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동안 주야장천 달리기만 했다. 내 품 안에서 반쯤 시체가 된 둘은 조금만 더 있으면 정말로 시체가 될 거 같았다.
“여기서 쉬도록 하지.”
“네에….”
“….”
평소라면 강한 척을 하기 위해 아니라는 말 한마디쯤은 하던 헤아는 내 말에 힘들지만 기쁘게 대답했고, 경애는 대답도 하지 못하고 내 품속에서 막걸리에 과하게 취한 사람처럼 해롱해롱했다.
“따돌린 거 같아요?”
헤아는 나를 벗어나 약간 비틀거리다가 기지개를 쭉 켜고 나에게 물어봤다.
“모르겠어.”
나는 그 방울에게서 도망친 후에 누군가 나를 감시하고 있다는 느낌도 받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그런 걸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저 쫓기고 있구나 하면서 최대한 빨리 이동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근데 그 아줌마는 괜찮아요?”
헤아의 걱정대로 경애는 계속 아까의 상태가 계속되고 있었다.
“어디 아픈가?”
내 말에 헤아가 다가와 그녀의 이마에 손을 대 보았다.
“뭐야 이거!”
헤아는 기겁하면서 그녀의 머리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그녀의 몸을 여기저기 만져보았다.
“왜 그래.”
“아저씨. 이 아줌마 완전 불덩어리에요!”
“뭐!”
나도 그녀의 몸을 만져보았지만, 온돌의 온기도 못 느끼는 시체가 인간의 더 약한 온기를 느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어떡하죠?”
“괘… 찮아요.”
그때 경애가 거친 숨을 내쉬면서 입을 열었다.
“어서…. 도술서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소.”
“아뇨. 중요해요.”
그녀는 이때만큼은 단호하게 내 눈을 바라보고 말했다.
“아저씨. 그럼 빨리 창식인지 뭔지 하는 사람한테 가요. 그럼 아줌마 고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래. 알았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헤아를 안았다. 그리고 아까보다 더 빠르게 뜀박질을 시작했다. 거의 다 왔다고 하지만 아직 거리가 있다. 거기다 국경을 넘으려면 조금 더 돌아가야 하고 말이다.
“제길. 왜 마을이 없는 거야.”
나는 뛰면서 울분을 속이 아닌 입으로 내뱉었다. 그녀를 주변 마을이 아닌 창식이에게 데려가야 하는 이유는 별거 아니었다. 주변에 마을이 없었다. 이미 강시들로 인해 피난이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다.
“창식이는 거기 있겠지.”
“있을 거예요. 아무 데도 못 가는 처지라면서요!”
헤아가 다급하게 받아친 말에 나는 마음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불안감을 한편으로 밀어 넣었다.
“그래. 그곳에 있을 거야.”
그가 말하기에도 북으로는 홍건적, 서쪽은 원나라, 남쪽은 고려, 동쪽은 바다였다. 북은 적이고 남은 탈영병이다. 서쪽은 그런 남쪽과 지금은 홍건적을 두고 동맹과 같은 자리여서 바로 송환 조치당할 것이다. 그리고 동쪽은 갈 곳 없는 바다였다. 어디를 가도 위험한 곳에 자리 잡은 것이었다.
“그러니까 빨리 가자.”
이 말이 몇 번이나 내 입에서 나오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내 마음이 그렇게 급하다는 뜻이었다.
“아저씨! 저기!”
한참 달리고 있을 때 헤아가 어딘가를 가리켰다. 나도 그곳으로 저절로 고개가 돌아갔다. 그리고
퍽.
“꺄악!”
강력한 충격과 함께 내 고개가 휙 돌아가고, 헤아는 비명을 질렀다. 딱히 아프진 않았지만 무지 기분이 나빴다.
“뭐지.”
“화살이잖아요!”
그 말에서야 나는 내 머리에 맞고 튕겨나간 화살을 볼 수 있었다.
“왜 화살이 여기에….”
내가 알기로 강시를 데리고 다니는 녀석들 중 화살을 쏘는 녀석은 없었다. 물론 강시도 못 쏘고 말이다. 도대체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는 내 머리를 정확하게 맞출 수 있는 자가 누구지?
나는 고개를 다시 돌려 헤아가 가리킨 방향을 보았다. 그곳엔 익숙한 복장을 한 자들이 있었다.
“고려군….”
내 과거 동료들이 그곳에 서 있었다.
“뭐라고요!”
