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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사리(不可殺伊)
작가 : 비내린
작품등록일 : 2018.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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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고향 + 5. 철을 먹는 자
작성일 : 19-01-02     조회 : 310     추천 : 0     분량 : 5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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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저씨. 내려놔요.”

  그 말에 나는 헤아를 멀뚱히 쳐다보았다.

  “그 가면 쓴다고 누가 못 알아봐요? 그건 왜 들고 다니는 거예요.”

  헤아의 말이 그럴듯해 순간 버릴까도 했지만 뭔가 버리기가 살짝 아까웠다. 이거 들고 다닌다고 더 무겁거나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나는 그것을 버리지 않고 다시 안주머니에 넣었다. 근데 내가 앞으로 나가려는 것은 꼭 헤아가 생각하는 경애 때문은 아닌 거 같기도 했다. 희미하게 들리는 무슨 소리가 내 안에서 간지럽게 간질거렸다. 그 기분이 너무 나빴고, 그것이 저기 경애랑 대화를 나누고 있는 자에게서 나는 소리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쨌든, 어떻게 할 거예요.”

  “그러게.”

  “일단 당장 뛰쳐나가지 않은 것은 제가 칭찬해 줄게요.”

  그 말에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일단 빨리 도망쳐요. 아저씨. 곧 스님들도 이곳으로 올 거예요.”

  헤아의 말이 맞다. 당장 도망치라고 머리가 계속 말하고 있지만 무언가가 계속 막고 있기도 했다.

  “제대로 말해줘요? 저 아줌마가. 아저씨를 강시로 만들었다고요.”

  부정하고 싶은 현실이었다. 나는 최대한 경애의 편에 서서 그녀를 위해 변명을 하였다.

  “아니, 제대로 들은 것도 아니고….”

  “저 사람들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고 저 둘이 사이좋게 어디 가는 것도 보이지 않아요?”

  “크음.”

  보였다. 너무나도 잘 보였다.

  “빨리 가요.”

  이제 헤아가 나를 달래기 시작했다. 속에서 자꾸 뭔가 울컥거리며 올라왔다. 나는 이것이 슬픔임을 알고 있다. 눈물이라는 이름의 슬픔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내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나는 나오지 않는 슬픔을 담아두고 헤아를 들쳐멨다.

  “가자.”

  “내려주세요.”

  “싫어.”

  그러면서 나는 울지 못했지만, 딸꾹질이 나오듯 어깨가 들썩이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알았어요. 그럼 조심히 가요.”

  헤아도 그것을 느꼈는지 그 말을 끝으로 입을 열지 않았다. 우리는 조용히 그곳을 떠났다. 나는 천천히 그곳을 벗어났다.

 

  5. 철을 먹는 자.

 

  “지금부턴 제가 밟는 것을 정확하게 밟고 오셔야 합니다.”

  “알았다. 근데 강시들은….”

  강시들도 진 안으로 들어갈 때 경애가 밟는 곳만 밟아야 한다면 많은 어려움이 따를것이란 얘기였다. 하지만 경애는 별 상관없다는 듯 당당하게 말하였다.

  “저들은 어차피 죽은 자들입니다. 이 결계는 환영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강시들까지 따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알았다.”

  그러고는 암군은 빠르게 경애에게 들어가라는 눈빛을 보냈다. 경애는 뒤에 따라오는 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이런 암군의 행동이 익숙한지 그녀에게 작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모시겠습니다.”

  경애는 익숙하게 결계 안으로 들어갔고, 나머지 사람들은 특이한 걸음걸이에 당황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아무도 낙오 없이 들어올 수 있었다.

  “이 많은 분이 낙오 없이 오다니. 역시 대단하군요.”

  경애는 솔직히 놀랐다. 약 200여 명의 인원이었다. 처음에 들어온 인원이 얼마인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랬다. 근데 그들 전부 특이한 발놀림을 따라 들어온 것이다. 경애는 살아남기 위해 눈치가 빠르고 몸놀림이 좋은 건지 아니면 원래 그런 자들이 모여있던 건지 조금 의문이 들었지만, 지금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이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 중요하지 않았다. 아마도 이들은 모두 여기서 죽을 것이다.

  “안으로 드시지요.”

  그것을 감추고 경애는 그들을 반겼다.

 

  작지만 집이 있었다. 그 안은 아이러니하게도 암군과 경애 그리고 강시들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암군은 밖에서 대충 쉬라고 그들에게 명령했고, 그들은 그것마저 감사한지

  “감사하옵니다. 암군이시여.”

  라고 하였다. 경애는 그때 암군의 칭호를 처음 알았다. 그렇게 휴식을 받은 나머지 인원은 자신들이 조금씩 나눠 가지고 있거나 경애가 내어준 물건들로 어떻게든 천막을 치려 했다.

  “자, 그럼 빨리 강시들을 치료해라.”

