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정이다!”
이렇게 소리친 사람이 내 옆에 있었다면 뒤통수를 한번 후려갈기던가. 차분하게 그의 떨고 있을 어깨를 짚어줄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어떤 멍청이라도 다 알거라고 말이다. 물론 내가 알고 있는 내 성격상 먼저 후려 갈겼겠지만 말이다. 아니, 중요한 것은 이게 아니다.
이제 거리낄 것이 없다는 듯 나뭇잎을 밟든 나무를 건드리든 상관하지 않고 확실하게 하지만 조심스럽게 포위망을 좁혀나가고 있었다.
“도망쳐야….”
옆에서 들리는 소리에 나는 코웃음 쳤다. 도망쳐? 어디로? 저들이 왜 저렇게 당당하게 들어오는데. 우리가 도망칠 수 있는 곳이 없으니까 승전보를 올리듯 당당하게 오는 것이었다.
어둠속에서 흔들리는 인영들. 숫자는 백이 넘어서는 숫자를 헤아릴지 모르는 내가 봐도 우리보다 훨씬 많았다. 어떻게 아느냐. 우린 백이 넘지 않거든.
별동대(別動隊). 이것이 우리의 운명인 것이다. 녀석들의 수송물자 속에 볏짚이 있었을 때부터 예상했던 일이기도 했다. 하기야. 이렇게 백여 명의 병력들을 제물로 덫을 팠는데 그 덫에 걸린 사냥감을 잡지도 못한다면 진즉에 홍건적(紅巾賊)을 몰아내고 약해져 있는 원나라를 치고 요동을 도모하지 않았을까도 생각해 봤다.
“한 명이라도 홍건적을 물리치고!”
푹.
다가오는 적들의 압박에 내가 쓸데없는 생각에 빠져있었듯이 누군가는 자신의 혈기를 참지 못하고 장군이라도 된 것처럼 목청을 높였다. 그렇게 힘차게 연설하던 장수 한 명은 목에 화살이 꽂혀 피거품을 뿜으면서 쓰러져갔다. 아마 이곳에 온지 얼마 안 된 혈기 넘치는 장수였을 것이다. 멍청한 건지 압박감에 빠른 죽음을 택한 건지. 어느 쪽이든 멍청해도 너무 멍청했다.
척. 척.
뭐지? 걸어오는 소리가 아니다. 무언가… 무언가 더 스산한 느낌이 드는 소리였다. 이 분위기를 세상도 느꼈는지 주위가 한순간 침묵에 잠긴다.
“방패!”
그리고 들리는 외침에 나도 모르게 내 손에 있는 방패를 내 머리 위로 번쩍 들어올렸다. 그 순간 하늘에서 철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뾰족하고 또, 묵직했다.
사방에서 방패가 두들겨 맞는 소리가 들렸다. 안 그래도 별동대란 이유로 다른 것에 비해 약하지만 가벼운 방패를 받았다. 그리고 방금 전 한차례 전투가 끝난 뒤였다. 방패는 부서지기 직전이었다.
계속해서 퍽. 퍽. 퍽. 소리가 들린다. 이것이 누군가의 몸뚱이에 꽂히고 있는 화살인지 아님 누군의 몸을 잘 지키고 있는 방패의 소리인지 구분도 가지 않았다.
“으으으윽.”
하지만 간간이 들리는 방패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신음소리가 내 귓가에 울렸다. 화살의 두려운 점이 이것이다.
죽지 못하는 동료들. 화살 한방에 한 명의 목숨? 아 물론 우리 고려인들은 할 수 있다. 십 수 년 이상 활을 쏘아온 명인(名人)들이라면 말이다. 그럼 저기 있는 홍건적들은 모두 명인인가. 아니다.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화살이 기어코 내 팔을 찌르고 내 투구 옆으로 고개를 내밀어도, 팔이 부셔질 듯 아파도 절대 방패를 내려놓지 못하는 이유, 내 주변의 모든 병사들도 그 방패를 내려놓지 못하는 이유. 괴롭게 죽긴 싫으니까 이었다.
