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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의 고아원
작가 : 곰꿀
작품등록일 : 2016.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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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소년의 이름은?
작성일 : 16-08-25     조회 : 249     추천 : 1     분량 : 6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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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화

 

  "그럼 내가 이름을 지어주어도 될까?"

 

  소년을 향한 금발 사내의 당황스러운 말은 소년의 마음에 두 가지 파문을 낳았다.

 

  첫 번째는

  순수한 기쁨.

  정말 자신에게도 이름이 생기는 걸까?

  두 번째는

  사내에 대한 반발심.

  당신이 뭔데?

  얼굴 한 번 본 적도 없는 내 부모도 내게 이름 따윈 남기지 않았어!

 

  소년의 얼굴에는 기쁨도 분노도 아닌 그야말로 애매한 감정이 떠올랐다. 누가 봐도 어색한 그 표정은 완곡한 거절을 표현하고 있었다. 아니, 적어도 사내만은 그 표정을 거절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이런, 너무 진도가 빨랐나?"

 

  사내는 실수를 했다는 듯, 손사래를 치며 말을 이어 나갔다.

 

  "뭐,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다 보니까 가끔 나도 모르게 앞서 나가는 경우가 있더라고. 나도 사람이니까 어쩔 수 없지."

 

  소년은 사내의 그 말을 들으며 이 사람이 상냥하지만, 꽤 허영심에 가득 찬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매번 그러셨어요. 저 때도, 다른 아이들 때도. 항상 대뜸 '내가 이름을 지어주어도 될까?'라고 하셨죠. 심지어 이름이 있는 아이도요."

 

  어느새 방 안으로 들어온 처음 보는 청발의 사내가 사내에 말에 반박하며 말했다.

 

  "뭐, 그건 새 출발의 의미? 관계 정립의 의미? 여러 의미가 있는 거라고."

  "안녕. 몸은 괜찮니? 내 이름은 유렌이야. 반갑다."

 

  청발의 사내, 유렌은 사내의 말을 무시하며, 소년에게 말을 걸어왔다.

 

  "쳇, 무시하기는. 머리 컸다고 말도 안 듣지."

 

  소년은 사내의 성격이 꽤 가볍기도 하다는 것을 알았다. 통통 튀는 공 같은 느낌. 방금 본 것 뿐이지만, 유렌이란 사내는 금발 사내와는 정반대의 분위기를 지닌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모습이 잘 어울리는 둘. 문득 둘의 관계가 궁금해졌지만, 소년에게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보석, 아니 마석은?"

 

  유렌은 갑작스러운 소년의 말에 당황한 듯 동공을 확장하며 금발 사내를 쳐다보았다.

 

  "봐봐. 얘가 이렇다니까. 아까부터 마석만 찾아."

 

  사내도 유렌을 마주 보고 황당하다는 듯이 웃으면서 말했다.

 

  "잠깐만 기다려 봐. 유렌 얘 좀 보고 있어."

  "잠깐만요. 어딜 가는 거에요."

 

  소년은 사내가 방을 벗어나려 하자 급박한 마음이 들었다. 저도 모르게 침대를 박차고 나가 사내를 잡으려고 할 정도로 말이다. 곧바로 이어진 유렌의 제지에 막혀 그대로 침대 위에 그대로 있을 수밖에 없었지만.

 

  "기다려 봐. 금방 오실 거야."

 

 

 

 

  소년은 얌전히 앉아서 사내를 기다렸다. 누구보다도 통제, 명령 등에 대한 반발심이 큰 소년이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방금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상하게 온몸에 힘이 없었다. 조금 전에도 사실 유렌이 제지하기도 전에,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자리에 도로 앉았다.

  사내는 유렌의 말처럼 5분도 지나지 않아 방으로 돌아왔다. 한 손에는 저번에 본 것과 같은 갈색 주머니가 들어 있었다. 소년은 저 주머니에 마석이 들어 있나 싶었지만, 저번과 같은 욕심이 일어나지 않아 의아했다. 사내는 그것을 알아차린 듯 말했다.

