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오빠와 단둘이 떠나는 첫 여행이라니 완전 좋아. 너무 행복해. 어젯밤 너무 설레서 한숨도 못 잤어. 흐 흐 흐."
17살 태이는 시후 오빠랑 나눌지도 모를 달콤한 첫 키스의 짜릿함에 취해 계속 히죽히죽 거렸다.
사실 태이는 얼마 전부터 계속 아빠를 졸랐다. 비서 없이 단 둘이 여행을 떠날 수 있게 해 달라고
그에게서 서핑을 배우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오빠와 짜릿한 추억을 남기고 싶은 태이의 앙큼한 생각이 더 깔려 있었다.
'지금 손가락만 뻗으면 닿을 곳에 시후 오빠가 있어. 아...떨려....'
아직 어둑어둑한 새벽에 단 둘이 있는 것이 믿기지 않는 듯 태이는 발칙한 미소를 지으며 운전하는 시후를 빤히 바라봤다.
“태이야. 오빠는 지금 운전 집중해야해. 그리고 미리 말하는데, 나한테 이상한 행동 하면 안 돼! 손가락 하나도 건들 면 안 된다! 지금부터 집으로 다시 돌아올 때까지 철저히 난 너의 보호자야. 그리고 아저씨랑 약속한 것도 있으니 지금부터 계속 50센티 거리 유지 해!“
“알겠지?”
시후의 목소리는 매우 단호했다. 마치 자신에게 한 번 더 각인 시키려는 듯.
‘치.... 오빠 저렇게 무서운 모습은 처음인데, 내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는 거 아냐?' 그녀는 마음이 상한 듯 투덜대기 시작했다.
“쳇... 아빠랑 도대체 무슨 약속을 한 거야?”
태이는 화가나 입을 삐죽 거렸다.
시후는 그런 태이를 보며 빙그레 웃는다.
“피곤할 텐데.. 좀 자둬. 서핑은 체력을 많이 요구해서 힘없으면 파도를 탈수가 없어.”
‘치... 어차피 서핑 배우러 가는 목적도 아닌데.. 난 오빠랑 단 둘이 데이트 가는 거라 말이야!’
“오빠도 나한테 말 시키지 마!”
그녀는 토라져 고개를 창가 쪽으로 홱 돌렸다.
창밖은 아직 어둑어둑했다. 한 여름이지만 새벽이라서 그런지 차 안의 공기가 써늘했다. 태이는 마음이 많이 상한 듯 옆에서 쫑알쫑알 대는 것을 멈췄다. 시후도 묵묵히 운전만 했다. 아저씨와 나눴던 대화를 떠 올리며...
***
“그래.... 내일 둘이 새벽 동해로 출발 할 계획이라는 게 사실이냐?”
아저씨가 들고 계시던 펜을 책상위에 놓으며 시후를 쳐다봤다.
“네., 아저씨. 허락해주세요. 태이가 17살이 되면 서핑 가르쳐 준다고 약속했거든요.“
“시후야.. "
아저씨가 시후를 부드럽게 불렀다.
”아저씨는 너희 둘이를 17년 동안 지켜 봐 왔단다. 어쩜 태이에게는 이 아빠보다 네가 더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단다.“
아저씨의 눈빛이 슬픈 듯 흔들렸다.
“나는 태이를 무척 사랑하지만 그 애가 원하는 역할은 많이 해 주지 못했어. 언제나 일이 먼저였지.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은 슬픔도 너 때문에 빨리 잊을 수 있었다는 걸 잘 알아. 지금까지 그 아이에게 오빠, 남자친구, 때론 아빠 역할까지 해 온걸 잘 알고 있단다. 고맙다, 시후야.”
아저씨는 뜸을 드리다 다시 말씀을 시작했다.
“너희 둘이가 얼마나 서로를 믿고 의지하고 좋아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태이가 고등학교를 졸업 할 때까지만 그 아이를 꼭 친 동생처럼 지켜주렴.
그 아이가 워낙 맹랑해 가끔 널 힘들게 할 수도 있다는 걸 잘 안다. 하지만 시후 네가 오빠니 태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만....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지?“
“네.” 시후의 얼굴이 빨갛게 변했다.
"네 아저씨. 꼭 약속할게요.“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태이야. 이제 도착했어.”
아무런 반응이 없다.
차 시동을 끄고 보니 태이는 깊이 잠 들어 있었다.
이른 아침 햇살이 그녀 머리카락에 와 부서진다.