힘들게 서경으로 돌아온 공저를 맞이한 것은 그와 함께 강시들을 저지했던 부대를 이끌었던 지휘관이었다. 지금은 모든 책임을 지고 한낱 장수가 되었지만, 그는 딱히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강시들이 국경으로 다시 이동했다 하네.”
“왜 그곳으로 간 것입니까.”
“그건 아직 들리는 말이 없어. 다만 자네가 쫓고 있던 인간처럼 움직이는 강시가 첩보병처럼 앞서 달리고 있을 뿐이었네.”
“그는…!”
거기까지만 말하고 뭔가 망설이는 공저를 보고 그는 공저를 재촉했다.
“뭘 말하려는가. 빨리 말해 보게나.”
“…. 그는 적이 아닙니다.”
“하하하하하하하. 스님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올 줄 상상도 못 했네. 혹시 머리를 다쳐서 온 거 아닌가. 우리 병사들이 누구한테 목숨을 잃었는지 모르는가!”
그는 공저의 말에 크게 화를 냈다. 그것도 그럴 만 했다. 수백이 죽었다. 강시들에게 말이다. 그리고 자신의 지위까지 격하 당했는데 강시들을 좋게 볼 리가 만무했다.
“모든 강시를 같게 보지 마십시오. 그자는, 그자는 뭔가 다릅니다.”
공저가 자신의 분노에도 그를 감싸는 모습을 보고 그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뭐가 다르단 말인가.”
“이성이 있습니다. 마치 살아있는 인간처럼 말이죠.”
“그거야 특이하다고 하지만 자네가 그렇게까지 그를 감싸려는 이유를 모르겠군.”
“그는 다른 강시들과 적대관계인 거 같습니다.”
“흐음.”
그렇게 말해서야 그는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고민하는 척하였다.
“그래서. 우린 이미 강시들을 물리칠 준비를 끝냈네. 자네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자네들이 적을 많이 줄여준 덕분이야.”
그 말에 공저는 그날의 분노와 슬픔이 다시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 그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안됩니다. 한참 부족합니다.”
“무슨 소리인가. 이곳에 모인 자들을 알면….”
“알아도 부족할 것입니다.”
“자꾸 부족하다고만 하지 말고 이유나 말해 보게 도대체 왜 그런가.”
“강시들이 강화되었습니다. 더 단단하고, 더 강하고, 더 빠릅니다. 100여 명의 승병이 21구의 강시들을 1식 경도 잡아두지 못했습니다.”
“크음.”
지금까지 봐온 것을 봐서 승병들은 강시들의 상성에서 완벽하게 우위에 서 있다. 하지만 지금 물론 격차가 있어서 1대1로는 부족하지만 5배면 진을 짤 수 있는, 그리고 버티기만 하면 되는 승병들에게 유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했다고 말하고 있다.
“도대체 얼마나 강하기에 그런가 해준이가 있지 않았는가.”
“그도 강화된 강시의 공격을 두 번 받아내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승병들보다 더 강하게 강시를 몰아붙이던 척 해준이었다. 하지만 그가 2번 버티는 것이 전부라 말할 정도면 강화 수준이 아니라 다른 존재가 되었다고 봐도 될 것이다.
“그 인간처럼 움직이는 강시도 강화된 것인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자넨 아마 그와 협력하여 강시들과 싸울 생각을 하고 있겠지.”
“부처님의 길을 따르는 자로서 부끄럽지만 그러합니다.”
“안됐네. 그 계획은 실행하지 못할 거야.”
“왜 그렇습니까.”
“따로 떨어진 강시네. 그를 잡지 않는다면 우리도 체면이 서지 않음이야.”
“설마….”
“그래. 이맘때쯤이면 전투 아니, 사냥이 시작됐을걸세. 그리고 내가 안다 하여도 이제는 손 쓸 방도가 없고 말일세.”
그 말에도 공저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가 도망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럴 수 없을걸세. 그도 척 해준 이상의 무인이니 말이야.”
그 말에 공저는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고려의 입장은 이해하나 살아있는 인간의 피해를 줄일 방법이 사라진 것에는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그나저나 그는 무엇인가 도대체.’
눈으로 보지는 못했지만, 기운으로 느낄 순 있었다. 강시 하나가 다른 강시들에게 쫓기고 있는 그 기운을 말이다.
공저는 고개를 절레 저었다.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 다만 그를 만날 수 있으면 알 수 있었을 텐데 아마 그는 살아남지 못하리라. 척 해준도 그를 ‘무른 강시’라 표현하지 않았는가. 척 해준 이상의 무사면 그를 멸하는 것은 손바닥 뒤집기보다 쉬울 것이다.
