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판타지/SF
불가사리(不可殺伊)
작가 : 비내린
작품등록일 : 2018.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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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강시
작성일 : 18-12-23     조회 : 312     추천 : 0     분량 : 1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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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강시-

 

  국경은 촘촘하나 인간이 하는 일엔 늘 실수가 있을 수밖에 없다. 특히 지금처럼 내부에선 강시가 날뛰고 있으면서 홍건적의 침입이 걱정되는 이때에 당연한 생각으론 모든 곳을 철저하게 방비해야 한다지만 현실의 한계로 그렇게 되기 쉽지 않다고 창식이가 말해주었다. 아, 특히 아래쪽에서 올라오는 왜구들 때문에 더욱 그렇다고도 했다. 소문으로는 갑옷에 기병까지 다 갖춘 군대라고 한다. 홍건적도 그렇지만 정말로 이름을 지은 녀석들 한 대씩 쳐 맞아봐야 정신을 차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구(寇)가 아니라 군(軍)이라니까….

  뭐, 난 지금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금은 그들에게 분노와 함께 한 편의 고마움도 살짝 들었다. 덕분에 이렇게 고려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이유가 이들 덕분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난 주변에 경관이 어디서 많이 본 것과 비슷한 것을 느끼고 품속에서 종이 하나를 꺼냈다. 지도(地圖)였다. 나는 평생 처음 보는 이 녀석을 다루는 방법을 창식이에게 배웠다. 녀석은 똑같은 것을 수십 번 말하면서 가슴을 치고

  “이런 걸 두목이라고!”

  라면서 절규를 하였다. 나는 그때쯤이 돼서야 필요한 것들을 모두 익힐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생각한 가장 안전한 길이 맞는지

  “함정일지도 모릅니다. 함정이면 바로 도망치세요.”

  라는 걱정에 무색할 만큼 편하게 들어올 수 있었다. 물론 한번 발을 잘못 디디면 목숨은 고사하고 몸이 파편이 될 거 같은 절벽과 높은 산을 넘어야 했지만, 그것은 살아있는 인간들 기준으로 힘든 것이지 내 기준은 아니었다.

  그다지 어렵지 않게 들어온 고려에서 나는 가장 먼저 마을을 찾아 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들어가지 못했다. 마을의 경계가 삼엄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딱히 강시로 보인다거나 하는 것 때문은 아니었다. 그저 마을 자체에서 외부인을 거부하는 느낌이었다. 때문에 나는 그 마을에서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들이 왜 그렇게 주변을 경계하는지 생각해 보았다

  ‘강시 때문이라고 했지.’

  나는 이 모든 일이 나 때문인 것 같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 동굴. 문 닫고 올걸 그랬나?’

  사방이 막혀있는 동굴과 수많은 관들에 겁이 질려 동굴 이곳저곳을 만져보니 한쪽 면이 열렸다. 그리고 바로 빛이 보이는 밖으로 몸을 던졌다. 그 빛이 너무 감격스러워서일까. 나는 문을 닫는 것을 깜박하고 말았다.

  ‘거기에 관이 몇 개 더 있었는데….’

  나는 고개를 흔들어 상념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아직 내 머릿속은 그곳을 벗어나지 못했다.

  나는 녀석들에게 뺏어… 아니, 받아온 옷의 오른팔 부분을 살짝 걷어보았다. 화상이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정신없이 밖으로 도망쳐 나갔다. 밖은 무슨 일인지 산이 한 번 타올랐던 자국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아직 잔불이 여기저기 남아있었고 말이다. 나는 불을 피해서 바닥을 조심스럽게 밟았다. 그 당시엔 내가 강시라는 것도 알지 못하던 때라 모든 것이 두려웠고, 도 조심해야 할 대상들이었다. 다행히 바닥의 불은 대부분 꺼졌었지만 나무에 붙어있던 불에, 그것도 아주 작은 불에 살짝 닿았다. 그러자 불이 내 몸을 거부하듯이 올라왔다. 다행히 빨리 끄긴 했지만 말이다. 군 안에서 이런 저런 사람을 만나면서 들은 이야기가 몇 개 있다. 그중 한 개가 ‘불은 사이한 것을 태운다.’는 것이다.