  “일단 저들을 먼저.”

  “살아있는 것들은 알아서 치료되지 않느냐. 그리고 자기들도 조금이나마 의술을 익히고 있을 터이니 걱정하지 말고 얼른 강시를 고치거라.”

  “…. 알겠습니다.”

  경애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강시들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그리고 암군에게 말했다.

  “이쪽으로 오신다는 소식 듣고 준비는 해 뒀습니다. 다행히 제가 준비한 것 내에서 고칠 수 있겠군요.”

  “오호. 그 말이 사실이더냐! 하하하하! 너를 만난 것이 진실로 세상을 꿈꾸라는 하늘의 뜻 아니겠느냐.”

  그렇게 암군은 즐겁게 웃어댔다.

  “이곳에서 치료하느냐? 아니면 어디로 가야 하느냐.”

  경애는 암군의 손에 들린 방울을 뺏고 싶었지만, 함부로 달라 했다가 의심만 더 불러올 수 있어서 조심스러웠다.

  “이곳은 너무 좁습니다. 미리 파 놓은 동굴로 모시겠습니다.”

  “아, 들어올 때 봤던 그곳 말이더냐.”

  “예.”

  경애는 도망칠 당시 상당의 금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가 고려인이라는 특징 때문에 회천회 고려지부를 만들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회천회는 무너졌고, 그 돈은 모두 경애의 것이 되었다. 하지만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는 동안 돈이 꽤 나갔다. 결계를 만드는 것도 꽤 돈이 많이 들었다. 덕분에 이렇게 산속에 비밀스러워야 할 동굴 옆에 집을 짓게 된 것이다. 덕분에 전부 봤을 것이다. 그 동궁을.

  “알았다.”

  암군은 방울을 흔들어 강시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일단 같이 가자꾸나.”

  암군은 그렇게 말하고 방울을 흥겹게 흔들면서 앞서서 걸었다. 경애도 그 뒤를 따랐다.

  “오호.”

  암군은 동굴 안을 보고 감탄했다. 그 안에 다양한 약초들과 구석구석에 적힌 주문들 그리고 관들이 꽤 있었기 때문이었다.

  “관이 족히 50개는 되어 보이는군.”

  그 말에 경애는 더욱 깊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하옵니다. 제가 과하게 준비하느라 관을 더 준비했습니다. 암군님을 놀릴 생각은….”

  보통은 많으면 많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암군이란 자는 지금까지 봤을 때 생각이 짧고 무지 감정적인 자였다. 만약 30여 구의 강시만 있는데 더 준비했다는 것을 족히 50구는 되찾을 수 있을 터였는데 이것밖에 찾지 못했냐는 식으로 받아들인다면 계획이 어그러지기 때문에 경애는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이런 자는 다른 곳보다 자신을 놀릴만한 곳에서 모든 트집을 잡아대는 것에 능하기 때문이었다.

  “아니, 괜찮다. 무슨 말인지 다 아니 말이다.”

  하지만 다행히 경애 자신이 강시를 고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점에서 암군도 그녀를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관이 많다는 것은 한 번에 많은 수의 강시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것 아니더냐.”

  “재료만 갖춰지면 바로 생산할 수 있사옵니다.”

  “재료는 걱정하지 말라 말하지 않았느냐. 내가 말라 했으면 마는 것이야.”

  “알겠사옵니다.”

  “자, 이들을 어디에 눕히면 되겠느냐.”

  경애는 몸이 아예 잘린 1구와 몸이 여기저기 상한 21구를 각자 정해둔 자리에 놓았다.

  “이 녀석 들은 정말로 못 살리는 것이냐.”

  “그러하옵니다. 이들은 안타깝게도 승병들에게 당했습니다. 이미 그들을 세우고 있던 주술이 모두 깨졌습니다. 안타깝지만 포기하셔야 하옵니다.”

  “크윽. 빌어먹을 땡중들 같으니.”

  그 말에 암군은 정말로 안타까워하였다. 반대로 경애의 경우에는 안심되었다. 만일 자신이 실패하더라도 빠져나갈 강시들이 적어졌고, 승병들이 이들을 상대할 힘이 있다는 사실에도 감사하였다.

  “너는 빨리 강시들을 고치거라. 나는 이 두 구의 강시의 위령제를 땡중들의 피로 올려야겠으니 말이다.”

  “알겠습니다. 한데 시간이 조금 걸릴 거 같습니다. 특히 저 사지가 찢어진 강시는 사흘쯤 걸릴 거 같습니다.”

  “이틀. 이틀의 시간을 주마.”

  “…. 알겠사옵니다.”

  경애는 사실 이틀 정도로 잡고 있었기 때문에 고민하는 척만 하면서 받아주었다. 암군은 맡기겠다는 말만 하고 동굴을 떠났다. 이제 경애의 시간이었다.