뽀얀 살결, 긴 속 눈썹, 곧게 선 콧대, 그리고 도톰한 붉은 입술. 태이의 얼굴을 보니 시후의 심장이 갑자기 벌렁거렸다.
“김시후 정신 차려. 아저씨랑 한 약속을 지켜야지.”
“태이야. 이제 그만 일어나. 도착했어.” 그녀의 가련한 어깨를 흔들었다.
“응, 벌써?”
아직 잠이 덜 깬 듯 태이는 시후를 향해 크게 하품 했다.
“허걱.. 아가씨... 하품 할 때 입 좀 가리고 해. 목젖이 다 보인다.”
“치... 어차피 손가락 하나도 건들지 말라며. 50미터 유지하라며.. 그러니 오빠 앞에서 내숭 떨 필요 없잖아!!"
쌀쌀하게 말하며 차에서 내린 태이는 쌩하니 먼저 걸어갔다. 걸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시후는 빙그레 미소 지었다.
‘풋, 태이는 토란 진 모습도 귀여워.’
“태이야. 같이 가. 50미터가 아니라 50 센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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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고 푸른 바다가 그들 앞에 펼쳐졌다.
"와! 에메랄드 빛 바다가 이런 거구나. 하! 바다 냄새!“
태이는 푸른 바다에 매료된 듯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 온 몸으로 바람을 맞이하려는 듯 두 팔을 벌렸다. 그런 후 크게 숨을 들이 쉬었다.
“오빠.....완전 행복해."
‘태이 네가 행복하니 나도 행복해.’
시후는 그녀를 향해 씽긋 웃었다.
“리조트 가서 짐 풀고 아침 먹고 서핑하자."
태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
“왜 조금 더 먹지?”
태이는 밥을 먹는 둥 마는 둥이다.
“왜 맛이 없어?”
“아니 맛있어.” 그녀는 뭔가 숨기는 듯 계속 쭈뼛쭈뼛 거렸다.
“근데 왜?”
‘서핑할 때 비키니 입을 건데 많이 먹음 똥배 나오잖아, 이 바보야.’
사실 태이는 오늘을 위해서 한 달째 다이어트 중이다.
멋진 비키니를 입고 시후 오빠를 꾀기 위해 한 달 동안 음흉한 계획을 짠 것이다.
“오빠.. 나 옷 갈아입고 나올게. 천천히 먹고 요 앞 해변에서 만나.”
그녀는 뭐가 급한지 후닥닥 자리를 떴다.
“아... 너무 야하나? 처음 인데.. 좀 얌전한 비키니를 살걸.”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며 계속 중얼 거렸다.
“그렇다고 지금 다시 살 수도 없고...
선탠을 좀 할걸. 그래도 똥배는 좀 들어간 것 같아.”
조금 지나면 시후 앞에 선 보일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운 지 태이는 연신 깊은 호흡을 했다.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그녀는 어깨를 으쓱 하며 해변 쪽으로 걸어갔다.
해변에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있었다. 서퍼들도 제법 있었다.
까만색 비키니와 대조적인 그녀의 뽀얀 속살이 아침햇살에 반사되어 더 빛났다. 어깨까지 오는 긴 갈색머리가 바람에 살짝 살짝 휘날렸다.
서핑하기 위해 모여 있던 몇몇 남자들의 시선이 자석에 끌리듯이 계속 태이를 주시했다.
‘흥. 난 그대들에게 관심이 없어요. 오직 관심 있는 남자는 바로 저기 있는 김시후!’
자신의 모습을 보고 감탄할 시후의 얼굴을 상상하며 미소를 머금은 체 그에게 걸어갔다.
시후는 태이에게 챙겨줄 장비를 이리저리 살피고 있었다.
“오빠앙~~”
태이가 아주 간드러지게 시후를 부른다.
시후는 태이를 한번 쳐다보고 난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다시 보드를 살피며 말했다.
“어 왔어. 자 이거 신어. 리프 슈즈야. 보드에서 떨어졌을 때 산호초에 찔려 발이 다치지 않도록 하는 보호 신발이야.”
‘뭐야? 나의 이런 모습을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단 말이야? 오빠 진짜 너무한 거 아냐?’
“치!” 그녀의 얼굴이 뿌루퉁해졌다.
시후는 그녀의 기분을 살피지 않았다. 아니. 못 본척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태이의 아름다운 유혹에 넘어갈 것 같아 불안했기 때문이다.
태이의 입술이 불만으로 툭 튀어 나왔다.
시후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꾹 참았다.