 

  "아무것도 안 느껴지지?"

 

  끄덕.

 

  "저번에 그것이 좀 강했던 거고, 이번엔 좀 약한 거라서. 봐."

 

  사내는 주머니를 열어 무언가를 꺼내 소년에게 보여 줬다. 마석이었다. 그런데 저번에 보았던 것과는 약간 다른 느낌. 저번처럼 강렬한 감정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그저 저것을 가지면 좋겠다? 그 정도 수준의 감정이었다.

 

  "흠, 이건 좀 약한가? 그럼 이건?"

 

  사내는 꺼냈던 마석을 집어 놓고, 그 뒤로도 몇 차례나 마석을 꺼내 소년에게 보여 주고 다시 집어넣는 일을 반복했다. 소년은 사내가 꺼내 놓는 마석이 바뀔 때마다 올라오는 자신의 감정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는 사실에 신기하기도 한 소년이었지만, 전과 같은 간절함과 탐욕은 올라오지 않음에 아쉬움이 커지고 있었다.

 

  "생각보다 재능이 대단하네. 일단 가진 건 이게 마지막인데. 저번 건 너무 강해서 안 되고."

 

  사내가 마지막이라면서 꺼낸 마석은 좀 전까지의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저번에 본 것과 비슷한 느낌. 조금 약하긴 했지만, 또 그 근본을 알 수 없는 소유욕이 머리를 들이밀었다.

 

  "주, 주세요."

 

  소년은 힘이 없다는 사실조차 있고, 침대를 밟으며 일어섰지만, 역시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침대 위로 나뒹굴었다.

 

  "아, 기운을 많이 뺏겼었던가? 뭐, 그래도 이건 맞나 보네. 잠깐만."

 

  유렌이 침대 위로 볼썽사납게 넘어진 소년을 챙겨 주었고, 그동안 사내는 품 여기저기를 뒤지더니, 하얀 가루가 들어 있는 작은 약병과 손에 쥔 주머니보다 작은 주머니를 하나 더 꺼내었다. 소년이 보기엔 딱 마석 한 개가 들어가면 적당할 크기의 주머니였다.

 

  사내가 마석을 그 주머니에 넣자, 마석의 기운이 사라졌다.

 

  "아!"

  "잠깐만 기다리라니까 그러네."

 

  그 뒤로 사내가 주머니를 향해 이상한 손짓을 몇 번 하자, 마석의 기운이 커졌다가 작아지기를 반복했다. 우습게도 소년은 그때의 마석의 기운에 반응이라도 하는 듯 이상한 소리를 연발했다.

 

  "응? 이거 재밌는데? 더 할까?"

  "빨리할 것만 하시죠."

 

  사내가 소년을 두고 장난을 칠 기색을 보이자 서둘러 유렌이 그를 제지하려 나섰다. 하지만 그는 유렌의 말을 무시하고, 똑같은 일을 반복하며 소년의 반응을 보는 것을 즐기며 웃었다.

 

  "하하하. 귀엽잖아."

 

  그 정도까지 되자 소년도 조절되지 않는 감정이 원망스러워지며, 유렌이 다시 한 번 그를 제지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봐봐. 귀엽지 않아? 큼큼. 그래. 뭐, 이 정도만 할까?"

 

  유렌에게 말을 걸어 의견을 묻던, 그는 그제야 유렌의 따가운 눈빛을 깨닫고 예의 이상한 손짓을 한 번 더 한 후 하던 일을 마무리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딱 아까와 같은 마석의 기운이 느껴졌다. 동시에 전과 같은 감정이 일어났지만, 어차피 일어나봐야 넘어질 것은 알게 된 소년은 아무것도 못 하고 그것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자. 이거. 일단은 며칠 품에 안고 지내봐. 꺼내서 만지고 싶겠지만, 열지 말고. 어차피 열리지도 않겠지만."