“이보게 전멸(全滅)의 뜻을 아는가?”
문득 누군가 나에게 건넸던 쓸모없는 말이 생각났다. 내가 이 말에 뭐라 답했더라…
“썩을 놈이! 아직 싸움이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무슨 재수 없는 말을!”
그 다음은…
“키킥. 요즈음 재미있는 말을 들어서 말이지.”
“전멸하고 재미있는 말 하고 무슨 상관이오?”
“몇 명이 죽어야 전멸이라고 말하는지 아는가?”
“내 아무리 무식해도 그건 아오. 군에 몇 년을 있었는데. 다 죽어야 전멸 아니오.”
“틀렸네. 전멸은 3할의 병력이 죽었을 때 말하는 것이네.”
“어디서 쓸데없는 말을 들어서. 그런 쓸데없는 말을 듣지 말고 한자나 다시 공부하고 오시오.”
“100명 중 33명이란 말일세. 33명이 죽어서 바닥에 뒹굴고 있는데 그 누가 적과 싸울 수 있겠는가.”
“난 할 수 있소!”
아니, 할 수 없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미 죽은 이의 숫자는 3할이 훨씬 넘어갔다. 아니, 살아남은 자의 숫자가 3할이 안될 것이다. 그런데도 하늘어선 철비가 끊이지 않고 쏟아 내려지고 있었다. 내 투구 옆으로 튀어나온 화살촉이 점점 나를 향해 기어오는 거 같았다. 방패의 금이 벌어지고 이제 죽음만이 느껴지고 있었다. 이곳은 전쟁터가 아니다. 그저 지옥일 뿐이다.
“허억. 허억.”
갑자기 멈춘 철비에 나와 주변의 거친 숨을 내뱉는 소리만 들렸다.
척. 척.
아니, 이제는 그들의 걸음 소리까지 모두 들렸다. 제길.
사방에서 들리는 발소리. 원군 따윈 없다. 당연히 우리가 싸우고 있는 적들, 홍건적의 발소리였다. 근데 홍건적? 적(賊)? 도적이라고? 이들이? 아니, 이들은 이미 도적 떼 따위가 아니다. 이들은 군대였다.
“방진을 짜라!”
그 말에 한 곳으로 모여드는 병사들. 나도 그 파도에 몸을 실었다. 이미 동료들의 눈은 죽어있었다. 그리고 나도 저런 눈을 하고 있겠지.
방진을 짜는 새 눈앞까지 다가온 홍건적들. 그리고 그들은 천천히 그리고 확실히 우리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 후 결국 이루어진 첫 격돌. 누구는 다 부서져 가는 방패를 들고, 누구는 그마저도 없이 온몸으로 부딪히는 첫 격돌에서.
푹.
한 자루의 창이 내 심장을 관통했다. 피할 힘도 없었던 걸까. 아니면 편하게 죽을 기회를 잡고 모든 걸 포기한 걸까. 온 몸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고, 이제는 승리도, 전공도 모두 상관없었다. 뭐든지 내가 죽는다는 결과는 달라지지 않으니까.
그 순간 나의 삶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아아, 들어본 적 있는 거 같다. 그 뭐라 했더라…. 주마등?
번개처럼 스쳐 지나가는 기억 속에 어느 순간 거북이처럼 느리게 지나간다.
“여보….”
만삭의 여인이 떠나는 날 향해 꼭 돌아오라며 손을 흔들어준다. 애써 눈물을 참고 있는 그 모습이 더욱 슬프게 느껴졌다.
아내, 내 아이를 품고 있는 만삭의 아내를 두고 끌려온 이곳. 된다면…. 할 수만 있다면 다시 만나고….
“다 태워버려라! 하나도 남기지 말고!”
“예!”
한 사내의 말에 수많은 병사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그 사내는 변발에 다른 병사들과 구분되는 화려함이 엿보이는 갑옷을 입고 있었다. 그 사내가 말을 끝내고 병사들이 달려간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산 여기저기서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저기도 시작하는 군.”