그녀가 너무 귀여웠지만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지금은 철저히 태이의 보호자로 왔기 때문이다.
***
처음 보드를 타고 파도를 가르다가 서는 방법을 계속 가르쳤다.
운동 신경이 뛰어난지 태이는 가르쳐 주는 대로 곧 잘 배웠다.
하지만 시후에게는 힘든 시간이다. 어쩔 수 없는 스킨십이 계속 일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녀의 보드라운 살결이 스칠 때마다 참을 수 없는 욕망에 휩싸였다.
시후는 참기 힘들다는 듯 계속 브레이크 타임을 찾았다.
“치.. 오빠 뭐야? 제대로 가르쳐 줄 마음 없는 것 아냐? 계속 쉬려고만 하고....혼자 타 볼 거야.“
보드를 들고 시후가 보라는 듯 바다 안으로 성큼 성큼 들어갔다.
“태이야. 기다려! 오빠랑 같이 가자. 너무 깊이 들어가면 안 돼! 여기 파도는 위험해...!"
걱정하는 시후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그녀는 몇 시간 동안 배운 보드를 타기 위해 파도를 기다렸다.
“내가 얼마나 운동 신경이 좋은지 보여주겠어.”
쓸데없는 고집을 피우고 싶었다. 오늘 자신에게 너무 무심한 시후가 원망스럽다. 그래서 깊은 곳에 들어가 그의 걱정을 끌어내고 싶은 것이다.
“어 어, 태이야 큰 파도가 와! 조심해!”
태이가 미처 알아채기도 전에 갑자기 집채만 한 파도가 그녀를 휘 감았다.
그 파도 힘이 어찌나 센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그녀를 휘 감고 내동댕이쳤다.
파도랑 휘 감기면서 뭔가 아주 딱딱한 물건이 이마를 세게 강타했다. 파도랑 같이 휘 감긴 보드다.
순간 앞이 희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시후의 놀란 목소리가 어디선가 자신을 부르는 것이 들려왔다.
“...오빠..... "
그녀는 정신을 잃어갔다.
“어머 .. 어떡해... 어떡해... "
“물 많이 마셨나봐?"
파랗게 변한 태이의 입술을 보고 주위에 모여든 사람들이 하나둘씩 웅성대기 시작했다.
”죽은 거 아냐? 숨을 안 쉬는 것 같은데.“
“누가 제발 119 좀 불러줘요!” 시후의 목소리가 공포에 파르르 떨렸다.
그녀의 이마에서 붉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태이야! 태이야!”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그녀에게 인공호흡을 시작했다.
그녀의 코를 막고 입으로 바람을 2초간 넣은 후
“하나 둘 세 넷 다섯”
시후가 있는 힘껏 그녀의 흉부를 압박했다.
“하나 둘 세 넷 다섯”
수차례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태이의 입술은 좀 전 보다 더 파래졌다. 마치 죽은 것처럼 보였다. 앞이 하얘지면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태이야, 정신차려.” 그의 울부짖음이 하늘에 울렸다.
다시 인공호흡을 시도했다
그녀의 흉부를 압박하는 손이 무서움으로 떨렸다.
시후는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가 없었다.
“태이야!”
아무 반응이 없다. 태이의 숨이 멎은 듯 해 보였다.
정신없는 그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정신 차려! 태이야!”
눈물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다시 그녀의 흉부를 압박하는 순간
“쿨럭 쿨럭”
태이가 물을 쏟아냈다.
"..오빠..."
“태이야!”
시후는 정신을 차린 태이를 와락 껴안았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그의 입에서 감사의 말이 쏟아졌다.
얼마나 무섭고 긴장 했는지 설움에 복 받친 듯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녀를 안고 있는 어깨가 계속 들썩들썩 거렸다.
“오빠... 미안해.. 괜히 쓸데없는 자존심을 부려서.”
태이는 너무 놀라 계속 펑펑 울고 있는 시후에게 용서를 구했다.
“괜찮아. 괜찮아. 죽지만 않은 것도 고마워. 고마워, 태이야!”
그녀를 품에 꽉 안았다.
“근데.. 오빠....이마에서 피가 나.”
피가 타고 흘러 태이의 얼굴을 적신 것이다.
“많이 찢어진 것 같아. 성형수술 해야겠는데. 일단 여기 가까운 병원에서 치료를 받자. 흉터가 안 남아야 할 텐데.”
시후는 걱정스러운 듯 상처를 바라봤다.
“삐뽀 삐뽀 삐뽀.”
“태이야, 119 왔어. 아파도 조금만 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