  나는 이 상처를 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계속 했다. 내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이 이 상처기 때문이었다. 나는 강시이지만, 죽었지만, 계속 살아있고 싶었다. 그래서 이 상처를 되도록 멀리하려고 했다. 하지만 의식적이든 아니든 이 상처에 계속 시선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거기다 계속 상처를 보게 되는 이유 중 하나는

  “상처가 낫지 않는군.”

  죽은 몸이라서 그런지 한번 상처가 생기면 아물지 않았다. 아마 등에서 화살에 꽂혔던 구멍들이 송송 나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등이라 보이지 않지만 팔은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어차피 곧 다시 보게 될 것을 알면서도 가시는 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걷었던 옷을 내려 상처를 가렸다. 그러면서 너무 우울해지는 것 같아 즐거운 상상을 해 보았다.

  ‘내 몸은 어느 훌륭하신 고승을 만나 뵈면 사람으로 돌아올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내가 열어 두었던 동굴은 고려와 가깝긴 하지만 원나라 영토였어. 열어두면 그들이 알아서 처리 하겠지. 아니, 강시들이 원나라로 가면 나는 영웅인거 아닌가! 그렇게 나는 사람으로 돌아와 영웅이 되고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야!’

  그렇게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나는 삼엄한 마을을 지나쳐 더 남쪽, 내 고향으로 향했다.

 

  북부라는 환경은 인간들에게 그렇게 친절하지 않다. 심지어 국경이 맞닿아 있는 곳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적들은 기본이었다. 짐승들도 혹독한 자연에 맞춰 더 영약하고 강인하게 살아간다. 그런 북부에서 인간은 강인해야 했다. 아무리 호랑이가 눈앞에 나타나 자신을 먹기 위해 달려든다 하여도 단 한발의 화살을 걸고 나에게 달려오는 호랑이의 미간을 꿰뚫을 수 있는 단 한순간, 그 한순간을 기다릴 수 있는 인내와 용기를 갖춰야 했다. 그렇게 자연과 함께 살아온 인간들은 과거에도 지금도 북부에 뿌리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용기와 인내. 그 모든 것이 다 소용없는 짓이었다.

  “하압!”

  거대한 기합과 함께 나는 창을 녀석을 향해 찔렀다. 나무나 대나무의 끝을 뾰족하게 만든 창이 아니다. 진짜 날붙이가 날카롭게 달려있는 창이었다.

 챙.

  하지만 인간의 급소인 목을 찔렸음에도 창이 뚫고 들어가긴 커녕 창대가 부러질 듯 휘어졌다. 적은 목에 창날이 닿아있는 상태도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아니, 쳐다본 건지도 모르겠다. 눈은 이미 죽은 사람인 듯 초점이 없었고, 목을 돌리는 데도 고장 난 수레바퀴 마냥 삐꺽거렸다. 그런 모습이 적을 더욱 기괴하게 만들었다. 때마침 장막을 걷은 달빛이 보여준 적의 모습은 핏기하나 없이 창백한 모습이라 보는 이로 하여금 오한이 들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달빛은 나에게만 적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는지 바로 구름 속에 그 모습을 다시 감췄다.

  적은 팔을 굽히지 않은 채 나에게 팔을 휘둘렀다. 나는 익숙하게 창대로 막으려다 뒤늦게 몸을 뒤로 뺐다. 아쉽게도 제때 빼지 못한 창은 녀석의 손에 갈대처럼 너무나도 쉽게 부러졌다.

  “아직 멀었어?”

  나는 몸을 빼면서 주위에 있던 동료에게 물었다.