사내가 바라보는 곳은 옆 산이었다. 산맥이 이어져 있는 곳이라 수많은 병사들이 이 산맥을 전체적으로 훑고 있을 것이다. 이 산에 있는 병사들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많군.”
태워야 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 산이 타는 게 아닌가 할 정도로 연기가 치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사내는 연기가 늘어갈수록 미간에 주름이 깊게 파여 갔다.
“얼마나 많은 것이냐.”
“금방 끝날 것입니다.”
사내의 말에 부관으로 보이는 자가 서둘러 말을 받았다. 하지만 사내가 원하는 대답은 아니었는지 이마의 고랑은 더 깊어졌다.
“직접 어떤 곳인지 가봐야겠다.”
“그곳은 위험합니다.”
“장군이 이런 자리도 두려워하면 뭘 하라는 것이냐.”
그 말에 부관은 살짝 뒤를 바라보고 한 명의 장수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그 장수는 서둘러 산을 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쯧. 쓸데없는 짓을.”
“소신의 충성으로 받아주시지요.”
사내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곤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 뒤를 장수들과 병사들이 따라 올라갔다. 그렇게 잠시 걸어 올라가니 위에서 병사 한명이 서둘러 내려왔다. 그리고 사내를 보더니 예를 취하고 바로 입을 열었다.
“모시겠습니다.”
“그래.”
사내는 그의 안내를 받아 조금 위의 어떤 동굴로 들어갔다. 겉에서 봤을 때는 잘 보이지 않지만 안으로 조금만 더 들어가니 수많은 약초와 뜻을 알 수 없는 문자들이 그려진 종이와 비석 같은 물건들 그리고 시체가 가득했다. 사내는 돌아다니다 어느 시체 앞에서 검을 뽑아들었다. 살짝 휘어진 곡도가 동굴 안으로 들어오는 작은 빛을 받아 흩뿌렸다. 그렇게 빛을 가득 담은 검이 시체의 목을 향해 내리 꽂혔다.
챙.
하지만 철과 철이 부딪히는 소리만 들릴 뿐 시체의 목엔 흠집 하나 생기지 않았다.
그런 모습에 날이 살짝 나간 자신의 칼을 바라보며 사내가 입을 열었다.
“흠. 이놈들이 깨어났으면 큰일 날 뻔 했어.”
“전부는 아니지만 쇠붙이가 들지 않는 녀석들만 100여구가 있었습니다. 만약 이들이 모두 깨어났다면….”
사내는 뒷말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는 불경한 말이었지만, 사내는 굳이 부관의 실수를 지적하지 않았다. 자신도 그렇게 느끼고 있으니 말이다.
“반란에 홍건적에, 왜적에 이어 이번엔 강시라니. 아니, 이 또한 반란의 연장선인건가. 멀쩡한 건 고려밖에 없군.”
부관은 고려도 멀쩡하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굳이 입을 열지 않았다.
“아네. 고려도 우리의 품을 벗어나려 든다는 것을. 하지만 직접 우리에게 칼을 겨누는 이놈들보다는 낫지 않은가. 그런 발악정도는 우리가 이 잡것들을 다 물리친 후에 언제든 꺾을 수 있으니 말이다.”
하면서 사내는 시체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담겨있는 것은 명백한 분노였다.
“이 빌어먹을 한족(漢族)녀석들을 모두 베어버린 뒤에 말이야.”
사내의 분노 그것은 이곳에 있는 아니, 이곳뿐만이 아닐 것이다. 불타오르고 있는 저 연기 속에 있는 시체가 대부분 변발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했다.
이따금 아닌 자들도 보이지만 이곳은 왜구보다 고려인들의 시체를 수급하기 적당한 곳이다. 그러니 그들은 고려인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 사내는 분노가 섞인 헛웃음이 나왔다. 이들의 목표가 너무 눈에 보였고,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어이가 없었다. 그들의 목표는 본인들 손에 본인의 국가가 멸망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었으리라. 하지만 그들의 망상도 오늘부로 끝났다. 한(漢)인이 천자가 되어 하늘을 다시 되돌린다는 괴상한 집단인 회천회(回天會)는 오늘부로 세상에서 지워졌다. 회주는 목이 잘려 효시되었고, 그들의 기반은 지금도 착실하게 사라지고 있을 것이다.
