며 연신 사과를 하더니 수고하라는 말을 끝으로 몸을 틀어 다급히 밖으로 나갔다. 당장이라도 쫓아가 우리 언니를 어떻게 알고 있냐고 묻고 싶었으나 주변에 보는 눈이 많아 간신히 참았다.

 

 “아는 사람이야?”

 

 상황을 지켜보던 아이작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네? 아뇨, 처음 보는 사람이에요.”

 

 근데 우리 언니를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주변에 널린 것이 향수이니 언니랑 같은 향을 쓰는 건 우연이라 치부할 수 있으나 저를 보고 언니의 이름을 내뱉은 것은 우연으로 치부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언니와 닮았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으니까.

 

 언니를 알고 있어서 저에게 언니의 이름을 부른 것 같은데, 표정이 왜 그렇게 굳어있었던 걸까. 마치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거야? 고 묻는 사람처럼.

 

 “무슨 일 있어? 표정이 좋지 않는데.”

 “네? 아무것도 아니에요.”

 

 효은은 애써 미소 지으며 대답을 피했다. 대답하기 꺼린다는 걸 눈치 챘는지 아이작도 더는 묻지 않았다. 대신 손에 든 파일을 보여주며 팀원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을 내뱉었다.

 

 “의뢰 왔어.”

 “악!”

 

 퇴근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들어온 의뢰는 정말 달갑지 않았다. 특히 금요일 저녁일 때는 더더욱. 왜 하필 시장 비서가 지금 온 거냐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절규를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앉아, 최대한 빨리 회의를 끝내줄 테니까.”

 

 거의 야근 확정이라 불만이 거셌으나 팀장인 아이작을 이길 제간은 없었기에 다들 투덜거리며 소파에 앉았다. 자리는 예전 그 자리 그대로였다. 다들 모인 걸 확인한 아이작이 파일을 열어 의뢰 내용을 말했다.

 

 “최근에 외계인 출신 연예인에게 테러를 가하는 자가 생겨난 모양이야.”

 “엥? 외계인 출신이요?”

 “사진보면 다들 알 걸?”

 

 파일 속에 있는 사진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사진을 보자마자 칼릭스가 손을 들어 사진을 살피며 아는 척을 했다.

 

 “어? 이 사람 올리비아잖아, 비너스 출신 모델이자 배우.”

 “이분은 트리톤인인 세르티아입니다. 사람들에게는 ‘노래하는 인어’로 알려져 있는 가수이죠.”

 “이 사람은 플로라인인 유카예요. 최근에 영화 주연을 맡아서 화제가 되기도 했죠.”

 

 외계인 나아가 인간들도 알아볼 정도로 TV에 많이 나오는 유명한 연예인들이었다.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음에도 사람들에게 제법 인기가 많았다. 얼굴과 몸매는 말할 것도 없고 각자의 분야에 재능이 뛰어나 순식간에 탑스타 반열에 오를 정도였다.

 

 그러나 사진 속 그들의 모습은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큰 상처를 입은 탓인지 왼쪽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붕대로 감겨있었다. 붕대를 감지 않은 오른쪽 얼굴은 멀쩡하나? 그것도 아니었다. 붉은색의 여드름 같은 것이 화상을 입은 것처럼 군데군데 퍼져있었다.

 

 징그러울 정도로 퍼져있는 붉은 무언가로 인해 피해자들 전부 전염병에 걸린 사람처럼 느껴졌다. 하룻밤 사이에 달라진 외모는 자신이 아는 연예인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피해자들은 보다시피 전부 독에 중독되어있지.”

 

 이게 독이라고? 효은은 굳은 표정으로 피해자의 사진을 바라봤다. 옆에 있던 레이카의 표정도 굳어져 있었는데, 효은과는 다른 이유였다.

 

 “팀장님 이거 설마…….”

 “네 예상이 맞아. 다크 푸니카(dark punica)에 중독된 자들의 특징이지.”

 

 다크 푸니카(dark punica)는 특정 행성에서만 자라는 귀한 식물로 석류처럼 생긴 검은 열매를 맺었다. 꽃과 열매에서 나는 향은 무척 좋으나 독성이 워낙 강해 인간뿐만 아니라 외계인들에게도 치명적인 고통을 안겨주는 탓에 지구를 포함한 다른 행성들 전부 반입 금지 식물로 지정했다.

 

 “온몸의 퍼진 붉은 독은 다크 푸니카를 먹은 사람들의 특징이니까.”

 “그렇게 위험한 식물이에요?”

 “생명에 지장을 줄 정도예요.”

 

 인간은 먹는 순간 독에 의해 즉사고 외계인들도 생명이 위험할 정도로 치명적인 독. 소량의 열매라도 삼킨 순간 독으로 인해 내장이 불에 타들어가는 것 같은 고통을 느끼며 온몸에 독이 퍼져나간다.

 

 “화상을 입은 것처럼 얼굴 전체로 퍼지는 독에 의해 고통스러워하다 이내 사망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 안에 해독제를 먹으면 치료가 되지만…… 해독제를 먹어도 온몸에 퍼진 독이 모두 사라질 거라는 보장이 없어.”