  “한참은. 이제 한 식경 흘렀어.”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 식경. 한 끼의 식사를 할 동안 백여 명 중 20명이 죽었다. 아무것도 못하고 말이다.

  “반 시진. 가능할까?”

  반 시진. 녀석을 피해 도망치고 있는 가족들이 도망칠 시간을 벌어줄 시간. 혹은 발 빠른 녀석이 주변에 있는 군에 녀석의 존재를 알릴 시간이었다. 우리가 그 시간을 벌지 못하면….

  “못하면 죽어. 전부.”

  그렇다. 전부. 우릴 믿고 도망치고 있는 마을 사람들 까지 모두 죽을 것이다. 그러니 죽음을 결심하고 눈앞에서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음에도 이곳에서 모두 싸우고 있는 것이다. 물론 초반에 겁이 많거나 딱히 가족이 없는 녀석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지만 말이다. 빌어먹을 녀석들.

  “좀 쉬어. 갔다 올게.”

  그러면서 나와 대화를 나누던 마을 친구는 죽음으로 향했다.

  차륜(車輪)진. 우리가 저 괴물을 상대하고 있는 방법이다. 하는 말로는 강한 적을 차례대로 돌아가면서 힘을 빼놓는 전법이라고 했다. 하지만 한 식경 동안 20여 명이 죽어가면서 유지해온 차륜진은

  퍽.

  여전히 강력한 힘으로 칼을 부러트리면서 한 명의 목을 불허트리는 적을 보면서 전혀 쓸모없는 진법이며 희생이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아까 부러져 짧아진 창과 품속에 있는 작은 단도를 손에 쥐었다. 차륜전이란 말이 무색하게 적은 아직 쌩쌩한데 반해 우리의 체력이 먼저 한계에 달했다. 정확하게는 질려간다는 말이 옳을 것이다.

  이 전법을 사용하자고 제한한 녀석, 그러니까 우리들 중 가장 싸움이나 사냥이 아닌 전투에 능한 녀석은 가장 먼저 달려들었다가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다. 그래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이 상황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무도 지금 차륜전 이상의 무언가를 생각할 겨를도, 능력도 없으니 말이다. 그저 누구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같을 것이다. 모두 반 시진을 기다리며 죽어 가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다시 우리 조의 차례가 와서 강시에게 달려들 때였다.

  “으아아아아아아아!”

  어디선가 함성인지 괴성인지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렸다. 차례를 기다리며 잠시 뒤로 빠져있는 사람들은 고개를 돌려 보았지만 나는 적을 상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빠져! 뒤로 빠지라고!”

  하지만 다급한 소리에 적에게 다가가던 몸을 멈추고 뒤로 빠졌다. 적이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짧은 순간 나는 힐끔 소리가 났던 방향을 바라보았다. 처음엔 곰인가 싶었다. 하지만 곰보단 작은 몸집에 그저 곰 가죽옷을 입은 사람이구나 싶었다. 근데 그가 나를 향해 빠르게 뛰어오고 있었다. 정말 빨랐다.

  “뭐야!”

  나도, 그리고 나와 함께 적을 상대하던 동료들 모두 자리를 피했다. 곰인간은 그렇게 우리를 지나쳐 적의 몸을 들이박았다.

  쾅.

  전쟁할 때 가끔 들리던 무언가의 커다란 소리가 그들의 몸에서 들렸다. 그리고 적은 훨훨 날아갔다. 그리고 집 한 채를 부시고 그 안으로 사라졌다.

  “그냥 들이박으면 됐던 건가?”

  나는 창, 칼, 도끼로도 들지 않던 녀석의 몸이 들이박은 것 하나로 맥을 못 추고 날아가자 녀석의 손에 처음으로 마을 사람이 죽었을 때 보다 더 현실감이 사라졌다. 그러면서 혼자 이상한 생각에 빠져버렸다.