숨을 죽이고 기회만 엿보고 있던 수많은 한인들이 남몰래 도와줬지만, 수많은 시체와 값비싼 약초들 덕분에 이들의 덜미를 잡을 수 있었다. 잔당이 다시 모여 강시를 만들려고 해도 수십 혹은 백여 년은 기다려야 할 정도의 타격이었다. 그들을 도와줄 조력자부터 다시 찾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교수대의 이슬로 사라진 수천 명을 대신해서 말이다.
사내는 짧은 생각을 끝내고 오른손을 부관에게 내밀었다. 무언가를 달라는 듯이. 부관은 자신의 상관의 뜻을 깨닫고 뒤에 있는 병사의 횃불 하나를 가져와 사내의 손에 들려주었다. 사내는 그 횃불을 동굴 안쪽으로 던졌다. 이미 기름이 바닥에 흥건했던 동굴은 삽시간에 타오르기 시작했다. 사내와 부관, 그리고 그들을 따르던 장수들과 병사들 모두 빠르게 동굴을 벗어났다. 동굴 밖에는 아까 흩어졌던 병사들이 연기와 함께 오와 열을 맞춰서 서 있었다.
“회천회 소탕은 여기서 끝낸다. 회군하라.”
“예.”
그리고 그들은 우렁찬 소리와 함께 산을 벗어났다.
“쯧쯧. 미련한 놈들.”
원나라 병사들이 지른 불은 동굴뿐만 아니라 산까지 홀라당 태워버렸다. 그렇게 며칠간 온 산맥을 태울 거 같던 불은 간밤에 내린 비와 함께 잦아들었다. 산불이 진화 되었던 아니든 일단 타오른 산 때문에 밑에선 전쟁과 산불이 겹쳐 백성들이 고통 속에서 아우성이지만 저놈들의 무거운 엉덩이가 움직일 일이 있을까. 누군가를 죽일 때나 움직이지 구하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는 놈들이었다.
“못 배운 놈들이잖습니까. 암군(暗君)님의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곧 암군님 발아래 고개를 조아릴 자들이니 말이죠.”
그 말에 암군이라 불린 사내는 빗속에 날카롭게 혀를 찼다.
“저딴 놈들이 내 백성으로 있다는 것조차 마음에 안 들지만 어쩔 수 없지. 나의 넓은 아량으로 받아줄 수밖에. 그나저나 아직 찾지 못한 것이냐.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데 아직도 찾지 못한 것이야!”
암군의 분노에 주변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그의 뒤에 있는 자들은 모두 눈치만 보기 바빴다.
“곧 발견할 것입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시지요.”
그런 분위기 속에 방금 전 까지 암군과 대화하던 사내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암군은 그의 말을 들었는지 아닌지 모르지만 오른손에 들려있는 여러 방울이 달려있는 짧은 막대기를 쓰다듬었다. 그때마다 뒤에 있는 사람들이 움찔거렸다.
“찾았습니다.”
그때 비속을 헤치고 그들보다 조금 덜 화려하고 실용적인 옷을 입은 사내가 산을 타고 내려왔다. 그리고 바로 암군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 무슨 경박한 짓이냐. 여기 우리 말고 다른 자가 있으면 어찌하려고.”
“죄, 죄송합니다.”
“됐다. 지금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니. 서둘러 안내해라.”
“예!”
그 말과 동시에 사내는 암군을 안내하였다. 그러면서 암군은 즐겁게 막대를 흔들었다. 그에 따라 울리는 방울소리에 이끌리듯 몇몇 신형이 어수룩하게 암군을 따라왔고, 다른 인원들도 그런 그들을 따라갔다.