 

 운이 좋으면 퍼진 독이 사라지나 운이 나쁘면 말 그대로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나 평생 해독제를 먹거나 식물인간 상태로 살아가야 할 수도 있었다. 치료도 어렵고 100% 나을 거라는 보장도 없을 정도로 강력하고 위험한 독을 품어 ‘살아있는 것을 저승으로 데려가는 석류’라는 이명이 붙을 정도였다.

 

 “문제는 해독제도 만들기 까다롭다는 거지. 해독제에 들어가는 식물이 루나에서만 자라나니까.”

 “해독제 말고는 치료 방법이 전혀 없나요? 루나인들이 치료해주면 되지 않나요?”

 

 효은의 물음에 레이카가 고개를 저었다.

 

 “저희가 치료해도 독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아요. 해독제를 마시거나 루나인에게 꾸준히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그럴 수가.”

 “그만큼 위험한 식물이라는 거지. 헌데 그걸 이 사람들이 어떻게 먹은 거지? 반입금지 식물이라 구할 수도 없을 텐데?”

 

 다크 푸니카는 특정한 행성이 아니고서는 자라나지 않았다.

 

 지구의 대지에서는 절대 자라나지 않으며, 다른 이들의 눈을 피해 몰래 반입했더라도 이틀이 지나지 않아 말라비틀어질 정도로 시들만큼 까다로운 식물이었다.

 

 도대체 누가 어떤 목적으로 키우기 까다롭고 위험한 식물을 밀수까지 하면서 가지고 온 것일까.

 

 “다크 푸니카에 대해서는 일단 배제하고, 중요한 것은 누가 피해자들을 이렇게 만들었냐는 거야.”

 

 다들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나 치료를 받아야해 한동안은 연예계 활동을 중단해야 한다. 특히 플로라인인 유카의 경우에는 ‘식물’의 특성을 가진 탓인지 독이 퍼진 정도가 다른 두 사람에 비해 유난히 심해 의식을 차리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현재도 루나인이 옆에서 붙어서 치료해야 간신히 몸을 움직일 수 있으며, 해독제 외에는 다른 음식은 먹지도 못했다. 몇 년의 노력 끝에 온몸에 퍼진 독이 사라지게 되더라도 후유증이 생겨날 수 있다고.

 

 “피해자를 죽일 목적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모르지만 다크 푸니케를 썼다는 것만으로도 중형에 처할 수 있어.”

 “살벌하네요.”

 “올리비아, 세르티아, 유카 순으로 피해가 발생했어. 아마 점점 독을 사용하는 강도를 늘렸을 거야.”

 

 아이작은 세 사람의 사진 옆에 독이 들어간 걸로 추정되는 음식 사진을 놓으며 말을 이었다.

 

 “올리비아는 스태프가 나눠준 음료수를 마시고 쓰러졌어. 세르티아는 스태프가 주문한 도시락을 먹고 쓰러졌고, 마지막으로 유카는 화장품 바르다가 쓰러졌는데 다크 푸니케의 열매를 가루로 만들어서 화장품에 넣은 것 같아.”

 “세상에, 피부에 직접적으로 스며들었으니 바르자마자 살이 타는 고통에 시달렸을 텐데…….”

 “화장품뿐만 아니라 팬들이 준비한 도시락과 간식에도 다크 푸니케 가루가 뿌려져 있었어. 만약을 위해서 독을 이중으로 준비한 것 같아.”

 “다크 푸니케의 가루가 피부에 들어간 것은 물론이거니와 가루가 들어간 음식까지 섭취했으니 고통이 엄청났을 텐데, 살아있는 게 용하네요.”

 

 살이 타는 고통과 내장이 뒤틀리는 고통이 동시에 느껴져 차라리 죽는 걸 원했을 만큼 괴로웠을 텐데. 만약 자신이 그 상황에 처했으면 죽고 싶어서 몸부림 쳤을 거다. 상상만 했는데도 고통이 느껴지는 것 같아 몸이 절로 움츠려졌다.

 

 이들이 무슨 죄가 있어서 독을 먹인 걸까.

 

 단순히 저보다 잘나간다는 질투심 때문에? 개인적인 원한으로 인한 분노로? 어느 쪽이든 다른 희생자가 나오지 않기 위해서라도 한시라도 빨리 범인을 잡아야 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이 사건이 왜 저희에게 온 거죠? 외계인을 싫어하는 인간의 짓일 수도 있잖아요.”

 “안 그래도 그 얘기를 하려고 했어. 처음에는 칼릭스 네가 생각한 것처럼 외계인을 싫어하는 인간의 짓이라 생각해서 다른 팀에서 맡아서 처리하려고 했는데…….”

 

 효은은 고개를 든 아이작과 눈이 마주쳤다. 날카롭게 빛나는 눈동자가 어쩐지 저를 의식하고 있는 것 같았다.

 

 “소량이나마 낯선 외계인의 흔적이 발견되었거든.”

 

 저번과 마찬가지로. 아이작의 말에 효은은 저도 모르게 입술을 꽉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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