  ‘그래. 우리 생각이 잘못됐던 거였어. 칼이 아니라 몽둥이로 싸워야 했던 건가. 크고 단단한…. 마치 저 곰인간같은….’

  크워워어어어.

  젓은 한 번도 지르지 않던 비명 같은 괴성을 지르면서 구부리지 못하는 듯 여전히 사지를 편 상태로 꼬물따 꺼리면서 몸을 다시 일으켰다. 그리고 곰인간을 향해 몸을 날렸다. 곰인간은 주위에 떨어진 무기 하나를 들고 바짝 긴장했다. 그리고 적은 곰인간을 지나쳐 우리를 향해 통통 뛰어왔다.

  “응?”

  아마 적을 제외하고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의문성을 터트렸을 것이다. 왜 구지 곰인간을 뛰어넘어 우리를 공격하려 드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아무리 공격해도 상처하나 받지 않는 적을 상대하다 겨우 풀려났는데 그 적이 다시 우리를 향해 뛰어오고 있다. 우리는 그런 상황에 무언가를 생각하기 보다는 도망치는 것을 선택했다. 다 같이 뒤돌아 열심히 도망치는데 다시 한 번 작지만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곰 인간 손에는 반쪽이 사라져버린 칼이 들려있었다. 적은 바닥에 넘어져 있고 말이다. 하지만 다시 몸을 어떻게든 일으킨 다음 곰인간이 아닌 우리를 향해 뛰어왔다. 곰인간은 다시 적을 잡아 무리의 반대편으로 던져버렸다. 그렇게 적은 우리만 노리고 곰인간은 그런 적을 막는 일이 반복되었다.

 

  ‘뭐지.’

  이놈이 고려의 북부 아니, 고려 전체를 공포로 몰아넣은 강시인 게 확실했다. 물론 멀리서 지켜봤을 때 그들을 피해서 돌아가는 걸 생각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나 때문에 일어나 ㄴ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몸을 던져서 남은 사람들을 구하기로 마음먹었다. 죽음을 각오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놈의 강시는 날 공격할 생각은 하지 않고 마을 사람들만 집요하게 노려댔다. 덕분에 나는 한결 쉽게 강시와 싸울 수 있었다. 여전히 문제가 존재하지만 말이다.

  퍽. 퍽. 퍽.

  승부가 나지 않는다는 문제 말이다.

  내가 아무리 강하게 때려도 강시를 쓰러트릴 수 없다. 강시는 날 공격할 생각이 없어보였다. 그것이 반복되고 익숙해지다 보니 조금은 싸우면서 생각할 여력이 생겼다.

  ‘왜 날 공격하지 않는 걸까.’

  여력이 생기자마자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솔직히 짐작은 갔다. 계속 날 괴롭히던 문제니까 말이다. 하지만 인정하기 싫을 뿐이었다. 다른 무언가가 더 있을까 계속 생각했지만 존재하지 않았다. 답은 알고 있지만 꽤 시간이 지나서야 나는 그 답을 낼 수 있었다.

  ‘산 자와 죽은 자….’

  강시가 날 공격하지 않는 것을 보아 살아있는 자들만을 적 아니, 사냥감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퍽.

  생각은 생각이고 나는 몸을 움직여 녀석을 다시 한 번 멀리 날려 보냈다.

  “헉. 헉.”

  누누이 생각하지만 나의 호흡과 관련된 모든 것은 습관이다. 지금도 숨은 거칠게 내쉬지만 결코 지치거나 몸에 힘이 빠진다는 것은 없었다. 정신적으로 피로해지는 것이 계속 느껴지지만 말이다.

  하지만 강시는 정신적 피로도 없는지 계속 눕혀도 눕혀도 다시 몸을 벌떡 일으켜 세우고는 다시 껑충껑충 뛰어서 오기 시작했다. 나는 잠깐 하늘에 내려오는 달빛의 힘을 빌어 녀석의 몸을 보았다. 몸 여기저기 우그러져 있었다. 아마 대부분이 내가 녀석을 내려치고 집어던진 결과일 것이다. 나는 다시 강시와 투닥이며 방법을 모색했다. 그렇게 몇 번을 녀석을 집어던졌을까. 힘 좀 쓰려고 걷은 팔에서 난 화상자국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불!”