 

  사내는 주머니를 소년에게 건넸고, 소년은 사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머니를 열고 있었다. 사내의 말대로 주머니는 열리지 않았다.

 

  "애들은 모두 이런 거야? 유렌? 너도 어릴 때 저랬잖아. 말해도 안 듣는다니까?"

  "모릅니다. 전 그런 적도 없고요. 그러는 아빠도 제 말은 안 듣잖습니까?"

  "하여튼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더니."

 

  소년은 잠깐 이상한 소리를 들은 것 같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지금은 이 짜증 나는 주머니를 풀어야만 했다.

 

  '나이 차도 별로 안 나 보이는데, 아빠라니 그럴 리가 없잖아.'

 

  그 순간 소년은 그저 이 갈색 주머니가 열리지 않아 짜증 날 뿐이었다.

 

 

 

 

 

 

  "그만하고 그거 어차피 안 열려."

  "유렌. 나 할 일 있으니까 이 애 데려가서 여기 구경이나 시켜줘."

  "응? 어딜 가? 여기 니가 있던 곳이랑 엄청 멀어서 못 갈 텐데."

  "어디냐고? 코라 제국에 쥬스투스 후작령? 이렇게 이야기하면 정확히 어딘지 모르려나? 대충 로틸르 왕국 국경 넘어서 성 세 채 정도 지났을걸? 유렌 맞아? 뭐, 나중에 궁금하면 지도 찾아봐. 어디 있을 거야."

  "기절하고 얼마나 지난 거냐고? 하루지. 크게 어디가 다친 것도 아닌데, 얼마나 잤겠어."

  "일단 여기 며칠 여기서 지내봐, 잠은 그동안은 이 방에서 자고."

 

  그 후로 있던 대화에서 사내가 소년에게 한 말이었다.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들었지만, 왜인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루 만에 국경을 넘어 성 세 채 거리를 넘어왔다니.

  믿기 어려운 말이었지만, 이상한 손짓을 하며, 마석의 기운을 조절하고, 주머니를 열리지 않게 하는 등 신기한 일들에 소년은 어느새 사내를 기사나 기사 수련생이 아니라 마법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럼 그 검은 뭐지?'

 

  소년은 사내를 처음 만났을 때, 허리춤에 매여있던 검을 생각하며 의아한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소년의 앞에서 들려오는 유렌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유렌을 쳐다봤다.

 

  "뭐 해? 어서 먹지 않고, 배 많이 고플 텐데."

 

  사내는 소년과 유렌을 남기고, 무슨 일인지 모르는 할 일을 하러 갔고, 남겨진 소년과 유렌은 이곳을 구경하기로 했다. 둘은 꽤 긴 복도를 걸어 이곳, 문패에 식당이라고 적혀 있던 곳에 있었다. 하루 만에 일어나 배가 고플 것이라는 유렌의 배려였다. 이곳까지 오는 길에 봤지만, 건물이 상당히 넓고 큰 것 같았다.

  어떤 용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저기 방도 많았다. 처음 들어와 본 제대로 된 건물이기도 했지만, 그 크기도 짐작이 가지 않아, 소년으로서는 도대체 이곳이 어떤 곳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배고프지 않아? 아까 영석 가루 덕에 기운은 회복됬다고 해도 배는 고플 텐데."

 

  소년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자 재차 물어 오는 유렌. 영석 가루. 소년은 아까 전 사내가 주어서 먹었던 하얀 가루에 정체가 영석 가루였나 싶었다. 하얀 가루를 조금 먹자마자 몸에 기운이 넘치던 신비한 기분.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말해도 대답해주지 않을 것 같았기에 물어보지 않았었는데.

 

  '영석, 마석.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인가?'

 

  소년은 이어지는 생각을 접고, 일단은 앞에 유렌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그게... 사실 아까부터 배가 안 고프거든요. 정확히는 생각이 없다고 할까? 그 전에는 배가 고팠던 거는 같은데.... 이걸 받고 나서는."