그를 보는 느낌은 마치 전에 내 목의 대부분을 잘라버린 그 무사를 모는 거 같았다. 죽은 몸의 솜털이 솟아나고 소름이 돋을 정도였으니 말해 뭘 하는가. 그는 무심하게 활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의 뒤에 있던 병사들이 시위를 놓았다.
스산한 바람소리와 함께 내가 죽기 전 보았던 그 하늘이 다시 보였다. 나는 두 여인을 꼭 껴안고 방패처럼 내 몸으로 감싸고 앞으로 달렸다.
내 등을 꿰뚫는 몇 개의 화살 빼곤 역시 다 튕겨 나갔다. 그렇게 3번의 화살이 내려꽂힌 뒤 주위가 조용해졌다. 아니, 마치 호랑이가 사냥감을 향해 뛰어가는 것 같은 발소리가 내 귓가에 천둥소리처럼 맺혔다. 나는 본능대로 몸을 굴렀다. 두 여인은 내 품속에서 튕겨 나가 몇 번 굴렀다. 나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리고 둘에게 다가갔다. 둘은 바닥에 바짝 엎드려 숨을 헐떡였다.
척. 척. 척.
그때 사방에서 고려 보병이 검차를 비롯한 무기를 들고 우리 주위를 둘러쌌다.
“이제 이곳에서 도망칠 수 없네. 뭐, 그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게나. 결국, 모두 죽는 것은 같을 테지만 말일세.”
그러면서 그는 우리와 멀찌감치 떨어져 칼을 바닥에 꽂고 공격 의사가 없다는 것을 밝혔다.
나는 헤아와 경애 옆에 갔다.
“미안하오. 내가 너무 경솔하게 행동했소. 조금더 주위를 살폈어야 했거늘.”
당연히 당시들과 고려군이 싸우고 있을거라 생각해서 여기는 별로 신경을 안 쓰고 있을 줄 알았다. 그런 안일한 생각이 지금의 사태를 만든 것이다.
“아니에요. 저는…. 감사했어요. 어쩌면 제 인생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을지도 몰라요.”
헤아는 그렇게 나에게 유언을 남기듯 말했다. 경애는 품 속에서 무언가를 힘들게 꺼냈다. 한자루의 단검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그것을 건냈다. 나는 그것을 감사히 받았다. 그거라도 들고 저자와 싸워 이기라는 의미인가 해서였다. 하지만 그녀가 다음에 내뱉은 말은 내 귀를 의심케 했다.
“드세요.”
“뭐?”
“아줌마 많이 아파요?”
헤아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우리 둘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말했다.
“드세요.”
나는 어떻게 할까 하다가 그래도 마지막인데 그녀의 소원은 들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시체인데 쇠를 먹는다고 죽진 않겠지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렇게 나는 단검을 입에 넣었다.
“저 녀석 뭐 하는 거야.”
그때 내 뒤에서 저런 소리가 들렸다. 나도 그런데 그라고 안 당황스러울까.
파직.
단검은 의외로 쉽게 부러졌다.
와그작. 와그작.
절대 씹히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쇠는 쉽게 씹을 수 있었다. 그리고
꿀걸.
그 쇠를 삼켰다. 헤아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향해 씩 웃어주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뭐야 이거.”
음식을 삼켰을 때와 느낌이 달랐다. 음식은 위장에 얹히는 느낌이 컸다. 근데 이건 뭐랄까….
“뭐….”
경애는 상체만 힘들게 일으켜 내 얼굴에 손을 댔다.
“다행히 흡수가 잘 이루어졌네요.”
“흡수?”
“예. 당신은…. 완성된 강시 중 하나….”
“완성된 강시 중 하나?”
그녀의 말에 처음 눈을 떴을 때 보였던 내 주변에 있던 4개의 관이 기억났다.
“혹시 그 강시는 5개였나?”
경애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의…. 이름, 돌쇠.”
맞다. 내가 처음에 기억하고 있던 이름이 바로 그것이었다. 덕분에 살짝 부끄럽긴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나중에 안 사실은 그 이름이 내 진짜 이름이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당신은…. 오행(五行), 중 쇠(金)의 힘을 가진…. 생(生)강시….”
그녀는 힘들게 그 말을 하고 푹 하고 쓰러졌다.
“많이 기다려 줬지? 슬슬 시작하자.”
그는 그렇게 말하고 자신의 검을 뽑았다. 그리고 나를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나는 그녀들과 멀어지기 위해 몸을 다른 곳으로 날렸다. 그는 내 의도대로 따라와 줬다. 나는 그대로 병사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