  나는 아직 도망치지 않은 마을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마을 사람들은 내 외침에 화들짝 놀랐다.

  “불이 필요해!”

  그 말에 마을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그들이 자체적으로 가지고 있는 횃불이 있기도 해서였다. 하지만 그것들은 강시가 들이닥치고 급조한 것들인지 수가 매우 적었다. 아무리 불에 약하다지만 저것으론 안 될 것 같았다.

  “그 정도론 안 돼! 더 클 불이 필요해!”

  그재서야 마을사람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강시 뒤에 있는 마을로 향한 것이었다. 그에 따라 강시도 사냥감을 물색하기 위해 주위를 살피더니 한곳을 향해 다시 껑충 뛰어가기 시작했다.

  “날 두고 어디가려고!”

  나는 서둘러 그 강시의 앞을 막아섰다. 껑충 뛰어다니는 녀석보다 내가 더 빠른 건 당연했다. 그리고 녀석을 사람들이 없어진 마을과 먼 곳을 향해 집어던졌다. 그렇게 나와 녀석과의 의미 없는 싸움이 다시 시작되었다. 다만 달라진 점은 나는 해결책을 찾아냈기 때문에 더 이상 정신적 피로가 쌓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니, 지금까지 있던 피로까지 싹 사라지는 것 같았다.

  “모았습니다!”

  나는 뒤에서 들리는 외침에 고개를 돌렸다. 딱히 돌리지 않아도 길어진 그림자로 얼마나 불을 보았는지도 알 수 있을 거 같았다. 사람마다 한 개씩의 횃불이 들려있었고, 화롱에도 불을 담아서 가져왔다. 내 뒤에 작은 태양이 있는 거 같았다.

  “그 불을…!”

  나는 불로 강시를 퇴치하려 했다. 하지만 더 이상 입이 열리지 않았다. 만약 살아있는 몸이었다면 입이 바싹 마르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뭔가 두려운 것이 이 주변에 있다고 자꾸 경고를 보내왔다. 나는 그 경고를 따라서 시선을 돌렸다. 수십 명의 기마병이었다. 그들은 떨어진 낙엽을 힘차게 밟으면서 나에게 다가왔다. 밝은 빛이 보여준 그들은 단지 기마병이 아니라 스님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강시도 그들에게 위협을 느꼈는지 가까이에 있는 마을 사람들을 두고 스님들을 향해 달려갔다. 나는 원래대로라면 강시를 막아서야 했겠지만 내 몸이 본능적으로 스님들께 다가가는 것을 거부하여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스님들은 강시가 자신들에게 다가오자 말을 세웠다. 말은 강시의 흉흉한 기운을 느꼈는지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스님들은 말을 간단하게 달래고 내려왔다. 그 모든 행동에서 여유가 느껴졌다. 그리고 다가오는 강시를 향해 언제든 공격할 수 있도록 봉을 앞으로 내밀었다.

  단지 봉을 앞으로 뻗는 동작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동작에도 큰 압박감을 느꼈다. 자꾸 위험하다고 본능이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그리고 한 명의, 가장 앞에 있는 스님과 눈이 마주쳤다. 이 먼 거리를 밤에 어떻게 바라볼 수 있겠냐 만은 나는 그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고 느꼈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주위를 계속 두리번거렸다. 주위에 무언가 할 수 있는 것이 안 보이자 나는 스님들과 반대쪽인 마을을 향해 뛰어 들어갔다. 물론 그 앞에 내가 두려워하는 불이 가득했지만 스님들보다는 덜 위협적이었다.