비와 질척거리는 땅을 힘겹게 넘어 도착한 곳은 한 동굴이었다. 동굴 속은 이미 불에 탄 자국들로만 가득했다. 그런 동굴을 지나 끝에 도착했을 때 사내는 암군에게 동굴 끝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곳입니다.”
“오오! 빨리 열어보아라.” 그 말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암군을 안내했던 사내와 같은 복장을 입고 있던 자들이 벽의 몇 군데를 눌렀다. 자연스러운 동굴의 벽과 같았던 곳은 그들의 손길에 따라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안으로 들어갔다. 몇 개의 부분이 안으로 들어가자 동굴의 끝이 뿌연 먼지와 기계음을 일으키며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굉장하군. 굉장해.”
그런 먼지 속에서도 암군은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감탄을 연발했다. 문이 다 열린 후에야 그곳에서 눈을 때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바깥보다 훨씬 넓었지만 실험하고, 돌아다닐 수 있을만한 공간들만 남겨둔 체 시체와 약초들로 빽빽했다.
먼저 들어와 있던 정찰대는 문이 열리는 소리에 입구까지 나와 암군을 맞이했다.
“오셨습니까.”
“그래. 이곳에는 몇 구의 강시가 있지?”
언제나 그렇듯 수고와 격려보다 현실을 묻는 암군의 말에 정찰대는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4구는 완성 되었습니다. 그리고 조금만 더 기다리시면 5구가 추가로 완성됩니다.”
그 말에 암군은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4구? 내가 아는 그 노친네는 딱딱 떨어지는 숫자를 좋아 할 텐데…. 한구는 실패해서 폐기한 건가?”
“아닌 거 같습니다.”
“그럼?”
“이미 관이 열려있었습니다. 아마 완성된 직후 사라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때 동굴의 깊숙한 곳에서 다른 사내가 허겁지겁 뛰어왔다. 그리고 암군 앞에 무릎을 꿇고 보고를 올렸다.
“보고 드리겠습니다. 안쪽에서 일반 강시 제작이 아닌 실험을 하던 공간을 발견했습니다. 근데 관 하나가 열려있었습니다. 그 외에 4구는 사용할 수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저희가 이곳에 도착하기 전 입구가 열렸던 흔적이 있었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 두 구가 함께 이 동굴을 벗어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 말에 암군은 자신의 턱을 긁으며 말했다.
“강시가 이 기관장치를 열고 나갔다고? 이 노친네가 무슨 짓을 한 거야.”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장치가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장치보다 훨씬 쉽다고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기준인 것이다. 결코 ‘시체’의 영역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생각이란 것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암군이 침음을 흘리며 막대를 흔들었고, 그때마다 울리는 종소리에 몇몇 존재들이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 거렸다.
다른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고, 암군은 그것을 기분 좋게 바라보았다. 그래. 이거였다. 시체는, 강시는 그저 내 손짓에 움직이는 말이었다. 그리고 살아있는 인간들은 나에게 복종하고 두려움에 떨면 된다. 근데 그런 시체 따위가 감히 도망을 쳐?
“찾아. 두 구 모두. 괜히 눈에 띄면 귀찮아진다. 그리고 나머지는 남은 강시 제작을 서둘러라. 이곳은 사용 불가능해 보이니 강시만 가지고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예!”
힘찬 외침과 함께 일련의 사람들은 동굴 밖으로 빠져나가고, 다른 사람들은 동굴 안을 바쁘게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암군은 그 모습을 보고 혀를 찼다.
“쯧. 고작 스물네 구라. 생각보다 적어. 절반만 구해냈어도….”
그 말에 주위에 있던 사람들 모두 죄송스럽다는 듯이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뭐, 상관없지. 강시 삼십구 정도면 변방의 소국을 전복시킬 정도는 되니 말이야. 원나라를 치는데 필요한 강시는 고려의 왕이 된 후에 대량으로 생산하면 되고. 그리고 모든 세계를 정복하는 것이야. 지치지 않는 강시부대를 이끌고 말이야. 저깟 오랑캐 놈들도 했는데 우리라고 못할 건 없지.”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동굴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 말이 익숙한 듯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