 

  “아저씨. 이 붕대 언제까지 하고 있을 거예요.”

  헤아의 말처럼 나는 아직도 붕대를 감고 있었다. 아마 그녀, 경애의 따뜻함을 잊지 않기 위해서겠지. 하지만 지금에 와서 그것을 쓸모 있는 것일까.

  “벗어 버려요!”

  헤아도 경애에게 화난 것이 많은지 지녀가 해준 것을 빨리 벗길 요령이었다. 나는 아직 내가 들쳐메고 있는 헤아를 내려놓았다.

  “으으윽.”

  내리자마자 헤아는 몸이 뻐근했는지 몸을 이리저리 비틀기 시작했다.

  두두둑.

  그때마다 나이에 맞지 않게 뼈 소리가 울렸다. 나는 괜스레 미안해졌다. 나 때문에 저런 게 아닐까 해서 말이다.

  “뭘 봐요. 빨리 그 붕대나 치워버리자고요.”

  “그래.”

  나는 머리로는 계속 치워야지, 치워야지 하면서도 일부러 질질 끌었지만, 이제는 진짜로 치워야 할 때가 온 거 같았다. 나는 얼굴에 난 상처 때문에 얼굴에 감아둔 붕대부터 찢어버렸다. 가끔 깃발이나 적의 옷을 찢을 때 나는 소리가 내 귀에 다시 맺혔다.

  “어?”

  붕대를 다 찢었을 때 헤아는 의문성을 터트렸다.

  “왜. 상처라도 다 나았나? 더 멋있어졌어?”

  나는 그녀와의 인연의 물건을 찢었다는 죄책감 때문일까. 쓸데없이 장난을 걸었다.

  “예….”

  근데 헤아의 반응이 이상했다. 내 말을 장난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닌 거 같았다. 근데 대답이 “아니요.”가 아니라 “예.”였다.

  나는 당장 곰가죽 옷 상의를 벗었다. 평소라면 뭐라 했을 헤아지만 이번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내 가슴과 등을 감싸고 있는 붕대를 찢었다. 그곳은 상처 하나 없이 말끔했다.

  “뭐지.”

  나는 믿을 수 없어 내 상처가 있던 가슴과 배를 만져보았다. 없었다. 스님들께 당했던 팔도 서둘러 보았다. 그곳에 있던 화상 자국 또한 온데간데없었다.

  나는 아니, 헤아 또한 시체인 나의 상처가 치료됐다는 것에 상당히 놀랐다. 아무도 시체에 상처를 입혔는데 그것이 고쳐졌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아, 이거. 이거에요! 그 아줌마가 아저씨를 강시로 만든 게 확실하다니까요. 그러니까 이렇게 고칠 수 있죠!”

  아까부터 힘들게 그건 진실이 아니라고 외치고 있던 것이 진실로 드러났다. 나는 힘이 빠지는 거 같았다. 아니 솔직히 쌩쌩했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힘이 빠지는 것과 육체적으로 쌩쌩한 것의 미묘한 차이에 이제 익숙해졌기 때문에 나는 충분히 힘이 빠진 사람처럼 바닥에 주저앉을 수 있었다.

  “아저씨….”

  헤아가 나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럼 난 도대체 뭘까.”

  이제 나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기껏 해봐야 보부상처럼 지나가듯 나를 본 사람들이 전부일 것이다. 홍건적이 전에 쳐들어왔을 때 마을 사람들을 모두 잡아갔다 하니 말이다. 나는 그런 절망 속에서도 경애를 믿고 그녀가 나에게 속삭여준 내 과거를 믿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녀 또한 믿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갑자기 모든 것이 싫어졌다. 이대로 죽을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저씨.”

  나는 헤아의 부름에 상념에서 벗어나 그녀를 쳐다보았다. 내 표정이 헤아의 얼굴로 보이는 거 같았다. 힘써서라도 웃어야 하는데 그럴 힘이 나지 않았다. 내 삶의 모든 것이 부정당한 느낌이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 아줌마 완전 나쁜 사람은 아닌 거 같아요. 아저씨를 강시로 만든 사람이긴 하지만 아저씨를 치료해줬잖아요! 솔직히 그럴 이유가 없는데 말이에요! 아저씨 옆에서 얘기도 해주고….”

  그러고 헤아가 경애의 좋은 점을 더 말해 보려 했지만, 고작 한 식경은 만났을까. 대화도 제대로 나누지 않았는데 좋은 점을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을 것이다.

  “그건 또 그렇네.”

  하지만 헤아의 그 말로도 충분했다. 경애는 날 치료해줄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이용했으면 이용했지 말이다. 그리고 나는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돌아가자.”

  “….”

  헤아는 무슨 말을 하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다시 닫았다. 그리고 그녀는 무언가를 다짐한 듯 무겁게 입을 열었다.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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