  마을 사람들도 내 이상행동에 의문을 갖는 듯 한 표정이었지만 내가 그들을 도와준 것 때문인지 딱해 내 앞을 막지 않았다. 나는 마을의 반대쪽으로 달렸다. 마을을 빠져나갔는데 어느 순간 내 손에 가면이 하나 들려있었다. 이상한 모양의 가면이었다. 코가 거의 오른쪽 뺨을 다 덥고 있는 가면이었다. 나는 그 가면을 서둘러 썼다. 아마 이 가면을 주운 것도 본능적이었을 것이다. 저 스님들에게 얼굴을 들키면 안 된다는 본능 말이다.

  “이럇!”

  기수가 말을 재촉하는 소리와 말이 땅을 박차는 소리가 들렸다. 이것이 내 공포가 만들어낸 환상일지 아님 진실일지 모르지만 나는 뒤를 돌아볼 겨를도 없이 속도만 더욱 높였다. 얼마못가 내 뒤에서 들리던 소리는 사라졌다. 그리고 그것이 여전히 스님들과 멀어져서 황상이 사라진 것인지 아니면 그들이 나를 포기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물론 그 소리가 사라졌다고 해서 내가 멈춰선 것은 아니다. 한 참을 달린 후에야 나는 멈춰 설 수 있었다. 달은 이미 진지 오래고 주위가 점점 밝아지고 해고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었다.

  나는 주위를 한차례 둘러본 뒤에 가면을 벗고 이마를 닦아냈다. 당연히 땀이 날 리가 없었지만 방금 느꼈던 두려움에 식은땀이 나는 줄 알았다.

  “빨리 가야해….”

  이미 한번 죽었지만 또 죽을 수 있다고 느껴서일까. 나는 아내의 생각이 더욱 간절해졌다. 하루 빨리 그녀를 보고 싶었다. 한 번만 더. 딱 한번만 더.

  나는 가면을 손에 쥐도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국경에 있는 어느 산성 안. 그곳은 무거운 갑옷을 걸치고 있는 병사들과 더불어 가벼운 옷을 입고 있는 중들로 복잡해졌다. 그리고 그들에게 내어준 꽤 큰 별관은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죄송합니다. 놓쳤습니다.”

  젊은 수원승도의 말에 가장 상석에 앉아있던 공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또한 강시인게 확실 합니까?”

  “예. 맞는 거 같습니다. 아무리 말이 지쳐있긴 했다지만 사람 한명정돈 따라잡을 정도는 되었었습니다. 하지만….”

  “놓쳤지요.”

  “죄송합니다.”

  “아, 문책을 하려던 것은 아닙니다. 지금 누가 잘했고, 못한 것을 논할 시간도 없고요.”

  그러고 공저는 자신의 왼쪽에 앉아있는, 이곳의 중들과 다르게 무거운 갑주를 입고 있는 한명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는 이 태산으로 이번에 만들어진 항마군이 군사적 지식이 부족하고 다른 군대와 연계가 가능해야 한다는 점에서 선출되었다. 그는 북계(北界) 출신 장수로 자신의 고향이 강시에게 직접 피해를 받고 있으며 공민왕에게 충성심이 깊은 몇 안 되는 장수 중 한명이었다.

  “이 태산님은 서둘러 강시의 행방을 찾아주세요.”

  그 말에 이 태산은 자신 만만하게 말했다.

  “이미 손을 써 놨습니다. 이 주변 산성에 전부 연락을 취해놓았고, 정찰병들도 보내놨습니다.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강시의 시체는 잘 처리 하셨나요?”

  “예. 말씀하셨던 것처럼 다 태워버렸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공저는 이번엔 반대편에 중들이 앉아있는 곳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근데 이번 강시에 대해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다는데….”

  그 말에 한 수원승도가 나서서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 강시를 마치 수호신처럼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말에 공저는 깊은 시름에 빠졌다.

  “마(魔)에 물든 것입니까?”