 

  소년은 품속을 가리키며 이야기했다. 유렌은 잠시 생각하는듯 하다가.

 

  "음.... 그래도 먹는 게 좋을 거야.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강렬했던 소유욕이 충족된 상태라 욕구가 적어진 상태인 거지. 네 위는 아직도 비어있는 상태니까. 그리고 지금 아까 그 영석 가루 덕에 몸에 기운이 충만해져서 일 수도 있고."

 

  소년은 무슨 소리인지 정확히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앞에 놓인 음식을 먹으라는 이야기인 것 같았다.

 

  "이리스 아주머니가 음식 솜씨는 제일 좋으셔. 맛있을 테니 먹어 봐."

 

  식당에 들어왔을 때 주방인 것 같았던 곳에서 유렌을 반겨 주었던 통통하고 선한 인상의 아주머니가 한 분이 있었는데 그 사람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실제로도 소년의 앞에 차려진 음식은 꽤 맛있어 보였다. 모락모락 따끈한 김을 피워내고 있는 중간중간 큼지막한 고기가 들어 있는 수프, 생전 처음 보는 소스가 뿌려진 싱싱한 채소 샐러드. 만든 지 얼마 안 된 듯 따끈따끈해 보이는 빵까지.

  언제나 식거나 상태가 좋지 못한 음식만을 먹어 왔던 소년에게 이렇게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을 눈앞에 두고 가만히 있는 자신의 모습이 아이러니하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먹지 않으면 유렌이 계속 소년을 재촉할 것 같았기에, 소년은 어쩔 수 없다는 심정으로 수프 한 입을 떴다.

 

  압.

  꿀꺽.

 

 

 

 

 

 

  유렌은 눈앞에 앉아 있는 소년을 보면서 '역시 애는 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소년은 먹기 전까지만 해도 안 먹을 것처럼 버티더니 한 번 맛을 보고 먹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더니, 이제는 체할 것이 걱정될 정도로 빠른 속도로 음식을 처치하고 있었다. 또 한편으로는 험한 세상에서 얼마나 고생을 했으면, 저리도 허겁지겁 먹는 것인지 안타까웠다.

 

  '나도 저런 적이 있었는데.'

 

  금발 사내, 류난이 이 아이가 마석을 훔쳐서 데려왔다고 했지만,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분명 또 무엇인가를 봤겠지. 아무리 그 재능이 중요해도 그것만으로 자신과의 약속을 어길 사람은 아니었다. 그것뿐이었다면, 자신에게 먼저 이야기를 하고 데려왔을 것이라고. 유렌은 그렇게 생각했다.

 

  '넌 어떻게 살아왔니?'

 

  유렌은 소년의 모습을 보며 이 말이 너무나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것은 이 아이가 이곳에 머물기로 하면 천천히 알아 가면 될 일. 서두를 필요도 앞서갈 필요도 없었다. 시간이 해결하고, 자신을 키워 준 아빠, 류난이 해결해 줄 것으로 생각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자신은 그저 지금 이 아이에게 이곳을 보여주고, 이 아이가 이곳에 남아 주기를 바라기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아까 그 기사, 아니, 마, 아니 음... 그분은 누구세요? 그리고 여긴 뭐 하는 곳이고요?"

 

  어느새 식사를 마친 아이가 유렌에게 질문을 해 왔다. 말을 좀 버벅거리긴 했지만, 아마 적당한 호칭을 찾지 못했나 보다. 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마석 탓이었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엄청 좋은 분이시다. 정말로. 엄청. 이곳은 음... 그냥 집이야. 조금 많이 크고, 식구가 조금 많은 집."

 

  유렌은 나름 고민한 표현이었는데, 소년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유렌을 보고 있었다.

 

  "일어나렴. 나가서 직접 보자."

 

  아직도 아리송한 소년의 표정. 유렌은 소년을 일으켜 세워 같이 식당을 나가면서, 머지않아 새로운 동생이 생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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