  “그래보이지는 않습니다. 그저 두 강시가 격돌하는 과정에서 도망친 강시가 자신들을 도와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좋지 않군요. 그들에겐 둘 다 마물이며 인간을 공격하는 사악한 존재라 말씀하세요.”

  그 말에 한 수원승도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강시의 행동이 이상합니다. 다른 강시가 백성들에게 못가게 막았으며 그를 멸하기 위해 불을….”

  “그만.”

  그 수원승도의 말을 듣마 공저가 결국 그의 말을 끊었다.

  “여러분들 중 퇴마행이 초행인 분들도 있을겁니다. 그러니 이런 경우가 생기는 것일테고요. 마물은 결코 선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그저 인간을 사냥하고픈 욕망에서 비롯된 것 뿐입니다. 자신의 먹잇감을 남과 나누기 싫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욕심으로 동족과 싸운 것이겠죠. 저희에겐 다행이지만 말입니다.”

  “죄송합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 말에 공저에게 의문을 표했던 수원승도가 고개를 숙였다.

  “괜찮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성장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마을 사람들에게도 마물이 결코 선한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세요. 계속 말씀드리지만 강시는 멸해야 할 마물일 뿐입니다. 그런 이를 숭상하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 말에 그곳에 있던 수원승도들이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남은 것은 그 강시를 찾는 일….”

  “보고 드리겠습니다.”

  공저가 말을 끊고 방 밖에서 한 병사가 크게 외쳤다. 공저는 그를 안으로 불렀다.

  “들어오세요.”

  “무슨 일이냐.”

  이 태산의 질문에 병사가 서둘러 말했다.

  “강시를 찾았다고 합니다.”

  그 말에 방에 있던 모든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말이냐?”

  “예. 강시는 계속 남으로 내려가고 있다고 합니다.”

  “알았다. 그리고 절대 강시를 놓치지 암ㄹ라고 전해라.”

  “알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병사는 다시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저희도 빨리 갈 채비를 하죠.”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예. 서두르셔야 할 겁니다. 아마 남으로 내려가면 갈수록 군의 도움을 받기 힘들 터이니 말입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다들 방을 나서기 위해 문으로 향하던 중 이 태산의 말을 듣고 다들 멈춰 서서 그에게 빨리 말하라고 무언의 압박을 주었다.

  “북쪽에 있는 저희는 당장 홍건적이라는 큰 적이라는 현실에 내부에서 강시가 날뛰면 더 큰 위협이 되니 항마군을 최대한 도울 겁니다. 하지만 남으로 특히 중앙지역인 경기(京畿), 교주도(交州道), 양광도(楊廣道)로 가면 권문세족과 연이 닿은 성주들, 군부세력들이 많을 겁니다. 그들은 아마….”

  쾅!

  분노한 공저는 책상을 내려쳤다. 책상은 쩌저적 하며 금이 갔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당상 수십, 수백이 죽게 생겼는데!”

  이 태산은 쓸쓸하게 말을 이었다.

  “권문세족은 강시를 당장 물리칠 생각이 없습니다. 사부를 몰아낼 생각만 가득하지요.”

  그 말에 공저는 이를 빠드득 갈았다. 그리고 이 태산에게 종이 한 장을 품 속에서 꺼내 건네주었다.

  “이건 무엇입니까.”

  “아까 마을에서 본 도망친 강시의 얼굴입니다. 확실치 않아 걱정이 되긴 하나 지금 무언가를 가릴 상황인 아닌 듯합니다.”

  “알겠습니다.”

  공저의 말에 이 태산도 깊이 공감을 하였다. 그는 빨리 이 종이를 현상수배하기 위해 밖으로 나섰다.

  “저희도 서둘러 출발합니다. 휴식은 퇴마행이 끝나고 난 후에 하도록 합니다. 며칠 밤샐 각오로 움직입니다.”

  그 말에 다들 결의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작가의 말
 

 틀리거나 이상한 부분 있으면 지적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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